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 장원급제 완용이(1856~1926)의 삶

작성자도재국|작성시간20.12.19|조회수59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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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급제 완용이(1856~1926)의 삶

1. 신동

어릴적부터 신동이던 완용이는 세도가 친척 이호준 양자로 들어간다. 이호준은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대원군의 친구이자 사돈으로 고종 등극에 공을 세운 자로 당대의 명문대가였다.

11살 때부터 독선생을 모시고 귀족수업을 받고, 서예수업도 받아 당대의 명필로 일본에까지 이름을 날렸다. 1882년 25세에 과거급제..

2. '영어'로 친미파 원조 등극

관료가 된 완용이는 신식교육기관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미국으로 가 주미대사관에서 주미대리공사 직 3년 수행.. 조선에서 영어 이해가 가능한 서너명 중 하나였고 서구문명을 깊게 이해한 친미파 원조!! (한일병탄까지 일본어도 구사하지 못했으며, 러일전쟁 전까지는 반일친미친러 선봉이었다)

완용이처럼 서구문명 경험한 사람들은 정동 손탁호텔에 모여 외국공사관들과 교제했는데, 이들을 정동파(영어파)라 했다. 정동파는 민씨왕실에 충성했기에 왕비파라고도 불렸다.

재한일본 55마리 극우엘리트들을 이끈 일본공사 미우라가 우범선(우장춘아비) 도움으로 궁에 난입해 민비를 갱뱅, 시간, 시체유기하는 희대의 범죄를 저지른 후, 완용이는 미공사관으로 내빼 4달이나 피신생활을 했다.

3. 친러파로 변신

경복궁기습 사건(1894, 아베고조부 오시마 짓) 후 인질로 살던 고종은 극도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식사를 오직 미공사 알렌, 러공사 베베르를 통해서만 먹었다. 마침내 궁녀가마에 몰래 타고 러공사관으로 망명하는 데 성공!! 도착후 첫 명령이 친일관료들 죽이라는 거였다.

왕실이 외국군대를 끌어들여 이 땅을 승냥이와 늑대의 싸움터로 만드는 주권포기행위는 구한말 여러 차례 반복됐다. 청군을 불러들였다가 뒤따른 일본군에 의해 동학농민대학살이 벌어졌고, 일본을 불러들인 살인극은 갑신정변, 을미사변을 초래했으며, 러시아군에 의탁한 아관망명도 또다른 주권포기행위에 다름없었다. 권력층의 이런 방식은 한국전쟁때나 주한미군에 매달려온 현 부왜강점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계7위 군사대국이 미군 바짓가랭이 잡고 있는 꼴이란~

완용이는 러공사관에서 고종을 맞은 사람 중 한명이었고, 그날 고종 명으로 감투를 세 개나 썼다. 외부대신! 학부대신서리! 농상공부대신서리!

외부대신 된 지 2달만에 미 브로커에게 경인철도 부설권을 넘겼는데, 브로커가 일본에 넘겨 결국 경인철도는 일본 차지가 된다. 평안도 운산금광을 미국에게 넘겼는데, 미국은 40년간 순금(노다지 No touch) 80톤이나 캐갔다. 운산금광은 구한말 이권 중 가장 알짜배기로서, 완용이는 미공사관에서 신세진 빚을 나랏돈으로 엄청나게 비싸게 되갚은 것!!

4. 지배층의 매국 경쟁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며 독립문 건립, 독립협회 창설, 독립신문 발간.. 러공사관에서 셋방살이하던 중, 청에서의 독립 주장이 뭔 의미?? 독립문 건립에 거금 100원을 내고 현판글씨를 쓴 완용이가 원한 건 '(청으로부터의)독립'이라기보다, 청에서 벗어나 손쉽게 매국해보자는 의도..

당시 지배층의 매국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민씨왕실과 대원군편이 갈라져 서로를 죽이는 테러를 일삼고 그 과정에서 외국군대를 끌어들인 것이 청일/러일전쟁으로 이어졌다.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러시아 대신 조선강탈로 방향을 잡았고, 조선권력자들은 나라 운명에 관심없고 신흥강자 일본에 팔아먹을 수 있는 건 다 팔아먹자는 준비가 돼 있었다.

러일전쟁 이긴 후 이토 히로부미가 손탁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외교권을 강탈하기 위해 대신들을 불러들였다. 이때 눈치있게 이토 편을 들어 을사늑약 체결을 이끈 완용이는 이토 눈에 쏙 들었다. 그래서 초대통감 부임후 이토의 적극 추천으로 50세 나이에 총리대신(영의정급)에 올랐다. 이토를 스승으로 모시고, 1909년 뒈졌을 때 따라 죽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슬퍼하고, 성대한 장례식을 이끌었다.

완용이는 "외교만 잠시 맡긴 것뿐.. 다시 찾아오면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으나, 헤이그밀사사건 후 고종을 협박해 자식생산능력이 없는 아들에게 양위케 한 것으로 보아 진심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양위 직후 군대해산에 이어 사법권, 경찰권을 해산시키는데, 이때마다 외교만 잠시 맡긴 것뿐이라던 완용이가 주도하여 조약을 체결했다.

고종은 완용이에게 왕실 소유 궁을 하사한다. 왕실과 완용이는 운명공동체였다.

5. 이재명 의거

1909년 10월에 이토가 살해된 후, 12월에 완용이는 23세 이재명의 칼에 폐에 구멍이 뚫린다.

