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사 카페에서 퍼왔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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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스의 군제개혁을 중심으로 본 로마의 군대 -
번호:215 글쓴이: 그라쿠스 형제 조회:21 날짜:2001/12/18 23:57
- 마리우스의 군제개혁을 중심으로 본 로마의 군대
I. 서론
"글레디에이터"가 극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벌써 서울에서만 100만 명의 관중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중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손꼽는 부분 중의 하나가 맨 처음 나오는 전투장면이다. 물론 어설프긴 하지만 그래도 사실적으로 하려고 한 노력이 돋보이는 이 장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막시무스(러셀 크로우 분)가 기마대를 이끌고 게르만족의 배후를 치는 장면이다.
2차 포에니 전쟁의 영웅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P. Cornelius Scipio Africanus) 이후 로마 군대의 가장 기본적인 전술이었던 가운데는 보병이 막고 기동력이 있는 기병이 뒤를 돌아 치는 방식이다. 이번 글에서는 로마 군대의 편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II. 본론
1. 서설
로마의 군대는 마리우스 (C. Marius)의 개혁(BC 108)이후 크게 변하게 된다. 물론 그 이후에도 제국에 들어서서 아우구스트스 등에 의해 군제가 변화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이시기에 있었던 것으로 기본적인 골격은 마리우스이 개혁이후 서로마의 멸망까지 계속된다. 즉 우리가 보는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군대는 마리우스가 군제개편을 한 이후의 군대라고 하겠다.
2. 로마의 군대
로마의 군대는 군단(Legion), 코호르트(Cohort),마니펠(Manipel), 백인대의(Cen
turia)의 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각 군단에는 사수들이 배치되어 있었다.병참의 수는 언제나 상당히 많은 숫자였다. 제정시대에 로마의 군대는 네 개의 다른 형식의 군대로 나뉘어져 있었다.
a) 황제 근위대 (Praetoriani)
b) 군단
c) 보조부대
d) 선단
3. Marius의 군제개혁 이전의 군단
군단병에는 네가지 다른 형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Hastati&Principes: 중무장보병으로 칼 한 개와 두 개의 투창(Pillum)이
기본무장이었다. Hastati가 맨 앞에 섰고 Principes는 두 번째였다.
Triarii: 이들은 베테랑들로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투창대신에 이들은 긴창을 들고 있었다. "Res ad triarios rediit" (이제는 트리아리가 나설 차례이다)라는 말로 로마인들은 최악의 상황을 말하곤했다.
Velites: 이들은 사수들이었다. 기본무장은 투구와 방패 그리고 갑옷은 입지 않았다. 일명 경무장 보병들로 지칭되는 사람들인데, 칼로 싸우고 짧은 거리에서 가벼운 투창을 던지는 것이 주임무였다. 보통의 군단은 4200명이었고 5000명까지 늘어날 수 있었다. 60개의 단위(백인대)로 나뉘어져 있었고 2개의 백인대는 한 개의 Manipel을 구성했다. Hatati,Principes 그리고 Triarii는 각각 10개의 Manipel을 구성했다. 그리고 이곳에 Velites가 적당히 나뉘어졌다.
Triarii-Manipel의구성예
.
......................45 millites ............................45 millites
30명의.....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Triarii......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15명의 ......O O O O O O O O................ O O O O O O O O
Velites........ O O O O O O O................... O O O O O O O
.........................................Manipel: 90 Milites
Manipel을 지휘하기 위해서 군단은 30명의 백인대장(Centurio)를 선발했다. 그리고 이 선발된 백인대장은 각각 한명씩 백인대장을 임명했다. 각 백인대장은 부관(optio) 와 다른 장교를 임명했다. 다른장교는 기수(signifer)한명, 나팔수(cornicen)한명, 그리고 tesserarius(매일 밤마다 tessera(작은 왁스로 발라진 판;글쓰는데 사용되었다)에 쓰여진 구호를다른 동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한명이었다. 거기다가 각 군단에는 유산계층에서 선발된 300명의 기병(30기마다 10turmae로 3중대씩)이 배치되었다.
