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상동면

Re:2010년 초여름 신곡리 풍경 <지명고><1>

작성자레나|작성시간11.02.15|조회수59 목록 댓글 0

 

 

2010년 초여름 신곡리 풍경 <1

 

 

| 조회 15 |추천 0 |2010.06.06. 08:33 http://cafe.daum.net/historymiryang/JUMt/58 
 

 

 

 

 

 

 

 

 

 

 

 

 

 

 

 

제방을 쌓다가 그만 둔 부분이 있는데 강변에는 밀양시장과 밀양소방서장 명의로

물조심과 쓰레기 투기 금지를 홍보하고 있는 간판이 있었다 

 

저 아래 과수원이 보이는 들판은 밀양시 관할 구역이다

옛날에는 강물이 오른쪽으로 굽이쳐 흘러, 그곳까지 밀양땅이 되었고,

이제는 강이 밀양쪽으로 직선으로 흘러 제방을 이렇게 쌓은 것 같다

-------------------------------------------------------------------------

 

상동면(上東面)

 

□ 상동면의 지세와 연혁

운문산 줄기가 서남으로 힘차게 뻗어내린 곳에 우뚝하게 되솟은 소천봉을 중심으로 그 북쪽 오지에는 신곡, 매화 두 동리가 자리 잡았고, 남쪽에는 도곡리, 서쪽으로는 고정리 라는 산중 분지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소천봉(小天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산자락이 흘러내려 낙하산(落霞山)보두산(步斗山)이 우뚝한 봉우리를 이루었는데 그 서편으로는 금산리, 남쪽으로는 가곡리 등 역사 깊은 동리가 자리 잡고 있다.

 

금산, 가곡 두 마을 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 너머에는 동창천과 청도천의 물을 함께 모은 북천수가 남북으로 길에 흘러 이 면의 젓줄이 되어 있다. 응천강(凝川江) [(주) 레나 : 응천강은 밀양강의 옛 이름임, 사행천이 더 발달하면 응천이 됨] 상류에 해당하는 북천수 건너에 자리 잡은 안인리는 옥교산을 서쪽으로 등지고 있으며, 그 북쪽에 위치한 옥산리는 험준한 철마산을 배경으로 유천 앞으로 마을이 열려 있다

 

이 면의 동쪽 경계는 용암봉을 사이에 두고 산내면 용전리와 인접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옥교산을 분수령으로 하여 부북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쪽에는 중산(中山), 낙하산(落霞山), 비학산 등의 능선을 경계로 하여 산외면과 이웃해 있고, 북쪽에는 운문산을 사이에 두고 경북 청도군과 도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비록 사방으로 첩첩이 둘러 싸여 있으나 이 지대의 젖줄이라 할 운문천(동창천)과 북천수(밀양강)를 중심으로 그 언저리에는 들마들, 원아래들, 밤갯들, 중섬들, 빈지들, 신안들과 같은 기름진 들판이 군데군데 전개되어 산 좋고 물이 맑아, 인심 좋은 고장으로 평판이 높은 곳이다

 

상동면이란 이름은 조선 초기 밀양도호부 시대 이래 줄곧 변함없이 사용되어 온 것으로 그 위치가 북동쪽(상동)이라 한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는 부의 정동쪽을 중동면으로, 남동쪽을 하동면으로 이름지은 것과 대비가 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1884년(고종 21년) 행정 구역 정비 시에도 그대로 상동면이라 했으며, 면사무소를 고답리에 두었는데 1912년에 이르러 사지(사포동)를 경북 청도군으로 넘겨주는 대신 청도군에 속했던 대율포(용운동)를 편입하여 행정 구역을 재편하였다. 1930년에는 면사무소를 고답에서 옥산리로 옮겨왔으며, 해방후 1948년에는 다시 금산리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밀주구지에 나타나 있는 상동면의 방리를 보면 평능리, 가곡, 신원, 구칠, 금곡, 유천, 분항, 고답, 사지, 오곡 등의 지명이 있는데, 이는 대체로 지금 이 면에 소속된 마을이며, 그 후 청도군과의 경계 조정시 일부 마을이 넘어가고 편입되는 과정을 거쳤다.

