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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이유수 천황산일식명설고찰 [02] [穿火峴은 "神明한 고개"가 아니고 天王山과 위치가 다르다]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16.08.06|조회수60 목록 댓글 0

232. 이유수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

         [02][穿火峴은 "神明한 고개"가 아니고, 天王山과 위치가 다르다]

이 글을 만든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영남알프스의 주산(主山)인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 해발1189.2미터)은 원래의 산명입니다   

② 이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사자봉 獅子峰, 제1봉)을 1925년에 일제(日帝)가 천황산(天皇山)으로 조작했습니다   

③ 제1봉인 재악산(載嶽山, 载岳山 = 사자봉 獅子峰)을 위와 같이 조작하고, 

④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은 "역사적 근거와 증거가 없는 재약산(載藥山)"으로 억지로 만들었습니다.    

⑤ 본 블로그와 카페는 제1봉인 천황산(天皇山)을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으로 복원하고, 제2봉인 재약산(載藥山)을  수미봉(須彌峰)으로 변경하기 위해 

⑥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산명(山名)의 증거를 찾아 글과 사진을 올리고,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글과 사진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⑦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을 많이 홍보해 주시기 바라오며, 많은 지도,편달,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블로그 및 카페 운영자 도재국(都在國, 닉네임 레나, 소나무바다) 올려드립니다

-------------------------------------- 

(주)도재국 : "감밝재 등" 옛글의 정확한 표기는 원문(사진 참조)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이란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mgrpid=&fldid=Pwsx&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04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4&listnum=20

 

울산의 향토사학자 이유수(李有壽) 선생(1926년 ~ 2007년 1월)

1989년 울산향토사연구회에서 발간한 『鄕土史報』 제9輯에

기고한 논문(A4 10쪽 분량)의 제목으로서

『天皇山이 日本式 名稱인가에 대해서 考察한다』 로서

지금 울산측이 주장하는 "天皇山 산명"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이 논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해 하고 있어

필자(도재국) 많은 분들에게 알리기 위해

2015년도 1차로 50쪽에 가까운 검토.분석 내용을 작성하여

밀양시와 경상남도를 통해 2015. 12. 4 지명 심의 전에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에 제출한 바 있다

※ 2015년도 제1차 검토.분석 내용 글(속성)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fldid=9fnZ&contentval=0009Mzzzzzzzzzzzzzzzzzzzzzzzzz&isRedirected=true

 

그리고 필자(도재국)는 2016년도에 각 항목별로 2차로 검토.분석하여

많은 분들께 널리 알리기 위해 여러 항목으로 나누어서 이 게시판에 게재를 한다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이유수 선생이, 역사적인 근거나 증거도 없이

하나의 산군(山群)에 속한 제1봉(峰)인 재악산(載岳山)을 함부로 천황산(天皇山)이라 하고,

제2峰인 須彌峰을 함부로 載藥山이라 했다가 뒤에 또 함부로 載岳山이라고 했다

 

본 논문은 대부분 가정(假定)의 조건 등을 기반으로,

근거와 증거없는 주장으로, 또 가정(假定)으로 결론을 내려

지극히 개인적인 설(說)에 불과한 것이다』 라고 본다

 

주된 내용은

①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②여지도서(輿地圖書)

③여지도(輿地圖)

④문헌비고(文獻備考)

⑤대동지지(大東地志)를 분석하여

 

<첫째> 『위 5개의 지지(地誌)에 표기된 載岳山은

지금의 수미봉인 제2峰은 현재 載藥山 표지석 있는 곳)이다』

<둘째> 『天皇山은 지금의 獅子峰인 제1峰(天皇山 표지석 있는 곳)이다』 라고 규정을 했는데

 

2015년도에 밀양시와 경상남도는

❶제1峰의 원래의 산명은 載岳山이므로, 天皇山을 載岳山으로 변경 요청함과 동시에

❷제2峰인 載藥山은 역사적 근거가 미약하고, “

1山群 1山名 부여 원칙”에 맞지 않아 수미봉(須彌峰)으로 변경 요청을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국가지명위원회 심의토록 요청)에 했으며

