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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8. 35년째 조사한 『재악산(載嶽山=載岳山) 산명(山名)의 시대별 증거』<4> Ⅱ. 재악산(載嶽山) 이해의 기본 요소 <2>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21.01.01|조회수84 목록 댓글 0
★1586. 35년째 조사한 『재악산(載嶽山=載岳山) 산명(山名)의 시대별 증거』

★1588. 35년째 조사한 『재악산(載嶽山=載岳山) 산명(山名)의 시대별 증거』<4> Ⅱ. 재악산(載嶽山) 이해의 기본 요소 <2>

 

5. 재악사(載嶽寺,載岳寺)는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 맞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72. 사찰 명칭 재악사(載嶽寺.載岳寺)는 재약산(載藥山)이 아닌,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을 증명합니다

○daum cafe 밀양광장 게시일자 : 2015.03.30

○daum → 밀양광장(재악산 산명증거 게시판), 속성 → 주소(URL) :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fldid=9fnZ&contentval=00050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310&page=50&prev_page=51&firstbbsdepth=0004Qzzzzzzzzzzzzzzzzzzzzzzzzz&lastbbsdepth=0003bzzzzzzzzzzzzzzzzzzzzzzzzz&listnum=50

<★04> 밀양지명고(密陽地名攷) : 밀양문화원, 1994년

○465쪽, 단장면 지세와 연혁條, 載岳寺(元 靈井寺)

<★08>한문본 밀주지(密州誌) : 밀양문화원 鄕土史料集(제1集) 肅宗 在位(1675년 ~ 1720년), 첫장에 “肅廟年代纂”으로 기록

○71쪽 4째줄 靈井寺 : 在 載岳寺/○73쪽 10째줄 載岳川 : 俗 東川/○76쪽 11줄 燈淵 : 載岳川 下流.

<★10>밀주읍지(密州邑誌), 밀양문화원 鄕土史料集(제1집), 1768년(영조44,戊子)

○217쪽 4째줄, 재악사(載嶽寺 : 지금의 표충사)가 부(府)의 관문으로부터 50리 떨어져 있다.

<★15>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밀양군편, 1938년 11월 延安 李秉延 編輯(국립중앙도서관본 5쪽 總說)

○밀양문화원 鄕土史料集(제5集), 조선환여승람 142쪽 密陽郡 編, 山川 條 載岳山, 146 寺刹 條 表忠寺 古載岳寺

○國立中央圖書館本 , 38쪽 山川條 載嶽山, 表忠寺 古 載岳寺, 42쪽 寺刹條 表忠寺, 古載岳寺新羅黃面禪師始創

<★24>밀주승람[密州勝覽, 碧梧桐亭館 所藏, 丁卯年 손병현(孫秉鉉) 전사(電寫)]

밀양문화원 鄕土史料集(제5集), 편찬 시기 1931~1932년.

○281쪽 15줄 表忠寺, 古載岳寺/281쪽 23줄 靈井寺, 卽載岳寺

<★28>『국역 密州誌(地理編) 密陽文獻輯覽 제1호』, 2001년 밀양문화원 발행,

○194쪽 영정사(靈井寺) : 載岳山에 있어 혹(或) 載岳寺라고도 한다.

<★50>밀양문화원 鄕土史料集(제8집) : 密州誌, 1932.8.1

○183쪽 表忠寺, 古載岳寺

○密州誌 : 朴秀憲 저작, 1932.8.1, 밀양군향교 발행,

<★56>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海東地圖 : 18세기 중엽 작성

○繪畵式 海東地圖에는 載岳寺로 기록. 지도 바로 아래의 解題 山川 條에는 載岳山으로 기록,

○책 표지명 : 奎章閣資料叢書 海東地圖(上) 서울大學校奎章閣

○책 속 표지 : 海東地圖

○지도 명칭 : 密陽府

○지도 형식 : 각 郡縣別로 1장씩 繪畫式 지도가 그려져 있으며, 地圖의 四面에는 元戶, 元畓, 穀物 收穫量, 兵營別 軍兵力 숫자, 密陽府 建置沿革, 各 面坊 명칭과 내용, 山川, 古蹟 등의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繪畵式 地圖에 건물을 그려 놓고 건물의 명칭을 載岳寺라 기록했고, 配山을 天王山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山川 條에는 載岳山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여기서 地圖上 天王山과 解題의 載岳山은 동산이명(同山異名)입니다.

