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er 님이 로마제국사 카페에 올리렸던 자료들을 편집했습니다.
(Kaiser 님! 허락받지 않고 올려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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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시대의 로마 기병
번호:357 글쓴이: Kaiser 조회:9 날짜:2002/07/14 19:08
제정 로마의 기병
// 편집자 생각 : 오현제 이후의 로마기병에 관한 글로 추정됩니다.
(1) 장비에 따른 분류
Contarii
: Contus라고 불리는 3.5m짜리 기병창으로 무장한 기병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기부터 등장했다. 매우 길고 무거운 기병창을 사용했기 때문에 실전에서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로마 시대에는 등자가 없었기 때문이 이 긴 창을 한팔로 잡고 팔 안쪽으로 끼고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두 손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등자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Cataphractarii
: 글자 그대로 중장 기병으로서 말과 기병 모두가 갑옷으로 방어를 갖추고 방패와 기병창으로 무장한 기병이다.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로마에 도입되었다.
(비잔티움 시대의 "캐터프랙트" 기병이 이걸 말하는 것이었군요..)
Clibanarii
: 위와 동일한 중장 기병이다. 위의 것과 단어만 다르고 같은 병종인지 확실치 않다. 일설에 따르면 이 기병의 주 무장은 기병창과 활이다.
Sagittariorum
: 궁기병이다. 활과 창으로 무장했다. 방패를 가진 경우가 있었는 지는 확실치 않지만 몸통은 갑옷으로 방호하고 있었다.
경기병
: 투창과 칼로 무장했다.
- 기병의 무장
쇠사슬 갑옷lorica hamata
: 기원전 1세기 중반에 등장했다. 철이나 청동으로 만든 고리를 여러개 엮어서 만든 갑옷으로 활동에 편리했기 때문에 기병이 많이 사용했다. 서기 2세기 부터 좀더 길어진 loricae hamata가 등장했다.
비늘 갑옷lorica squamata
: 단단한 가죽에 쇠로 만든 비늘을 꿰어 만든 갑옷이다. 만드는 것 자체는 별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으나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주로 기병 지휘관들이 많이 사용했다. 서기 3세기경 부터 길이가 길어져서 무릎길이까지 길어지게 되었다.
방패
: 로마군의 방패는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 졌지만 드물게 가죽 방패가 출토된 경우가 있다.
spatha
: 기병도로 길이는 65cm-90cm 내외이다. 모든 기병의 보조 무장으로 사용되었다. 서기 3세기경 부터는 보병들도 글라디우스 대신 이 스파타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contus
: 위에서 설명했듯이 길이가 3.5m에 달하는 기병이 사용하기에는 굉장히 긴 기병창이었다. 사용하기가 까다로워서 인지 이 창을 사용한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보인다.
일반 기병창
: 보통 기병창은 길이가 1.8m 정도였다.
투창
: 로마의 경기병들은 세개 정도의 투창을 휴대했다. 투창의 투척거리는 보병들과 비슷한 25m 정도였다.
(2) 제정 로마의 기병 부대 편제
알라이Alae ? 보조병 기병부대
: alae는 보조병 부대로 기병으로만 편성된 부대이다. 서기 2세기 말의 기록을 보면 1개 alae는 36명으로 구성된 turma 가 12개가 모여서 편성되었다고 한다.