❸제1峰이 載岳山이라는 수많은 역사적인 근거와 증거를 제출함과 동시에

❹載藥山은 역사적 근거와 증거가 없거나 미약하고,

“1山群 1山名 부여 원칙 위배”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載岳山(天皇山 표지석 있는 곳) 정상이

밀양시와 울주군 2개의 시.군에 접해 있어, 관련 법규에 따라

(※ 산이 2개 이상의 시.군에 걸쳐 있을 때는 의견을 들어야 한다)

 

울주군과 울산광역시는

❶“제1峰의 天皇山은 민족의 산명”이고,

❷“제2峰은 載藥山이 맞다” 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의견서를 국토지리정보원에 제출했다

※ 이유수 선생의 논문은 “수미봉(須彌峰) 위치가 載藥山이고,

이 載藥山이 載岳山으로 변했다” 라고 주장했다

※ 이와 달리, 울산측은 국토지리정보원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須彌峰 위치가 載藥山이다” 라는 주장을 했다

※ 울산측은 須彌峰에 대해서는 이유수 선생이 주장한 내용과는

결론적으로는 다른 주장을 하여 모순을 보였다

 

밀양시와 경상남도는

❶제1峰의 天皇山은 민족의 산명이 아니고 日帝가 조작한 산명이므로 원래의 산명인 載岳山으로 하고

❷제2峰인 載藥山은 역사적 근거가 없는 산명임과 동시에

“1山群 1山名 부여 원칙”에 부합하지 않아

수미봉(須彌峰)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울산측이

❶『제1峰인 天皇山이 민족의 산명이고, 제2峰은 載藥山이다』라고

주장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天皇山日式名說考察』인데

❷필자(도재국)가『天皇山日式名說考察』을 검토한 결과

天皇山이 민족의 산명이라는 역사적인 근거와 증가 전혀 없고

❸『제2峰은 載藥山이다』라는 것도 역사적인 근거와 증거가 미약하거나 없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2015. 12. 4 국토지리정보원 소속 국가지명위원회 지명 심의에서

“11분의 위원은 울산측의 의견이 맞다” 하고,

“4분의 위원은 밀양측의 의견이 맞다” 하여

“결국은 밀양시와 경상남도가 청원한 건이 인정되지 않았다”

 

재악산(載嶽山)은

국가(조정 및 당시의 공공단체 등)에서 만든 문헌(지지 및 고지도)에 수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천황산(天皇山)은

개인 또는 문중에서 만든 극소수의 행장(行狀 : 개인의 내력을 적은 문서) 등을 모아

주로 일제시대에 편집한 문집 등에서 나타난다

※ 일제시대에 편집하였기에, 일제가 天皇山으로 조작한 것과

관련 없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신라시대 이래 수많은 역사적인 근거와 증거가 있는 “載岳山 명칭과 위치 등”이

울산의 한 향토사학자가 갑자기 1989년도에 작성한 논문에 의해

왜곡되고 부정되는 엄청난 사건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天皇山이 민족의 산명이라는 아무런 역사적 근거와 증거가 없는

엉뚱한 논리로 1989년도에 작성한 논문』에 나타난다

『수천 년의 역사적인 근거와 증거를 가진 載岳山 산명이 말살될 위기에

처한 분개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다음(Daum) 카페 밀양광장은

載岳山 山名의 역사적인 근거와 증거를 만 천하에 널리 알리고

 

『천황산일식명설고찰』에서

❶『“天皇山은 민족의 山名이다“ 라는 주장은 역사적 근거와 증거가 전혀 없다』

❷『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 주장하는 내용은 대부분은 역사적, 위치적, 논리적 등으로 맞지 않다』 라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본 논문의 부당성을 항목별로 다음과 같이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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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가지산(迦智山 해발 1240미터)은

1. "???", "감밝재"는 이 산명이 아님

(주)도재국

이 고개의 이름을 이유수 선생은 穿火峴의 借字로서의 "산 이름"이라 하나,

일반적으로 借字란 音과 訓을 借字하므로, 결과적으로 穿火峴을 借字한 산 이름(고개 이름)이 아니며

또 穿火峴은 산 이름이 아닌, 지금의 迦智山의 옛 이름인 穿火山의 여러 고개 중에서

대표적인 고개(峴, 嶺, 峙, 고개, 재 등)의 명칭에 불과함

2. 천화산(穿火山)

