★1567. 2017년에 시작한 『호국성지 표충사 배산(配山,背山) 재악산(載嶽山) 산명(山名) 복원 범국민운동 추진계획』 책 표지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20.12.03조회수210 목록 댓글 5★1567. 2017년에 시작한 『호국성지 표충사 배산(配山,背山) 재악산(載嶽山) 산명(山名) 복원 범국민운동 추진계획』 책 표지 사진과 취지문
기고문에 추가로 삽입할 사진입니다
지면의 여분이 많지 않아 많은 글을 쓰다보니 사진은 몇 장밖에 게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17년에 사비를 들여 만든 재악산 홍보 책입니다
우리들이 활동한 흔적을 증거로서 기고문에 올리기 위해서 책장에서 몇 날을 살펴 겨우 찾았습니다
여기에 올려놓지 않으면 또 필요할 때 여러 날을 헤매게 됩니다
이 책을 손흥수.정대재 선생과 함께 서울의 대형 호텔에 입추의 여지없이 모인 재경향우회 년말 정기총회에 참석한 향우님들께 배부한 책입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하여 그 상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활동을 적극 지지하던 많은 향우님들
우리들의 활동을 저지하던 특별한 한 사람
참으로 대조적이었습니다
그 때 이 책과 같은 성격의 또 다른 홍보물 몇 종류를 더 만들어 큰 박스에 4박스를 서울까지 겨우 가져갔습니다
서명을 받고, 또 추진위원과 발기인 동의 서류를 받기 위해 볼펜도 300개 정도 가져갔습니다
참으로 잊어지지 않는 만감이 교차하던 그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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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성지 표충사(護國聖地表忠寺) 배산(配山.背山) 재악산(載嶽山) 산명(山名) 복원 범국민운동》 추진 취지문
○인간은 예로부터 생존을 위해서 이상적인 환경 조건을 추구해 왔고, 그것은 인류 문명의 발달 과정에서 형성된 자연관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왔다. 한국인들의 자연관이 반영된 풍수지리 사상에 있어서 배산임수(背山臨水)는 명당과 길지의 근본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취락과 주요 건축물들의 입지원리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자연관을 바탕으로 한 문화유산과 건축기법, 그리고 환경 구성의 치밀성 등에도 큰 영향을 끼쳐 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전통적인 자연관과 고유의 풍수사상에 따라 건축된 한국 사찰의 입지 원리에 있어서 배산이 차지하는 의미는 각별하며, <토함산 불국사>, <가야산 해인사>, <지리산 화엄사>, <오대산 월정사>와 같은 주요 사찰의 일주문 또는 산문 편액에 배산(配山, 背山)의 이름들이 먼저 명시되어 있는 바가 그것을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재악산(載嶽山)은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산 1-1 번지에 위치하면서 그 산군(山群)은 밀양시와 울산광역시의 경계를 이루는 영남 알프스의 주산(主山)으로서 호국성지 표충사(表忠寺)의 배산(背山, 配山)이다. 이러한 사실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위시하여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1638년(仁祖 16년)의 <불교경전묘법연화경재악산영정사개간(佛敎經典妙法蓮華經載岳山靈井寺改刊)>, 1799년(正祖 23년)의 <범우고사찰조영정사재악산(梵宇攷寺刹條靈井寺在載嶽山)>과 <밀주지(密州誌)>는 물론, 표충사의 비림(碑林, 碑石群)에 세워져 있는 <경자갑보월비(庚子甲補月碑)>의 뒷면과, 1995년 6월 1일 표충사삼층석탑의 해체보수 과정에서 발견되었다가 2017년 10월 30 에 국가지정 문화재(보물 제1944호)로 지정된 <재악산영정사삼층석탑개수비(載岳山靈井寺三層石塔改修碑, 약칭 표충사 改修塔記碑, 改修碑)>의 비문 등이 그것을 명백히 말해 주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표충사(表忠寺)의 배산 재악산(載嶽山)은 역사의 부침(浮沈) 속에서 그때마다 권력자와 지역 유력 인사들의 목적과 취향에 따라 여러 번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아직도 원래의 이름인 재악산(載嶽山) 대신에 일제가 왜곡, 