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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불고기이야기1] 황교익의 거짓말, 일본문헌을 찾아봤습니다

작성자화염폭탄|작성시간18.12.20|조회수315 목록 댓글 0

http://mlbpark.donga.com/mp/b.php?m=search&p=1&b=bullpen&id=201811230025658348&select=sct&query=%ED%99%A9%EA%B5%90%EC%9D%B5&user=&site=donga.com&reply=&source=&sig=h6j9Hl2ghhRRKfX@hljXGY-Aghlq


안녕하세요~


일본 거주중인 재외국민입니다 가입후 글을 한달후에나 쓸수있다는 규정때문에 글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그덕에 자료를 많이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한달전 황교익씨의 "불고기는 야끼니꾸의 번안어다" 라는 주장을 듣게되었습니다


뜬금없이 뭔소린가 했는데, 근래의 지나온 과정을 보니 억지스러운 주장과 사실관계가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칼럼을 쓰는 분으로서 주장이야 하고싶은데로 할 수 있다지만 이렇게 많은분들께서 성토하셨던것은 아마 그 안하무인의 태도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법이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불고기"로 쓰이는 단어가 1960년대 후반무렵 시작되어 70년대이후로 유행했던 서울 한일관류의 육수 불고기의 이미지가 워낙 크게 고착화 되어 있다보니  남북이 하나였던 조선시대 혹은 일제강점기시절 조선반도에서 사용되었던 불고기의 일반적인 의미에 대한 이해도의 범위가 좁아져버려 이런일이 생긴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현재 남북의 현실적 여건때문에 음식연구나 어원연구, 그에 관련된 역사연구등이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자료나 문헌등에 의존할수밖에 없다보니 당연히 북쪽의 개성 설야멱적, 평양 불고기나 만주혹은 연해주등에서의 조선요리등의 자료가 자연스레 배제되어버린채  반쪽짜리 연구가 될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황씨는 이미 일본문헌 및 북한자료도 다 보았다고 주장했는데 제가 찾아보니 의외로 일본문헌이 많더군요 한국에서 자료가 찾기 힘들다면 거꾸로 일본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왜 황씨가 일본문헌을 이미 검토했다는 말이 거짓말인지 직접 확인해보시죠



1870년 日本海軍が牛肉を栄養食として採用 일본해군이 소고기를 자양식품으로서 채용


서양인들의 덩치를 보고 놀란 일본정부는 그원인이 단백질공급에 있다고 판단하고 육식의 식단을 만들고 해군식으로 소고기를 채용합니다


1872년 野崎文蔵 (노자키 분조)가 쓴 西洋料理通 (서양요리통)


士農工商老若男女、賢愚貧福おしなべて、牛鍋食はねば開化不進奴(ひらけぬやつ)

"사농공상 남녀노소, 똑똑하건 무식하건 가난하건 부자건 모두가, 규나베(된장을 넣고 끓인 관동식 스키야키의 기원이 되는 음식)를 먹지 않으면 개화라는것은 이루어지지않을것"


이라는 말을 모토로 육식을 장려했던 당대 유명 문화인 노자키분조 (필명: 카나가키 로분)이 글을쓰고 河鍋暁斎(카와나베 쿄사이)가 삽화를 그려넣은 책으로 110가지 서양요리가 소개되어있고,  특히 일본인들의 소울푸드인 카레 요리가 처음 소개되는 문헌이기도 해서 지금의 일본인들에게도 소중한 고전서입니다

서양요리에 쓰이는 조리도구와 당시 부억의 조리대, 후라이팬, 포크와 나이프등도 그림으로 상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세권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상,하,부록)

기본적으로 영국요리법을 소개한 책입니다만, 프랑스식 발음이 혼용되어 쓰여졌습니다












第五十等 ヘーケツトビーフ 炙牛の義 

但焼方法あり此部は釜にて炙焼とす


헤-스켓토 비-후 (야키우시 / 구운소)의 편

굽는법은 가마를 통해 굽는다


(여기서 가마는 오븐형태의 기구를 의미하는 듯합니다

본문에는 소금과 후추를 통해 간을 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第五十一等 ボーキツトミンストモツトン 

綿羊焼肉となりきりの義


보-킷토민스토못톤

면양의 구운고기


영국요리를 소개한 책이라는 특성상 양고기 요리가 소개된 것으로 추정 해볼수있는데 제일 마지막의 못톤은 늙은양고기(머튼)(일반적으로 램 Lamb요리와 구분되는)의 요리인것으로  알수있고 , 앞부분의 발음은 도무지 현재 일본어로는 알수 없는 발음형태라 정확히 어떤 요리를 말하는지는 유추가 불가능했습니다 다만 저 경우에 야키니쿠의 한자표기를 쓴부분은 이곳이 유일한데, 같은 야키니쿠의 한자를 표기해 놓고도 다른 요리, 혹은 굽는방법, 발음기호가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또 바베큐라는 말이 직접 사용되지는 않았고


焼鱈 ベーキュット(베-큣토 / 구운 대구,<생선 대구 맞습니다>)라는 부분이 등장하는데 이것을 현대어라고 바꾸면 バーベキュー(바베큐) 라고 번역한다고 옛 일본어를 현대어로 바꾸는 사전에 표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焼鱈 는 "구운 대구" 혹은 "대구 구이" 인데 영어의 굽다는 뜻의 Bake 와 대구를 말하는 Cod 를  표기하는 과정에서 저런표기가 되었다고 분석을 하더군요


그러니까 황씨가 주장하는 (일본 위키에 나와있는 잘못된 내용) 바베큐의 번역어로 야키니쿠가 사용되었다는 주장은 애초부터 잘못된 해석에서 출발합니다)


< barbecue 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그 구워먹는 행위 자체를 의미하고 프랑스어로는 철자는 같지만 바베큐를 하는 그 철제 기구 자체를 뜻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부록편













焼牛肉 를(야끼 규 니쿠) 라고 읽지않고 소고기를 뜻하는 영어인 Beef 를 카타카나로 읽어서 ビーフ(비-후) 라고 표기한걸 볼 수 있습니다 또 焼牛肉 (やきうし)야키우시 (구운소) 라고 적은 구절도 보이네요