 

6.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의 허구(虛構)

울주군과 울산광역시 등이 載嶽山群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사자봉(獅子峰, 해발 1189m)을 천황산(天皇山)으로 주장하는 논리가 바로 『천황산이 일본식 산명인가를 고찰한다. 즉,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입니다. 이 주장은 우리 민족의 지리문헌과 밀양 표충사의 석비(石碑)와 불교경전 등에 기록된 수많은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을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민족 정서에 맞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은 글입니다. 이 글에 대한 허구성을 증명하는 글이 『밀양광장』과 『밀양이야기』 제10호에 41쪽~271쪽(231매)의 장문(長文)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기고문의 제목은 『울산측이 주장하는 천황산 산명의 근거인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허구성 검증』이며,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글을 반드시 읽어 보아야만 『밀양이야기』 제11호 기고문인 본 글을 충분하게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책이 없는 분은 아래의 269번 글 속에 있는 “4개의 URL 주소”를 참고하여 daum cafe 밀양광장에 접속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카페는 가입을 안해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개방을 해 놓았습니다.

 

가.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평가(요약) <1>

①【이유수】가 쓴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은 민족의 지리문헌에 기록된 載嶽山(載岳山,제1봉)의 사자봉(제1봉) 위치를 부정하고 있고, 또 독도(讀圖:고지도를 보는 방법) 방법이 경직되어 사실과는 다르게 읽어(보아) 일반인이 보기에 너무나 혼란스럽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글의 분석과 검증을 비슷하지만 중복적으로 다양하게 하는 점을 서두에 다시 밝힘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②【이유수】가 쓴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요지는 다음(❶~❺)과 같습니다.

❶50페이지 : 이유수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해석하면서, "이에 이 두 고을의 산을 검토하여 보면 彦陽縣 西 28里의 穿火峴과 密陽府 東 93里의 穿火嶺은 그 위치나 거리 등으로 보아 같은 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더구나 彦陽의 穿火峴은 密陽府界라는 것을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載嶽山의 위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彦陽과의 경계에 있는 穿火嶺이 府東 93里라 한데 대하여 오늘날의 지도상에 나란히 있는 載嶽山은 府東 41里에 지나지 않아 52里나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본다면 이때의 載嶽山과 금일의 載藥山은 그 위치가 같지 않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라고 했으며

❷52페이지 : 輿地圖書를 해석하면서 "위와 같은 輿地圖書의 기록을 본다면 載嶽山은 오늘의 載藥山과는 분명 그 위치가 다름을 알 수가 있다. 또 載嶽山의 설명에 來自穿火嶺이라 하여 載嶽山은 穿火嶺으로부터 흘러온 산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이때의 載嶽山은 密陽 쪽으로 훨씬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산이었으며, 載嶽山은 穿火嶺의 뻗은 한 가지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다시 한편으로는 오늘의 지도상에 있는 載藥山은 穿火峴의 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았다" 라고, 했습니다. ❸53페이지 : 輿地圖를 독도(讀圖)하면서 "한편으로는 密陽府圖에는 彦陽쪽에 伽智山, 石南嶺이 있고 종전의 穿火嶺 자리에는 天王山이 보인다. 이와 같은 지도를 본다면 穿火嶺이 天王山으로 바꾸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의 天皇山名이 여기에서 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인데 天王山이란 이름은 다소 앞서부터 穿火嶺을 일명 그렇게 불러 온 것으로 짐작이 된다" 라고, 했습니다.

❹57페이지 : 天皇山과 載藥山, "이제까지 다섯 가지의 자료를 가지고 천황산명을 검토하여 보았다. 이로써 얻어진 것은 천화현 또는 천화령이 일명 천왕산이라고도 부르다가 이것이 천황산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했습니다

❺59페이지 : 天皇山과 재약산(載藥山), 다음으로 현행 지도에 나타나는 載藥山을 검토하여 볼까 한다. 이 재약산(載藥山)은 한마디로 말해서 이제까지 살펴본 다섯 가지 地誌에 나타난 재악산(載嶽山) 바로 그것으로 50여리나 동쪽으로 이동하여 붙여진 산명인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예로부터 불러온 천화현(穿火峴) 또는 천화령(穿火嶺).天王山이라 하던 산괴(山塊)의 이름 없었던 산봉(山峯)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현행 지도를 만들 때 훨씬 서쪽에 있었던 天王山의 한 지맥을 따와서 붙인 이름인 것이다. 해발 1115m나 되는 높은 봉우리가 이름도 없이 天皇山의 속산(屬山)으로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③위 ❶ ~ ❺의 평가 :

