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적(白馬賊)
정사년[광해군 9년(1617)] 겨울에 경상좌도에 도적이 있었는데 베로서 말 옷[馬衣]을 만들어 밤에 다닐 때에는 말에 씌웠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백마적(白馬賊)이라 하였다. 영주 군수(榮州郡守) 조찬한(趙纘韓)이 그 괴수 이경기(李慶基)를 잡아서 가두었더니 그 무리들이 옥문을 깨뜨리고 탈출시켰다. 10월에 찬한을 잡아 서울까지 왔으나 다시 삼도 토포사(三道討捕使)로 임명하였다. 찬한이 지방을 순찰하다가 직산(稷山)에서 이경기를 잡았다. 《일월록》
제도(諸道)에 토적(土賊)이 일어나다
이때 곳곳에 도적이 일어났다. 양주에는 강한 도적 이능수(李能水)가 있고, 이천에는 현몽(玄夢)이 있었다. 충청도에도 역적들의 난리가 잇달아 일어났다.
○ 갑오년 여름에 토적이 사방에서 일어나 천명 만명으로 떼를 지었는데, 남원과 운봉(雲峯) 등지에서 더욱 심하였다. 대낮에도 못된 짓을 자행하고 나타났다 숨었다 하면서 도적질하니 그 형세가 날로 성해져서 관가에서도 금하지 못하고 길도 막혔다. 이때 밀과 보리가 익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좀도둑질을 하므로 밭 지키는 사람이 많이 살해되었다.
○ 남원의 토적 김희(金希)와 영남의 도적 임걸년(林傑年)이 가장 횡포하였다. 도원수가 전라 병사 김응서(金應瑞)로 하여금 잡도록 하였더니 군사가 무너져서 물러났다. 원수가 다시 상주 목사 정기룡(鄭起龍)을 독포대장(督捕大將)으로 삼아서 토벌하게 하였다. 8월에 기룡이 도적 이복(李福)의 목을 베자 그 무리들이 김희와 합하였다.
○ 남원의 토적 고파(高波)가 그 무리를 거느리고 몰래 이교점(梨橋店)에 왔다. 점 사람이 고발하므로 판관 김류(金瑠)가 군사 4백 명을 동원하여 점마을을 덮쳤으나 도적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태연히 밥을 지어 먹고 활을 힘껏 당기어 갑자기 나와서 관군을 쏘아대니 관군이 무너져 달아났고 김류도 물러났다. 도적들은 그가 돌아가는 길에 먼저 가서 매복하였다가 김류가 오는 것을 기다려 일시에 갑자기 활을 쏘아서 김류의 말 안장을 맞혔다. 김류는 겨우 몸만 빠져 나와서 성중으로 달려 들어갔다.
○ 김희ㆍ강대수(姜大水)ㆍ고파 등이 합세하여 약탈하였다. 운봉 현감 남간(南侃)이 독포장 정기룡에게 통지하였더니, 기룡이 군사 3백여 명을 거느리고 운봉으로 달려와서 모였다. 도적들이 한창 술자리를 베풀고 대대적으로 모여 있었는데, 관리와 군졸이 태반이나 도적의 무리였으므로 이쪽의 계획이 대부분 누설되었다. 기룡ㆍ김류ㆍ남간 등이 밤을 타서 나아가 포위하니 도적들은 이를 알고도 더욱 풍악을 치면서 싸울 작정을 하지 않았다. 해가 뜰 무렵에 적들이 고함을 치면서 포위망을 뚫고 나오니 관군이 무너져 달아났고 도적들은 느릿느릿 천천히 갔다.
○ 임걸년이 지리산의 사찰을 모두 무찔렀다.