 

또 상동면은 이미 오랜 옛날부터 운문천을 사이에 두고 경북과의 도계를 이루어 온 만큼 그 지리와 역사상의 특수한 유적과 고담도 많은 곳이다. 고대 이서국의 접경지로서 마전암에 얽힌 고사를 비롯하여 평능부곡지, 철마산성지, 경락암, 밀암, 박연정이 있는가 하면, 삼남대로에 이르는 유일한 교통 요충지로서 금곡원, 신원, 분항봉수대, 유천관, 같은 교통 통신의 유적지도 있다. 현재 면내에는 8개의 법정리와 31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

 

 

8. 신곡리(新谷里)

 

운문산에서 뻗어내린 산자락이 병풍처럼 쳐진 가운데 우뚝한 소천봉마저 남쪽으로 가리고 있어 겨우 서쪽으로만 빠안하게 전망이 트이어 운문천 물줄기와 비교적 넓은 산중 들판을 바라볼 수 잇는 아늑한 마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신지와 오곡의 이름을 따서 신곡리라는 법정리가 된 후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는 오곡(烏谷), 신지 두 마을 외에 사곡(절골), 안정, 뜬골 등 세 땀을 거느리고 있다.

 

동으로는 오치령을 사이에 두고 산내면과 인접하였고, 서로는 매화리와 이웃해 있으며, 남으로는 용암봉, 소천봉과 같은 산악을 넘어 도곡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오곡(烏谷) 마을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 동리는 신라 시대 때 오악현의 옛 터로 이미 아득한 옛날부터 취락을 형성한 곳이다.

 

동명인 오곡(烏谷)은 오악(烏嶽, 까마귀가 사는 산악)의 골짜기라는 뜻이며, 이 마을에 있는 산 모양이 까마귀가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形局)이라 하여 오악(烏岳)이 되었다는 일설도 있다.

 

또 신곡이라는 동명은 옛날 초동면 신월리에서 이 곳으로 온 박씨들이 자기네 고향 마을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는 일설도 전해 오고 있다

 

 

 

(1) 오곡마을(옷실, 옷골, 오곡 烏谷)

신곡리의 중심 마을로 음지마, 평지마, 대밭마 등 세 땀으로 이루어진 망르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오곡은 신라 때 오악현의 땅으로 서로는 오례산이 있고, 동으로 오현(烏峴, 오치 烏峙)이 있는데 현의 고지(故址)는 오례산(烏禮山)에 있었다고 한다

오례산은 동창천 건너편인 운문천 산등성에 있는 산이다. 오악현은 매화, 신곡, 도곡, 모정 그리고 강 건너 청도 땅의 사촌, 매전 일대가 모두 오악현의 판도였으며, 그 행정적 중심 지대가 오곡 마을이라 전해 온다. (주) 레나 : 밀양지명고의 문구를 일부 수정합니다

 

임진왜란 후에 지금의 음지마는 최씨들이 입촌하여 오랫동안 살았다 하며, 그 이후 영조 때는 인산 김해조가 터를 잡아 김해 김씨의 세거지가 되었는데 인산재라는 추모재사도 건립했다. 또 순조 때는 대구에서 이주한 후로 달성 서씨가 살았으며, 삼모정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평지마에는 헌종 때 송강 박증위가 초동면 신월에서 옮겨 온 후 밀성 박씨의 터전이 되었으며, 원사재라는 강학소를 세웠다. 그 후 김녕 김씨도 입촌하여 그 자손이 지금도 살고 있다. 대밭마에는 치성 송씨와 장연 노씨가 들어와 현재까지 살고 있다

 

󰋫 꾀꼬리봉(응봉 鷹峰)

음지마에 있는 산봉우리인데 산 모양이 꾀꼬리가 앉아 노래하는 형국이라고 지어진 이름이다

 

󰋫 굴장갓(굴방)

음지마 뒤쪽에 방 모양으로 생긴 굴이 있는데 조선 말기에 의적을 자처한 활빈당의 무리들이 이 굴을 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굴문을 막아 놓으면 또 와서 헐고, 또 막아 놓으면 헐고 했다고 한다

또 이 굴에 대해서 양지마(평지마) 사람들은 굴문을 열면 양지마에 음탕한 여자가 생긴다고 믿었으며. 음지마 사람들은 굴문을 닫으면 음지마에 귀먹은 사람이 많아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서로 굴문을 닫으려 하고 또 열려고 하는 다툼이 있어 왔다는 속설이 있다

 

󰋫 꽃교단

음지 마을과 매화리와의 경계 지점에 있는데 산 위에 두 갈래로 쌓아 올린 듯한 큰 돌이 솟아 있다. 옛날 단을 모신 자리라고 하는데 이 두 갈래로 벌어진 모양이 보기 흉하다고 하여 그 사이를 막기도 하엿다. 꽃교단이란 돌 사이에 기둥을 꽂아 신호대로 삼은 자취를 말한다