그리고는 조리법에 후라이팬인 (이리나베)에 버터를 두르고 껍질을 벗긴 소고기를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굽는다라는 조리법의 요리로 소개되어있어요 소고기 스테이크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중간삽화중 자세히 보시면 소잡는 사람이 서양사람인데 개항후 일본에서는 육류의 정형 및 발골 작업을 할수있는 사람이 없었기때문에 외국인들이 주를 이루어 도축장에서 일을 하며 기술전수를 해주었습니다


(도축장 운영인은 청인(중국인), 영국인과 미국인으로 한국사람이 발골이나 정형작업을 전수해줬을것이라는 황씨가 인터뷰에서 한 주장은 개인의 상상일 뿐입니다 다만 강점기시절 노동자로 갔던 조선인들이 도축장의 잡부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고, 그로 인해서 내장등의 찌꺼기를 구해서 요리해먹었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일본 소 정형의 용어 및 각 부위의 명칭들은 영어의 일본식 발음이 대부분입니다 미국식과 영국식이 발골방식이나 명칭이 약간 다른데 세분화해서 발전했습니다


조선사람들에 의해 전파된 조리법이나 요리등은 조선말 그대로 카타카나로 변형되어 오늘날까지 쓰여지고 있는데


예를들어 일본에서 제일 인기있고 야키니쿠 하면 떠오르는 첫번째 메뉴인 カルビ(카루비)는 일본어가 아니고 한자로 늑골에 해당하는 우리말 갈비뼈, 즉 영어의 Rib 부위인데 갈비,가리 등을 당시 조선사람들이 쓰던 말이 일본에서 전해져서  그대로 굳어진 것이고,


역시 있기있는 메뉴인 牛タン(규탕 / 우설 / 소혀)은 일본어 牛에 영어  tongue 의 일본식 발음이 합해진말입니다


우리의 꽃등심에 해당하는 부위는 영국식으로 살로인(サーロイン)으로 표기하는 그런 것이지요


특히 내장종류나 특수부위에 있어서는 조선시대부터 쓰였던 우리말이 그대로 일본어로 카타카나화 되어 현재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곱창,대창,막창, 울대, 양, 천엽,쿠리(꾸리살) 등)



야키니쿠 = 스테이크, 구이 의미로 쓰임



1872년 敬学堂主人(경학당주인) 이 쓴 西洋料理指南 (서양요리지남)


이책 역시 서양인들의 식사법과, 조리기구, 테이블에 음식 배치, 재료 등을 꼼꼼히 기록되어있는데

책 중간에 아침식사 점심식사 저녁식사 메뉴가 소개되고 점심과 저녁에 야끼니꾸가 등장합니다

















구운고기라고 돼있는 焙肉(아부리니쿠)는 현대 일본에서는 炙肉(아부리니쿠)라는 한자로 쓰이는데

겉에만 살짝 익히는 경우에 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서양식 스토브가 그려져있고 나베를 올리고, 구울때는 문을열고 안에다가 석탄을 집어넣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테이크를 구울때 후라이팬에 버터를 살짝 바르고 굽는 이리야키라는 방법과, 손잡이가 달린 적쇠와 닮은 도구위에서 불에 굽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습니다(비프 스테이크를 구울때 사용하는 도구라고 설명  / 사진 참조)


야키니쿠 = 스테이크, 고기구이 의미로 쓰임



한가지 덧붙이면 이시기에 책이 출판 되었다고해서 이 요리가 유행했던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육식을 장려하고 개화를 위한 활동으로 발간된 서적이라는점을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1883年1月24日 메이지 일왕이 처음으로 육식을 시연, 시작하게됨


(일왕은 육식을 꺼렸으나 메이지정부가 강제함)



당시 일본인의 연간 육식섭취량은 1인당 4그램



1887 小林義直(코바야시 요시나오)가 쓴 食物製方(음식만드는법)











焼肉法(ロースチング)


로스팅 의 단어 번역표기로 사용됨



로스팅 = 야키니쿠법

 



1894 秩山党本店(치치야마토 혼텐)에서 발행한 일본서양요리지남전










이책은 1872년도의 서양요리지남과 달리 카타카나로 표기를 해놓았는데 야키니쿠가 아니라

  

ニクヤキ(니쿠야키) 고기굽기(고기굽개)등의 오븐 혹은 통구이기를 설명한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개항당시 나가사키는 프랑스인 , 코베와 요코하마는 미국인과 영국인이 주로 거주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간혹 인터넷상에서 보니 야키가 명사형으로 쓰였고, 니쿠도 명사이므로 명사와 명사가 만나 야키니쿠  아니냐는 황당한 논리로 문법을 만드는분이 계신데 야키니쿠를 번역한 것이라면, 구운고기, 군고기로 번역해야 올바른 번역법입니다 


다만 조선불고기를 조선야키니쿠로 번역했기때문에

당시의 조선사람들이 일본에서 사용한것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게되면서 그러한 구이 형태의 대명사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조선불고기 → 朝鮮焼肉


지금도 유지되고있는 조선야키니쿠 간판








조선반도에서 불고기가 유행했던 평안도 일대 및 북쪽에서 불고기를 맛본 일본인이 그 요리를 보고 야키니쿠라고 번역했다고는 얼마든지 생각할수 있겠죠 그래서 처음보는 그 요리에 조선 야키니쿠 라는 명칭을 붙인것이구요



1901년 宮崎来城 (미야자키 라이죠)가 쓴 無銭旅行 (무전여행)







카에루노 야키니쿠 라는 문구가 등장 


무전여행중  개구리를 구워먹은 에피소드


개구리의 <구운고기>로 쓰임




1905년 도쿄 우에노에 일본최초의 조선요리점 韓山楼(한산루)가 개점


친일파 이인직이 개점하였으나 이듬해 귀국으로 인해 폐점

(일반 조선요리점으로 조선인대상의 조선요리음식점)

이 우에노 지역은 전후 조선인들이 불고기 혹은 야키니쿠장사를 하던 조선야키니쿠 골목이 생기게되는 지역입니다



1907년 池久吉 (이케히사요시)가 쓴 山羊の勧め (산양의 추천)










