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마 군단의 역사와 장비

작성자미스트|작성시간03.12.12|조회수1,215 목록 댓글 1
이건 [로마인 이야기]라는 수업의 리포트로 작성했던 것입니다.
(중간고사 대체 리포트 .... ㅠ_ㅠ)

역시나 여기저기서 짜맞추기 한 것입니다. (오호호호홋!)
....그래도 번역하느라고 힘들었다구요. =ㅅ=;;;



------------------------------------------------------------------

로마 군단
Roman Legions
로마만큼 그 군대 구성에 있어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던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로마 군대의 발달사는 일종의 적응과 혁신이며, 그들이 마주치게 된 거의 모든 군사 체계의 일면들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자면, BC 2세기의 그리스 역사가인 폴리비우스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장갑 기병의 장비와 전술적 배치를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로부터 받아들이면서 투창을 장창으로 대치했다고 한다.
팔랑스(Phalanx)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원시적인 전쟁에서의 “회피하기”, 즉 지금도 원시부족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종의 시합형식으로 남은 의례적인 전투에서 벗어나 같은 목적을 지닌 적과 정면으로 맞붙어 대규모의 피해를 빚어낸 최초의 전사들이었다.
호메로스의 이야기에는 최고 전사들의 결투 같은 것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당시에는 이미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의 시민병들은 이른바 회전(會戰)이라는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수단을 통해 전쟁에서 결말을 보려 했다. 이는 유럽 다른 지역의 전쟁 양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인데, 여기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두 번째 모태가 된 도리아 민족이 도나우 강 저편에서 건너왔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초기의 로마 군대는 이러한 그리스의 팔랑스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는 당시 북방 튜턴 족이나 헬베테이 족 등의 유럽 민족이 가지고 있던 원시적 제례의 흔적이 남은 전투 방식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로마 군대는 대단히 광범위한 범위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앞부분에서는 로마 군대의 역사에 대하여 군단(Legions)을 중심으로 알아보고, 뒷부분에서는 군단의 장비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스 팔랑스
The Greek Phalanx
초기의 로마 군대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후대의 제정기 군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초창기, 에트루리아 계 왕의 휘하에서는 견고한 그리스식 팔랑스(Phalanx;방진)가 전쟁 진형이었다. 초기 로마 병사들은 당연히 호플라이트(Hoplite;그리스 중장보병)와 비슷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 로마 역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 있었으니,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아래에서 인구조사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시민들은 다섯 부류로 분류되었고, 이 등급으로부터 군대에서의 다양한 계급(=열列)이 부여되었다.
가장 부유한 첫 번째 계층은 가장 중장비를 착용했다. 그리스 호플라이트처럼 투구를 쓰고, 둥근 방패(Round Shield)를 들고, 각반(Greave)과 흉갑(Breast Plate)을 착용했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손에는 창과 검을 들었다. 그보다 낮은 계급은 장비들 역시 그보다 못했는데, 다섯 번째 계급에 이르면 갑옷도 입지 않고 투석기(Sling)로 무장했을 뿐이었다.
군대 장교는 기병이었는데 시민들을 지휘했으며 기승병(Equites)으로 기재되었다.
당시 로마 군대는 기승병 18개 백인대, 1계급 82개 백인대 (공병 2개 백인대), 2계급, 3계급, 4계급 각 20개 백인대와 5계급 32개 백인대(관악대 2개 백인대)로 구성되었다.

기원전 4세기 초까지 로마는 갈리아에 의하여 약탈당하는 수난을 겪고 있었다.
로마가 중앙 이탈리아에서의 권위를 회복하고 혹시나 존재할 비슷한 재해들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재편이 필요했다. 이러한 변화는 후대에 위대한 영웅인 프루비우스 카밀루스(Fluvius Camillus)에 의한 것이라고 믿어졌으나, 실은 기원전 4세기 후반부터 천천히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명실상부하게 가장 중요한 변화는 그리스식 팔랑스를 포기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그리스처럼 도시국가에 의하여 통치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군대가 적당한 평원에서 마주쳐 양측 모두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시기에 부딪혀 승부를 내는 일이 없었다. 다수의 언덕 등 복잡한 지형에서는 팔랑스의 장점을 살리기 어려웠다. 다루기 힘들고 느린 속도의 팔랑스보다는 좀 더 유동적인 전투 방식이 필요했다.