4.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Numidia의 Jugurtha 그리고 Cimber와 Teuton족과의 싸움에서 로마는 점점 더 많은 양의 군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5번 연속으로 집정관에 당선되고 있던 당시의 마리우스는 (C. Marius 156-86 B.C) 그때까지 유산계급에만 허용했던 군대를 시민권을 가지면 재산에 관계없이 모든 지망자를 군대에 보낼 수 있는 형식으로 개혁하기에 이른다. 그로 인하여 빈자들(Proletariat)은 모두 군대로 몰렸다.
이들은 빨리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되도록 이면 오랜동안 군대에 남아서 급여와 의식주 문제의 해결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로써 로마군대는 징병제에서 용병제로 전환되어지게 된다. 마리우스는 게다가 군단을 재편성 하기에 이른다. 그는 Manipel까지의 아래 부분은 그대로 두지만 이 Manipel을 독자적으로 전술을 수행할수 있는 단위인 600명의 중대로 결합시킨 것이다.
군단의 총 사령관은 원로원 계급의 Legat (군단장)가 맡았다. 그리고 Cohort의 지휘관으로는원로원이나 기사계급에서 선발된 6명의 호군관 (Tribuni Militum)이 있었다. 역시 군대의 중심은 백인대장 (Centurio) 였다. 아주 복잡한 승진을 통해서 이들은 Prim
ipillus (제1 Cohort의 제1 백인대장) 이 될 수 있었다.
한 군단에는 59명의 백인대장이 존재했다. (제1 Cohort는 백인대장이 5 명뿐이었다.) 그 외에도 로마 군대에는 특별한 지침을 수행하며 평시에는 군인의 임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수많은 Immunes들이 있었다. Praefecti Equitum은 기병대장으로 번역이 되는 독자적으로 운영되던 기병대의 대장이었다.
Preafectus Fabrum은 본래는 공병대의 대장이었으나 개혁을 통해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총사령관의 참모로 승진되게 된다. Preafectus는 본래 모든 선임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시대가 되면서 이 명칭은 특히 군대의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어지기에 이른다.
카이사르는 모든 군단장들을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호군관을 지칭할 때 사용하기도 하는 등 일반 지휘관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일반명사화 되어버린 것이다. 최고사령관은 모든 지휘관들에게 이런 명칭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호군관은 보통 원로원이나 기사계급의 대부분 군사적으로 무지한 어린 자제들로 구성되었으며, 보통 이들은 이 자리를 이후 정치에 입문하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이들 중 2명은 한달 동안 내무를 보았고 나머지는 다른 특별한 임무들이 주어지곤 했다 (정찰, 외교보좌 등). 전시에는 가장 로마에서 강력하다고 여겨진 전술적 단위인 Cohort정도의 지휘관으로 활약했다.
III.결론
1. 평가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이후 로마는 징병제에서 용병제/ 모병제로 전환하였고, 그로 인하여 군사적인 문제 즉, 군대 질의 저하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약자의 흡수라는 복지정책도 수행하게 되었다. 느슨하긴 하지만 여전히 신분제사회였던 고대 로마에서 평민이하의 계급으로 재산이 없던 사람들이 능력만 가지고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군대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막시무스도 물론 가공의 인물이지만 스페인의 지방에서 총사령관의 지휘에 오르는 그러한 형태의 인물로 보인다. 마리우스의 군제개혁은 물론 사병화라는 측면에서 많이 비판을 받게 된다.
즉 군인들은 징병된 것이 아니라 그 사령관을 보고 자신의 목숨을 맞길 수 있다고 신임을 하게 되어 모여드는 것이므로 군인들 개개인이 사령관에 충성을 다하는 대신 사령관은 자신의 부하들의 제대 후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하게 되므로, 강한 유대관계를 형성시킬 수밖에 없었고 이는 로마의 제정으로 연결되는 고리로 판명되어졌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제정으로의 변화과정을 논할 필요는 없겠지만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2. 사족
로마의 사회는 아무리 공화제니 제정이니 해도 군인들의 사회였다. 시민들이 인정받은 것은 군인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후기 제정에 가면 이런 현상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물론 시작은 티베리우스 (T. Iulius Caesar Augustus; 14~37 A.D.) 황제부터 였지만- 군인들에게 금전을 주고 이들의 추대에 의해 황제에 등극하는 것으로 금전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사령관이 황제가 되면 자신들이 근위대가 되고 이는 봉급과 사회적 지위의 향상으로 이어지기에 추대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비텔리우스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또 가장 유명한 경우는 글레디에이터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코모두스(M. Aurelius Commodus; 180~192 A.D.) 의 뒤를 잊는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Didius Julianus; 193 A.D.)의 일화인데 황제근위대 앞에서 자신의 경쟁자와 황제 낙찰을 위해 경매까지 한 일화가 있다. 이런 경향은 그 이후 군인황제 시대로 가면 더욱 더 심해지는 것이다.