 

󰋫 혈(穴)지른곳

대밭마 뒤의 작은짐이에서 절골 뒤까지의 지점을 말하는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혈을 질러 지기를 없앤 곳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 숨은골(은곡)

음지마에 있는 골짜기 이름이다. 옛날부터 꾀꼬리봉 아래인 마연 위에 명당이 있었다고 전해 오는 곳이다. 옛날 그 곳에 풍수지리를 잘 보는 성지라는 사람이 쇠말뚝을 박아 표시를 해 두었는데 아직도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또 옛날 이 마을에 살았다고 하는 최씨가 이 근처에서 묘를 쓰기 위하여 파고 있는데 덕정고개에서 어떤 고승이 나타나 이제 그만 파도 된다고 만류했으나 듣지 않고 계속 파 내려가자 난데 없이 땅 속에서 김이 솟구쳐 올랐으며 동시에 비둘기 한 쌍이 그 속에서 날아 올랐다. 그리고는 퍼득이며 이 골짜기 안으로 숨어버렸는데, 비둘기가 숨은 곳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라 한다.

 

또 도적들이 숨어 살았다 하여 은곡이라 하였고, 혹은 신선이 숨어서 노는 곳이라 하여 숨은 골이라는 다른 전설도 있다

 

󰋫 돈구덕

음지마와 신지 마을 사이에 있는 지명으로 돈치기를 하던 자리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 재궁골(齋宮谷, 재옹골)

새마(신지) 뒷산에 있는 골짜기인데 옛날 이 곳에 큰 무덤과 재사가 있었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이 곳은 옛날 오곡에 살던 서포수라는 사람이 사냥총으로 큰 범의 눈알을 맞히어 잡음으로서 지금까지 화제를 남긴 곳으로도 유명하다. 재옹골이라고도 한다

 

오대정(오태, 烏臺亭)

평지마 앞을 흐르는 오실거렁(오곡천)의 물이 합류하는 운문천 하구에 운치 있는 높은 대가 오대이다. 옛날부터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를 읊고 여름에 피서를 하는 곳이다. 이 곳의 한 반석 위에는 소헌선생장?지소한벽당이라는 11자의 각자가 있어 소헌 선생이 소요(逍遙)를 하던 한벽당의 자리였다는 것을 표시해 두었다

꽃교단들이라는 지명도 잇는 이 오대 앞 들판에 옛날 전의 이씨의 큰 부자가 살았는데 그 주인이 곧 소헌으로 풍류를 몹시 좋아하였다. 집에는 늘 시인 묵객들이 찾아왔고 집 위에 있었던 이 오대는 그들을 접대하며 풍류를 즐기던 장소였다. 이 오대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는 조금 떨어진 집 내당에 손님의 수를 알려주는 종을 쳤다.

 

반암에 구멍을 뚫고 그 곳에 기둥을 세운 다음 종을 메달아 놓고는 손님의 수대로 종을 쳤던 것이다. 꽃교단이란 종치는 기둥을 꽂았던 단이라 하여 이름이 붙었다는 일설이 있고, 지금도 그 11자의 각자와 구멍을 뚫은 반석은 그대로 남아 있다

 

󰋫 솥골못(정곡지)

오곡 마을에 있었던 지명의 이름이다. 이 못은 옛날 이 마을에 살았던 이선남이라는 사람이 인근 마을 사람들을 강제 동원하여 이룩한 것인데 못이 있는 골짜기가 솥과 같이 생겼다 하여 솥골못이 되었다.

 

이선남은 이 마을의 토호로서 그 위세가 대단하여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누구도 감히 반대할 수가 없었다. 한다. 한 번은 멍석 위에 갓 거두어 들인 신곡을 말리는데 낱알을 쪼아 먹던 참새를 훠어이 하고 쫒았더니 참새가 그만 죽어버렷다. 그 만큼 그의 위세는 힘이 있었는데 그러한 그가 나이 많아서 참새가 참새가 픽 쓰러졌다가는 다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이제 나도 늙었구나 하고 탄식을 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 왕달들

음지마 북동쪽에 있는 들판의 이름으로 진들, 감나무들과 이웃해 있다. 신리때 오악현 시절에 임금의 은혜가 이 곳에 통달했다하여 생긴 지명이다

 

󰋫 꽃교단들

오대(烏臺)가 있는 앞들의 이름인데 꽃교단 아래의 들이라는 뜻이다

 

