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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펌] 어제 SBS에서 여운형 선생 암살사건을 주제로 방송 다뤘더군요.

작성자타메를랑|작성시간21.10.15|조회수148 목록 댓글 0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6592865

 

https://entertain.v.daum.net/v/20211014110138658

 

'당혹사2' 여운형 암살사건, 열아홉 암살범 배후엔 누가 있었나

 

어제 공부하다가 밤 10시 40분즈음에 저거 주제로하기에 본방사수하고 봤었는데. 거의 다 알만한 내용이었으나.. 

여운형 선생 암살배후 밝히는부분이 사실 굉장히 민감하고 복잡한 주제입니다. 

 

암살단은 테러단체 백의사였고, 이 백의사가 김구,이승만,미군정 경찰과 왔다갔다하면서 밀접하게 움직였다는것.. 김구라고 단정짓기에는 애매한게 김구는 일관되게 미군정과 사이가 매우 안좋았습니다.(김구가 주도해서 미군정 상대로 쿠테타 시도도 했을정도였으니까요) 

 

암살시점이던 1947년 7월즈음 당시 미군정에 협조했던 여운형이었는데(1947년 7월 19일 당일 미군정은 여운형에게 민정장관직을 제안할려했고 여운형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려했던 시점이었습니다), 암살에 김구가 관여했을시 미군정이 이걸 가만히 있었을리가 없죠. 더구나 김구는 국립경찰과의 관계도 그렇게 가깝지도않았던것도 사실이고요.. 이승만 경우는 당시 제2차 미소공위 한창일때 미군정에서 헌병대를 동원해 이승만이 거처하던 돈암장에 가택연금 조치했던 시기였죠.(이승만의 최측근 외교고문 올리버의 증언.) 이승만 입장에서는 제2차 미소공위 시기 가택연금조치 당하던때라 몹시 불쾌했던 시기였죠.

 

그리고, 암살사건에서 당시 수도경찰청 수사국장(당시 경찰청에선 no.3 지위 위치)이자 수사지휘자였던 노덕술이 상당히 깊이 관여하고 암살범과 적당히 '타협'을했다는 사실. 

 

뒷날 1994년 빌 클린턴 정부 시기 주한미국대사로 근무했던 제임스 레이니 대사가 1947년 한국 미군정 장교신분으로 첫 발령났을때, 이 여운형 암살사건 배후 조사를 맡았는데. 배후의 윤곽이 잡혀갈즈음에 돌연 미군정 상부에서 수사지시를 받았다고 레이니 대사가 증언한 사실이 있습니다.(관련도서 참조 - http://www.yes24.com/Product/Goods/30391806?OzSrank=2YES24 )

 

좌익쪽(특히 박헌영계에서 암살사주했다고 주장)에도 여운형 암살 배후가있다 얘기(대표적으로 고 이정식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교수의 주장)도 있으나, 당시 정황상 봤을때 극우세력이 벌인일이 매우 농후하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암살범들이 경찰과 매우 유착했었다는점. 그것도 파출소 바로 코앞에서 대놓고 암살을 벌였다는점과 이 사건에서 은폐,축소한것에 당시 친일경찰들이 다수였던 국립경찰이 굉장히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말이죠.. 즉, 이 사건은 당시 국립경찰이 핵심이죠. 예전에 몽양 여운형 선생 밑에서 수행비서로 일했던 어르신한분(1926년생. 경산 출신이라고 소개하셨어요. 2013년에 작고했습니다.)을 2010년에 만난적있었는데, 그분은 수도경찰청 장택상이를 반드시 따져야한다고 얘기하더군요. 그 사람이 '나는 몰랐다'라고 잡아뗄 수 없는 자리라고 얘기했었습니다.

 

여튼, SBS에서 이걸 다뤘다는것에 내심 반가웠습니다. 사실 해방정국 시기 역사가 극우파,서북청년단 가치관 따르는 세력들에의해 심하게 왜곡되거나 공작으로 얼룩진 부분들이 워낙많다보니.. 서북청년단 가치관 따르는 세력들 기준에선 이승만과 김성수(한민당)빼고는 죄다 빨갱이,좌파라고 몰아붙히는데. 실제 해방정국 시기 정치 스펙트럼은 그보다 훨씬 폭넓고 복잡하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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