이 책은 양의 품종과 사는 지역에 대한 설명과 함께 활용법 먹는법등이 소개된 책인데 한 챕터에

산양을 구워먹는 법 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조선종의 특징, 몽골종의 특징, 지나(중국)종 등 각나라별 품종의 특징등을 상세히 기록함



야키니쿠 = <고기 굽는법>으로 쓰임



그 다음 문단은 볶는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있네요




1907년 家田啓造 (이에다 케이죠)가 쓴 西洋料理法 (서양요리법)












야키니쿠 맛있게 굽는법 혹은 잘굽기 로 소개



1.비-후 스텍끼 (소고기 스테이크)


우측상단에 보면 비-프 스테이크는 누구라도 조리가 가능한 간단한 서양요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히끼니꾸노 스텍끼(함부루크 스텍끼) (햄버거 스테이크=함박스테이크)

히끼니꾸는 다진고기를 말하는데 햄버거 만드는 과정 보시면 다진고기와 양파 ,기타 야채등을 버무려 만듭니다


우리의 경양식 함박 스테이크가 여기서 온 말로

Hamburg Steik 을 일본식 발음으로 함부르크 스텍키가 된것입니다

Energy 를 에네르기 라고 발음하는 걸 생각해보시면 이해되실꺼에요


3.나마 히키니꾸 스텍끼 (롤 스테이크)


4. 야키타루 사로인구스텍끼 (살로인 스테이크) - 꽃등심 스테이크


5. 토리노 야키타루 모노 (후라이드 치킨)


6. 부타노 야키니쿠 (후라이드 포크)


7. 규니쿠노 기리- (기-리- 스테이크)



야키니쿠 = 스테이크



또 후라이드 치킨과 후라이드 포크도 야키니쿠의 조리법으로 함께 소개했습니다




1911년 中村徳助 (나카무라 토쿠스케)가 쓴 山陽詩鈔新釈 (산양시초신석)











焼肉=肉を焼く(니쿠오야쿠) 고기를 굽다는뜻의 해석문에 사용


중국어 원문이라 동사인 焼 가 먼저오고 명사인  肉 가 뒤에 온것




1911년 天籟居士 (텐라이 코지)가 쓴 職業案内全書 (직업안내전서)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당시 각종 직업들에 대한 안내서인데 


당시의 수많은 직업들에 대한 종류와 설명, 한달에 얼마정도 수입을 얻을수 있고 창업하는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는 재밌는 책입니다


고기 판매업과 고기 배달업자는 한달에 얼마를 벌수 있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등도 나와있는등 당시의 생활환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되는 책입니다



焼肉焼鳥売(야키니쿠 야키토리 우리) 


야끼토리(닭꼬치)구이판매



오늘날 일본에서는 야키토리 하면 닭고기 꼬치구이를 주로 의미하는데


본문에서는 닭고기 판매점 혹은 소고기 돼지고기 판매점등에서 팔고남은 잡고기(찌꺼기)등을 싸게 사서 꼬챙이에 끼운뒤 간장에 담궈서 구워팔면 되는데 아무고기나 다 팔았다고 설명하고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개나 고양이 고기도 섞어서 팔았지만 요즘들어서는 그런일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 패망 이후에는 다시 길거리에 개나 고양이를 잡아 섞어파는바람에 마을에 개와 고양이가 전부 사라졌다고 하는 신문기사도 있음)

 

전쟁이 끝난 직후 일본에서 조선인들이 시작한 야키니쿠도 최초에는 이러한 형태였습니다 당시 미 군정하에 통치를 받던 시절에는 소고기이 유통이 금지 됐었는데, 이로 인해 암시장에서 유통되는 고기 찌꺼기와 내장등을 가져와서 냉면과 함께 판매를 했고, 미군정이 끝나고 소고기의 판매가 재개되고 물량이 확보되면서부터 조선식 불고기가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시작된것이 갈비와 로스인데, 갈비는 조선 전국에 다 있었고 불고기라고 팔리던 로스가 일본에서도 동일하게 팔린것입니다




야키니쿠 = 야키토리 (닭꼬치구이)




1913년  農商務省農務局(농상무성 농무국) ,농림수산부에 해당하는 일본 정부기관에서 타이쇼 원년에 발간한  本邦乳製品及肉製品ノ産額等ニ関スル調査( 본방 유제품 혹은 육제품의 생산액등에 관한 조사)











문서 양식의 일부중에 토끼구이 (兎焼肉 / 우사기야키니쿠)항목이 있음




1916년 若山牧水 (와카야마 보쿠스이, 필명)의 旅とふる郷 (여행과 고향)



소설책의 한 단락에 표현이 등장









林間の焼肉 (린칸노야키니쿠) 에서 린칸은 카나가와현의 지역이름입니다 (도쿄에서 서쪽으로 50-60키로 떨어진곳)



글쓴이가 인생의 말년에 여행을 다니며 쓴 여러권으로 이루어진 장편 소설 작품인데 린칸노 야키니쿠 라는 소제목의 내용속에는 린칸의 어린애들끼리 사냥꾼이 쓰는 큰 칼로 나무 꼬챙이를 만들어서 야생멧돼지를 끼워서 불에 구워먹는 장면이 나오고,


나중에 도쿄로 가서 西洋料理店(レストラン)서양요리점(레스토랑)에 가서 먹은 야키니쿠는 담백한 맛이 나는데 린칸의 야키니쿠와 (야생맷돼지나 목장소)의 맛과는 다르다고 하는 내용의 스테이크를 묘사한 부분이 나옵니다




야키니쿠 = 스테이크





여기서 잠깐 조선의 상황을  살펴보면 (건너뛰어도 무방합니다)



1919년 3.1 운동,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그로인한 일제 문화통치 시작으로 언론, 출판  가능하게됨



1920년 민족신문(?) 동아일보,조선일보 창간



1921년 6월 27일 동아일보 / 경성 (서울) 종로 공설시장 물가


계란 10개 35전

소고기 1근(600g) 40전~45전

돼지고기1근(600g) 60전



(소고기가 돼지고기보다 싸고 계란10개 가격과 비슷한 물가시장이었으니 조선에서 소고기 위주의 요리나 음식점의 발전이 당연했을것이라는 유추가능)