조작한 천황산(天皇山)을 그대로 사용하며 제1봉인 사자봉(獅子峰)도 천황산(天皇山)으로 지칭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일산군 일산명(一山群, 一山名)의 원칙을 어기고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에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재약산(載藥山)이란 이름을 갖다 붙여서 국립지리원이 등재시키게 만드는 바람에 그 산을 경계로 하는 밀양과 울산 간의 갈등을 초래하여 국민적 화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재악산(載嶽山)의 산명이 시련을 겪기 시작한 것은 1839년 임진왜란 때의 의승대장인 삼대사(三大師)의 신위(神位)를 “영축산(靈鷲山) 백하난야(白霞蘭若)”에서 “재악산(載嶽山) 영정사(靈井寺)”로 모셔와 봉안(奉安)하면서 재악산(載嶽山)을 재약산(載藥山)으로 고쳐 부르고, 사명(寺名)도 영정사(靈井寺)에서 표충사(表忠寺)로 고쳐 부르기 시작한 때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급기야(及其也)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집정 시절인 1864년(高宗 1년) 무렵에 조선 팔도의 650개 서원과 사당의 국가적 병폐를 없애기 위하여 47개로 정비할 때, 그 훼철을 모면하기 위하여 1839년 이래 영축산(靈鷲山) 백하난야(白霞蘭若) 경내의 표충서원(表忠書院)에서 임란 때의 3대 구국 의승병대장(義僧兵隊長)의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춘추로 합동 향사를 받들던 영정사(靈井寺) 측과 밀양 유림이 합동으로 조작한 소위 <載藥山靈井寺古跡(一名 靈井寺史蹟記)>을 통하여 재악산(載嶽山) 대신에 재약산(載藥山)이란 명칭을 갖다 붙인 데서 비롯되었다.(1864년 훼철 당한 후, 1888년 밀양부사 權仁國에 의해 향사가 복설됨)
○그 산명(山名)은 당시 묘향산(妙香山) 수충사(酬忠祠)와 더불어 첩설(疊設)되었던 무안면의 영축산(靈鷲山) 백하난야(白霞蘭若)에 있던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사당인 표충사(表忠祠)를 1839년 이래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의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현재의 단장면 구천리 재악산(載嶽山) 아래의 영정사(靈井寺)로 이전하면서 절 이름을 표충사(表忠寺)로 바꾸면서 경내에 증축하여 호국승 삼위의 위패를 모신 <표충서원(表忠書院)> 등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으로서 급조한 확실한 근거도 불확실한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표충서원(表忠書院) 등 살리기에 급급하던 당시의 영정사(靈井寺)와 밀양 유림이 문헌상의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막연하게 구전되어 오던 영정사(靈井寺)의 창건 설화에서 오색 채운(彩雲)과 함께 죽림 속에서 솟아나는 신통한 <영정(靈井)>의 물을 먹고 불치병이 나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것을 신성화(神聖化)하여 표충서원(表忠書院) 등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서 신비로운 약이 있는 산, 즉 재약산(載藥山)으로 꾸민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일합방이 되면서 우리 민족을 일본 천황의 신민(臣民)으로 만들기 위해 소위 문화통치와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동화정책을 추진한 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齊藤實)가 1923년에 천황산 지형도를 제작하면서 재악산(載嶽山)을 천황산(天皇山)으로 조작하고,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도 재약산(載藥山)으로 조작하게 되었다.
○그 후, 해방 이후에도 표충사와 밀양시, 경상남도에서는 제1봉인 사자봉(獅子峰)과 제2봉을 묶어서 비공식적으로는 재약산(載藥山)이라 부르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제1봉인 사자봉(獅子峰)을 천황산(天皇山)으로, 그리고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을 재약산(載藥山)으로 지칭하게 되었다.