❶이른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은 객관적으로 검증받은 논문이라기보다는 【이유수】자신의 아주 주관적인 이야기를 적어놓은 글에 불과하며, 스스로 제시한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여지도. 문헌비고. 대동지지 등에 관한 글을 종합하면 우리의 지리문헌 등에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 제1봉인 사자봉의 위치로 명백하게 기록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글의 중요한 일부는 특이하게도 주로【 ~ 하면 ~ 일 것이다. ~ 짐작이 간다. ~ 모르겠다】라는, 가정(假定)으로 시작하여 여러 고문헌의 종합적이고도 연결된 입증(立證)의 전개가 부족한 상태에서 가정(假定)으로, 또는 부정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또 본 글의 목적은 載嶽山의 위치를 사실대로 규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그런 목적 달성을 위한 글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한글의 옛글】로써 지명의 유래를 전개하여 적용시키는 것은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가 곤란할 뿐만 아니라 수긍할 수도 없으므로 마음에 다가오지 않습니다. 산과 지맥은 태고로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는데, 지리문헌에【위치.거리 등이 잘못 표시 또는 적혀 있는 것, 예를 들면 在府東41里, 密州誌의 대부분은 거리를 “41里”로 해 놓았는데, 이 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착오로 고문헌에 기록하였기에 이것을 이유로 하면 절대로 안됩니다】자기 주관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고, 지지(地誌) 등에 기록된 글을 또 매우 주관적으로 해석하므로써 일반인이 수용할 수 없는 상황으로 글이 작성되어 있습니다.

❷【한글의 옛글】을 첨가한 문장은 이해하기 곤란한 글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옛글을 첨가한 것은 본질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더 어려움을 줍니다. 【이유수】의 글을 전반적으로 조금이라도 쉽게 이해하려면【옛글 관련 문장】은 전부 생략하고 읽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손흥수.도재국】두 사람만의 생각인지 아니면 독자들의 생각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깁니다.

❸이유수 글은 우리 민족이 천여 년(千餘年)이 넘게 사용하고 수많은 지리문헌에 증명되어 온【재악산(載嶽山=載岳山)의 위치가 제1봉이다】라는 것을 부정하고,【제2봉(수미봉)이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다】라고, 했습니다

❹이는 동시에 민족의 귀중한 지리문헌에 기록된 “제1봉인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이다” 라는, 것을 1998년에 한 순간에 정면으로 부정하였습니다.

❺참으로 안타깝습니다.

❻재악산(載嶽山=載岳山)을 사랑하는【손흥수. 도재국. 정대재】등은 지역민과 국민. 민족의 힘을 모아 일제가 조작한 천황산(天皇山)을 척결하고 자랑스러운 민족의 영원한 재악산(載嶽山=載岳山) 산명을 복원하는데 신명을 바칠 것입니다.

 

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평가(요약) <2>

①【이유수】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내용(글의 흐름)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고문헌(地誌와 地圖)을 경직되게 독도(讀圖)하므로써 신축성과 포용성이 없어 사실이 아닌 방향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자기 식의 논리와 허구로 꾸며졌습니다.

○일반적으로【산은 능선(지맥)상 우뚝 솟은 곳(특정 위치)】을 지칭하고,【지맥(능선)은 길게 뻗은 것】을 지칭하는데 반해,【이유수】는【우뚝 솟은 특정 위치의 산과 길게 뻗은 능선(지맥)을 "산괴.산.가지 등"으로 혼용】해서 글을 적었기에 일반인이 보면 이해하기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즉,【긴 능선을 山】으로, 또는【특정 위치의 山을 긴 능선(山塊. 地脈 등)】으로도 혼용했습니다.

○글이 너무 혼란스러워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아래와 같이 그분의 주장을 다섯 가지로 요약해서 다시 옮겨 적습니다.

 

<첫째>

○동국여지승람과 輿地圖書(地誌)상 密陽府 관아에서 穿火峴까지가 93里이고, 載嶽山까지가 41里이므로 52里가 차이가 난다.

 

<둘째>

○輿地圖(古地圖)상의 穿火峴은 광역시.도 경계에서 가지산의 가지가 남주(南走)했고, 載嶽山은 밀양부 안에서 東西로 뻗어 있다.

 

<세째>

○穿火峴. 穿火嶺을 일명 天王山이라 부르다가 穿火嶺이 天王山으로 바뀌었고 오늘의 天皇山名이 여기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네째>

○載嶽山은 밀양 쪽으로 훨씬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산으로 穿火嶺의 뻗은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즉, 천화현에서 뻗은 지맥의 가지가 서쪽으로 난 산괴(山塊)가 載岳山이다

 

<다섯째>

○오늘의 지도상에 있는 載藥山은 穿火峴의 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는다.