1921년 8월 22일 동아일보 /사기범 검거


경북 경주사람 이상호가 사기를 친돈으로 부산의 요리점 김해루에서 매일같이 기생을 불러 놀다가 잡혔다는 내용(다른 기사등을 통해서도 확인해보면 이미 요리점들이 주요도시에는 많이 존재했는데 경성에는 이미 유명한 음식점이 많았고, 관기제도 폐지로 인해서 전국의 관기들이 풀려나와 요리점등에서 일을하곤 했음)



1921년 9월 14일 동아일보 / 소고기 사기범 검거


평양 신시가지 산전우육점(소고기가게)에 전화로 시계점 점원이라고 속인사람이  지금 점원을 보낼테니 소고기 250근(150kg)을 준비하라고 지시함, 어떤 청년이 등장했는데 아무리 봐도 시계점 점원이 아닌거 같아 시계점에 문의해보니 그런일 없다함, 사기범으로 평양경찰서에 잡혀감, 개천출신의 겸이포 소고기점에서 일하는 직원인데, 9월8일 평양에서 놀기위해 와서 소고기를 사취하려 한것. 그런데 평양경찰서 관내에 이런일이 금번에 벌써 두번째라 하는 기사내용



1921년 10월 2일 동아일보 / 평양 풍기 단속


평양시에 있는 중국 요리점은 큰 거리에 많이 있는데 번화한 곳에만 많아서  기생들의 난잡한 노래소리와 장구소리가 밤낮으로 그치지 않아 평양의 신선한 공기가 오염되고있고 이러한 음식점이 골목에 있으면 좋겠지만 남문 1정목 (일본식 주소단위, 지금의 동에 해당)부터 5정목까지 큰 길가에 쭉 늘어져있는바람에 모든 사람을 유혹할 뿐 아니라 통학하는 학생들을 위해 도저히 볼 수 없는 바 평양 경찰서 경부에 신고했는데 평양경찰서 추원경부가 큰 거리에 있는 모든 료리점에서 장구 소리와 기생 소리를 금하였는데 내정에 곤란할 일이 있겠지만 일반 시민의 여론을 존중한 것은 평양의 유식 계급 인사들도 칭찬하더라는 내용



1922년 12월 7일 동아일보 / 기생과 요리점이 서로 싸움


평안남도 성천음의 요리점과 기생조합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기생들이 요리점에 안가기로 했는데 알고보니 요리점에서 기생조합에 합당한 돈을 지불하지 않아서 생긴일이라는 내용



1923년 7월8일 동아일보 / 군산에서 소고기를 음식점 조합에서 판매하기로 했다는 내용


원래 군산은 소고기가 비싸기로 소문난곳이라 다른곳 보다 30전이나 비싸서 근당 70전이나 했는데 그 이유는 백정들이 소고기판매를 독점하던게 원인, 그리하여 음식점 조합에서 소고기를 직접 팔기로 하고 55전을 받기로 했다는 내용

(군산은 당시 전국 대도시중 하나일 정도로 큰 도시였는데 일본으로 보내지는 쌀의 수출항이 군산항이었기때문에 경제도 활성화 된곳이었습니다)



1924년 4월 30일 동아일보 경기도 관내 소고기 수요감소 및 도야지고기 증가


경기도 관내에 141개소의 공설 도축장에서 작년(1923년)에 도축한 소는  56,989마리인데 전년도(1922년도)의 57,258마리에 비해서 줄어든것에 대해 매년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도축수도 늘어왔었는데 수요가 줄어들어 원인을 분석해봤더니 돼지의 도축수가 증가  (29,946마리)한점과 돼지 우량종의 사육이 장려되어 늘었고, 가공품인 조선햄등의 판로가 확장된 결과라고 분석한 기사

(이미 큰 규모의 축산업이 활성화 되었고, 저당시에도 이미 햄이 존재함을 알수있음)

(기사가 4월말에 나온이유는 일본의 1년회계는 매년 4월부터 이듬해3월까지임 그래서 1년 통계,분석후 작성된것으로 추정)




당시의 축산상황과 음식점 현황등에 대한 기사로 당시 시대적배경을 추정해볼수 있는 부분만 몇가지 추려보았구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서




1922년 小出新次郎 (코이데 신지로)가 쓴 安価滋養食品料理法 (값싼 자양식품 요리법)











焼肉(ビーフテッキ代用)(야끼니꾸 비후텍키 타이요) 

Biefteck <프랑스어 비프스테이크> 대용



고래고기의 살코기를 구워서 먹으면 비프 스테이크의 대용품으로도 사용가능하다라는걸 설명

또한 커틀렛, 스튜, 하야시, 삷은 고래고기 등으로 이용가능하다고 설명

소고기는 비싸기때문에 자양을 위해서 고래고기로 비프스테이크를 대신해서 먹을수 있다는것을 설명하는것



야키니쿠 = 스테이크




1922년 현진건의 "타락자"라는 소설속에 불고기덩이라는 말이 문헌에 등장


불고기덩이가 바베큐 번역일까?


우선 焼肉는  바베큐만의 번역어가 아닐뿐더러, 위와같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는것은 야키니쿠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요리가 없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또한 서양요리점의 경우 스테이크라는 일반명사를 당시의 일본인중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을것인데, 구운고기의 의미로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정도로 생각해볼순 있겠습니다 


나중에의 우리나라의 신문기사를 보면 동아일보에서는 비후스텍 이라는 표현으로 스테이크를 표기했습니다 (영어 발음에 좀 더 가깝죠)


한글이 공용어로 사용된것은 갑오개혁(1894) 이후이고 , 1910년 일본의 강제병합이후부터 1920년 문화통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언론,출판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기이므로 한글작품이나 문헌등이 등장하는데 어려움이 컸으리라 짐작되고,그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대 지식인이나 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한자위주로 공부를 한 사람들이고, 일반 시민의 문맹율도 아주 높았으며 그것은 일제강점기가 끝날때까지 이어졌으므로 한글말로 된 불고기라는 단어가 문헌상에 등장하는것이 늦어진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입니다


언중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지만 당시 글을 읽고 쓰는 지식인들이 받아들이는것이 거꾸로 늦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게다가 한자어가 아닌 순 우리말로만 구성된 쉽고 직관적인 단어라는점을 생각해보면 불고기라는 말은 너무나도 한글스러운 말이니까요


북한에서는 18세기에 적쇠가 보급되면서 부터 불고기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하는 구절이 있어 언중들은 이미 불고기라는 단어 사용을 하고 있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부분은 다음 북한편에 소개)




1923년  大戦美談 (대전미담) 祖国の為めに (조국을 위하여)



프랑스에서 발간된 1차세계대전중의 에피소드 모음책의 번역본으로 군인이 쓴 책












고기를 얻어야만 해 ~~

우바와렛따 야키니쿠 (빼앗긴 고기)를 다시 찾기위한...