turma의 지휘관은 decurion이라고 불리웠다. 물론 부대 편제는 매우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2세기 초에는 turma 한 개가 30명으로 편성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카파도키아의 총독을 지낸 아리아누스Arrian의 기록에는 1개 투르마가 32명으로 편성되었고 투르마 16개가 모여서 1개 알라이를 구성했다고 되어 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기에 보조병 부대들의 규모가 커졌는데 이때 24개 투르마로 편성된 ala milliaria가 등장했다. ala milliaria의 규모는 768명에서 1,000명 이내였는데 로마 제국의 엘리트 부대로서 속주 하나당 한 개만 가지고 있었다. 엘리트 부대여서 그런지 각 부대의 명칭도 긴 편이다. 현재의 영국에 주둔했던 ala milliaria의 명칭은 Ala Augusta Gallorum Petriana milliaria civium Romanorum bis torquata인데 현재의 스탠윅스(Stanwix)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이후에는 1개 투르마가 42명에 달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ala milliaria의 병력이 1,000명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
알라이의 지휘관은 praefectus equitum이라고 불렸다. 원래 이 자리는 각 보조병들의 출신 종족의 족장이 맡았지만 1세기 후반으로 가면 정규 군사 교육을 받은 로마인이 차지하게 되었다. ala milliaria는 엘리트 부대였기 때문에 이 부대의 지휘관이 된 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종종 이 직위는 정규 군단의 수석 백인대장이 맡는 경우도 있었다. 투르마는 데쿠리온(decurion)에 의해 지휘 되었다. 데쿠리온의 아래에는 프린시팔레스(principales)와 이무네스(immunes)의 두 계급이 있었는데 이중에서 프린시팔레스는 투르마 내의 소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었다.(부사관 정도에 해당) 프린시팔레스중에서는 기수가 가장 높은 계급이었는데 기수는 알라에의 부대기를 드는 vexillarius와 황제의 초상이 그려진 군기를 드는 imaginifer가 있었다. 투르마 하나에 군기를 드는 signifer 가 한명씩 있었다. 또한 데쿠리온의 부관으로서 cornicularius, duplicarius, sesquiplicarius 중 하나가 배속 되었다.
Cohortes equitatae
: 이 부대는 보병과 기병의 혼성으로 편성된 보조병 부대였다. 아마도 게르만 인들이 기병과 보병을 함께 섞어서 운용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부대는 공식적으로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기에 등장했는데 실질적으로는 이미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에서 이와 비슷한 형태의 부대를 만들어서 운용했다.
부대 규모는 사료 마다 다른데 아마도 이것은 각 지역별 차이로 보인다. cohort quingenaria equitata 의 경우는 기병 120명에 보병 380명으로 편성되거나 기병 120명에 보병 600명으로 편성되었다. 일반적으로는 보병 6개 켄투리아에 와 기병 4개 투르마의 혼성 편성으로 병력은 600명을 조금 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앙카라 근교에서 발견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기의 기록을 보면 cohort quingenaria equitata 하나에 네명의 데쿠리온이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을 토대로 기병이 4개 투르마가 있었다고 추측되고 있다. 아마 각 속주 마다 세세한 편제에는 차이가 있었을것이며 기병이 120명을 넘었을 수도 있다. cohort milliaria equitata 는 보병 10개 켄투리아에와 기병 8개 투르마로 편성되어 병력은 1056명 정도였다.
군단기병 Equites legionis
: 군단에 배속된 기병에 대해서는 자료가 부족한 편이다. 서기 67년의 유대 전쟁당시 유태인 반란군을 지휘했던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로마군의 각 군단에는 기병이 120명씩 배속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베제티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군단 기병은 각 코호르트마다 배속되었으며 제 1 코호르트에 132명이, 나머지 9개 코흐르트에 각각 66명씩의 기병이 배속되어 1개 군단에는 총 726명의 기병이 있었다고 한다. 군단 기병의 병력이 증가 한 것은 대략 3세기 중반으로 보인다. 게르만인들과의 전쟁이 잦아지면서 기병의 필요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군단 기병역시 투르마로 편성되었고 군단 기병의 투르마는 32명으로 역시 데쿠리온의 지휘를 받았다.