추대되었다고 무조건 황제가 된 것은 아니지만 군대라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여러 곳에 있는 군대가 서로 다른 황제를 추대했을 때 이들간에 전쟁도 많이 벌어지게 되었고 이는 결국 로마 제국의 쇠퇴를 촉진시켰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3. 결론
지금까지 로마 군대를 마리우스의 군제개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놀라운 것은 이런 군제개편이 지금까지 기록으로 남아있을 정도로 이들의 원칙주의가 철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든 것을 체계화시키길 좋아했고, 군제 역시 한번 정한 것을 많은 부작용이 나타남에도 기본적인 골격은 유지하고 꾸준히 수백년 동안 지켜왔던 것이다. 이점이 몇 달만에 법을 바꿔대는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배워야 할 사실인 것이다.
★로마군의 행군편성★
번호:191 글쓴이: ★㉡┳㉤┣★ 조회:50 날짜:2001/12/18 23:56
이거 원래 제가 다른까페에 올렸던 건데여 그대로 올립니다. ******************************************************************
★로마군 행군의 편성단위★
동맹국의 정예부대가 먼저 출발한다. 근위병을 거느린 집정관도 이 선두부대에 포함된다. 그 다음 동맹군의 우익부대와 짐마차가 그 뒤를 따른다. 세번째는 제 1군단의 로마 시민병과 그를 따르는 짐마차가 대열하고 네번째는 제 2군단의 로마 시민병과 짐마차가 따른다. 마지막은 동맹국의 좌익부대와 짐마차대열로 끝나는것이 평상시 로마군의 행군 순서이다.
★적이 배후에서 습격해올 우려가 있으면 평소에 선두에서 행군하던 집정관과 동맹국의 정예부대가 맨 뒤로 돌아갔다. 적이 습격해올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행군도중에 순서가 바뀔때도많았다. 휴식, 물이나 식사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기위한 배려 때문이다.
★행군로가 평탄하고 폭이 넓어서 걷기 쉬운 로마가도나 느긋하게 행군할 수 있는 평야인 경우, 3열종대나 4열종대로 행군하고 짐마차대열도 뒤따라 오지않고 병사들과 나란히 나아갈때가 많았다. 만약의 경우에는 짐마차를 방패삼아 방어할 수 있기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너무나 체계적이라 정말 놀랍다!! 여유있게 행군하는 중에서도 방심을 하지않고 만약을 대비해 행군편성을 바꿔가며 행군하고 전쟁중에서도 모든것을 평등하게 하는 로마군이 정말 대단한것 같다. 다만 식습관이 육식이아니라 훗날 갈리아인에게 체력적으로 밀렸으나 여전히 지중해계인들의 식습관을 버리지 못한것이 한스럽다. 하지만 로마인 그들만의 생각이 있었을것이라 생각된다. 아무튼 우리는 이 로마군의 행군편성단위에서 로마군의 체계적이고 완벽을추구하는 성격과 모든것을 평등하게 하는 공정한 로마인만의 성품을 볼수 있다. ..
초기 제정 시대의 로마 군단 조직
번호:337 글쓴이: Kaiser 조회:16 날짜:2002/07/01 09:10
-보조병auxilia
로마가 팽창하면서 정규군단외에 보조 부대역시 크게 증가했다. 제국의 서쪽지역에서 편성된 보조병 부대는 주로 그 부족의 이름을 따서 편성되었고 제국 동쪽지역에서 편성된 부대는 각 각의 도시 이름을 따서 편성되었다.
보조병은 가장 큰 단위가 보병은 코호르트, 기병은 알라이alae였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보조병 코호르트는 대략 480에서 500명으로 구성되었고 전투시에 정규 군단의 양 익에 포진해서 측면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았다. 보조병 보병은 대부분 경보병으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네로의 치세, 늦어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치세에 들어가면 보조병의 규모가 커져서 cohortes milliariae라고 불리는 병력 1,000명 규모의 코호르트가 등장했다.