스테이크 혹은 구운고기 = 야끼니꾸




1926년 小林定美 (코바야시 사다미)가 쓴 手軽に出来る珍味支那料理法 (손쉽게 할수있는 진미 시나 요리법)


시나는 일본인들이 중국을 무시하며 부르는 이름으로 중국요리가 소개된 책자입니다











저기보면 鍋焼肉라고 나와있는데 발음기호는 다른것을 알수있습니다


지금 일본식 표기대로 읽는다면 (나베야키니쿠)인데 보-쇼-뉴 라는 독특한 발음으로 표시가 되어있는데 


음식의 재료와 소개를 보면 탕수육에 관한 내용입니다. 


중국요리니까 정확하게는 꿔바로우겠네요 한자상으로 꿔바로우는 다른데, 일본인 저자가 표기할때 야끼니꾸의 한자를 사용하여 표기했습니다


재료는 돼지고기 계란 전분 후추 돼지기름등 이고 

일본어 설명은 ぶたにくあぶらやき 돼지고기 기름구이 (튀긴다는의미)




꿔바로우(탕수육)의 번역어 야끼니꾸




이 당시(1926년) 일본인의 연간 육식 섭취량은 1인당 500g 


육식이 거의 진행되지않았음을 알수있습니다


(1883년 4그램에서 1926년 500그램으로 늘긴 늘었습니다)




하지만 그 육식조차도 일본 해군 및 육군의 기본식량으로 하루에 150g이 배정되어있어 일본의 일반 서민들이 육식을 즐겼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군용식품은 1894년 러일전쟁등을 통해 육포형태로 가공 보급되는법이 사용되다가, 통조림형태의 보급도 함께 이루어집니다




1929년 1월15일 大阪釀造學會(오사카 양조 학회)의 我が国の食物と料理と饗宴に就いて(우리나라의 음식과 요리와 향연에 관하여)



이책은 양조회에서 발간하는 잡지로


羊の燒肉 料理 所謂 成吉斯汗鍋( 羊燒肉)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양고기의 야키니쿠요리 이른바 징기스칸 나베 (양 야키니쿠)


징기스칸 나베는 가운데가 볼록 튀어나온 (훗날 이른바 서울식 육수불고기 황동판의 모양과 거의 흡사한) 철판에서 양고기를 구워먹는 요리입니다



징기스칸나베 = 야키니꾸




1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양털수입이 어려워지자 일본정부에서는 면화자주산업의 일환으로 홋카이도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양 목축업을 실시합니다 (군복 및 철도원등의 제복에 사용될 양털 공급을 위함) 그에 따라 자연히 늘어나게 되는 양고기의 처분을 위하여 양고기 요리인 징기스칸 요리가 유행했습니다 (유행 시켰습니다)



게다가 이책이 발매된해(1929년)말에 터진 뉴욕발 경제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아 일본은 대량의 실업자가 양산되고 경제불황에 빠지게 되어 만주침략의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또한 조선반도 내에서 남면북양 정책 (남쪽의 면화사업, 북쪽의 양목축업)을 실시하게됩니다




1910-1938 기간동안의 야키니쿠 in 요미우리신문


불펜 KIA_허영택님 자료 기반

원글










야키토리집인 "미야코야키"라는 가게의 광고기사와, 

스키야키 등에 관한 내용이 있고 

야키니쿠의 맛은 담백한맛으로 소개하는기사 머릿글






1933년 3월25일자 도쿄 아사히 신문 기사

(매우 중요한 기사입니다)


趣味の朝鮮料理 風変りな牛肉料理「焼肉と心臓」のレシピ

취미의 조선요리 이색적인 소고기 요리 불고기와 심장의 레시피



材料は、上等の牛肉、長ネギ、砂糖、醤油、ごま油、ごま、コショウ、鶏卵。軽く叩いた牛肉に、みじん切りの長ネギ、先の調味料を加えてよく混ぜる。強い火にかけた網の上でそれを広げて<手早く焼きながら熱いうちに食す>


재료는, 상등급의 소고기, 대파, 설탕, 간장, 참기름, 참깨, 후추, 계란. 가볍게 두드린 소고기에, 다진파, 앞의 조미료를 더해 잘 섞는다. 강한 불에 걸친 석쇠 위에 그것(양념한고기를 말함)을 펼쳐놓고 <빠르게 구우면서 뜨거울때 먹는다>






여기서 중요한것이 みじん切りの長ネギ (다진대파) 인데 옛날부터 내려오는 재일교포 가게들에 특히 이런부분이 많은데, 참깨를 뿌리는 부분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일본 야키니쿠와도 거의 비슷한 레시피입니다


저기서 계란은 구운고기가 뜨거우니 계란물에 찍어 식히는 용도로 사용했을것으로 추측할수 있는데 현대의 스키야키에서 날달걀에 고기를 찍어먹는 형태가 새롭게 추가된것에도 이런부분이 영향을 준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구운고기를 어딘가에 찍어먹는 형태는 평양식 불고기에도 있었던 형태이고, 실제 패전후의 일본에서 이북출신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살았던 교토에서는 유독 야키니쿠라 하면 로스를 먼저 떠올리고 (다른 대부분지역의 기본은 갈비임) 구운고기를 약간 맑은 물양념 같은것에 찍어서 먹는 문화가 있는데 이러한 배경과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또한 1950년도에 우리말 큰사전에 정의된 "불고기"의 숯불에 구워가면서 먹는 요리 라는 설명과도 완벽하게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1933년 張赫宙(장혁주)의 소설 権といふ男("권" 이라는 남자)



