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 선생님, 병원 신발장 정리는 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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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地耕)"은 밀양의 향토사학자 손흥수(孫興銖) 先生님의 호(號)이며, 본관(本貫)은 일직(一直:安東)이며, 저(都在國)의 42년째 밀양향토사 스승이 되십니다.
오늘(2024.11.12)도 오후에 역사 탐방차 승용차로 한 곳을 다녀오시면서 차 안에서 향토사 이야기를 하시면서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일부러 하신 말씀이 아니고, 다른 이야기 끝에 하셨습니다.
"내가 다니는 병원(의원) 입구에 여러 사람들(환자들)이 슬리퍼와 신발을 벗고 또 신어면서 드나드는데, 사람들(환자들)이 자기 신발과 슬리퍼를 바로 정리하지 않고 어지럽게 벗고 또 신어면서 드나들어, 내가 (물리치료를 받고) 퇴원하면서 그것을 정리해놓고 온다고 우리 마을까지 가는 막차 버스를 몇 번이나 놓쳐서, "(산외면 山外面)죽남마을 버스 정차장"에서 내려서 (십리나 되는) 우리 집(단장면 丹場面 구미마을)까지 걸어가느라고 다리가 아파서 고생을 많이 했다"
지경 선생님은 올해 84세로 몇 년 전에 위암 수술도 하셨고, 다리와 허리 등이 아파서 일년 365일 중에 일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러 시골에서 시외버스로 시내에 나오셔서, 또 시내버스를 타고 병원(의원)에 다니십니다.
아마도 성직자도 병ㆍ의원에 가서 어지럽게 흩어진 신발을 보셨다면, 지경 선생님처럼 하시는 분은 드물 것 같습니다. 차라리 수행원에게 시켰으면 시켰지, 이렇게까지 손수 하시겠습니까?
제(도재국)가 그 말씀을 듣고,
"지경 선생님, 병원(의원)에 남들이 벗고 신는 슬리퍼와 신발을 왜 정리해 줍니까? 그렇게 정리해주시고 집앞까지 가는 막차 버스를 놓치고, 무거운 서류가방 들고, 지팡이를 짚고서, 십 리나 걸어서 집에 가십니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라고, 제가 연거푸 두 번이나 말씀드리까, 또 하시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병원(의원)에 다니며 보면, 입구에 사람(환자)들이 신발과 슬리퍼를 정리하지 않고, 이리저리 벗어놓으면 보기싫다 아이(니)가?" 하셨습니다.
※신발 정리하시는데는 5분 이내로 걸릴 것 같은데, 말씀하시는 눈치와 평소 성품으로 짐작해보면 막차 버스를 놓쳐 십 리를 걸어가시더라도, 앞으로도 또 신발을 정리하실 것 같아 제(도재국)가 참으로 답답합니다. 평소 동작은 꿈뜨지도 않으시고 조곤조곤하십니다.
병원(의원) 앞에서 5분 정도를 늦게 시내버스를 타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시골 마을로 가는 막차는 이미 떠나버리고 없습니다.
※그 병원(의원)은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신발장이 있는 곳이 병원(의원) 입구이므로, 안쪽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조차 지경 선생님이 퇴원하시면서 신발을 정리하시는 것을 볼 수도 없어, 간호사들은 지경 선생님이 신발을 정리한 줄도 모르고, 또 환자들은 퇴원할 때 신발이 가지런하면 간호사가 정리해 놓은 것으로 압니다(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나이 84살에 허리가 굽고, 지팡이 짚고, 다리 등이 아파서, 매일 시골에서 시외버스 타고, 또 시내에 나와서 시내버스 갈아타고 병원(의원)에 물리치료받으러 다니면서, 병원(의원) 입구에 남들(다른 환자)이 어지럽게 벗어 놓은 신발과 슬리퍼를 신발장에 가지런히 정돈해주고 퇴원하는 사람은 아마도 지경 선생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막차 버스를 놓쳐, 해가 저무는 길을 무거운 서류 가방 들고, 지팡이 짚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여 느릿느릿 십 리를 넘게 걸어 집에 가시는 그 모습은 안봐도 눈에 훤합니다. 지경 선생님은 평생을 심지어 병원(의원)에 다니시면서 또 어디를 가시더라도 항상 향토사 조사용 서류와 책ㆍ시민 홍보와 배부용 서류가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다니십니다.