○대동여지도와 地誌 등을 살펴 본 결과 載岳山이 동쪽으로 52里 정도를 이동해 간 위치가 현행 지도상 載藥山의 위치이다.

②이상과 같이 이유수의 글이 얼마나 허구이고 또 우리 민족의 보물인 고문헌 등의 기록을 부정 또는 왜곡하는지를 차례로 하나씩 검토하고 분석해 봅니다. 또【이유수】의 주장을 동조하는 울산 측의 관계(官界)와 학계. 단체. 개인 등의 의견에 대해서도 같이 검토합니다. 본 글은 매우 경직되게 작성되어 우리 민족의 지리문헌 등의 기록의 본질을 흐려 이해하기가 곤란할 뿐만 아니라 수긍할 수도 없으므로 시민과 국민.독자들에게 이해를 쉽게 하기위해 중복 설명을 하는 부분이 많음을 다시 양지바랍니다(以下의 글은 밀양이야기 10호와 다음 카페 밀양광장에 있습니다)

 

★1567. 상식적으로 이해가 않되는 이유수의 기이한 천황산일식명설고찰 분석

(1)2019.12.21 밀양향토사연구회에서 발행한 밀양이야기(제10호)에 231쪽(41~271쪽) 분량의 기고문으로 이유수의 天皇山日式名說考察(이하 약칭 "글"로도 표현)의 허구성을 분석해서 적었습니다. 이 글은 다음(daum) 카페 밀양광장에도 있습니다

(2)이유수의 글이 너무나 난해한 가운데 사족(蛇足)같은 자기만이 알아볼 수 있는 옛글을 섞어놓아 글을 더욱 난해하게 만들어 글을 쓴 본인이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은 거의 알아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3)그의 글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92쪽의 여지도(輿地圖)와 153쪽과 154쪽의 해동지도(海東地圖)에 표시된 지금의 국도24번상의 가지산터널 위에 표시된 天王山의 위치가 지금 석남고개로 불리는 옛 고개 이름인 穿火嶺(穿火峴)의 위치라고 잘못된 독도(讀圖)를 하고 그 천화령을 여지도(해동지도)에 표시된 天王山과 엮어 조물주 같은 초능력으로 그 고개를 남쪽으로 당겨와서 현행 지도상의 소위 천황산(天皇山)을 조작하므로써 민족의 명산인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을 獅子峰의 위치에서 말살해 버렸습니다.

(4)이런 엄청난 실수 또는 조작도 모자라서 또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재악산(載岳山)을 가히 조물주 같은 초능력으로 동쪽으로 50여 리(五十餘 里)를 이동시켜 현행 지도상의 소위 재약산(載藥山)의 위치에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을 조작하므로써 현행 지도상의 재약산(載藥山)과 이동시켜온 대동여지도에 표시해 놓은 재악산(載岳山)을 히미하게 엮어 천여년 전인 신라시대부터 우리의 선현(先賢)들이 이름을 지어 사용해온 민족의 명산인 재악산(載嶽山=載嶽山) 산명을 사자봉(獅子峰)의 위치에서 지워 말살하는 민족 정서에 맞지 않고 역사적인 사실과도 맞지 않은 글을 만들었습니다.

 

(5)2020년에도 밀양이야기(제11호)에 게재하는 본 글에도 이유수가 재악산(載嶽山=載岳山)을 천황산으로 둔갑시키고 동시에 현행 지도상의 재약산(載藥山)인 수미봉에 재악산(載嶽山=載岳山)으로 둔갑시켜 요술을 부린 일에 대해서 언급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6)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적었기에 저(도재국)가 그 글을 수십 번을 들여다 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니까 그 글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7)이유수의 글 원문과 도재국의 장문(長文)의 분석 글 전체는 밀양이야기(제10호)와 밀양광장에 있습니다. 이 글과 본 글을 대조하면서 보아야 난해한 그의 글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 글을 읽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 글을 보아 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8)●●●제목 :

★1567. 상식적으로 이해가 않되는 이유수의 기이한 천황산일식명설고찰 분석

 

(9)《○46쪽》기고문 그림 설명 :

밀양이야기 제10호의 46쪽에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하 "글"이라 함)의 허구성이라는 그림 한 장이 있는데, 이유수의 글을 일반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것 같아 그의 "글"을 일반인이 이해가 되게 분석을 하여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10)《●87,88쪽》이유수 주장 :

