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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조선은 사병혁파로 인해서 군사력이 약해졌다.

작성자moko|작성시간04.05.22|조회수857 목록 댓글 6
저는 조선의 군사력이 역대 최약체라는 사실을 보면서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사병양성이 안되어서 군사력이
약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를 보면 고려가 그래도 다른나라하고 싸우면서 어느정도
버티는 원인이 바로 사병에 있다고 봅니다.
정부가 양성하는 군대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으면 그 한계점을 바로
정부 관료의 사병이 극복해줍니다.
그 예로 태조 이성계의 경우를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그가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을 있었던 것은 바로 고려관군이 아닌
자기 근거지인 동북면 출신인 사병들의 전투력에 있다고 봅니다.
왜구나 여진족이나 홍건족이나 몽고족같은 이민족의 전쟁과 내부 반란, 요동출병때에도 전투의 주체가 바로 동북면의 사병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가 조선왕조라는 것을 건설하는데에도 사병으로 대표되는 무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을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의 지배층들은 무를 천시하고, 문를 숭상하였습니다.
그것에 따라 그 자신들은 병법에 대해 무지하였고, 칼이나, 기마술은 양반들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거리를 둡니다.
그저 기생이나 끼고살거나 유학이라는 책에 빠져서 탁상공론이나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한 결과가 태종 이방원의 왕권강화책으로 인해 사병혁파가 이루어져서 조선의
지배층들은 사병을 양성하지 못한 결과로 봅니다.
조선초기에 세종시절까지만 해도 위계질서가 잡혔기 때문에 조선은
그당시은 군사력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위계질서가 무너지게되므로 인해서 조선은 군사력의 약화가
되었습니다.
만일 지배층들의 사병이 허락이 된 상황이라면 관군의 전투력의 약화가 바로
그 사병들로 채워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인들의 사병들은 바로 여진족의 침략이나 왜구의 침략에
자기의 사병을 동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에서 이기면 바로 부귀영화가 들어오니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려고 했을때고 그렇게 해서 자기가 키운사병을 출전했을지도 모릅니다.
자기 사병의 수가 손실당해도 전공를 세우면 거기에서 나오는 공식적이나 비공식적이나 들어오는 것이 있기때문에 밑지는 장사가 안되었을것입니다.
사병을 키우다고 하면 많은 장정들이 사병으로 들어갔을때고
자연히 백성들은 무술을 익히는 결과가 되어 무가 유행했을것입니다.
어차피 조선시대의 중앙정부고관들은 부정을 저질러서 모은 재산이
많아도 쓸데가 없기때문에 이런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주색잡기에
빠지고 사치품을 쓰는데 사용되므로 차라리 사병을 양성하는 쪽이
더 낮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의 한명회같은 훈구대신들은 재산이 많았어도 그 재산을 낭비만
했지 사병을 양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힘깨나 되는 몇명만 자기 경호에 붙였을뿐이지 진정한 사병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법적으로 사병양성이 불법이기때문입니다.
그 많던 재산들은 그저 과소비로 날아가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도 안까습니다. 차라리 사병을 양성하는데 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임진왜란때의 이일이나 신립장군은 왜군을 치러가는데 모두 약해빠진
병사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고 말았습니다.
고려시대처럼 이들한테도 자기네들이 키운 사병들이 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청나라세력의 침공에도 조선군은 무력하게 패했습니다.
저항다운 저항은 없었습니다.
일주일만에 한성이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대규모의 군대집중도 못한채 수천 수백명 단위로 각개로 패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고려시대을 보면 무신정권때 무인지배자들이 30년간이나 계속된 고려내란을
진압을 하는 경우에는 물론 중앙관군의 힘도 있어지만, 자기가
키워놓은 사병의 힘이 더 컸습니다.
그 조위총의 반란이나 기타 여러가지 지방의 내란, 교종계통의 승려들의 공격에도 견디어 내는것은 바로 지배층의 사병이 절대적인 이유입니다.
이들을 진압하지 못하면 어차피 자기가 무너지므로해서 무인지배층들은
자기들이 키워놓은 최정예 사병들을 이용한것입니다.
고려시대는 확실히 조선시대의 농업경제력보다 떨어집니다.
조선시대의 농업생산력은 고려시대보다 높습니다. 농토 경작넓이도
고려시대보다 넓습니다.
이런 조선의 경제력에 걸맞은 사병이 많이 양성되었다면 민족의 치욕은 없었을것입니다.
물론 정권을 찬탈하는데 이용을 하겠지만, 사병의 무장력이 없었던 조선의 시절에도 정권찬탈이 많았습니다.
태종시절의 사병혁파가 없었더라면 많은 지배층들이
사병을 형성했을때고 자연히 문무가 자연히 평등해지거나 최소한
무의 약화가 그렇게 심해지지 않았을것입니다.
사병이 되면 어느정도 보장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자연히 백성들은 사병에 들어갔을때고
들어갈려고 많은 경쟁을 하므로 해서 자연히 백성들 사이에 무가 유행을 했을것입니다. 무기의 발단이 생기게 되고 조총(임진년 전에 대마 왜인들이 받친 기록이 있다.)의 수용도 늘어났을것입니다.
군사력이 약해졌어도 사병의 힘이 있기때문에 군사력의 공백을 메워주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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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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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나키스트[我行] | 작성시간 04.05.23 왕권이 약하된 시점에서 권문세족들의 사병보유가 어떠한 단계로 발전하는지는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요?
  • 작성자이알 | 작성시간 04.05.25 사병의 보유보다는 조선의 제승방략체제(맞나 기억이...) 자체가 원인인거 같은데요 하긴 사상부터 뜯어고치야했겠지만
  • 작성자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 작성시간 04.05.25 조선후기 왕권이 약화될때 백성들이 고통받는 일도 많았잖아요. 오히려 오래된 나라 조선을 양반귀족들이 왕조를 바꿔 새출발하는 것도 좋았을지도 모르죠.
  • 작성자Lhunlard | 작성시간 04.05.25 조선후기에 백성들이 고통받은 것은 세도가의 역할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만...
  • 작성자한무제 | 작성시간 04.09.04 조선은 개국부터 사병혁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성계는 무장에서 왕이 된 케이스고 그 기반이 사병이었죠. 그대로 뒀다가는 제 2,3 의 이성계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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