기병 호위대Equites singulares
황제뿐 아니라 지방 총독들도 자신의 경호 병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중에서 기병 호위대를 Equites singulares라고 한다. 황제의 근위 기병은 Equites singulares Augusti 라고 불리웠다. 총독들의 호위 기병은 대략 2개 투르마 정도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타 numeri, exploratores, cunei
: Numeri, Numerus는 자세한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로 지방의 치안 유지 임무를 맡았던 부대로 보인다. 확실치는 않지만 이 부대 역시 투르마로 편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ploratores는 단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정찰대다.
cunei는 cumeri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낙타부대 dromedarii
: 동방의 속주에서는 낙타 부대를 운용했다. 낙타 부대역시 알라이 급으로 편제된 부대가 있었다. Ala I Ulpia dromedariorum milliaria는 시리아 속주에 배치된 낙타 부대로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에 편성되었다. 그외에 정규 군단에 배속된 낙타 부대도 있었다.
로마 기병의 훈련과정
번호:372 글쓴이: Kaiser 조회:14 날짜:2002/07/17 06:54
제정 시기의 로마 군인은 입대 후 4개월의 기초 훈련을 받았다. 이것은 보병이나 기병이나 마찬가지 였다. 우선 입대 직후에는 (당연히)신체 검사가 행해졌다. 여기에서 병역에 적합하지 않은 인원은 탈락 되었다. 신체 검사에 합격한 후에야 기초훈련이 시작되었다.
기초훈련은 무기를 사용하는 법과 야전 축성법 등이었다. 그리고 모든 병사가 필수적으로 수영을 훈련 받았다. 기병의 경우에는 말과 함께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기병 훈련병도 기본적인 보병전 훈련을 받았는데 실전에서는 기병이 말에서 내려 싸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자료가 불충분 하기 때문에 기병 훈련병이 4개월간의 기초 훈련 뒤에도 보병 전투 훈련을 계속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 편집자 생각 :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특수병과의 병사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에 추가로 훈련을 받는 것처럼 로마의 기병들도 추가로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4개월간의 기초 훈련이 끝난뒤에야 말타는 법을 가르쳤다. 가장 먼저 말을 타고 내리는 법부터 가르쳐서 마지막 으로는 말을 타고 무기를 사용하는 법을 훈련했다. 병사들을 훈련 시키는 교관은 exercitatores, 혹은 magister campi라고 불리웠다.
로마 기병의 승마술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교육 했던 점은 말을 타고 이동할 때 다리를 고정 시키는 것 이었다. 당시에는 등자가 없었기 때문에 말을 타고 달릴 때 다리가 상당히 불안정 했다. 말을 타고 내리는 법과 말을 다루는 법을 교육 받은 뒤에는 말을 타고 달리고 장애물을 뛰어 넘는 법을 배웠다. 일단 등자가 없었기 때문에 달릴 때 안장위에서 안정적인 자세를 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말타기를 익힌 뒤에야 말을 타고 무기를 사용하는 법을 교육 받았다. 이 훈련시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서 만든 방패와 나무 칼을 들고 훈련했다. 보통 교육용 무기는 실제 사용하는 것과 무게가 비슷하거나 더 무거운 것을 사용했는데 이렇게 해서 교육용 무기사용에 숙달이 되면 진짜 무기는 더 쉽게 다룰수 있었다. 보병의 검술 훈련때는 나무로 만든 표적을 사용했는데 기병의 경우도 보병과 비슷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투창역시 실제 전투에 쓰는 것 보다 두배 무거운 것을 이용했다. 기마 궁수는 좀 까다로웠는데 일단 말 위에서 활을 쏠 정도로 기마에 능숙한 인원을 선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 편집자 생각 :
로마는 대체적으로 기병의 수가 적고 전투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기병의 필요성은 항상 인식하고 있었죠.
그래서 나름대로 체계적인 교육과 고된 훈련을 통해 그 부족함을 메우려고 노력했습니다.
(로마군의 훈련은 혹독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살던 유목민들은 삶을 통해서도 충분히 강인함을 가질 수 있었지만 정착민이었던 로마인들은 육체의 건강을 추구하는 사회분위기와 고된 훈련으로 강인함을 길렀습니다.)
