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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11.25 ●朱熹의 大學章句序(6) :
曲禮, 小儀, 內則, 弟子職등 諸篇(책) 같은 것은 본래가 小學의 支流와 餘裔같은 것이고, 이 大學은 곧 소학의 成就에 근거하여 太學의 밝은 법도를 밝힌 것이니, 밖으로는 태학의 규모의 큼이 極해 있으며, 안으로는 태학의 節目의 상세함이 다해 있는 것이다.
삼천 명이나 되는 門徒들 중 대학에 관한 설명을 듣지 않은 이가 없었으나 曾子의 傳만이 홀로 그 正統을 유지하였다.
그리하여 해설을 지어서 孔子의 뜻을 천명하였던 것이다.
孟子가 돌아가시자 그 傳承이 없어져버렸으니, 그 曾子의 책은 비록 있다고 하나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때부터 속된 선비들이 經傳을 암송(暗誦)하고 詩文을 짓고 하는 습관은 그 노력을 小學에서보다 倍나 더 썼으나 쓸데가 없었고 異端的인 道家와 佛敎의 가르침은 그 高踏함이 대학보다 더하였으나 실속이 없었다.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11.25 ●朱熹의 大學章句序(8) :
캄캄하게 어둡고 답답하게 막히어 깊은 고질이 되풀이 되었는데 五代의 쇠약기에 이르러서는 파괴와 혼란이 극도에 달했었다.
하늘의 운수는 순화하는 것이어서 갔다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 있다.
宋나라의 德業이 융성하여 정치와 교육이 아름답고도 밝았으며 이에 河南의 땅에 程氏의 두 선생님이 나오셔서 孟子의 道統을 잇게 되었으니, 실로 처음으로 大學의 編次를 제대로 정리하여 그 취지를 밝혀놓으시니, 이 뒤로 옛날 太學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법과 聖人의 經文과 賢人의 傳文의 뜻이 찬연히 다시 세상에 밝혀지게 된 것이다. -
작성자 도재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11.25 ●朱熹의 大學章句序(9) :
비록 나는 불민하지마는 다행이도 私淑하여 그분께 가르침을 들은 바가 있다.
그러나 후일 돌이켜 보니 그책은 산란하여져 있었다. 그래서 나의 고루(固陋)함도 잊고 산란한 것을 찾아 모았으며, 간단히 또 사사로운 나의 뜻을 첨가하여 그 빠지고 간략한 점을 보충하여 뒤에 오는 군자들의 비판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외람되게 분수에 넘치는 짓이다.
죄를 모면할 길이 없음을 잘 알고는 있으나 그러나 국가의 백성들을 교화하여 좋은 좋은 풍속을 이룩하자는 뜻과 학자들이 자기의 덕을 닦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도에 있어서는 작은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순희(淳熙) 기유년 이월 갑자일 친안(親安)의 주희가 序(서)함.
●國史大事典, 百萬社,1974년, 편저자 이홍직(李弘稙) : 淳熙 己酉年은 南宋 孝宗 淳熙 16년이며, 金 世宗 大定 2년에 해당하며, 1189년 명종 19년에 해당함. 1월 西北面 兵馬使가 金帝(世宗)의 죽음을 알림. 3월 奉尉使를 金나라에 보냄. 3월 金나라 告喪使 보내옴. 5월 鄭守剛ㆍ李奎報(1169~1241) 등을 試取. 9월 文克謙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