󰋫 피리구녕(패랭이굴)

양지마 뒷산에 있는 동굴의 이름이다. 마치 광산의 폐광굴과 같이 생겼는데 옛날에 그 굴 속에서 군졸들이 쓰는 패랭이가 나왔다 하여 패랭이굴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 옷밭새미(칠전정)

음지마을 위에 있는데 샘 옆에 옻나무가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샘물은 맛이 달고 차가워서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애용해 온 샘이다

 

 

 

(2) 신지마을(새마, 新旨)

오곡 마을의 서넘쪽에 있는 오지 마을이다. 본래는 오례산 아래 잇다하여 오실촌이라 했다고 하지만 오실은 오곡으로 신곡리 전체의 지명을 적용한 것이다. 이곳에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대개 임진왜란 이후로 추정하고 있으며 신지라는 지명도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표기가 된 것이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에 오곡을 비롯한 곡내의 여러 땀과 합하여 신곡리에 편입된 후 1930년에 한 때 오곡과 신지의 두 동리로 나누어지기도 했다.

 

현재 이 마을은 안정, 뜬골, 절터, 새마등 4개의 땀으로 구성되었다. 이 마을에는 처음 최씨가 입촌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 후 조선 숙종 때 율은 이성림이 정착하여 월성 이씨의 세거지가 되었는데 그를 추모하는 재사도 보존되고 있다. 약 200년 전에는 안악 이씨와 파평 윤씨기 차례로 입촌하엿고, 150년 전부터 함안 조씨도 살고 있다

 

(3) 안정(雁亭, 雁嶝, 기러기嶝)

신지 마을 동남쪽으로 오치고개에 이르는 길목의 마을이다. 이 마을의 지형이 기러기와 같이 생긴 산등성이라 하여 처음에는 기러기등이라 했는데 표기를 하면서 안등이 안정으로 변한 것이라 한다. 안정바래미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주) 레나 : 옛날에 신지 마을에서 안정을 거쳐 오치 마으로 고개를 넘으면 경사가 완만하다. 그래서 오치 마을로 이르는 경유지로서의 안정 마을로 밀양지명고는 표기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는 임도가 생겨 안정 마을을 거치지 않고 신지에서 뜬골을 경유하여 오치고개로 향한다. 그러나 경사가 매우 급한 임도이다

 

󰋫 뜬골(浮谷)

신지 마을의 동남쪽이며 안정 마을의 북쪽에 있는 산중 땀이다. 높은 산협 속에 잇어 안개가 서리는 곳이다. 안개 속에 골짜기를 보면 마치 구름 속에 떠 있는 것 같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여 떠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지명이 생겼다

(주) 레나 : 요즘은 산내면 용전리 오치 망으로 갈려면 뜬골을 경유하여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오치 마을에 이른다

 

(4) 절골(사곡)

오곡의 동쪽이며 신지의 북쪽에 있는데 임도가 생겨나기 전에는 산내면 오치에 이르는 길목의 마을이다. (주) 레나 : 1. 윗도곡에서 고갤르 넘어 안정 마을을 거쳐 오치 마을로 가는 길이 있고, 2. 신곡리 신지 마을에서 안정을 경유하여 오치 마을로 가는 길이 있고, 3. 신곡리 양지 및 음지마을에서 절골 마을을 거쳐 오치 마을로 가는 길이 있는데, 이 세 개의 길은 요즘의 신지 마을에서 뜬골 마을을 경유하여 산내면 용전리 오치 마을로 가는 임도가 만들어지기 전의 산중(山中) 오솔길이다

옛날에 이 곳에 큰 절이 있었으므로 절골이라 하며, 동쪽에 오치령을 주룡으로 삼고, 서로는 들판이 확 트인 산중 오지 마을이다. 행정적으로 오곡 마을에 속해 있다

 

󰋫 새마(新村)

현재의 신지 마을을 가르키며, 구신지에서 마을 전체가 옮겨와 새 마을이 되엇다고 하여 생긴 지명이다. 신지는 새맛의 변음으로 새마가 된 것이다

 

󰋫 오산(烏山)

오곡 마을 앞에 있는 산으로 원 이름은 오례산이다. 산세가 아름답고 그 모양이 까마귀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한 형국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 한다. 오곡이라는 마을 이름은 오산 아래 골짜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 당목이(堂項山, 당미기골)

안정 마을과 도곡, 그리고 산내면 용전리의 세 경계 지점에 잇는 지명으로 옛날 이 산에 당신을 모셨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당미기골이라고도 한다. (주) 레나 ;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서 당목이의 위치는 용암봉의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소천봉 방향으로 내려 오면 바로 아래 지점의 고개로 추정됩니다