○ 임실(任實)의 도적들도 노략질을 하였으나 관군은 여러 번 패전하였다. 도적이 드디어 도장(都將) 등을 죽이고 소굴로 돌아가면서, “전주ㆍ남원에서도 우리를 당해내지 못하는데 너희같은 쇠잔한 고을이 우리를 감히 도모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남원 등 일곱 고을 군사가 협력하여 회문산(回文山)에 모여 있는 도적을 잡는데 산에 불을 지르고 나무를 찍어내고 사면으로 공격하여 포위하니, 도적들이 지탱하지 못하여 높은 곳에 오르기도 하고 험한 곳에 웅거하기도 하였으나 연일 굶주리고 피곤하여 능히 싸우지 못하였다. 관군이 밤을 타서 백여 명을 잡아 죽이니 회문산 길이 비로소 소통되었다.
○ 을미년 봄에 영남 관군이 도내의 도적 김희ㆍ강대수를 토벌하여 죽였고, 장성(長城) 사람이 또 고파를 죽이니 길들이 비로소 소통되었다.
허종(許琮)
○ 장영기(張永奇)란 도적이 전라도에서 일어났는데 그 무리들의 세력이 날로 확장되어 각 고을에서 제어하지 못하므로 공을 절도사로 삼았더니, 도적들은 공이 온다는 말을 듣고 바다 가운데 섬으로 도망하였다가 그 뒤에도 틈을 타 노략질을 하였다. 공은 여러가지 방법과 계략을 써서 사람을 시켜 도적을 엿보게 하니 도적이 장흥(長興)으로 들어갔다. 공이 장흥 부사(長興府使) 김순신(金舜臣)에게 격문을 보내고 군사를 내어 포위하자 도적이 순신을 쏘아 넘어뜨려 포위를 헤치고 나가므로 공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가서 도적을 사로잡아 목베었다.
박영(朴英)
○ 어느날 준마를 타고 화려한 옷을 입고 밤을 틈타 남소문(南小門)을 지나는데, 어귀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손짓하여 부르므로 공이 말에서 내려 따라가니 집이 깊숙한 외진 곳에 있었다. 그 집에 이르니 이미 어두웠는데, 그 여인은 공을 마주하자 홀연히 눈물을 주르르 흘리니 공이 그 까닭을 물었다. 그 여인은 귓속말로 말하기를, “공의 풍채를 보니 필시 보통 사람이 아닌데 나로 인하여 억울하게 죽게되었다.” 하니, 공이 놀라서 물으니 이내 말하기를, “도적이 나를 미끼로 사람들을 유인하여 죽이고는 옷과 말과 안장을 나누어 가진 지가 1년이 넘었습니다. 내가 매일 탈출하려고 생각해 왔으나 도둑의 일당이 몹시 많아서 잡혀서 죽을까 두려워 못하고 있었습니다. 공은 나를 살릴 수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공이 즉시 칼을 빼어 들고서 잠을 자지 않고 있었는데, 한 밤중이 되자 방의 윗쪽 다락에서부터 여인을 부르는 소리가 나면서 큰 밧줄이 내려왔다. 공은 몸을 솟구쳐 벽을 차 무너뜨리고 급히 여자를 업고 몇 개의 담을 뛰어넘고는 여인이 붙잡는 옷자락을 잘라 버리고 달려갔다. 이튿날 벼슬을 사직하고 선산(善山)으로 돌아와서 기절을 꺾고 학문에 종사하였다. 자리 옆에 항상 옷자락을 두고서 자제들에게 경계를 삼도록 하였다. 《기재잡기》
○ 일찍이 서울에서 남쪽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주막에 머물다가 우연히 많은 물건을 지닌 큰 장사꾼을 만나 함께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의 뒤에는 여러 도둑이 뒤쫓아 왔다. 공이 그 기미를 알고 활과 화살을 가지고 다락에 앉아 있었더니 한밤중이 되자 도둑들이 과연 와서 포위하였다. 공이 말을 전하기를, “너희들이 깊은 밤에 이곳에 온 것은 장차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나는 선산에 사는 박 내금이다.” 하고, 도적들이 있는 쪽으로 활을 쏘아 대니 도적들이 놀라서 흩어졌다. 이로부터 명성이 더욱 자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