불펜의 KIA_허영택님의 사진자료인용

원글참조











しばらくして、権の細君が、ご馳走を運んで來た。黄색깔い鍮製の朝鮮火爐の、あかあかと焰をあげてろる炭火の上に、豚と鷄とをごつちやにしたすき焼鍋をのせ、酒床には牛肉の焼肉、豆腐の天ぷら、朝鮮漬物など都会的な食物がいっぱいのつけてあった。

金先生、さあ、 一杯どうぞ


잠시 지나서 권의 아내가 식사를 가져왔다. 노란 놋쇠제의 조선 화로의 시뻘건 숯불 위에 돼지와 닭을 섞은 스키야키나베를 올리고, 술상에는 소고기 불고기, 두부튀김 , 김치 등의 도회적인 음식이 가득놓여있었다

김선생, 자 한잔하시지요




소설속 상황은 숯불위에 이미 스키야키나베가 올라가있고 술상에 소고기 불고기가  반찬형태로 따로 구워서 낸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쵸센츠케모노는 저당시 일본에서 영업중이었던 조선 요리점에서 김치를 표기할때 사용하던 말입니다 두부튀김은 아게토후 라고 하는데 그냥 간장양념에 먹기도하고, 스키야키나베에 넣어서 먹기도 합니다 (생두부는 으스러지기때문에 튀긴두부를 사용함)



스키야키나베에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넣었다고 묘사하는데 애초에 스키야키는 소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아니었고 개화기에 육류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재료를 생선에서 고기로 바꾸며 발전된 요리인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이 소설은 일본인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일본소설입니다 일본서민에 알려지기 시작한 규나베, 스키야키 등이 메인요리로 묘사됐고 조선의 불고기를 이미 알고있는 글쓴이가 일본인 독자들에게 어떤 일본어로 표현해야 할까 생각하며 채택한 단어가 牛肉の焼肉 (규니쿠노 야키니쿠) 인 것입니다





규니쿠노 야키니쿠 = 불고기





1933년 婦人倶楽部 (부인구락부) 잡지


東京名物美味しい燒鳥燒肉の作り方


도쿄명물 맛있는 야키토리야키니쿠 (구운 닭꼬치구이)의 만드는 방법의 소개기사




야키토리 = 야키니쿠




1934년 12월 30일 동아일보 기사  “석쇠보관법 "


주부 들에게 고기나 생선을 굽고난후에 녹이 슬거나 끊어지기 쉬우니 붙어있는 지방을 잘 태우고 신문지로 잘 닦아서 관리를 잘하자는 내용 (가정에서도 고기 구워먹는 문화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증명)



1935년 5월 5일 동아일보 기사 "평양 모란대 명물 불고기 금지"


평양의 명물인 불고기가 환경오염(소나무숲에 해가됨)을 이유로 야외에서의 영업이  금지됨



1936년 岡山県高松農学校 (오쿠야마현 타카마츠 농학교)가 출간한 家庭用豚肉料理の栞 (가정용 돼지고기 요리의 입문서)











돼지고기 요리 50종류중에


야키니쿠 요리 7가지소개



1.味付蒸焼(아지츠케 무시야키 / 간(양념)을한 찜요리)


2.挽肉いため焼き(히키니쿠 이타메야키 / 다진고기를 볶아 구운 요리


3. 味醂焼(미림야키 / 말그대로 미림을 이용한 구이)


4. ジンがラン(진가란 / 커틀렛과 비슷한 요리로 소개)


5. 照り焼き (테리야키) (설탕,간장,미림으로 양념한 구이요리)


6. 焼豚の卵焼き(야키부타노 타마고야키) 구운돼지의 계란말이


7. 串焼 (쿠시야키) 쿠시야키

오사카에서는 꼬챙이에 재료를 끼워 기름에 튀긴 요리를 말하고

도쿄에서는 꼬챙이에 재료를 끼워 불에 구운고기를 쿠시야키라고도 함(보통은 야키토리)





찜도 야키니쿠 , 테리야키도 야키니쿠,  쿠시야키도 야키니쿠





1937년 


중일 전쟁을 통한 침략 전쟁 시작 ->  

국가총동원령 선포 -> 

일제에 의한 수탈이 심해지고 노동자및 강제 징용자등이 생겨남



1938년 


동경시내에 존재하는 조선요리점은 총 37곳 (조선인 대상 일반요리점)


노동 및 강제 징용등으로 인한 일본거주 조선인이 늘어남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수탈이 극에 달했던 1940년대부터는 재일거주 조선인이 100만명을 돌파함









한국국적만 있는 이유는 북한과 일본이 아직 수교를 맺지않았기때문에 북을 지지하면 정식 국적취득이 불가능한 현실때문인것이고, 그래서 이북출신 교포들도 국적선택시에는 한국국적을 선택하게됩니다

조선 국적은 전쟁전부터 계속 국적변경없이 일본에 계셨던 분들이 사용하던 국적을 말합니다




1939년  篠原呂市 (시노하라 료시)가 쓴 北京料理の話  (북경 요리 이야기)


叉燒肉(チヤーシヤウロー)(챠-샤우로-)

챠슈를 소개하는 내용 (오늘날 일본 라면등에 들어가는 차슈를 말함)




차슈 = 야키니쿠




1939년 2월 "문장"에 이효석이 쓴 소설"​山精(산정)"


전문 네이버 dar_san님 블로그


백화점에서 머뭇거리면서 어디로 갈까를 망설이던 끝에 작정된 것이 서장대 방면의 코스였다...

그날의 세사람의 륙색 속을 별안간 대로상에서 수색당했다면 요절할 광경을 이루었을는지도 모른다.

김말이 점심밥과 술병과 과실이 든 것은 별반 신기한 것이 못되나

항아리 속에 ​양념해 넣은 소고기와 석쇠와 숯이 그 속에 있을 줄야 누구나 쉽게 상상하지 못할 법하다.

산허리에 숯불을 피우고 석쇠를 걸고 맑은 공기 속에서 고기를 구어 먹자는 생각이었다.