 

󰋫 시리봉(시루봉, 증봉 甑峰)

절골의 북쪽 경북과의 경계 지점에 잇는 산 이름이다. 산의 둘레가 약 50미터, 높이가 약 20여미터 되며, 마치 떡 시루같이 생긴 암벽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 레나 : 암봉 岩峰

 

󰋫 배락등(벼락등, 낙뢰등)

절골 북쪽에 잇는 산등성이의 이름이다. 옛날에 큰 벼락이 떨어져서 바위가 부서지고 초목이 타 없어졌다고 하여 새생긴 지명이다

 

󰋫 절터구미(사허공 寺墟孔)

절터의 북쪽 벼락등 왼편에 층암 절벽이 있고 사이에 약 50평 정도 넓이의 평지를 말한다. 이 곳에 옛날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으며 그 석축의 일부가 남아 있다. 절이 있었던 후미진 골짜기라 하여 절터구미가 된 것이다. 고려 때 지금의 절골 마을에 큰 사찰이 있었고 이 곳의 작은 절은 그 부속 암자였다고 한다

 

󰋫 종자봉(鍾子峰, 종지봉)

절골의 북쪽에 있는 경북과의 경계 지점의 산봉우릴르 가르킨다. 먼 옛날에 천지가 개벽할 때 산야가 모두 물에 잠겼는데도 이 봉우리는 종지 크기만큼 꼭대기가 남아 있었다는 데서 생긴 지명이다

 

󰋫 오치고개(오치령 烏峙嶺)

절골 마을과 산내면 용전리 오치와의 사이에 있는 고갯마루의 이름으로 옛날에는 산내면 사람들이 소 등에 짐바리를 싣고 사람도 등에 곡식을 짊어지고 유천이나 밀양장으로 나들이를 한 큰 길목이엇다. 도로의 발달로 지금은 그 고개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길도 수풀 속에 뭍혀 버렸다. (주) 레나 : 오치령 부근에 등산로가 있는데, 임도인 오치령(뜬골 마을에서 오르는 임도)에서 능선을 따라 종자봉 방향으로 가는 등산로 도중에 고목나무가 서 있는 오치령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다. 이 고개(운문지맥 종주 능선 상의 고개임)가 그 옛날의 오치령으로 추정합니다

 

󰋫 얼음골(氷谷)

안정 가마바위 아래에 잇는 골짜기로 삼복 더위에도 이 곳에는 돌틈에서 찬바람이 새어나와 추위를 느낀다. 돌틈에 얼음이 어는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 덕정고개(덕정현)

오곡에서 청도 매전면 덕정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그 곳의 골짜기를 덕정골이라 한다

 

󰋫 말구리고개(馬轉峴)

음지마에서 매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먼 옛날 이서국 병사들이 말과 함께 굴러서 떨어져 죽은 곳이다

 

󰋫 새청

신곡리에 있는 땀의 이름이다

 

󰋫 솔때밭고개

음지마에서 새마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옛날에 활터가 있었다

 

󰋫 오쟁이고개

뜬골에서 산내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그 동쪽에 오정골, 서북쪽에 오쟁이들이 있다

 

󰋫 가마바위(교암, 가매방우)

얼음골 위쪽에 있는 바위 이름으로 마치 가마와 같이 생겼다. 바위 둘레가 약 30미터, 높이가 10미터 정도 된다. 가매방우라고도 한다

 

󰋫 골안거렁

안정 뒷골에서 시작하여 마을 앞을 지나 오곡으로 흐르는 개천이다

 

󰋫 자배미들(진배미들, 진들)

음지마 북쪽 감나무들과 이웃한 들판의 이름이다. 옛날에 극심한 흉년이 들어 곡식을 거둘 수 없을 때는 이 곳 논 한 마지기와 간장 한 말과 맞바꾸었다 하여 장배미라 하였고, 또 뱀과 같이 긴 들판이라 하여 진배미들 또는 진들이라고 했다

 

󰋫뽕남들(상평, 뽕나무들)

뽕나무가 맣이 있다 하여 생긴 들 이름이다. 뽕남이란 뽕나무의 준말이다

 

󰋫 구부렁들(구렁들, 곡평, 사평)

들 모양이 기다랗게 구부러졌다 하여 지은 이름이다. 구렁이처럼 생겼다 하여 구렁들이라는 일명도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