평생 가방 안에는 향토사 자료를 손수 만들어, 수십 부를 복사하여 시내 다니시면서 불특정 시민 등에게 무료로 배부, 간단하게 설명을 하시고, 심지어는 다른 기관 또는 단체가 주최하는 모임이나 학술대회 등에 참석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사비를 들여 만든 홍보자료를 몇 박스씩 넣어 오셔서 회의장 입구에서 나누어 주시기를 평생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시민에게 배부하는 홍보물은 재악산(載嶽山) 산명과 남산(종남산)봉수대 홍보물, 유림(儒林)의 법도에 관한 자료, 향토사에 관한 자료, 서원과 향교의 제례에 관한 자료, 지명(地名)에 관한 자료, 오래된 비문(碑文)을 판독한 내용 등등입니다. 넉넉하지도 않은 살림에 평생 시민에게 나누어준 홍보물을 다 모아놓으면 A4용지를 사람 키의 몇 질이나 쌓아놓을 정도의 량입니다. 컴퓨터나 인터넷을 못하시므로 집에서 손수 공책에 적어 만든 홍보자료를 시내 복사하는 가게에 사비들여 워드쳐서 또 수십 수백부씩 복사하여 발품을 팔아 직접 시민에게 간단한 설명까지 하시면서 나누어드립니다.
또 문화재로 등록된 밀양시 산외면 소재 문중의 혜산서원(惠山書院)의 숭덕사(崇德祠) 사당에 모신 "일직문중(一直門中) 오현(五賢)"에 평생을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참배를 하십니다. 오현(五賢)에 유교(儒敎)의 법식(法式)에 따라 향(香)을 올리는 절차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혜산서원은 지경 선생님 자택과는 무려 30 리나 떨어져 있는데, 승용차가 없으므로 시외버스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 날에 혜산서원의 숭덕사에 참배하십니다.
●혜산서원(惠山書院) 경내(境內)의 일직오현(一直五賢)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숭덕사(崇德祠)
●일직오현(一直五賢) 행력을 적은 간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297호 혜산서원(惠山書院) 안내 간판
●지경 선생님은 밀양과 전국에서 많은 문화유산 탐방객들이 자주 혜산서원에 답사를 오시면 혜산서원은 물론 밀양 향토사 등을 무료로 강의하십니다.
●일직오현(一直五賢) 행력을 적은 간판
●혜산서원
●서원 앞의 차(茶)나무는 밀양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600년입니다.
●지난 여름 폭염경보가 내린 여름날에도 혜산서원 대청마루에 앉으니까 별로 덥지 않습디다.
●혜산서원 경역(境域)은 넓고 아름답습니다.
저(도재국)의 밀양 향토사 스승이라서 자랑하기 위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저(도재국)와 무려 42년째 밀양 향토사를 조사한다고 바늘에 실처럼, 또 그림자 처럼 지경 선생님과 같이 다니면서 보고 들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경 선생님은 산 밑에 있는 네모 반듯한 1,000평 정도 되는 밭농사를 지어십니다. 밭 주변에는 외떨어진 집이 한 채씩 여기저기에 있어 가로등이 있습니다. 승용차를 몰고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마을 뒷편 산록의 밭이 훤하게 보입니다. 평생을 밭농사에 제초제와 토양살충제ㆍ일반 살충제ㆍ살균제 농약을 절대로 살포하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는 분은 잘 아시지만 농약을 살포하지 않으면 농사를 짓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밭에 심는 농작물을 자가용이나 5일장 노점에 팔 야채 같은 농작물도 절대로 농약을 살포하지 않습니다. 마늘 같은 것은 토양살충제를 뿌리지 않으면 굼뱅이가 마늘을 파 먹어 절단을 내버려도 토양살충제를 뿌리지 않습니다.
●아래는 카카오에서 캡쳐한 지경 선생님의 자택이 있는 단장면 칠탄산(七灘山:일명 구산龜山) 북록(北麓)의 미촌리 "구미 동편마을"입니다. "우해요:개인 도자기 제조소"의 바로 북쪽이 구미 동편마을이고, 우해요의 바로 북쪽에 지경 선생님의 자택이 있으며, 북쪽 산록에 밭도 있습니다.
●밭이 마을 뒷편의 높은 지대 산록에 있기 때문에, 멀리 사촌마을에서 구미마을로 들어오면서 보면, 밭이 훤히 보입니다.