그리고 보병과 기병이 혼성 편성된 코호르테스 에퀴타타에cohortes equitatae도 네로 시기에 등장했다. 물론 카이사르의 갈리아인이나 게르마니아인 보조병부대도 보병과 기병의 혼성 편성으로 되어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임시적인 성격이 짙었다.
보병 코호르트는 80명으로 구성된 켄투리아에 10개로 편성되었다. 기병인 알라이는 조금 구성이 달랐는데 최소단위가 32명의 기병으로 구성된 투르마이turmae였고 투르마에 16개가 모여서 alae가 편성되었다. 각 보조병 부대의 편성은 다음과 같다.
아우구스투스 - 네로 황제 시기
cohort quingenaria : 6개 켄투리아에, 병력 480
cohort quingenaria equitata : 6개 켄투리아에 + 기병 4개 투르마, 병력 608
ala quingenaria : 기병 16개 투르마, 병력 512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이후
cohort milliaria : 10개 켄투리아에, 병력 800
cohort milliaria equitata : 10개 켄투리아에, 기병 8개 투르마, 병력 1056
ala milliaria : 기병 24개 투르마, 병력 768
보조병은 지휘체계도 로마의 정규 군단과 달랐다. 베스파시아누스 이전까지는 각 보조병 부대는 각각의 출신 부족장들이 지휘관이 되었다.
그러나 네로의 시대를 거치면서 이민족 출신의 보조병들의 폭동 같은 문제때문에 베스파시아누스는 보조병들도 로마에서 임명한 지휘관들의 지휘를 받게 했다. 보병부대의 지휘관은 praefectus cohortis, 기병 부대의 지휘관은 praefectus alae로 불리웠다.
제정 초기에는 보조병들에게 특별한 포상이 없었으나 티베리우스 황제시기에 이르르자 보조병을 많이 모집하기 위하여 보조병으로 25년간 복무한 개인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베스파시아누스 시기에는 각 보조병 부대에 집단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시민권은 지중해 지역 주민에게 인기가 있었는지 시리아나 레반트 지역의 궁수들은 계속해서 로마 보조병으로 자원했다.
-해군
아우구스투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후 자신의 해군을 2개 함대로 나누었다. 미세눔Misenum과 라벤나Ravenna 항이 2개 함대의 주 기지가 되었고 이후 3세기 말까지 로마 함대의 주 기지의 역할을 했다.
각각의 함대는 병력 10,000명으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기 70년 이전까지 함대의 지휘는 정규 군단 군단장 출신의 장군이 맡았으나 서기 70년 이후로는 로마의 재해권이 위협받을 일이 없어졌기 때문인지 해군 지휘관은 뱃사람 출신 보다는 행정에 능한 관료 출신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히려 로마 제국이 성립되면서 부터는 라인강이나 다뉴브강의 방어가 더 중요한 임무가 되고 말았다.
-근위병Praetorian Guard
로마시의 근위병은 각각 500명으로 구성된 9개 코호르트로 편성되었다. 이중 1개 코호르트가 로마 황궁의 경비를 담당했다. 황궁을 경비하는 근위병들은 민간인 복장에 창과 방패, 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단 특별히 로마시내에서 사열을 할 경우는 갑옷을 착용했다. 근위병이 전투에 참가할때는 정규군단의 수석 켄투리온 출신의 tribune가 각각의 코호르트의 지휘를 맡았다.
서기 69년 이후로는 근위병 코호르트가 16개로 늘어났고 병력수도 각 코호르트가 1,000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황제의 근위 기병인 equites singulares Augusti는 각 보조 기병대에서 우수한 기병을 선발해서 편성했다.
-로마시 코호르트
그외에 주요한 도시의 치안 유지를 주 임무로 하는 3개 코호르트가 있었다. 로마시의 코호르트들은 근위병 코호르트가 9개로 구성되었으므로 그 뒤의 숫자를 이어 받아 X에서 XII까지 편성되었다. 그외에 XVII코호르트는 오스티아에, XV코호르트는 포주올리에, XIII코호르르트는 리용에 편성되었고 이외에도 많은 코호르트가 중요한 도시마다 편성되어 치안 유지를 맡았다.