(Kaiser 님! 허락받지 않고 올려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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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시대의 로마 기병
번호:357 글쓴이: Kaiser 조회:9 날짜:2002/07/14 19:08
제정 로마의 기병
// 편집자 생각 : 오현제 이후의 로마기병에 관한 글로 추정됩니다.
(1) 장비에 따른 분류
Contarii
: Contus라고 불리는 3.5m짜리 기병창으로 무장한 기병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기부터 등장했다. 매우 길고 무거운 기병창을 사용했기 때문에 실전에서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로마 시대에는 등자가 없었기 때문이 이 긴 창을 한팔로 잡고 팔 안쪽으로 끼고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두 손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등자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Cataphractarii
: 글자 그대로 중장 기병으로서 말과 기병 모두가 갑옷으로 방어를 갖추고 방패와 기병창으로 무장한 기병이다.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로마에 도입되었다.
(비잔티움 시대의 "캐터프랙트" 기병이 이걸 말하는 것이었군요..)
Clibanarii
: 위와 동일한 중장 기병이다. 위의 것과 단어만 다르고 같은 병종인지 확실치 않다. 일설에 따르면 이 기병의 주 무장은 기병창과 활이다.
Sagittariorum
: 궁기병이다. 활과 창으로 무장했다. 방패를 가진 경우가 있었는 지는 확실치 않지만 몸통은 갑옷으로 방호하고 있었다.
경기병
: 투창과 칼로 무장했다.
- 기병의 무장
쇠사슬 갑옷lorica hamata
: 기원전 1세기 중반에 등장했다. 철이나 청동으로 만든 고리를 여러개 엮어서 만든 갑옷으로 활동에 편리했기 때문에 기병이 많이 사용했다. 서기 2세기 부터 좀더 길어진 loricae hamata가 등장했다.
비늘 갑옷lorica squamata
: 단단한 가죽에 쇠로 만든 비늘을 꿰어 만든 갑옷이다. 만드는 것 자체는 별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으나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주로 기병 지휘관들이 많이 사용했다. 서기 3세기경 부터 길이가 길어져서 무릎길이까지 길어지게 되었다.
방패
: 로마군의 방패는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 졌지만 드물게 가죽 방패가 출토된 경우가 있다.
spatha
: 기병도로 길이는 65cm-90cm 내외이다. 모든 기병의 보조 무장으로 사용되었다. 서기 3세기경 부터는 보병들도 글라디우스 대신 이 스파타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contus
: 위에서 설명했듯이 길이가 3.5m에 달하는 기병이 사용하기에는 굉장히 긴 기병창이었다. 사용하기가 까다로워서 인지 이 창을 사용한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보인다.
일반 기병창
: 보통 기병창은 길이가 1.8m 정도였다.
투창
: 로마의 경기병들은 세개 정도의 투창을 휴대했다. 투창의 투척거리는 보병들과 비슷한 25m 정도였다.
(2) 제정 로마의 기병 부대 편제
알라이Alae ? 보조병 기병부대
: alae는 보조병 부대로 기병으로만 편성된 부대이다. 서기 2세기 말의 기록을 보면 1개 alae는 36명으로 구성된 turma 가 12개가 모여서 편성되었다고 한다.