○한편, 밀양과 재악산(載嶽山)을 경계로 하는 울산광역시 측에서도 제1봉인 사자봉(獅子峰)을 천황산(天皇山)이라 부르고, 제2봉을 재약산(載藥山)이라 불렀으며, 급기야 정부에서도 1961년도에 이 사자봉을 천황산(天皇山)으로, 또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을 재약산(載藥山)으로 지명고시(地名告示)하는 바람에 전문가가 아니면 어느 봉우리가 어느 산명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산명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때, 밀양시청에 근무하던 도재국(都在國)과 향토사학자인 그의 스승 손흥수(孫興銖)는 1989년경부터 울산의 향토사학자 이유수(李有壽)가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일제가 조작 왜곡한 천황산(天皇山)을 “대한제국 시대에 독립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천왕산(天王山)의 격(格)을 높혀 천황산(天皇山)으로 했다” 라고, 조작하여 역사적 진실인 양 옹호하고 나서는 것을 보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우기 위해 그동안 수집한 여러 옛 문헌과 판독한 비문 등을 근거로 하나의 산군(山群)에 하나의 산명을 부여하는 기본원칙에 의하여 제1봉인 사자봉을 재악산(載嶽山)으로, 제2봉인 재약산(載藥山)을 수미봉(須彌峰)으로 각각 변경하기로 결심하고 <재악산(載嶽山) 산명 복원운동>을 추진하게 되었다. 또 박순문 변호사도 산명 복원운동에 참여하여 인각사보각국사비첩(麟角寺普覺國師碑帖)과 일본지리대계(日本地理大界) 등 우리나라와 일본 등지의 귀중한 문헌에서 재악산(載嶽山) 증거를 많이 발굴하였다.
○그런데, 도재국과 손흥수가 조사, 확인한 사자봉(獅子峰)의 산명이 명백한 증거 자료를 통하여 재악산(載嶽山)으로 확인이 되었으나 밀양의 어느 향토사학자가 1994년 말경부터 <재약산(載藥山) 제 이름 찾기 운동>을 추진하면서 사자봉(獅子峰)과 수미봉(須彌峰)을 묶어서 재약산(載藥山)으로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 향토사학자는 도재국과 손흥수가 제1봉인 사자봉을 재악산(載嶽山)으로 복원운동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표충사와 밀양시, 밀양 문화계, 밀양 등산인 등에게 홍보하여 제1봉을 재약산(載藥山)으로 변경하는 운동을 아래와 같이 언론의 지면 등을 이용하여 추진한 것이다.
○그는 <밀양신보> 창간 5주년 기념 독자특별기고 난을 통하여 <재약산(載藥山), 밀양인의 이름으로 되찾기 운동>을 벌였으며, 그 결과 1995년에 천황봉(天皇峰) 표석이 철거되고, <사자봉(獅子峰)> 표석이 건립되었으며, 그의 건의로 표충사 일주문에 붙은 <천황산 표충사(天皇山 表忠寺)>의 현수막도 철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95년 5월 25일에 <광복 50주년 기념 옛 지명 찾기>에서 사자봉(獅子峰)과 제2봉 수미봉(須彌峰)을 묶어서 재약산(載藥山)으로 주장한 밀양의 그 향토사학자의 건의가 비공식적으로 인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이전부터 기울기 시작했던 표충사 삼층석탑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자 표충사가 밀양시청 문화관광과에 그 사실을 통보하였고, 밀양시는 표충사 삼층석탑 붕괴 위험을 문화관광부 문화재관리국에 보고하여 개수 승인과 함께 문화관광부 등으로부터 예산 27,500천원(국비 50%, 도비 25%, 시비 25%)을 확보하여 보수공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한편, 경상남도에서는 표충사 삼층석탑보수공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광복 50주년 기념 <옛 지명 찾기 운동>을 밀양시와 같이 전개하고 있었는데, 거기서(밀양시, 경상남도) 추진하던 안(案)이 바로 천황산(天皇山)을 재약산(載藥山)으로 변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995년 6월 2일에 표충사 삼층석탑 해체 보수작업 과정에 표충사의 배산(配山,背山) 이름이 재악산(載岳山)으로 새겨진 역사적인 재악산영정사삼층석탑개수비(載岳山靈井寺三層石塔改修碑, 일명 改修塔記碑)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 