"載嶽山이 밀양쪽으로 많이 들어와 있다" 하면서 그 증거로 밀양이야기(10호) 87쪽과 같이 "동국여지승람에 관아와의 거리를 載嶽山 在府東41里"를 언급한다, 즉, 동국여지승람을 발췌하여 "穿火峴이 在府東93里라 하면서 오늘날의 지도상 나란히 있는 載岳山은 在府東41里에 지나지 않아 52里가 차이가 난다" 했다(88쪽). 또 "이러한 것을 볼 때 이때의 載嶽山과 금일의 載藥山은 그 위치가 같지 않은 인상을 준다" 했다(88쪽)

 

(11)《○87,88쪽》도재국 분석 :

그의 "93-41=52里"의 계산식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천화현과 재악산으로 가는 길이 다르므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93里는 관아에서 지금의 국도 24번을 따라 갑니다

(12)41里는 관아에서 표충사로 가는 노선입니다.

대동여지도상의 載岳山과 현행 지도상의 載藥山을 같은 위치로 보려는 듯한 주장은 매우 잘못되었고, 그는 결국은 현행 지도상의 載藥山을 載岳山으로 보았습니다.

(13)위의 "오늘날의 지도상 나란히 있는 재악산(88쪽)" 에서 "오늘날의"를 "대동여지도상" 으로 변경해야 그의 앞뒤의 주장과 연결이 맞습니다.

 

(14)《●90쪽》이유수 주장 :

여지도서상 "穿火嶺在府東93里, 來自淸道雲門山 載嶽山在府東40里 來自穿火嶺" 을 인용하면서 "이때의 載嶽山은 밀양쪽으로 훨씬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산이었으며 載嶽山은 穿火嶺의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했습니다.

 

(15)《○90쪽》도재국 분석 :

穿火嶺은 해발 1240 미터의 가지산과 해발 1189 미터의 현행 지도상의 天皇山 사이에서 제일 낮은 해발 750미터 정도의 고개입니다

(16)그는 대동여지도상의 載岳山의 위치를 현행 지도상의 天皇山으로 보지 않고 穿火嶺에서 뻗은 (구체적으로 위치를 확정하지 않고)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90쪽) 라고, 주장했습니다.

(17)(높은 두 산 사이의 가장 낮은 해발 750 미터의) 穿火嶺에서 (더 높은 쪽으로 뻗어 지나) "밀양쪽으로 어떤 지점의 한 가지가 載嶽山이다" 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18)※고문의 원문 지지에 운문산부터 설명하면서 迦智山으로 안 적고 천화현 또는 천화령으로 적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저가 생각해보니까 그 당시에 산 정상보다는 행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산중대로(山中大路)를 강조하려니까 穿火山을 생략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19)※가지산을 밀양지명고 산내면 편에는 천화산, 석남산, 실혜산, 석면산 등으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이 글의 쪽수는 밀양이야기(제10호)의 쪽수(페이지)이며

1998년에 울산향토사연구회에서 발행한 鄕土史報 제9輯의 글을 복사한 것이며 제9집의 쪽수는 사진에 있습니다.

 

(21)《●90쪽》이유수 주장 :

오늘의 지도상에 있는 載藥山은 穿火峴의 뻗은 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했다.

 

(22)《○90쪽》도재국 분석 :

전혀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또 가지란 큰 둥치 즉, 높고 큰 산에서 낮은 산으로 뻗어 나온 것이 가지인데, 해발 750 미터 穿火峴에서 해발 1189 미터 소위 天皇山을 넘어 해발 1119 미터 소위 載藥山으로 가지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즉, 載藥山을 천화현에 종속된 봉우리로 보는 인상을 주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23)《●91쪽》이유수 주장 :

여지도의 밀양부도(密陽府圖)에는 언양쪽에 ~ 종전의 穿火嶺 자리에는 天王山이 보인다 ~ 穿火嶺이 天王山으로 바꾸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의 天皇山名이 여기서 싹트기 시작한 것인데, 天皇山이란 이름은 다소 앞서부터 穿火嶺을 그렇게 불러온 것으로 짐작된다.

 

(24)《○91쪽》도재국 분석 :

穿火嶺과 穿火峴은 같은 위치에 있는 같은 고개의 이름입니다. 이것을 天王山으로 본 것은 이유수의 큰 실수이거나 고의적인 조작으로 봅니다. 이 주장이 천황산으로 조작한 두 개의 커다란 그의 논리중의 하나입니다.