3. 석남산(石南山)

4. 석면산(石眠山)

5. 실혜산(實惠山)

6. 가지산(迦智山) 이라는

6개(최초의 산명은 "감밝재"도 아니고,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음) 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산 이름(1번 "감밝재"는 제외)은 필자(도재국)가 지어낸 산 이름이 아니고,

밀양지(密陽誌)와 밀양지명고(密陽地名攷) 등에서 확인한 산 이름이다

(확인한 상세한 내용은 차후 다른 글에 게재할 것입니다)

위는 필자(도재국)가 추정으로 "산 이름이 생겨난 순서"대로 적어 보았다


왜 순서를 이렇게 적었느냐 하면

1. "???"("감밝재"는 아님) : 우리말이 생겨나기 전 우리 조상들이 순 우리말로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라 칭한다

2. 穿火山 : 화산이 불을 뿜고 솟아 올랐기 때문이다

3. 石眠山 : 화산 활동이 중단된 상태의 산 이름으로 보인다

4. 石南山 : 암반이 특이하게 많다는 뜻을 가진 산 이름으로 보이며, 대표적인 암반이 가지산 남쪽의 백운산이다

5. 實惠山 : 가지산 남쪽의 지금의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와 남명리 일대의 마을을 실혜촌이라 부른데서 유래한 산 이름이다

               실혜산 자락에서 주민들이 풍요롭게 살았다는 증거로서 실혜촌을 부요(富饒)라 했다


6. 迦智山 : 이 산 이름은 지금의 석남사 즉, 불교의 세력이 강할 때 생겨난 불교식 지명이다

               즉, 사찰의 배산의 명칭이다 "가지산 석남사"이다

지명을 이두식(吏讀式)으로 풀이하는 것은

고대국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취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삼국사기의 경우, 우리말의 지명을 문서화할 때 한글이 없었으므로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借字하여) 기록을 했다

고대국어의 이런 사항을 이해하면서

이유수 선생의 논문을 이해하려 하나


한문으로 형성된 위 4가지의 산 이름을 볼 때

선생의 옛글 전개 과정에서의 산 이름

(이 선생은 천화현을 산 이름이라 했으나,

穿火峴은 고개의 이름임, 본고에서는 狹意의 산 이름인 산의 峰우리를 다루는 것임)을

동국여지승람에서 오류된 것을 그대로 취하는데서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동국여지승람이라 해서 그 당시 지형, 지명, 거리 등의 기록이 완벽할 수는 없다

또 동국여지승람을 보완.개수한 여지도서조차

동국여지승람의 오류를 그대로 전재(轉載)하고 있는데

이것이 "1998년 발행 울산 향토사보 제9집 52쪽 상단"의

"密陽府 穿火嶺 在雰九十三里 來自淸道雲門山 載岳山 載雰四十里 來自穿火嶺" 의

"載岳山 在雰四十里 來自穿火嶺" 中, "來自穿火嶺"이다


 "來自穿火嶺"은 동국여지승람을 감수할 때도 잘못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동국여지승람을 보완.개수할 때도 또그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즉, 바른 표기는 "來自穿火山"이다


 

천화산(가지산) 정상과 천화현(천화령), 능동산 정상, 재악산(사자봉) 정상의 해발고를 나타내는 그림

○ 위 그림은 천화산(가지산 1240미터) 정상에서 논리를 전개 시켜야 마땅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산봉우리(정상)이 아닌, 고개인 천화현(천화령 해발 700미터)에서부터 논리를 전개시킨 것이

○ 옳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는 그림임


이 선생은

"來自穿火嶺"에서 고개 명칭인 "령(嶺)"을 山名으로 보고 또 여러 산의 위치를 정할 때

요즘 같으면 기준점(수준점:삼각점) 같은 것으로 뿌리깊게 인식하면서

논문을 전개한 것은 크나큰 잘못이라 본다

그 이유는 가지산군의 最 底 山麓인 穿火嶺(穿火峴)에서부터

陵洞山群을 지나, 載岳山群(獅子峰)에 이르는데

2개의 산군의 중간에 있는 陵洞山群을 건너 뛰면서까지 山도 아닌 고개(嶺)를 끌고 와서

산 이름을 근거없이 지어낸 것으로 밖에 불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하고 있다