별 것 아니라​ 고깃집 협착한 방안의 살림살이를 하늘 아래 넓은 자리 위래 그대로 이동시키자는 것이었다.

워낙 고기를 즐기는 박서방의 제안이었으나 그 기발한 생각은 즉석에서 두 사람의 찬동을 얻어 그날의 명물 진안이 된 것이었다. 보통문을 지나 벌판에 나섰을 때 세사람은 소고기 항아리와 석쇠와 숯과 술과 밥을 짊어지고 다리가 개운들했다.​


(보통문 - 평양에 있는 동대문 남대문 같은곳)


키워드 : 항아리 속에 양념해 넣은 소고기 / 석쇠 / 숯



1939년 6월 잡지 "여성"에 이효석이 쓴 "유경식보"


시인 이혜리님 블로그 전문읽기


중요한 음식의 하나가 야키니쿠인데 고기를 즐기는 평양의 사람의 기질을 그대로 반영시킨 음식인 듯합니다. 요리법으로 가장 단순하고 따라서 맛도 담백합니다. 스키야키같이 연하지도 않거니와 갈비같이 고소하지도 않습니다. 소담한 까닭에 몇 근이고 간에 양을 사양하지 않는 답니다. 평양 사람은 대개 골격이 굵고 체질이 강장하고 부한 편이 많은데 행여나 야키니쿠의 덕이 아닌가 혼자 생각에 추측하고 있습니다. 다만 야키니쿠라는 이름이 초라하고 속되어서 늘 마음에 걸립니다. 적당한 명사로 고쳐서 보편화시키는 것이 이 고장 사람의 의무가 아닐까 합니다. 말이란 순수할수록 좋은 것이지 뒤섞고 범벅하고 옮겨온 것은 상스럽고 혼란한 느낌을 줄 뿐입니다.



1.문맥에서 확인가능한것은 이효석은 갈비구이를 알고 있었고 스끼야끼도 (재료는 별개로보더라도) 알고있었다


2.야끼니꾸라 불리는 요리를 처음 먹어보았고 그 말을 바꾸었으면 한다는 개인의 감상을 남겼다


3.요리방법은 단순하다 (일본서양요리책에서 소개된 스테이크 내용과 일치)


4.맛이 담박하다 (담백은 일본어로 淡白 たんぱく,탄파쿠) 


스테이크의 맛을 표현한 일본문헌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 淡白した味  담백한맛


5.연하지도 않다 


불고기는 주로 등심,안심등 소의 제일 좋은 부위를 사용했고, 게다가 두드려서 부드럽게 한 요리 

갈비는 갈비뼈 바깥쪽부터 뱃살부분까지 연결된 부분의 고기, 뱃살은 기름이 많은데 그래서 고소한것

스테이크는 그에 비하면 질긴편 (육질개선이 이루어진 현대와는 다름)


6.이효석은 4개월전에 발표한 글에서 이미 양념이 된 소고기가 든 항아리를 들고 산에 올라  숯불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구워먹었다 → 그런데 무슨 요리인지 이름을 몰랐던것


이미 1935년 모단대 명물 불고기라는 신문기사에 등장할정도로 불고기는 인기가 있었는데 불고기와 야끼니꾸가 동일한 음식이라는것은 말이 앞뒤가 안맞고 이효석이  야끼니꾸라 인식했던(통구이일수도 있고, 탕수육일수도 있고, 고래고기일수도 있고, 스테이크 혹 징기스칸 요리일수도있는)음식을 처음 먹어본 후 이름을 바꾸었으면 한것 뿐


불고기와 갈비는 이미 유행중이었고, 서양요리점에서 스테이크가 야키니쿠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을 가능성을 상황을 가정하면 3가지가 각자 별도로 존재가능한데 이는 1941년 매일신보 기사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스테이크가 인기는 없었기때문에 알려지지 않은것으로 이후의 신문기사를 보면 <미국에 간 한국기자가 미국인들이 스테이크를 먹는걸 보고, 왜 저 아까운 고기를 그냥 먹는지 모르겠다며, 양념해 먹으면 될텐데 라는 내용이 나옴>


일본에서도 스테이크가 인기가 없었던 이유는 버터에 소금,후추만 간을 한 서양문화가 좀처럼 익숙해지지않아서 

일본사람 입맛에 맞게 된장을 넣고 구워먹은것에서 규나베가 등장하고, 

관서지방에서는 구운고기에 간장과 설탕을 뿌려서 먹기시작하면서 스키야키로 발전



황씨가 주장하는 국물형태의 스키야키는 한참지나서 관동지방에서 발전한 스타일입니다


개항후 요코하마 인근에서 시작된 관동지방의 규나베 (된장,파,고기의 단순한 조합)음식점들이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도쿄 인근의 60%가 파괴된 재앙으로 

다시 재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관서지역에서 유행했던 고기를 먼저굽고, 간장을 뿌리고 설탕을 뿌리고 미림과 청주를 뿌려서 맛을 내는 스타일이 동경으로 전파되었다가 훗날 가츠오 육수에 국물이 많은 형태로 변형이 된것이 관동식 스키야키입니다



이후로는 일본이 패망할때까지의 자료는 없었습니다 (혹은 다 못찾은걸수도 있고)

일본 본국은 전쟁으로 인해서 피폐했던 시기였으니까요

모든 물자는 군 우선이 되었던 시기입니다




패망후의 자료를 좀 더 살펴보면




1949년 美しい暮しの手帖(맛있는생활의 수첩) 잡지

鵞鳥の燒肉 (거위의 야키니쿠)

거위고기 굽는법 소개



1957년 あまカラ (아마카라) 잡지

アテネの燒肉屋 (아테네노 야키니쿠야) 아테네의 야키니쿠

그리스 아테네의 구운고기집 소개



1960년 世界の家庭料理 (세계의 가정요리)

ウイーン風の焼肉とおだんご (빈풍의 야키니쿠와 당고)

오스트리아 빈 스타일의 구운고기와 단고




1961년10월호 月刊食堂 : the food service management (월간 식당)


アイデア料理・朝鮮料理焼肉(プルコギ)

아이디어요리 . 조선요리 야키니쿠(푸루코기)