성종조(1491년)에 표충사삼층석탑을 개수한 내용을 기록한 석비(石碑)로서 표충사의 배산 이름이 재악산(載岳山)임을 확고하게 밝혀 주는 명백한 증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 당시 표충사는 자기들의 계획에 저해 요인이 될까 하여 오히려 원래의 산명인 재악산(載岳山)이 새겨진 개수탑기비(改修塔記碑)를 숨겨 버리고 재약산(載藥山)으로 변경하는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으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제의 잔재인 천황산(天皇山)과 재약산(載藥山)이란 명칭이 같은 산의 두 봉우리에 그대로 사용되게 함으로써 산명의 혼재로 인한 지역 간의 갈등과 분란의 여지를 계속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당시에 작성된 경상남도 지명위원회의 회의록을 보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에 일제 잔재 청산의 의지를 보였던 경상남도가 자기네 산하에 있는 경상남도 지명위원회의 지명위원 대다수가 재약산(載藥山) 옹호론에 반대하며 재악산(載嶽山)을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밀양시에서 잘못 올린 재약산(載藥山)의 산명 요청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국립지리원에 상정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곡절을 겪으면서 경상남도가 국립지리원에 제출한 <재약산 산명 변경 요청안(載藥山山名變更要請案)>은 국립지리원의 지명심의 때에 울산광역시의 <천황산 주장론(天皇山主張論)>에 밀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1995년의 지명심의 때 울산광역시가 내세운 <천황산 주장론(天皇山主張論>은 억지 논리를 편 울산의 향토사학자 이유수(李有壽)의 소위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이라는 문건 때문이었지만, 정작 밀양시는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수의 논문이 존재하는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즉, 밀양시는 “일제가 천황산(天皇山)으로 조작했기 때문에, 재약산(載藥山)으로 변경해야 한다” 라는 식으로 아주 단편적이고 원론적인 주장만을 내세워서 국립지리원에 지명 변경 안을 제시한 반면에, 울산광역시 측에서는 비록 조작되었을망정 천황산(天皇山)을 민족의 산명으로 조작하여 표충사(表忠寺)의 배산으로 주장하는 그와 같이 그럴싸한 소명 자료 논문을 제출했기 때문에 울산광역시의 상정 안(案)에 어이없이 밀리고 만 것이었다.
◎울주군의 이유수가 잘못 주장하는 천황산(天皇山)의 지명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 우리나라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의 군장(君長)을 천왕(天王) 또는 천왕랑(天王郞), 천군(天君)이라 하였다. 뒤에 이르러 제정 분리 시대에 들어서자 정치를 오로지 맡은 그 군장(君長)을 부르는 이름도 달리 하였다. 옛날 삼한시대의 마한(馬韓)의 경우를 보면, 국읍(國邑)의 장을 신지(臣智), 견지(遣支), 불례(不例) 등으로 불렀으며, 신라 초기에 언양 일대에 두었던 거지화(居知火)도 실은 <크지(居知)>가 다스리던 국읍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이때에 신읍(神邑)의 장이었던 제주(祭主)는 천왕(天王) 또는 천왕랑(天王郞)이라 한 것이데, 천왕은 천군(天君)과도 같은 말이다. 이리하여 제사장의 전속적인 존칭인 천왕(天王), 천왕랑(天王郞), 천군(天君)이 수호신의 이름으로 변화하여 그 신을 받드는 제단(祭壇) 또는 신사(神祠)가 흔히 산정에 있으므로 이를 산왕당(山王堂) 또는 선왕당(仙王堂)이라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황산(天皇山)은 수호신을 뜻하는 천왕(天皇)을 더 한층 높여 부르는 것이다. 높은 산정을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천황봉(天皇峰)이라 불러 그러한 산 이름이 지리산에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간월산(肝月山) 단조봉(丹鳥峰)도 왕봉(王峰)이라 불러 왔다. …이하 생략….