능동산군은 가지산군과 재악산군의 중간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사진

○ 재악산군의 범위가 아래 사진과 다른 이유는

○ 최고봉의 집수구역까지를 포함한 것이기에 아래의 재악산군 범위와 차이가 남

즉, 가지산군의 최저 능선인 고개에서, 또 한 산군 건너에서 

논리를 전개시킨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는 지도임

산을 어디에서부터 따 온다는 것 자체도 말이 안됨

그 산의 최고봉에 속한 산명은 그 산군에서 부여하는 것이지, 타(他 : 남의) 산군에서 따오는 것은 있을 수 없음


(지도 출처 : 다음)

○ 재악산군 범위가 위의 사진과 다른 이유는 최고봉을 기준으로 하여,

○ 그 산군의 모든 봉우리를 연결하여 산군을 표시했기 때문임

가지산(천화산) 정상에서 천화현(천화령)을 거쳐, 다시 능동산 정상을 거쳐

載岳山群의 載岳山(獅子峰) 정상에 이르는 능선(支脈)

논리를 전개시킨 능선(지맥)을의 위치와 방향을 설명하는 지도임(지도 출처 : 다음)


"능동산은 봉우리가 밋밋한 산 지형"이지만,

1961년에 건설부에서 산명으로 지명고시를 했기에

하나의 독립된 산군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명백하다


또 19세기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의 착오 표기와 거리 등을 착오한 "在雰40里"를

착오로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요즘의 현대 과학문명의 산물인 인공위성지도와 축적을 대략 같게 하여

한데 포개어(겹쳐)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그것은 위치적으로 잘못되어

그 위치로부터 전개시킨 그의 논문은

결국에는 載岳山을 지금의 須彌峰에까지 끌고 가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유수 선생은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라는 논문에서

"穿火峴"에서 이 산의 옛 명칭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지명을 山峰우리의 이름이 아닌, 고개(峴, 嶺)의 이름에서 기반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위 5개의 한문식 산 이름을 가지고 옛말의 지명을 찾아가는 것이 정도이고

특히 본 논문에서는 천화산 산명에서 엣말의 지명을 찾아가는 것이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등에서 특정지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증거가 사진 속의 글과 그 아래의 설명문에서 기록하고 있다


 

 

 

<작성중인 문서>

아래 문장 중, 한글 옛글인  「감밝재」「구무」,「굼」, 「감」은 「김, 검, 금」등은

필자(도재국)가 컴퓨터 입력 방법을 몰라서

원 글자와 다름을 알립니다

차후 수정을 할 것입니다


선생의 아래의 논문 전개 내용은  

穿火산 이라는 산 이름의 유래를 벗어나는 방향으로 하고 있어

지금의 가지산의 異名인 천화산과는 전혀 다른 옛말 산명인 "감밝산"이 되어 버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선생이 도출해낸 "감밝산"은 천화현의 고개 이름도, 산 이름도 아닌 것이다


「穿火峴」을 「감밝재」의 한자 바꿈한 것으로 보고자 한 것 자체가 문제이다
왜 「감밝재」로 보았나?
"천화산은 화산이 폭발하여 만들어 졌다" 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穿」은 "땅을 뚫고 솟아 올랐다" 라는 뜻인데
이와는 전혀 다른 뜻의
「구무」,「굼」, 곧 「神」 또는 「王」의 옛말 「감」으로 봄직하다

♥<도재국>
「穿火峴」을 처음부터 왜 「감밝재」라 했나?
뒤에서부터 한 자씩 모아서 글자를 "감밝재"라 했다면,
그 한 자, 한 자는 왜 그런 글자로 선택했나?
아래와 같이.
------------------------

♥「穿火峴」은 「감밝재」★의 한자 탈바꿈한 것으로 보고자 한다

「감」은 「김, 검, 금」 등으로 호전互转되는

「神」의 옛말로 「王」의 古训(옛말의 뜻)인 

 「이질금(尼叱今).매금(寐锦) 내지 상감(上监)」에 그대로 쓰였는데

그 "차자(借字)"로는

「해모(解慕), 개마(盖马), 건마(乾马), 금마(金马),

검(俭),금(锦), 금(今), 흑(黒), 웅(熊)」 등 이었다 하였다
(1.양주동 증정 고가연구)

