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68743
이광수는 <재생>이라는 소설에서 한 외국인의 입을 빌려, “젊은 조선 사람들, 셀피쉬한 성질 많소. 저를 희생하는 정신, 심히 부족하오”라고 말하고 있다. 이광수는 개인주의를 혐오했다. 이광수는, 만주사변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내부 균열이 시작되었다고 본 김영세와는 반대로 정국을 읽었다.
그는 1932년 만주국이 성립되자, 아시아 최강국으로서의 일본의 위상이 확고해진 것으로 간주했다. 그는 1933년 조선일보에, ‘오직 전쟁만이 사람의 에너지를 극도로 긴장하고 또 전쟁을 해내는 민족에게 고귀한 인(印)을 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썼다.
이광수는 총독부가 자금을 마련해 준 잡지 <동광>에서, ‘이태리의 파시스트를 배우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미 이 잡지 창간호의 권두시에서, ‘힘! 오늘의 영광은 힘에 있다. 평화의 흰옷은 다 무엇이냐? 병대의 붉은 복장을 입고 몸과 맘을 다 무장하여라’고 외친다.
그는 일본이 이태리, 독일과 동맹국이 될 조짐을 보이자 조선일보에 ‘문화 높고 부하고 자유로운 이태리’라고 쓰면서 무쏠리니에게 ‘큰 단결의 지도자로 전 민족의 숭앙을 받는 자’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국제연맹을 탈퇴한 히틀러에게는 ‘젊은 독일의 기백’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발간한 동광총서 제1권에 자신의 <민족개조론>과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단행본으로 한데 담았다.
http://h21.hani.co.kr/arti/COLUMN/51/10464.html
친제국주의적 지식인들 ‘천재적 영웅’으로 섬겨… 대총통 히틀러가 몰고온 제국주의 전쟁의 그림자
정선태/ 연구공간 수유 + 너머 연구원

잡지 앙케트 조사… 지식인들의 우상화 열기
이 시기에 발간된 각종 잡지들을 일별하다 보면 성전(聖戰), 지원병, 창씨개명, 신체제, 생산소설, 전쟁소설, 국민문학, 국민동원 등의 용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거니와 전쟁의 폭풍에 직면하여 ‘천황폐하’의 지령에 따라 식민지 조선인들을 ‘신성한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친제국주의적 지식인들의 선전과 선동이 집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1940년 ‘대일본제국’ 정부가 발표한 ‘신체제 강령 및 규칙’, 즉 △고도국방국가체제의 확립 △거국적 전체적 공적 대정익찬체제(大政翼贊體制)의 확립 △공익우선 국가봉사제일주의의 국가국민경제문화체제의 확립이라는 명령을 따르기 위해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다투어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글들을 발표한다. 윤치호·이광수·김동환·박영희·정인섭 등 문화계의 내로라 하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애국대연설집>을 간행하는 한편, 더 많은 충성을 ‘천황폐하’에게 바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쏟아붓는다.

이처럼 이광수는 자신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동광총서’의 하나로 가장 먼저 번역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면서 자신이 처음으로 사용한 전체주의가 세계를 풍미할 것을 ‘예언’했다고 밝혔다. 그는 ‘옛 조선인의 근본도덕: 전체주의와 구실주의 인생관’(<동광> 1932년 6월호)에서 개인주의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전체주의의 미덕을 강조하였는데, 그런 그에게 히틀러가 가정도 없고 향락도 없고 오직 애국으로 생활을 삼고 있는 ‘진정한 영웅’으로 보인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계몽적 열정에 사로잡혀 천재와 영웅의 도래를 갈망하던 그에게 ‘독일 민족의 힘’을 몸소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영웅 히틀러는 ‘거지와도 같은’ 조선 민족이 당당한 ‘대일본 국민’의 일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숭배해야 할 ‘신인’(神人)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나의 투쟁> 번역을 표나게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의 투쟁> 번역 뒤 ‘전쟁’에 도취된 이광수
잘 알려졌다시피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우생학에 입각한 아리아인종 지상주의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의회제 민주주의, 배금사상, 국제주의, 마르크스주의, 소비에트 볼셰비즘 등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한다. 타도해야 할 대상 모두가 “항상 타 민족의 체내에 사는 기생충에 지나지 않는” 유태인의 세계 지배 음모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생충’을 박멸하고 가장 우수한 민족 또는 인종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게 인종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히틀러의 핵심적인 ‘사상’이었다. 그의 생각 안에 개인의 평등이나 자율적 협의에 입각한 의사결정 따위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국제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종적으로 우월한 강자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으며, 독일 민족이 그 ‘과업’을 떠맡아야 하는 것이 ‘세계사적 사명’이라고 강변한다. ‘단일민족 신화’에 근거한 이와 같은 선전·선동이 전 세계를 ‘피의 향연’으로 이끌었다는 점은 역사가 알려주는 바와 같다.

‘최고의 지식인’ 믿고 전쟁터 향하다
어떻게 하면 조선 민족이 힘을 갖출 수 있는가. 조선 민족의 자력으로? 어림없는 일이다. 뼈와 살뿐만 아니라 골수까지 철두철미하게 ‘천황폐하’의 적자(嫡子)가 되는 길밖에 없다고 그는 단언한다. ‘대일본민족’의 일원으로 ‘대일본제국’의 국민·신민이 되는 길,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바쳐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일본의 지도 아래 대동아공영권을 수립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삼천리> 1940년 7월호에 실린 지원병의 어머니와 누이에게 보내는 기나긴 편지를 쓴다. “일본의 어머니는 아들을 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은 임금님께서 맡기심 받은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아드님을 길러서 임금님께 바치는 것이 어머님의 거룩한 직분입니다. 이러하므로 우리는 임금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동시에 우리와 우리 자손의 복과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지원병이 됨으로써 신체와 정신을 완전히 개조하여 신인(新人)이 되어야 하며, 이 ‘신인화’(新人化)야말로 2300만 조선 동포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선동하는’ 식민지 조선의 ‘최고의 작가이자 지식인’의 말을 믿고 수많은 조선인들이 전쟁터로 향했다. 누구의 책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