(25)밀양이야기(제10호) 92쪽의 輿地圖에 표시한 天王山과 비슷한 고지도가 밀양이야기(10호) 153쪽과 154쪽에 있는 海東地圖입니다. 이 지도에 표기된 載岳寺가 지금의 표충사이고 재악사 뒷편의 "산 그림"이 현행 지도상의 소위 天皇山입니다, 이 천황산을 본 海東地圖에는 天王山으로 표기해 놓았는데 이유수는 이 천왕산의 위치를 천화현(천화령)의 위치로 잘못보았거나 고의적으로 그렇게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불교사찰의 四天王門 즉, 四天王과 관련한 산명이 천왕산입니다. 天王山과 天皇山은 전혀 다른 뜻입니다. 천황산은 일제 천황을 뜻합니다.

92쪽의 여지도와 비슷한 고지도로서 153쪽과 154쪽에 있는 해동지도에 표기된 天王山의 왼쪽에 "彦陽界八十里" 라고 적힌 곳이 당시 密陽府에서 彦陽縣으로 넘어가는 석남고개 즉, 穿火峴 또는 穿火嶺입니다. 이유수가 92쪽의 여지도의 독도(讀圖) 즉, "천황산의 위치를 천화현(천화령)으로 본 것"은 매우 잘못한 것입니다.

(26)여지도상 天王山의 왼쪽이 迦智山이고 오른쪽이 현행 지도상의 소위 天皇山입니다. 다시 설명하지만 밀양이야기(제10호)의 92쪽의 고지도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고지도가 밀양이야기(제10호)의 153쪽과 154쪽의 海東地圖 密陽府입니다.

 

(27)《●93쪽》이유수 주장 :

대동지지를 발췌하여 재악천을 설명하면서 "載岳川은 천화현에서 서쪽으로 흘러 載嶽山의 북쪽(陰)을 지나 응천으로 들어간다". 라고, 대동지지를 인용했습니다

 

(28)《○93쪽》도재국 분석 :

밀양이야기 제10호 183쪽~185쪽에 대동여지도를 확대한 것을 보면 지금의 동천을 載岳川으로 그려 표기했고, 더 큰 하천인 단장천은 그리지 않았고, 또 載岳山에서 남쪽으로 능선을 이어 그려 지금의 단장천의 물길을 막아 단장천이 도래재(원구천과 남명을 넘나드는 고개)를 넘어 산내면 남명리쪽으로 흘러가도록 그린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대동여도를 잘못 그린 실수인데 밀양도호부 관내에만도 여러 곳에 잘못 그렸습니다. 당시의 여러 악 조건에서 제작한 흔적입니다

※그래서 저(도재국)가 밀양이야기(제10호)의 199쪽의 대동여지도상의 단장천을 기존의 강(13~31~5)에 18~19의 재악천(단장천)을 추가로 그려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29)이유수는 대동여지도만 보고 글을 쓰면 안됩니다. 고지도를 올바르게 독도하려면 고지도와 현실 지형을 직접 답사해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30)현행 지도상의 소위 天皇山의 동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배내천과 밀양댐을 지나 단장면 범도에서 구천과 합류하여 또 競珠山 북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데 조선시대에는 동천과 단장천을 모두 載岳川이라 했습니다.

(31)이유수는 위와 같이 독도(讀圖)를 완전히 잘못했습니다.

 

(32)≪●93쪽≫이유수 주장 :

문헌비고를 인용하여 載嶽山在東40里라 적었습니다

 

(33)≪○93쪽≫도재국 분석 :

이유수는 언급한 고문헌의 지지에 적힌 거리와 고지도에 표시된9그려진) 것을 가지고 고지도상의 지명이 현재의 지명과 맞니 안맞니 합니다.

(34)그러나 고지도를 제작할 때 좁은 목판에 지명과 지형 등을 새기거나 실재 거리를 측도할 때 요즘처럼 신식 장비가 없었기에 줄자로 먼 거리를 잴 수도 없어 한 번 잘못 측도하면 시대가 흘러도 그 거리를 그대로 사용하므로써 필사한 지지에는 틀린 거리가 게속 틀린 상태로 필사(筆寫)되었습니다

(35)고문헌에는 관아에서 표충사 또는 載嶽山까지를 40里 ~ 50里 로 적어 놓았습니다.