저와 같이 42 년째 향토사 조사하고, 종종 승용차로 지경 선생님을 댁까지 모시다 드리면서, 멀리서 밭을 보면 훤하고, 가끔 제가 밭에 가보면 주변의 어느 밭보다 잡초 한 포기 없이 깨끗할 정도로 잡초를 호미로 다 매십니다. 정말로 부지런하십니다. 거의 평생을 향토사 조사, 집안과 타 문중 행사, 유림 행사, 면내(面內) 노인회 총무 등으로서 행사 등에 빠짐없이 출타(참석)하시면서도 노구에 새벽과 저녁에 가로등 아래서 밭농사를 지어십니다. 참으로 超人같습니다.
제(도재국)가 "밭의 놀 골이나 가장자리의 잡초는 제초제를 살포하십시오. 그 많은 잡초를 어떻게 전부 호미로 맵니까? 라고, 수십 년 동안 수십 번을 말씀드려도 하시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밭에 콩이든 채소이든, 내가 먹든, 시장에 내다 팔든간에, 농작물에 농약을 살포하면 누가 먹더라도 농약 피해를 입을 수가 있다. 또 밭에 농약이나 토양살충제를 뿌리면 토양이 농약으로 오염되고, 결국은 그기에 심은 농작물을 우리 가족이나 타인이 먹어면 몸에 해롭기 때문에 농약을 살포하면 않된다"
또 저(도재국)와 42년째 향토사를 조사한다고 산과 들판ㆍ골목길ㆍ하천 등등을 같이 다니시면서 가래침을 소리내어 함부로 뱉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예를들어 1년 동안 기간을 본다면 딱 한 번 입에 가래침을 소리없이 입을 오모려서 또 뒤로 돌아 제가(남이) 보지않게 살짝이 길 옆 풀속에 뱉는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어떤 해는 그렇게 침을 뱉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옆에 사람이 있건 말건간에 가래침을 소리내어 "캭" 하고 뱉을텐데, 지경 선생님은 절대 그런 적이 없습니다.
또 어떤 상대방과 과거에 향토사 등의 관계로 안좋은 일이 있었던 것을 제(도재국)게 이야기하시면서(그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절대로 욕을 안하십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과거에 그 사람과 안좋은 일이 있었다면, 그 사람이 안듣고 안보는 상황에서, 제게 그 사람을 욕하면서 이야기하는데, 지경 선생님은 남이 없더라도 그 사람과 과거에 있은 일을 제(도재국)게 이야기하시면서 절대로 욕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경 선생님은 42년째 저(도재국)와 다니면서 고함 소리, 또 큰소리로 이야기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또 제(도재국)게 말씀과 설명은 문헌과 증거 확인과 현장 조사 후에 항상 조용하게 또 간단하게 하십니다. 즉, 확인하지 않으시고, 현장을 조사하지 않은 것은 제게 절대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말씀을 가르켜 주시면 제(도재국)가 열 마디를 스스로 공부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지경 선생님과 제(도재국)가 고향의 파묻힌 향토사와 역대 여러 위정자와 종교 권력자 등등이 왜곡시킨 향토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평생을 거친 산야를, 어떤 지형물을, 어떤 단체를, 어떤 기관을, 어떤 절을, 어떤 사람 등을 찾아갑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찾아가는데, 친절하게 대하는 곳도 있지만, 어떤 곳은 매서운 눈초리와 매서운 찬바람이 붑니다. 반면에 조그마한 개인 사찰에 가면 따뜻하고 정이 덤뿍 담긴 차 한 잔을 사양하려 해도 고맙게도 기어이 한사코 줍니다. 지경 선생님과 제가 향토사 바로잡아 출세할 일도, 땡전 한 푼 생길 일도 없고, 42년 동안 엄청난 사비만 들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거만한 귄력의 압력, 21세기 대명천지에 이미 사라진 연좌의 압력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되살아나는 형국입니다. 권력이란 여러 분야의, 어떤 기관의, 어떤 단체의, 어떤 부류의, 어떤 종교단체의 권력도 포함됩니다.
지경 선생님은 술과 담배ㆍ소고기ㆍ돼지고기도 안하십니다. 단체 모임의 식사에 소고기ㆍ돼지고기 등의 肉고기 메뉴가 나오면 어쩔 수 없어 건더기를 건져내고 잡수십니다. 이래서 저와 향토사 답사 등을 다니시면 식사는 항상 추어탕ㆍ시락국ㆍ된장찌개ㆍ김찌찌개ㆍ백반ㆍ해물탕ㆍ국수ㆍ수제비ㆍ중국식당에서는 짬뽕이 아닌 항상 "맑은 우동" 등입니다.
또 주역(周易)을 하시고, 상대방의 눈 빛만 보셔도 꿰뚫어보시는 신통력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