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함무라비대왕과 법전
1901년 프랑스의 조사단이 이란의 옛 도시 수사를 조사하던중 검은 돌을 발굴하였다. 세부분으로 나뉘어진 돌을 맞추어보니 높이가 23미터의 돌기둥이되었다. 이것이 함무라비대왕의 법전비석인것이다.
그렇다면 함무라비대왕은 누구인가.
구 바빌로니아 왕조를 보면 수무-아비(15년 통치),수무-라-이루 (35년 통치),자빈 (14년 통치),아필-신 (18년 통치),신-무발릿 (30년 통치);함무라비 (35년 통치),삼수-이루나 (35년 통치),아비슈아 (25년 통치),암미-티타나 (25년 통치),암미자두가 (22년 통치),삼수-티타나 (31년 통치)의 바빌론 왕조중 6번째 제위에 오른 인물이다.
앞의 5명의 왕때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나 국가는 아니였다. 하지만 함무라비가 왕이돼면서 바빌로니아 지역일대를 평정하므로 바빌로니아라고 일컬어지게되게 됀것이었다.
당시의 바빌로니아는 이신 ·라르사 ·바빌론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는데, BC 1787년에 이신을 토벌하고, BC 1776~BC 1768년 사이에 강적 라르사에 대승하여 림신왕을 포로로 하였으며, 유프라테스강 중류지역의 마리도 격파하여 시리아를 세력하에 두어, 엘람고원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통일국가를 건설하였다.
또한 수메르시대부터 이어져 오던 지방분권적인 경향을 억제하고 중앙집권적조직을 펼치게 돼었다. 이 때에 함무라비왕은 수도인 바벨론성을 구축하고 신전및 건물들을 건설하였고, 오리엔트 세계의 중심으로서 번영하고, 바빌로니아는 안정되었다.
또, 아카드어(語)를 국어로 채용하였기 때문에, 이때부터 아카드어는 오리엔트의 국제어가 되었다.
함무라비가 많든 법전은 기원전 18세기경에 만들어진 법전으로 형법,소송법,민법등 여러분야에 걸쳐 총 282조로 이루어져 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가장유명한것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성 결말로 유명하지만, 그 밖에도 형벌을 자세히 규정해 놓았다. 또한 신분에 따라 형벌에도 차이가 있었다.
*구 바빌로니아의 신분제도
바빌로니아의 신분제도는 어떻난 속박도 없는 자유인과 노예의 두 가지 신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노예는 자유인들에게 완전히 예속된 존재로 그만큼 대우도 형편없었다.
그들 가운데는 자유인과 결혼한 사람도 있었고 자유인이 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자유인이 노예에게 나쁜짓을 했을때와 노예가 자유인에게 그와 똑같은 짓을 했을때에 함무라비법전에선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1901년 프랑스의 조사단이 이란의 옛 도시 수사를 조사하던중 검은 돌을 발굴하였다. 세부분으로 나뉘어진 돌을 맞추어보니 높이가 23미터의 돌기둥이되었다. 이것이 함무라비대왕의 법전비석인것이다.
그렇다면 함무라비대왕은 누구인가.
구 바빌로니아 왕조를 보면 수무-아비(15년 통치),수무-라-이루 (35년 통치),자빈 (14년 통치),아필-신 (18년 통치),신-무발릿 (30년 통치);함무라비 (35년 통치),삼수-이루나 (35년 통치),아비슈아 (25년 통치),암미-티타나 (25년 통치),암미자두가 (22년 통치),삼수-티타나 (31년 통치)의 바빌론 왕조중 6번째 제위에 오른 인물이다.
앞의 5명의 왕때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나 국가는 아니였다. 하지만 함무라비가 왕이돼면서 바빌로니아 지역일대를 평정하므로 바빌로니아라고 일컬어지게되게 됀것이었다.
당시의 바빌로니아는 이신 ·라르사 ·바빌론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는데, BC 1787년에 이신을 토벌하고, BC 1776~BC 1768년 사이에 강적 라르사에 대승하여 림신왕을 포로로 하였으며, 유프라테스강 중류지역의 마리도 격파하여 시리아를 세력하에 두어, 엘람고원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통일국가를 건설하였다.
또한 수메르시대부터 이어져 오던 지방분권적인 경향을 억제하고 중앙집권적조직을 펼치게 돼었다. 이 때에 함무라비왕은 수도인 바벨론성을 구축하고 신전및 건물들을 건설하였고, 오리엔트 세계의 중심으로서 번영하고, 바빌로니아는 안정되었다.
또, 아카드어(語)를 국어로 채용하였기 때문에, 이때부터 아카드어는 오리엔트의 국제어가 되었다.
함무라비가 많든 법전은 기원전 18세기경에 만들어진 법전으로 형법,소송법,민법등 여러분야에 걸쳐 총 282조로 이루어져 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가장유명한것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성 결말로 유명하지만, 그 밖에도 형벌을 자세히 규정해 놓았다. 또한 신분에 따라 형벌에도 차이가 있었다.
*구 바빌로니아의 신분제도
바빌로니아의 신분제도는 어떻난 속박도 없는 자유인과 노예의 두 가지 신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노예는 자유인들에게 완전히 예속된 존재로 그만큼 대우도 형편없었다.
그들 가운데는 자유인과 결혼한 사람도 있었고 자유인이 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자유인이 노예에게 나쁜짓을 했을때와 노예가 자유인에게 그와 똑같은 짓을 했을때에 함무라비법전에선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