○하지만 우리나라 왕조(王朝) 시절에 편찬한 조정(국가)의 문헌에 표충사와 그 인근의 어느 곳에도 천황산(天皇山)이 있었다는 문헌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악산(載嶽山) 산정(山頂)에 천왕(天王), 천왕랑(天王郞), 천군(天君) 등의 수호신을 받드는 제단(祭壇)이나 신사(神祠) 역시 존재한 적이 없었다.
○이 글은 아무리 보아도 우리의 조상들이 만든 재악산(載嶽山)이라는 지명을 무시하고 일제가 조작한 천황산(天皇山)이란 지명을 또 민족의 산명으로 합리화시키기 위한 억지 주장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울산의 이유수는 1998년경에 그의 이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 천황산이 일본식 명칭인가를 고찰한다>를 바탕삼아 “대한제국이 일제에 대항하여 독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천왕산(天王山)의 격(格)을 높혀 천황산(天皇山)으로 했다.”고 억지 주장을 내놓았던 것이다. 독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갖다 붙인 산 이름이 일제 당국이 명치천황(明治天皇)을 신격화 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천황(天皇)’의 호칭을 갖다 붙였으니, 그야말로 어불성설인 것이다.
○이것을 보고 도재국과 손흥수가 호국성지 표충사의 배산인 재악산(載嶽山) 이름 복원(되찾기) 운동에 박차를 가하였고, 이러는 가운데 밀양시와 경상남도, 그리고 표충사에서는 이미 천황산을 재약산(載藥山)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하고 그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런 과정에 1995년 6월 2일에 표충사삼층석탑에서 영정사(靈井寺: 표충사의 옛 이름)의 배산이 재악산(載岳山)이라는 비문이 새겨진 개수탑기(改修塔記)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중대한 자료(개수탑기비)를 추가로 확보하게 된 도재국과 손흥수는 천황산(天皇山)의 이름을 재악산(載嶽山)으로 변경해 달라는 주장을 밀양시와 경상남도에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당시(1995. 7. 21) 밀양시에서는 경상남도 및 표충사와 손잡고 일제의 잔재 청산 운동으로 천황산(天皇山)을 재약산(載藥山)으로 변경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표충사의 배산 이름이 재악산(載岳山)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일제 잔재 청산사업의 저해 요인으로 인식하고 표충사 측에서는 개수탑기비를 숨겨 버렸으며, 밀양시에서는 이를 경상남도의 지명담당 부서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재약산(載藥山)으로 기재한 잘못된 조사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그 무렵, 경상남도가 발행하는 1995년 5월 25일의 경남도보(慶南道報)에 ‘天皇山을 載藥山으로’ 하는 기사가 난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경상남도가 정부의 정책에 발맞추어 해방 50주년 일제 잔재 청산 기념사업으로 고유지명 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밀양시는 경상남도의 그와 같은 방침에 따라 표충사와 함께 천황산(天皇山)을 재약산(載藥山)으로 변경하는 사업을 추진했음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밀양시에서 보고한 잘못된 조사보고서를 접한 경상남도는 경상남도 지명위원 대다수가 재약산(載藥山)이 아닌, 도재국과 손흥수가 한결같이 주장해 온 재악산(載嶽山)으로 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추진해 온 기존의 재약산(載藥山)으로 변경하는 안을 충분한 증거 자료도 없이 밀양시의 원안대로 국립지리원에 지명 변경 요청서를 제출하고 말았던 것인데, 그러나 국립지리원에서는 1995년 11월 9일에 밀양시의 재약산(載藥山) 변경 신청 안(案)에 대해 유보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하지만 도재국과 손흥수는 도저히 승복할 수가 없어서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이름 되찾기 운동을 계속 추진하게 되었는데, 지난날 표충사의 일부 승려들이 감추어 두었던 재악산영정사삼층석탑개수비(載岳山靈井寺三層石塔改修碑)가 2002년 4. 