Vigilum
또하나의 군사조직은 로마시의 소방관이었다. 이들은 군대처럼 군단 편성을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소방관 켄투리아에는 황제 근위병 출신이 지휘관이었다. 물론 이들은 군대는 아니었으므로 무기는 없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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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스의 군제개혁을 중심으로 본 로마의 군대 -
번호:215 글쓴이: 그라쿠스 형제 조회:21 날짜:2001/12/18 23:57
- 마리우스의 군제개혁을 중심으로 본 로마의 군대
I. 서론
"글레디에이터"가 극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벌써 서울에서만 100만 명의 관중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중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손꼽는 부분 중의 하나가 맨 처음 나오는 전투장면이다. 물론 어설프긴 하지만 그래도 사실적으로 하려고 한 노력이 돋보이는 이 장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막시무스(러셀 크로우 분)가 기마대를 이끌고 게르만족의 배후를 치는 장면이다.
2차 포에니 전쟁의 영웅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P. Cornelius Scipio Africanus) 이후 로마 군대의 가장 기본적인 전술이었던 가운데는 보병이 막고 기동력이 있는 기병이 뒤를 돌아 치는 방식이다. 이번 글에서는 로마 군대의 편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II. 본론
1. 서설
로마의 군대는 마리우스 (C. Marius)의 개혁(BC 108)이후 크게 변하게 된다. 물론 그 이후에도 제국에 들어서서 아우구스트스 등에 의해 군제가 변화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이시기에 있었던 것으로 기본적인 골격은 마리우스이 개혁이후 서로마의 멸망까지 계속된다. 즉 우리가 보는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군대는 마리우스가 군제개편을 한 이후의 군대라고 하겠다.
2. 로마의 군대
로마의 군대는 군단(Legion), 코호르트(Cohort),마니펠(Manipel), 백인대의(Cen
turia)의 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각 군단에는 사수들이 배치되어 있었다.병참의 수는 언제나 상당히 많은 숫자였다. 제정시대에 로마의 군대는 네 개의 다른 형식의 군대로 나뉘어져 있었다.
a) 황제 근위대 (Praetoriani)
b) 군단
c) 보조부대
d) 선단
3. Marius의 군제개혁 이전의 군단
군단병에는 네가지 다른 형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Hastati&Principes: 중무장보병으로 칼 한 개와 두 개의 투창(Pillum)이
기본무장이었다. Hastati가 맨 앞에 섰고 Principes는 두 번째였다.
Triarii: 이들은 베테랑들로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투창대신에 이들은 긴창을 들고 있었다. "Res ad triarios rediit" (이제는 트리아리가 나설 차례이다)라는 말로 로마인들은 최악의 상황을 말하곤했다.
Velites: 이들은 사수들이었다. 기본무장은 투구와 방패 그리고 갑옷은 입지 않았다. 일명 경무장 보병들로 지칭되는 사람들인데, 칼로 싸우고 짧은 거리에서 가벼운 투창을 던지는 것이 주임무였다. 보통의 군단은 4200명이었고 5000명까지 늘어날 수 있었다. 60개의 단위(백인대)로 나뉘어져 있었고 2개의 백인대는 한 개의 Manipel을 구성했다. Hatati,Principes 그리고 Triarii는 각각 10개의 Manipel을 구성했다. 그리고 이곳에 Velites가 적당히 나뉘어졌다.
Triarii-Manipel의구성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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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millites ............................45 millites
30명의.....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Triarii......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X
15명의 ......O O O O O O O O................ O O O O O O O O
Velites........ O O O O O O O................... O O O O O O O
.........................................Manipel: 90 Milites
Manipel을 지휘하기 위해서 군단은 30명의 백인대장(Centurio)를 선발했다. 그리고 이 선발된 백인대장은 각각 한명씩 백인대장을 임명했다. 각 백인대장은 부관(optio) 와 다른 장교를 임명했다. 다른장교는 기수(signifer)한명, 나팔수(cornicen)한명, 그리고 tesserarius(매일 밤마다 tessera(작은 왁스로 발라진 판;글쓰는데 사용되었다)에 쓰여진 구호를다른 동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한명이었다. 거기다가 각 군단에는 유산계층에서 선발된 300명의 기병(30기마다 10turmae로 3중대씩)이 배치되었다.
4.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Numidia의 Jugurtha 그리고 Cimber와 Teuton족과의 싸움에서 로마는 점점 더 많은 양의 군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5번 연속으로 집정관에 당선되고 있던 당시의 마리우스는 (C. Marius 156-86 B.C) 그때까지 유산계급에만 허용했던 군대를 시민권을 가지면 재산에 관계없이 모든 지망자를 군대에 보낼 수 있는 형식으로 개혁하기에 이른다. 그로 인하여 빈자들(Proletariat)은 모두 군대로 몰렸다.