그 때 뒈졌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죽지 않고, 이후 매일 병수발하러 들른 순종의 정성 덕인지 53일 요양을 끝내고 총리대신으로 복귀하여 8월16일 한일병탄에 합의하고 22일 "조선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넘긴다"는 조약으로 매국의 선봉에 섰다. 당시 송병준, 일진회 등 매국경쟁이 치열했는데, 부상을 딛고 완용이가 그 명예(?)를 꿰찬 것!!

6. 매국

매국조약일, 순종은 완용이를 치료한 일본인의사에게 태극훈장을 수여하고, 대신들에게 대한제국 마지막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하루전에는 완용이 처 조씨 포함, 대신과 종친의 부인들, 상국 40명에게 무더기 훈장 수여했다.

왕실과 종친, 관료들은 철저히 그들만의 세상을 살면서 나라든 백성이든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 그리고 바뀐 세상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지위와 권력을 누리며 편하게 살았다.

통감부는 조선총독부가 됐고, 대한제국 황제는 창덕궁 이왕이 됐으며, 대한제국 총리대신 완용이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으로 자리를 옮기고, 조약 성사의 공으로 '백작' 작위를 받았다. 이후 부왜세도가로 명성을 떨치며 조선과 일본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다복하고 여유로운 인생 후반기를 보냈다.

7. 다복했던 완용이의 말년과 죽음

농협회장, 조선귀족회, 이문회(문인조직), 불교옹호회,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맡았고, 조선사편수회 고문으로서 역사왜곡을 통한 반도사관(식민사관) 정립의 선봉에 섰다. 말년에 일제로부터 최고영예(?)인 '후작' 작위도 받았다.

1926년 69세로 와석종신, 즉 제 명을 다 살고 편안히 자리에 누워 뒈졌다. 매국노가 편안한 죽음을 지낸 것은 역사적 숙제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와중에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이재명의 칼에 찔린 덕에 한쪽 폐가 고장나 폐렴으로 죽을 때까지 고생했다는 점 정도??

고종 국장 이후 최대의 장례행렬이 옥인동~광화문 10리나 이어졌다. 일제는 부왜세도가의 화려한 장례를 선전하기 위해 장례식 전체를 기록영화로 찍었다. 완용이의 후작 작위와 전 재산은 손자 이병길에 상속됐고, 완용이 일가는 여전히 일제식민통치에 온힘을 다했다.

8. 날벼락같은 해방

생각지도 못했던 청천벽력이었다. 매국노로 낙인찍혀 천하 명당자리였던 익산묘가 만인의 발길질을 받으니, 증손자(이석형)가 묘를 파헤쳐 유골을 화장하고 폐묘에 버린다. 벼슬을 적은 관뚜껑을 원광대박물관이 보유하고 있었는데 완용이친척 매사가 이병도가 사다가 없애버렸다. 문교부장관까지 지낸 역사학자가 완용이의 민족반역을 증언해줄 역사유물을 파괴하는 역사범죄를 저지른 것..

완용이 직계자손은 다 나라를 떠서 미국 국적으로 삶으로써, 반민족 전통을 잇고 있다. 그러다 1992년 종손 이병길의 장남 이윤형이 땅찾기 소송을 걸어 실제 수천평을 되찾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2007년 부왜반민족행위자 재산 관련법 제정을 촉발케 했다.

9. 완용이는 악마??

완용이란 개인이 어떤 악마적 요소가 있어서 만고의 매국노가 된 줄 알았을는지 모르나, 주색을 멀리하고 시와 서예를 낙으로 삼은 전형적인 선비였다. 유태학살 아인리히에게서 봤던 '악의 찌질성(악의 평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당시 매국을 통한 사익추구는 왕실과 사회전체에 당연한 것처럼 퍼져있었다. 왕은 왕실의 이익만 쫓고, 대신들도 역시 마찬가지고 망해가는 나라의 솥단지라도 팔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던 바, 사회지도층이 대거 포함되어있던 이 거대한 범죄의 실상을 우리가 거의 모른다. 왜일까?

일본의 지배관료층이 메이지유신 이후 거의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내려오는 것처럼, 부왜청산을 못한 대한민국 지배층 또한 사학, 학계, 언론계, 사법, 정치, 기업까지 곳곳에 꽈리를 틀고 있다. 한때 부왜파였던 이들은 다시 극렬 친미파로 변모해 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라까지 팔아먹은 지배세력의 민낯을 똑똑히 알지 못하면 우리는 언젠가 제2의 완용이를 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완용이가 나라를 팔아먹은 건 맞는데, 멀쩡한 나라를 팔아먹은 건 아니고, 지배층이 으쌰으쌰 다함께 매국경쟁하던 중 머리를 잘 굴려 그 선봉에 선 것이었다. 망국과 매국의 책임을 완용이 하나에게 전가한다면 다른 매국노의 책임을 전가하는 속죄양을 만들 뿐이다.

매국의 대가로 얻은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그대로 이 사회의 지도층이 된 정치인, 국회의원, 대법원장, 육군참모총장을 보라.. 완용이 하나 방패삼아 모두들 높은 자리를 지들끼리 다 해쳐먹고 있잖은가..

10. '利우선'은 망국 재현의 길

리더는 자기 이익을 기준으로 국정을 운영해선 안 된다. 관료는 이익을 탐할 목적으로 리더를 따르거나, 공무에 임해선 안 된다. 민중도 양심이나 공동체 미덕을 경시하고 자기 이익만 쫓아선 안된다. 모두가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라면, 리더와 관료가 이익에서 맞부딪히고, 기득권과 민중이 이익에서 맞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이런 사회는 필히 멸망으로 이르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osgPP7gNBk&feature=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yosgPP7gNBk&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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