(36)그러나 실재 거리는 관아에서 표충사 까지만 해도 70里 정도 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까 이유수처럼 고문헌만을 읽고 고지도를 讀圖할 때 거리와 고지도의 지형 위치를 가지고 맞니 안 맞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즉, 같거나 비슷한 축척의 고지도와 현행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지형도를 포개어서 서로 맞지 않는다고 이것이 그것이 아니다 라는 식의 이유수의 아주 경직된 고문헌의 지지 이해와 고지도의 독도 방법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37)《●94쪽》이유수 주장 :

그는 대동지지를 인용하면서 대동여지도의 밀양부 한 장을 첨부했는데 "대동여지도상 載岳山은 밀양부 안에서 동서로 길게 뻗었다" 라고, 그림을 讀圖를 했습니다

 

(38)《○94쪽》도재국 분석 :

고지도 즉, 대동여지도만 보고 글을 쓴 결과 그의 글은 역사적 사실과 현실 상황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특히 밀양이야기(제10호)의 183쪽~185쪽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산봉우리와 산명을 “가로” 기준으로 표시했는데 이 산봉의 그림은 산덩어리가 큰 것은 가로로 길고 크게 그렸고, 작은 산덩어리는 그 반대로 그렸습니다. 이런 것을 모르고 밀양쪽으로 길게 뻗어있다 라고, 독도하면 안됩니다.

 

(39)《●95쪽》이유수 주장 :

天皇山과 載藥山 편에서 穿火峴 또는 穿火嶺이 일명 天王山이라고도 부르다가 이것이 天皇山으로 변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40)《○95쪽》도재국 분석 :

이유수는 여지도상의 天王山의 위치를 穿火峴(穿火嶺)으로 보는 큰 실수를 저질렀거나 고의적으로 그렇게 보았습니다

결과는 載嶽山을 없애고 天皇山으로 조작해 버렸습니다.

 

(41)《●97쪽》이유수 주장 :

載藥山은 다섯가지 지지(地志)에 나타난 載嶽山이 50여 里나 동쪽으로 이동하여 붙여진 산명이다.

(42)달리 표현하자면 穿火峴 또는 穿火嶺.天王山이란 산괴(山塊)의 이름 없었던 산봉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현행 지도를 만들 때 훨씬 서쪽에 있던 天王山의 한 지맥을 따와서 붙인 것이다

 

(43)《○97쪽》도재국 분석 :

논리적 현실적으로 전혀 맞지 않습니다

※위에서 한 支脈이란 대동여지도상에 표시된 載岳山을 가리키는데, 표현을 기이하고도 어지럽게 현실적으로 맞지않게 했고 고지도의 독도를 잘못 했습니다

(44)※자세한 분석 내용을 보려면 밀양이야기(제10호)나 밀양광장을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의 글의 (1) ~ (46)과 같이 괄호번호 부여는 문단모양을 붙여 지면(紙面)을 최대한 확보하고, 찾아보기 쉽게하기 위한 것입니다.

 

269. 민족의 산명을 말살하고, 일제 천황과 같은 산명인 천황산을 옹호하는 이유수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허구성을 집중 분석합니다(페이스북 게시글)

○daum cafe 밀양광장 게시일자 : 2020.06.25

○daum → 밀양광장(재악산 산명증거 게시판), 속성 → 주소(URL) :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fldid=UWdC&contentval=0007k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480&page=9&prev_page=8&firstbbsdepth=0008Hzzzzzzzzzzzzzzzzzzzzzzzzz&lastbbsdepth=0007mzzzzzzzzzzzzzzzzzzzzzzzzz&listnum=20

○일제 잔재는 하루빨리 청산, 척결해야 합니다. 1923년 일제시대 조선 제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일제 천황을 위해 민족의 산인 재악산(載嶽山=載岳山, 해발 1189m)을 말살하고, 그 자리에 천황산(天皇山)으로 조작했습니다. 저희들(손흥수.도재국 등)이 일제가 조작한 천황산을 없애려고 수십 년 동안 온갖 노력을 다 해도 천황산을 옹호하는 주변 지역의 세력이 너무나 견고하고, 중과부족하여 없앨 수가 없습니다. 전국의 애국시민 여러분 ! 친일의 상징인 천황산을 박살내는데 동참해 주십시오. 이 친일의 상징인 천황산을 없애지 않고서는 완벽한 《일제 불매운동》, 《극일운동》, 《일본여행 안가기 운운》 등등은 요원할 뿐입니다. 지금 경상도 영남알프스의 중심에 있는 제일 큰 산인 천황산은 일제 천황의 상징으로 일제로 부터 해방된지 75년째인 지금까지 일제 천황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습니다. 인류는, 우리는 큰 일을, 엄청난 큰 일을 할 때는 반드시 깃발을 만 천하에 내 겁니다. 국가 중대사에 국기를 내 거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군 부대가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서 적진으로 돌격할 때 국기(天子旗, 諸侯旗, 國王旗, 國旗 등)와 軍旗를 제일 앞에 세웁니다. 또 새로운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을 때도, 고지를 내 나라의 땅을 적으로부터 탈환했을 때도, 국기와 부대기를 제일 먼저 올립니다.