이때당시 일본에는 불고기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관련 기사를 국내언론에서도 많이 보도한바 있습니다

식당을 소개하는 음식잡지에서도 


"불고기"라 불리는 조선야키니쿠에 대한 특집기사를 보도




1964년 標準ロシア料理 (표준 러시아 요리)

目次:第2章 ジャーレノエ・ミヤーソ(焼肉) ​

目次:第3章 トゥショーノエ・ミヤーソ(蒸焼肉)

러시아 요리 소개 야키니쿠로 번역 ​




1977년10월호 잡지  旅 (여행)


"ふるさと"の味・キムチと焼肉


고향의 맛 . 김치와 불고기


불고기 번역어로 야키니쿠 표기





이와깉이 일본에서는 불을 이용해서 익혀먹은 고기는(굽든, 튀기든, 삷든, 찌든) 전부 야키니쿠로 사용되었는데, 어디까지나 문자표기에 관한 부분이고 


실제 사람들이 야키니쿠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특정한 음식이나 이미지가 없다가 


재일 조선인들에 의해 판매된 불고기가 1965년 한일협정조약 이후로 야키니쿠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는것입니다




일본은 

1950년 초반 한국전쟁 특수로 인한 경제호황으로 

1960년대 고도성장기에 들어가면서부터 

그제서야 비로서 육식이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1964년 도쿄올림픽 시기전후


1965년 한일수교,


<이 시기까지 한국에선 불고기 = 숯불위에 석쇠를 올려 구워먹는고기>


수교이후에 민간 교류가 활성화되며 일본의 변화된 모습이나 발전 상황을 보게된 한일관의 요리사가  변형된 스키야키 혹은 징기스칸 나베를 보고 와서 서울식 불고기로 불리는 유행을 일으켰다고 보는것이 적절하다 생각합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로 한국에 대한 인식개선으로 야키니쿠 인기


1990년대 버블경제시기 절정 (호황으로 소고기소비가 절정에 이름)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를 기점으로 양국교류 활발,

일본내 야키니쿠산업이 급성장 --> 

직후에 이어진 일본내 삼겹살열풍도 야키니쿠 카테고리에 포함되며 함께 발전




이러한 근거와 자료들로 보면 야키니쿠가 불고기로 번안되었다라는것은 바보같은 주장입니다


일본에서 우선 고기를 구워먹는 문화 자체가 드물었고 그양도 미미한 수준이었는데 당시 조선은 육식소비량이 매우 큰 시기였고, 야키니쿠라는 단어가 먼저 번역되고 그에 맞게 우리가 요리를 맞추었다?  전혀 앞뒤가 안맞는 주장입니다


일본에서 야키니쿠 산업이 발전된 과정을 정확히 알았다면 그런소리를 안했겠지요



황씨가 블로그에서 주장한 일본문헌도 이미 다찾아봤다는 말은 과장된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고, 


일본위키에 나온 일본인이 쓴 내용을 기본 전제로 본인이 주장하는 인문학적? 상상력(뇌피셜)을 맘대로 말한것 뿐이라 봅니다


서양요리통이나 서양요리지남의 원문조차 살펴보지도 않았다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원문을 그렇게나 강조하는 분이 말입니다)



아마도 황씨가 그런주장을 시작한것으로 확인한 2009년경 이후로 생각되는데, 


일본내에서  뜬금없이 야키니쿠가 일본고유의 독자적인 형태의 문화라며 날조를 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황씨 주장처럼 니꺼 내꺼 안하면 어떠냐 서로서로 주고받는거지 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이명박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독도 방문을 이용했다는 말도 백번 공감합니다 (많은 교민들이 직접피해를 입었죠)




그런데 일본에서 불고기 혹은 야키니쿠는 한국의 일제강점기 시절 못지않게 가슴아픈 역사가 많은 음식문화입니다


이것을 지키고 발전하는데 있어서는 조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일본정부로부터도 철저히 외면받아, 돌아갈 고향조차 없어진 무국적의 조선인들이, (정치가들의 욕심때문에)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그시절 살기 위해서  차별과 핍박을 이겨내며 발전시켜낸 문화가 일본에서의 야키니쿠 문화입니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야키니쿠업계에서는 남도 북도 조선족도 구분이 없이 함께 발전시켜왔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도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돈이 된다는걸 알고 나서부터 말입니다 


그리고 돈이되는 현재는 야키니쿠, 한국요리로 함께 묶어놓았던 카테고리에서 한국이라는 이름을 슬그머니 빼고 일본만의 독창적이고 고유한 문화로 둔갑시켜 전세계에 홍보를 하고 있는 실정이기에 황씨의 주장이 저로서는 듣기 거북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아이폰으로 식당 검색할때는 이렇게 함께 분류됐습니다




국가 주도하의 한국음식 세계화의 아마추어리즘은 저도 황씨가 비판하는 부분에 동의합니다



다만 불고기는 황씨주장대로 박정희가 자신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만들어낸 민족음식 프레임으로 포장된것이 아니라, 양념을 절묘하게 해서 고기맛을 살리고, 빠른시간에 구워서 즉석에서 먹는 문화가 서양문화권에서는 못보던 형태의 것이라 관심을 받은것이고, 광복직후의 신문기사들만 봐도 그 내용들을 확인가능합니다

(바베큐나 스테이크 굽는 시간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긴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나라에서 별로 내세울것도 없던 시절에 외국에서도 인기가 있으니 그것을 발전시켜 보자했던것이고, 인기가 있으니 황씨가 중학생때 영어교과서에 불고기가 나온것이지 뜬금없이 국가주도로 밀어부친 것이 아니라는겁니다


야키니쿠라는 말이 김치와 함께, 한때는 일본인이 조선인을 비하할때 쓰이기도 했던 단어였다는것을 안다면 번안어니 뭐니 그런말을 할수는 없었을테니까요



애꿎은 학자들에게 원문을 가지고 이야기 하자고 하도 강변하시길래 원문을 가지고 이야기 해봤습니다


불고기,야키니쿠 타령좀 그만하고 음식문화를 진정사랑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할지 건전한쪽으로 입을 사용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입으로 맛이나 보고 악담만 하지말고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은 북한에서의 불고기문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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