이들은 빨리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되도록 이면 오랜동안 군대에 남아서 급여와 의식주 문제의 해결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로써 로마군대는 징병제에서 용병제로 전환되어지게 된다. 마리우스는 게다가 군단을 재편성 하기에 이른다. 그는 Manipel까지의 아래 부분은 그대로 두지만 이 Manipel을 독자적으로 전술을 수행할수 있는 단위인 600명의 중대로 결합시킨 것이다.
군단의 총 사령관은 원로원 계급의 Legat (군단장)가 맡았다. 그리고 Cohort의 지휘관으로는원로원이나 기사계급에서 선발된 6명의 호군관 (Tribuni Militum)이 있었다. 역시 군대의 중심은 백인대장 (Centurio) 였다. 아주 복잡한 승진을 통해서 이들은 Prim
ipillus (제1 Cohort의 제1 백인대장) 이 될 수 있었다.
한 군단에는 59명의 백인대장이 존재했다. (제1 Cohort는 백인대장이 5 명뿐이었다.) 그 외에도 로마 군대에는 특별한 지침을 수행하며 평시에는 군인의 임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수많은 Immunes들이 있었다. Praefecti Equitum은 기병대장으로 번역이 되는 독자적으로 운영되던 기병대의 대장이었다.
Preafectus Fabrum은 본래는 공병대의 대장이었으나 개혁을 통해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총사령관의 참모로 승진되게 된다. Preafectus는 본래 모든 선임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시대가 되면서 이 명칭은 특히 군대의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어지기에 이른다.
카이사르는 모든 군단장들을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호군관을 지칭할 때 사용하기도 하는 등 일반 지휘관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일반명사화 되어버린 것이다. 최고사령관은 모든 지휘관들에게 이런 명칭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호군관은 보통 원로원이나 기사계급의 대부분 군사적으로 무지한 어린 자제들로 구성되었으며, 보통 이들은 이 자리를 이후 정치에 입문하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이들 중 2명은 한달 동안 내무를 보았고 나머지는 다른 특별한 임무들이 주어지곤 했다 (정찰, 외교보좌 등). 전시에는 가장 로마에서 강력하다고 여겨진 전술적 단위인 Cohort정도의 지휘관으로 활약했다.
III.결론
1. 평가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이후 로마는 징병제에서 용병제/ 모병제로 전환하였고, 그로 인하여 군사적인 문제 즉, 군대 질의 저하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약자의 흡수라는 복지정책도 수행하게 되었다. 느슨하긴 하지만 여전히 신분제사회였던 고대 로마에서 평민이하의 계급으로 재산이 없던 사람들이 능력만 가지고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군대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막시무스도 물론 가공의 인물이지만 스페인의 지방에서 총사령관의 지휘에 오르는 그러한 형태의 인물로 보인다. 마리우스의 군제개혁은 물론 사병화라는 측면에서 많이 비판을 받게 된다.
즉 군인들은 징병된 것이 아니라 그 사령관을 보고 자신의 목숨을 맞길 수 있다고 신임을 하게 되어 모여드는 것이므로 군인들 개개인이 사령관에 충성을 다하는 대신 사령관은 자신의 부하들의 제대 후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하게 되므로, 강한 유대관계를 형성시킬 수밖에 없었고 이는 로마의 제정으로 연결되는 고리로 판명되어졌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제정으로의 변화과정을 논할 필요는 없겠지만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2. 사족
로마의 사회는 아무리 공화제니 제정이니 해도 군인들의 사회였다. 시민들이 인정받은 것은 군인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후기 제정에 가면 이런 현상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물론 시작은 티베리우스 (T. Iulius Caesar Augustus; 14~37 A.D.) 황제부터 였지만- 군인들에게 금전을 주고 이들의 추대에 의해 황제에 등극하는 것으로 금전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사령관이 황제가 되면 자신들이 근위대가 되고 이는 봉급과 사회적 지위의 향상으로 이어지기에 추대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비텔리우스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또 가장 유명한 경우는 글레디에이터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코모두스(M. Aurelius Commodus; 180~192 A.D.) 의 뒤를 잊는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Didius Julianus; 193 A.D.)의 일화인데 황제근위대 앞에서 자신의 경쟁자와 황제 낙찰을 위해 경매까지 한 일화가 있다. 이런 경향은 그 이후 군인황제 시대로 가면 더욱 더 심해지는 것이다.