turma의 지휘관은 decurion이라고 불리웠다. 물론 부대 편제는 매우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2세기 초에는 turma 한 개가 30명으로 편성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카파도키아의 총독을 지낸 아리아누스Arrian의 기록에는 1개 투르마가 32명으로 편성되었고 투르마 16개가 모여서 1개 알라이를 구성했다고 되어 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기에 보조병 부대들의 규모가 커졌는데 이때 24개 투르마로 편성된 ala milliaria가 등장했다. ala milliaria의 규모는 768명에서 1,000명 이내였는데 로마 제국의 엘리트 부대로서 속주 하나당 한 개만 가지고 있었다. 엘리트 부대여서 그런지 각 부대의 명칭도 긴 편이다. 현재의 영국에 주둔했던 ala milliaria의 명칭은 Ala Augusta Gallorum Petriana milliaria civium Romanorum bis torquata인데 현재의 스탠윅스(Stanwix)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이후에는 1개 투르마가 42명에 달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ala milliaria의 병력이 1,000명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
알라이의 지휘관은 praefectus equitum이라고 불렸다. 원래 이 자리는 각 보조병들의 출신 종족의 족장이 맡았지만 1세기 후반으로 가면 정규 군사 교육을 받은 로마인이 차지하게 되었다. ala milliaria는 엘리트 부대였기 때문에 이 부대의 지휘관이 된 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종종 이 직위는 정규 군단의 수석 백인대장이 맡는 경우도 있었다. 투르마는 데쿠리온(decurion)에 의해 지휘 되었다. 데쿠리온의 아래에는 프린시팔레스(principales)와 이무네스(immunes)의 두 계급이 있었는데 이중에서 프린시팔레스는 투르마 내의 소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었다.(부사관 정도에 해당) 프린시팔레스중에서는 기수가 가장 높은 계급이었는데 기수는 알라에의 부대기를 드는 vexillarius와 황제의 초상이 그려진 군기를 드는 imaginifer가 있었다. 투르마 하나에 군기를 드는 signifer 가 한명씩 있었다. 또한 데쿠리온의 부관으로서 cornicularius, duplicarius, sesquiplicarius 중 하나가 배속 되었다.
Cohortes equitatae
: 이 부대는 보병과 기병의 혼성으로 편성된 보조병 부대였다. 아마도 게르만 인들이 기병과 보병을 함께 섞어서 운용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부대는 공식적으로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기에 등장했는데 실질적으로는 이미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에서 이와 비슷한 형태의 부대를 만들어서 운용했다.
부대 규모는 사료 마다 다른데 아마도 이것은 각 지역별 차이로 보인다. cohort quingenaria equitata 의 경우는 기병 120명에 보병 380명으로 편성되거나 기병 120명에 보병 600명으로 편성되었다. 일반적으로는 보병 6개 켄투리아에 와 기병 4개 투르마의 혼성 편성으로 병력은 600명을 조금 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앙카라 근교에서 발견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기의 기록을 보면 cohort quingenaria equitata 하나에 네명의 데쿠리온이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을 토대로 기병이 4개 투르마가 있었다고 추측되고 있다. 아마 각 속주 마다 세세한 편제에는 차이가 있었을것이며 기병이 120명을 넘었을 수도 있다. cohort milliaria equitata 는 보병 10개 켄투리아에와 기병 8개 투르마로 편성되어 병력은 1056명 정도였다.
군단기병 Equites legionis
: 군단에 배속된 기병에 대해서는 자료가 부족한 편이다. 서기 67년의 유대 전쟁당시 유태인 반란군을 지휘했던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로마군의 각 군단에는 기병이 120명씩 배속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베제티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군단 기병은 각 코호르트마다 배속되었으며 제 1 코호르트에 132명이, 나머지 9개 코흐르트에 각각 66명씩의 기병이 배속되어 1개 군단에는 총 726명의 기병이 있었다고 한다. 군단 기병의 병력이 증가 한 것은 대략 3세기 중반으로 보인다. 게르만인들과의 전쟁이 잦아지면서 기병의 필요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군단 기병역시 투르마로 편성되었고 군단 기병의 투르마는 32명으로 역시 데쿠리온의 지휘를 받았다.