○그런데 경상도는 아직도 일제의 식민지입니까?

○재악산 정상에 일제의 천황산 표지석과 깃발이 왜, 아직도 휘날립니까?

○경상도가 일본 땅입니까?

○전국의 애국시민 여러분 !

○일제 천황(天皇)을 상징하는 천황산(天皇山) 하나만 청산, 척결하면 다른 수백 수천 개의 일제 잔재 지명을 없애는 것보다 효과가 더 큽니다. 일제 천황의 상징인 천황산을 하루속히 박살냅시다.

○또 천황산을 없애는데 누가, 어떤 부류가 반대하고 침묵하는지를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봅시다.

○다음은 밀양의 향토사연구가로서 《재악산 산명복원 범국민운동》을 벌이는데 앞장서고 있는 손흥수와 도재국이 공동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글을《밀양향토사연구회》가 2019.12.28 년보로 발행한 《밀양이야기》 책에 기고하였습니다 .

○즉, 울산측이 주장, 옹호하는 천황산 산명의 근거가 되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허구성을 검증하는 글》입니다. 긴 글입니다만 꼭 읽어 봐 주시고 《재악산 산명복원 범국민운동》에 동참하여 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도재국과 손흥수는 일제 천황산을 없애고 민족의 산인 재악산 산명을 복원하기 위해서 사적으로 엄청난 사비를 들이고 엄청난 노력을 해 온 지가 올해로서 35년째가 됩니다. 청춘과 인생을 다 바쳐 하다 보니 어느 듯 손흥수는 79세, 도재국은 69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지시도 없이 어느 누구의 지원도 없이 35년을 달려왔습니다.

○오직 우리 민족왕조의 수많은 지리문헌에 기록된 재악산 산명을 복원하고 산명과 민족역사를 온전하게 보존하고 후세에 사실대로 전승하고 일제 잔재를 청산, 척결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서 합니다.

○저희들은 주변의 반대세력으로부터 온갖 방해와 멸시와 협박과 조롱과 무시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이 일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한다고 중단하라고 어떤 자가 오래 전에 야밤중에 전화로 『손흥수와 도재국 당신들이 계속해서 載嶽山의 증거를 찾아내고 또 載嶽山을 홍보하면 너희 두 놈의 목을 따서 살해하겠다』 라고, 살인의 협박까지 했습니다. 우리들은 그들에게 《당신들의 반대가 정당하면 숨어서 살인의 협박을 하지 말고 세상에 정정당당하게 얼굴을 내놓고 증거로써 당당하게 토론하자》라고. 인터넷에 제안했으나 그들은 지금까지 비굴하게 숨어 버렸습니다.

○지자체와 국가가 할 일을 저희들 개인이 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몇 년전 부터 서울에 사는 정대재가 동참하고 있습니다.

○애국 시민여러분 ! 일제 잔재 천황산을 박살내는데 동참해 주시기를 엎드려 거듭 바라옵니다.

 

◎『밀양이야기』 제10호 내용

울산측이 주장, 옹호하는 천황산 산명의 근거가 되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허구성을 검증하는 장문(長文)의 글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 4건으로 분리 작성해서 아래와 같이 『밀양광장』에 올리고 『밀양이야기』제10호 책에도 기고를 했습니다.

◎밀양이야기 제10호 내용 (제1부)

《울산측이 주장, 옹호하는 천황산 산명의 근거가 되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허구성을 검증하는 글》

http://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244?svc=cafeapp

◎밀양이야기 제10호 내용 (제2-1부)

《울산측이 주장, 옹호하는 천황산 산명의 근거가 되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허구성을 검증하는 글》

http://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243?svc=cafeapp

◎밀양이야기 제10호 내용 (제2-2부)

《울산측이 주장, 옹호하는 천황산 산명의 근거가 되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허구성을 검증하는 글》

http://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242?svc=cafeapp

◎밀양이야기 제10호 내용 (제3부)

《울산측이 주장, 옹호하는 천황산 산명의 근거가 되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의 허구성을 검증하는 글》

http://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241?svc=cafeapp

◎밀양이야기 제10호 정오표

※본 정오표는 책이 발간된 후에 작성하였으므로 책을 배부할 때 첨부를 하였고, 밀양광장의 글에는 전부 수정을 했습니다. 정오표는 맨 끝에 있습니다.

 

 

◎밀양이야기 제10호 정오표

※본 정오표는 2020.12.30 다시 작성한 것입니다

아래의 물음표(?) 전부는 편집할 때 컴퓨터 프로그램 오작동(자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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