추대되었다고 무조건 황제가 된 것은 아니지만 군대라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여러 곳에 있는 군대가 서로 다른 황제를 추대했을 때 이들간에 전쟁도 많이 벌어지게 되었고 이는 결국 로마 제국의 쇠퇴를 촉진시켰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3. 결론
지금까지 로마 군대를 마리우스의 군제개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놀라운 것은 이런 군제개편이 지금까지 기록으로 남아있을 정도로 이들의 원칙주의가 철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든 것을 체계화시키길 좋아했고, 군제 역시 한번 정한 것을 많은 부작용이 나타남에도 기본적인 골격은 유지하고 꾸준히 수백년 동안 지켜왔던 것이다. 이점이 몇 달만에 법을 바꿔대는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배워야 할 사실인 것이다.
★로마군의 행군편성★
번호:191 글쓴이: ★㉡┳㉤┣★ 조회:50 날짜:2001/12/18 23:56
이거 원래 제가 다른까페에 올렸던 건데여 그대로 올립니다. ******************************************************************
★로마군 행군의 편성단위★
동맹국의 정예부대가 먼저 출발한다. 근위병을 거느린 집정관도 이 선두부대에 포함된다. 그 다음 동맹군의 우익부대와 짐마차가 그 뒤를 따른다. 세번째는 제 1군단의 로마 시민병과 그를 따르는 짐마차가 대열하고 네번째는 제 2군단의 로마 시민병과 짐마차가 따른다. 마지막은 동맹국의 좌익부대와 짐마차대열로 끝나는것이 평상시 로마군의 행군 순서이다.
★적이 배후에서 습격해올 우려가 있으면 평소에 선두에서 행군하던 집정관과 동맹국의 정예부대가 맨 뒤로 돌아갔다. 적이 습격해올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행군도중에 순서가 바뀔때도많았다. 휴식, 물이나 식사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기위한 배려 때문이다.
★행군로가 평탄하고 폭이 넓어서 걷기 쉬운 로마가도나 느긋하게 행군할 수 있는 평야인 경우, 3열종대나 4열종대로 행군하고 짐마차대열도 뒤따라 오지않고 병사들과 나란히 나아갈때가 많았다. 만약의 경우에는 짐마차를 방패삼아 방어할 수 있기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너무나 체계적이라 정말 놀랍다!! 여유있게 행군하는 중에서도 방심을 하지않고 만약을 대비해 행군편성을 바꿔가며 행군하고 전쟁중에서도 모든것을 평등하게 하는 로마군이 정말 대단한것 같다. 다만 식습관이 육식이아니라 훗날 갈리아인에게 체력적으로 밀렸으나 여전히 지중해계인들의 식습관을 버리지 못한것이 한스럽다. 하지만 로마인 그들만의 생각이 있었을것이라 생각된다. 아무튼 우리는 이 로마군의 행군편성단위에서 로마군의 체계적이고 완벽을추구하는 성격과 모든것을 평등하게 하는 공정한 로마인만의 성품을 볼수 있다. ..
초기 제정 시대의 로마 군단 조직
번호:337 글쓴이: Kaiser 조회:16 날짜:2002/07/01 09:10
-보조병auxilia
로마가 팽창하면서 정규군단외에 보조 부대역시 크게 증가했다. 제국의 서쪽지역에서 편성된 보조병 부대는 주로 그 부족의 이름을 따서 편성되었고 제국 동쪽지역에서 편성된 부대는 각 각의 도시 이름을 따서 편성되었다.
보조병은 가장 큰 단위가 보병은 코호르트, 기병은 알라이alae였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보조병 코호르트는 대략 480에서 500명으로 구성되었고 전투시에 정규 군단의 양 익에 포진해서 측면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았다. 보조병 보병은 대부분 경보병으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네로의 치세, 늦어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치세에 들어가면 보조병의 규모가 커져서 cohortes milliariae라고 불리는 병력 1,000명 규모의 코호르트가 등장했다.