기병 호위대Equites singulares
황제뿐 아니라 지방 총독들도 자신의 경호 병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중에서 기병 호위대를 Equites singulares라고 한다. 황제의 근위 기병은 Equites singulares Augusti 라고 불리웠다. 총독들의 호위 기병은 대략 2개 투르마 정도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타 numeri, exploratores, cunei
: Numeri, Numerus는 자세한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로 지방의 치안 유지 임무를 맡았던 부대로 보인다. 확실치는 않지만 이 부대 역시 투르마로 편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ploratores는 단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정찰대다.
cunei는 cumeri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낙타부대 dromedarii
: 동방의 속주에서는 낙타 부대를 운용했다. 낙타 부대역시 알라이 급으로 편제된 부대가 있었다. Ala I Ulpia dromedariorum milliaria는 시리아 속주에 배치된 낙타 부대로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에 편성되었다. 그외에 정규 군단에 배속된 낙타 부대도 있었다.
로마 기병의 훈련과정
번호:372 글쓴이: Kaiser 조회:14 날짜:2002/07/17 06:54
제정 시기의 로마 군인은 입대 후 4개월의 기초 훈련을 받았다. 이것은 보병이나 기병이나 마찬가지 였다. 우선 입대 직후에는 (당연히)신체 검사가 행해졌다. 여기에서 병역에 적합하지 않은 인원은 탈락 되었다. 신체 검사에 합격한 후에야 기초훈련이 시작되었다.
기초훈련은 무기를 사용하는 법과 야전 축성법 등이었다. 그리고 모든 병사가 필수적으로 수영을 훈련 받았다. 기병의 경우에는 말과 함께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기병 훈련병도 기본적인 보병전 훈련을 받았는데 실전에서는 기병이 말에서 내려 싸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자료가 불충분 하기 때문에 기병 훈련병이 4개월간의 기초 훈련 뒤에도 보병 전투 훈련을 계속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 편집자 생각 :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특수병과의 병사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에 추가로 훈련을 받는 것처럼 로마의 기병들도 추가로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4개월간의 기초 훈련이 끝난뒤에야 말타는 법을 가르쳤다. 가장 먼저 말을 타고 내리는 법부터 가르쳐서 마지막 으로는 말을 타고 무기를 사용하는 법을 훈련했다. 병사들을 훈련 시키는 교관은 exercitatores, 혹은 magister campi라고 불리웠다.
로마 기병의 승마술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교육 했던 점은 말을 타고 이동할 때 다리를 고정 시키는 것 이었다. 당시에는 등자가 없었기 때문에 말을 타고 달릴 때 다리가 상당히 불안정 했다. 말을 타고 내리는 법과 말을 다루는 법을 교육 받은 뒤에는 말을 타고 달리고 장애물을 뛰어 넘는 법을 배웠다. 일단 등자가 없었기 때문에 달릴 때 안장위에서 안정적인 자세를 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말타기를 익힌 뒤에야 말을 타고 무기를 사용하는 법을 교육 받았다. 이 훈련시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서 만든 방패와 나무 칼을 들고 훈련했다. 보통 교육용 무기는 실제 사용하는 것과 무게가 비슷하거나 더 무거운 것을 사용했는데 이렇게 해서 교육용 무기사용에 숙달이 되면 진짜 무기는 더 쉽게 다룰수 있었다. 보병의 검술 훈련때는 나무로 만든 표적을 사용했는데 기병의 경우도 보병과 비슷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투창역시 실제 전투에 쓰는 것 보다 두배 무거운 것을 이용했다. 기마 궁수는 좀 까다로웠는데 일단 말 위에서 활을 쏠 정도로 기마에 능숙한 인원을 선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 편집자 생각 :
로마는 대체적으로 기병의 수가 적고 전투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기병의 필요성은 항상 인식하고 있었죠.
그래서 나름대로 체계적인 교육과 고된 훈련을 통해 그 부족함을 메우려고 노력했습니다.
(로마군의 훈련은 혹독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살던 유목민들은 삶을 통해서도 충분히 강인함을 가질 수 있었지만 정착민이었던 로마인들은 육체의 건강을 추구하는 사회분위기와 고된 훈련으로 강인함을 길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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