5일에 무이거부 스님에 의해 발견됨에 따라 거기에 새겨진 개수탑기비의 ‘재악산 영정사(載岳山靈井寺)’라는 명문(銘文)과 그동안 확보해 두었던 자료들을 근거로 하여 표충사의 배산 이름은 재악산(載嶽山,봉우리 명칭은 제1봉으로서 獅子峰), 제2봉은 수미봉(須彌峰)으로 지명고시해 주기를 요청하는 동시에, 이유수의 논문인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을 반박하는 글을 첨부하여 2015년도에 밀양시에 제출했고, 밀양시는 물론 표충사 측에서도 2015년 5월에 이 요청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밀양시 의회의 동의와 밀양시 지명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서 경상남도 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서 국토지리정보원에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2015년 12월 4일에 열린 국토지리정보원의 국가지명위원회에 회부된 이 안은 1995년에 있었던 지명고시 때처럼 이유수의 논문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을 근거로 맞서는 울산광역시 측의 논리에 밀려서 또다시 부결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다시 언급하지만, 표충사의 배산 이름이 재악산(載岳山)이라는 사실은 지난날 표충사의 일부 승려들이 삼층석탑 개수공사 때 수습되자마자 감추어 두었던 재악산영정사삼층석탑개수비(載岳山靈井寺三層石塔改修碑, 일명 개수탑기비)가 다시 발견되어 메스컴을 통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또 새로 부임한 표충사 주지 도원법기 스님이 호국성지 표충사(護國聖地表忠寺) 중흥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게 되면서 통도사 방장인 원명지종 큰스님이 내린 휘호로 표충사 일주문에 <재악산 표충사(載岳山 表忠寺)>의 편액을 새로 걸고, 조계종 종정 진제법원 대종사님이 내린 휘호에 따라 <호국성지 표충사(護國聖地表忠寺)>와 <재악산문(載嶽山門)>이라는 편액을 신축한 산문의 앞뒤 양쪽에 달게 되면서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은 울주군과 울산광역시 측이 줄기차게 고수하고 있는 <표충사(表忠寺)의 배산 천황산론(天皇山論)>을 일축하고 옛날 옛적 우리의 선현(先賢)과 고승들이 명명(命名)한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이 표충사의 유일무이한 배산임을 만천하게 공표하기에 이른 셈이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재악산영정사삼층석탑개수비(載岳山靈井寺三層石塔改修碑, 일명 개수탑기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그 비문에 표충사의 배산 이름이 재악산(載岳山)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드러난 상태에서 2015년 12월 4일에 국가지명위원회 심의 때 밀양 측이 주장했던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불인정과 울산 측이 주장했던 천황산(天皇山) 인정의 결과가 나타난 후, 국토지리정보원의 국가지명위원회 소속 지명위원 1명을 제외한 14명 전원이 2016년 1월에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조선인의 독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재악산(載岳山)을 천황산(天皇山)으로 불러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이유수의 주장을 추종하는 울주군과 울산광역시 측의 처사를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에, 우리 《호국성지 표충사(護國聖地表忠寺) 배산(配山.背山) 재악산(載嶽山) 산명(山名) 복원 범국민운동추진위원회》는 우리 조상들이 명명하였던 호국성지 표충사(護國聖地表忠寺) 배산(背山, 配山)의 이름은 재악산(載嶽山, 봉우리 이름은 獅子峰, 제1봉), 제2봉은 수미봉(須彌峰)임을 널리 알려서 지역간의 갈등과 혼란을 종식시킴을 물론 우리 후세들에게 문화유산의 올바른 이름을 물려주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유수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을 옹호하여 표충사의 배산 이름이 천황산(天皇山)이며, 제2봉이 재약산(載藥山)임을 주장하는 울주군과 울산광역시 측에서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그날까지 우리 발기인 및 추진위원과 앞으로 구성될 공동대표 일동은 왜적에 항전한 의승장(儀僧將)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와 수많은 의승병을 기리는 호국성지 표충사(護國聖地表忠寺)의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호국성지 표충사 배산 이름 되찾기 범국민 추진운동》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2017. 11. 30