그리고 보병과 기병이 혼성 편성된 코호르테스 에퀴타타에cohortes equitatae도 네로 시기에 등장했다. 물론 카이사르의 갈리아인이나 게르마니아인 보조병부대도 보병과 기병의 혼성 편성으로 되어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임시적인 성격이 짙었다.
보병 코호르트는 80명으로 구성된 켄투리아에 10개로 편성되었다. 기병인 알라이는 조금 구성이 달랐는데 최소단위가 32명의 기병으로 구성된 투르마이turmae였고 투르마에 16개가 모여서 alae가 편성되었다. 각 보조병 부대의 편성은 다음과 같다.
아우구스투스 - 네로 황제 시기
cohort quingenaria : 6개 켄투리아에, 병력 480
cohort quingenaria equitata : 6개 켄투리아에 + 기병 4개 투르마, 병력 608
ala quingenaria : 기병 16개 투르마, 병력 512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이후
cohort milliaria : 10개 켄투리아에, 병력 800
cohort milliaria equitata : 10개 켄투리아에, 기병 8개 투르마, 병력 1056
ala milliaria : 기병 24개 투르마, 병력 768
보조병은 지휘체계도 로마의 정규 군단과 달랐다. 베스파시아누스 이전까지는 각 보조병 부대는 각각의 출신 부족장들이 지휘관이 되었다.
그러나 네로의 시대를 거치면서 이민족 출신의 보조병들의 폭동 같은 문제때문에 베스파시아누스는 보조병들도 로마에서 임명한 지휘관들의 지휘를 받게 했다. 보병부대의 지휘관은 praefectus cohortis, 기병 부대의 지휘관은 praefectus alae로 불리웠다.
제정 초기에는 보조병들에게 특별한 포상이 없었으나 티베리우스 황제시기에 이르르자 보조병을 많이 모집하기 위하여 보조병으로 25년간 복무한 개인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베스파시아누스 시기에는 각 보조병 부대에 집단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시민권은 지중해 지역 주민에게 인기가 있었는지 시리아나 레반트 지역의 궁수들은 계속해서 로마 보조병으로 자원했다.
-해군
아우구스투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후 자신의 해군을 2개 함대로 나누었다. 미세눔Misenum과 라벤나Ravenna 항이 2개 함대의 주 기지가 되었고 이후 3세기 말까지 로마 함대의 주 기지의 역할을 했다.
각각의 함대는 병력 10,000명으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기 70년 이전까지 함대의 지휘는 정규 군단 군단장 출신의 장군이 맡았으나 서기 70년 이후로는 로마의 재해권이 위협받을 일이 없어졌기 때문인지 해군 지휘관은 뱃사람 출신 보다는 행정에 능한 관료 출신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히려 로마 제국이 성립되면서 부터는 라인강이나 다뉴브강의 방어가 더 중요한 임무가 되고 말았다.
-근위병Praetorian Guard
로마시의 근위병은 각각 500명으로 구성된 9개 코호르트로 편성되었다. 이중 1개 코호르트가 로마 황궁의 경비를 담당했다. 황궁을 경비하는 근위병들은 민간인 복장에 창과 방패, 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단 특별히 로마시내에서 사열을 할 경우는 갑옷을 착용했다. 근위병이 전투에 참가할때는 정규군단의 수석 켄투리온 출신의 tribune가 각각의 코호르트의 지휘를 맡았다.
서기 69년 이후로는 근위병 코호르트가 16개로 늘어났고 병력수도 각 코호르트가 1,000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황제의 근위 기병인 equites singulares Augusti는 각 보조 기병대에서 우수한 기병을 선발해서 편성했다.
-로마시 코호르트
그외에 주요한 도시의 치안 유지를 주 임무로 하는 3개 코호르트가 있었다. 로마시의 코호르트들은 근위병 코호르트가 9개로 구성되었으므로 그 뒤의 숫자를 이어 받아 X에서 XII까지 편성되었다. 그외에 XVII코호르트는 오스티아에, XV코호르트는 포주올리에, XIII코호르르트는 리용에 편성되었고 이외에도 많은 코호르트가 중요한 도시마다 편성되어 치안 유지를 맡았다.
Vigilum
또하나의 군사조직은 로마시의 소방관이었다. 이들은 군대처럼 군단 편성을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소방관 켄투리아에는 황제 근위병 출신이 지휘관이었다. 물론 이들은 군대는 아니었으므로 무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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