이와 같은 견해에 따라 「천(穿)」은 그 뜻이 「구무」이니
그 준말 「굼」은
곧 ★신(神) 또는 왕(王)의 옛말 「감」으로 봄직하다

♥<도재국>
천(穿)을 왜 '"구무"라 했나?
--------------------------
♥「火」는 「밝」으로 보고자 한다
「밝」는 광명 또는 국토의 뜻으로 고사(古史)에

「발(发), 벌(伐), 불(沸), 불弗, 불不, 부여夫餘, 부리(夫里),

화(火), 원(原), 평(坪), 평(平), 평(评), 혁(赫), 소(昭), ★명(明)」

또는 「백(白), 백(百), 백(伯), 맥(貊), 박(朴), 박(泊), 호(瓠)」 등 자로

국명, ★지명, 족명, 인명 등에 "借字"됨은 주지의 사실이라 하였다

(2.양주동 증정 고가연구)

♥<도재국>
화(火)를 왜 「밝」이라 했나?

"火"를 "밝다"와 비슷하게 보았다는 것인가?
-------------------------------------
이렇게 ★ 「神明하다」는 뜻을 가진 지명은

천화현(穿火峴)의 인근에서도 더러 찾아 볼 수 있다

즉 간월산.신불산과 박어리산.화천火穿(登億) 등이 그러하며,

배내[이천(梨川)] 또한 그러한 것이다

배내의 「배」도 「밝」이 변한 말이라 한다

(3.양주동 증정 고가연구)

그런데 지금과는 달리 언양에서 밀양으로 넘어가고,

밀양에서 언양으로 오는데도

모두 천화현(穿火峴) 을 통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언양읍에서 동과 남, 북으로는 대로가 열려 있었고

서쪽으로는 소로가 천화현(穿火峴)을 넘어 밀양으로 통하고 있었다
(4. 여지도서 언양현지지도)

이와 같은 험준한 산길을 가고 옴에는

남달리 길손들의 마음에는

이 산을 외경(경외:공경하고 어려워 함)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감밝재」라는 이름이 생겨 났을 것이다
-------------------

<이유수 논문의 문제점>

穿火峴을 "감밝재"라고 정의를 하면서 논문을 전개한 것은 큰 잘못이다


穿火峴이 "감밝재"가 아니라는 필자(도재국)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穿火峴을 借字하는 지명을 "神明한 고개라는 감밝재"라 한 것은 잘못이다


2. 지금의 迦智山의 산명 부여 순서대로 한다면 맨 위와 같다

즉, 한문식 산명이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전에는 穿火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어던 옛글이 있었을 것이므로

"이 선생"이 穿火峴을 "神明한 고개" 라고 결론지은 것은 화산 폭발로 생긴 산명인 "穿火山"과 맞지 않다


3. 밀양지와 밀양지명고는 천화산이 지금의 가지산이라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고

가지산 남록 지역인 지금의 밀양시 山內面과 山外面을 穿火面 또는 穿火山內面이었다고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다

4. 고문헌인 동국여지승람 등에 화산 폭발로 추정되는 "천화현"이 등장하므로  "神明한 고개"의 뜻은 맞지 않다


5. 사실이 위와 같으므로 "穿"의 借字를 "火"로 본 것은 잘못이라 본다

그 이유는 "화산이 穿은 땅 속에서 하늘로 뚫고 솟았다" 라는 뜻인데

"火"를 논문에서의 "밝"로서 "광명 또는 국토"의 뜻으로 여러 고어 중에서 "明"을 택했는데

"화산의 불(火)"과는 맞지 않다  

6. 결론적으로 논문에서는 "穿火峴"을 "감밝재 즉, 神明한 고개"로 결론지었는데

화산이 불을 뿜어면서 불이 솟아 오는 穿火峴 지명의 유래와는 전혀 맞지 않은

"신명한 고개라는 감밝재"는 맞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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