○호국성지 표충사(護國聖地表忠寺) 배산(配山.背山) 재악산(載嶽山) 산명(山名) 복원 범국민운동추진위원회
○귀하를 <재악산(載岳山) 산명복원 범국민운동추진위원회>의 발기인 또는 추진위원(양쪽 참여도 가능)으로 모시고자 하오니 승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표 발의자
*도재국[향토지리학자, 밀양문화원향토사연구위원, 밀양시지명위원]
*손흥수[향토사학자, 밀양시지명위원, 밀양문화원향토사연구위원, 유림]
*정대재[소설가, 한국문인협회인성교육개발위원, 밀양독립운동 대하장편소설 <떠오르는 지평선>의 작가]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12.04 네이버 블로그의 명칭은 "밀양 재악산"으로 변경을 했습니다
다음 카페의 "밀양광장" 왼쪽 상단 부분의 게시판 목록을 찾아서 검색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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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12.04 ❻<호국성지 표충사 배산(配山) 재악산(載嶽山) 산명복원 범국민운동 추진위원회>는 2018년 11월 현재 전국에서 1,335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발기인 401명, 추진위원 403명, 서명하신 분이 531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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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12.04 ⑤참고로 범국민운동에 참여하시는 분들을 직업별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❶출판사 대표, 법조인(판사 출신 등의 변호사), 기업인, 군인, 한미연합사 장교, 교육자, 언론인, 금융업, 향교 자문위원, 방송인, 방송국 총국장, 건축사, 방송국 주요 간부, 법률사무소 고문, 재경도민회 사무국장, 재경향우회 간부, 남북협력사무소 간부, 종교계, 회사원, 전현직 경찰, 부산.대구.경남지역 유림(儒林) 간부, 각급학교 교장, 전(前)언론사 기자, 민족종교단체, 세무사, 경제학박사, 전(前)은행 해외 지점장, 마약치료 중앙교육원장, 천주교 성당 평신도협의회장, 무공수훈자 시(市).구(區) 자문위원장, 교회장로, 승려.주지, 종교방송간부, 재경00학교 총동창회장, 농학박사, 전국00학과 교수협의회 회장, 문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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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12.04 농민, 각 직종의 퇴직 공무원, 역사학자, 은행원, 국제 PEN 클럽 한국본부 이사, 은행 사외이사, 각종 공사단체 임직원, 문중대표, 부동산중개업자, 사회봉사단체, 의료전문위원, 운수업자, 전업주부, 정당인, 농협직원, 전국단위 기술학회장, 목욕탕업자, 무역운송업자, 전(前)교정직공무원, 현직 공무원, 보험업자, 자영업자, 교원, 무직자(無職者), 사회복지사, 건설업자, 노인단체, 각급학교 학생, 요양보호사, 도예가, 마을이장, 법무사, 법무사 사무장, 병원장, 현직 학교장, 일용노동자 등이 총 망라되어 전국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저(도재국)와 손흥수.정대재 선생이 본 운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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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12.04 책 표지 사진 설명 :
사진 중앙의 "표충사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것이
왼쪽의 "載岳山 영정사(표충사) 삼층석탑 改修碑" 로서 일명 "改修塔記碑" 입니다.
이 비문에는 표충사 뒷쪽에서 제일 높은 산이 載岳山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 비는 2017.10.31 국가보물 제194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영정사는 1839년 이전의 지금의 표충사의 이름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표충사 일주문에 "載岳山 表忠寺" 라는 현판을 걸고 현판식을 하는 광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