초창기 군단 (기원전 4세기 경)
The Early Legion (4th century BC)
팔랑스를 포기한 로마군은 그들의 천재적인 적응성을 보여주었다.
에트루리아에 대항하기 위해 그들만의 특이한 군대를 형성했으며, 라틴어를 쓰는 다른 도시 국가와 연합을 이룬다.
이제 병사들은 삼렬로 배치되었다. 첫 열列에는 하스타티(Hastati), 둘째 열列에는 프린케프스(Principes), 마지막 열列에는 트리아리(Triarii), 로라리(Rorarii), 아센시(Accensi)가 섰다.
전열에 선 하스타티는 이전 편재였던 팔랑스의 두 번째 계급의 창병과 상당히 유사했다. 하스타티는 젊은 전사들로, 갑옷을 입고 스큐툼(Scutum)이라는 장방형 방패를 들었다. 이 방패는 이후 로마의 역사 내내 로마 군단의 장비가 된다. 그들은 검과 투창을 들었다. 하지만 하스타티는 경무장한 척후병(Skirmisher;로마식으로는 레베스leves)과는 분명히 구분되었다. 경무장 레베스는 하스타티에 배속되었는데, 창과 별도의 투창을 소지했다.
나이 든 1계급 병사들은 이제 두 개의 단위 부대를 구성했다. 둘 째 줄의 프린케프스와 세 번째 줄의 트리아리가 그들이다. 이 둘은 모두 중장보병이었다.
프린케프스는 경험 많고 건장한 선발된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보통 하스타티보다 더 좋은 장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실질적으로 프린케프스는 초기 로마군단에서 가장 잘 장비된 병사로 주력을 담당했다.
트리아리는 고참병이었는데, 여전히 옛 그리스식 팔랑스의 중장 호플라이트처럼 보였고 또 그러한 기능을 했다.
새로운 병종, 로라리와 아센시 (그리고 레베스(leves))는 옛 팔랑스 시스템에서 3, 4, 5 계급(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열列)이 재편된 것이다. 로라리는 잡고 경험 없는 사람들이고, 아센시는 가장 의지할 수 없는 전사들이었다.
전열의 하스타티와 프린케프스는 60명으로 이루어진 중대로 이루어졌는데 20명의 척후병이 각 하스타티 중대마다 포함되었다.
후방의 트리아리, 로아리, 아센시는 세 개 중대 규모인 180명으로 구성된 오르도(Ordo)라는 부대로 편제되었다.
역사가 리비우스에 의하면 본대인 프린케프스와 하스타티는 정원이 15개 중대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군단의 전체 구성은 다음과 같다고 추측할 수 있다.

15개 그룹의 척후병(leves) ;하스타리에 포함됨 :: 300
15개 하스타티 중대 :: 900
15개 프린케프스 중대 :: 900
45개 중대(=15개 오르도)의 트리아리, 로라리, 아센시 :: 2700
총 수 (기병 제외) :: 4800

그 전술은 다음과 같다;
하스타티가 적과 교전한다. 만일 전투가 지나치게 치열해진다면 이들은 중장보병인 프린케프스의 전열 뒤쪽으로 후퇴하고 반격을 위해 재정비한다.
그 후 프린케프스조차 물러서게 된다면, 그 뒤를 받치고 있던 트리아리가 창을 들고 전진함으로서 적들을 저지한다. 그 동안 프린케프스는 재정비한다. 트리아리는 일반적으로 하스타티와 프린케프스가 패퇴한 후의 최후의 방어선으로, 전투가 패배할 지경에 처했을 때 철수할 준비를 하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래서 로마 속담 ‘트리아리까지 왔다’라는 말은 절망적인 상황을 의미했다.

전통적인 로마인의 관점에 의하면, 유명한 플루비우스 카밀루스가 군단의 장비에 몇 가지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청동제 투구는 야만인들의 장검에 대해 불충분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됨에 따라, 검이 비껴가도록 표면에 윤을 낸 철제 투구를 발안한 것이 대표적이다. (청동제 투구는 이후에 다시 채용된다.) 마찬가지로, 로마인에겐 커다란 장방형 방패인 스큐텀을 받아들인 것도 카밀루스가 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사실, 투구와 장방형 스큐텀 어느 쪽이든 카밀루스 혼자서 채용한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기원전 3세기 초반, 로마 군단은 에피루스의 피로스 피로스(Pyrrhos;B.C. 319~B.C. 272) : 그리스 서쪽 에피루스의 왕. 알렉산드로스의 조카라고도 한다. B.C. 282~B.C 272년 동안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침공했다. 로마에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들의 피해도 심각했기 때문에 결국 철수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애써 이루었다 놓친 것을 ‘피로스의 승리’라고도 한다.
왕이 이끄는 잘 훈련된 마케도니아 식 팔랑스와 전투 코끼리의 군단에 맞서 싸움으로서 강력한 군대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피로스는 알렉산더의 전설을 이어가는 재기 넘치는 전략가였으며 그의 군대는 강력했다. 로마 군단은 피로스에게 격파 당했으나,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 이는 앞으로 이루어질 위대한 전적에 큰 도움이 된다.
같은 세기에 있었던 카르타고와의 첫 번째 전쟁은 로마 군단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연마시켰고, 세기말에 이르러 로마군은 한 때 그들의 수도까지 약탈했었던 갈리아의 야만인을 맞이하여 그들을 격퇴했다.
기원전 2세기의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우스는 포물라 토가토룸(Formula Togatorum)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로마는 지중해에서 가장 뛰어나고 거대한 군대를 가지게 되었다. 6개의 군단은 32,000명의 보병과 1,600명의 기병으로 이루어졌으며, 30,000명의 동맹국 보병과 2,000명의 동맹국 기병이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단지 상비군일 뿐이었다. 만일 로마가 이탈리아 동맹들에게 군대를 요청한다면 340,000의 보병과 37,000의 기병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스키피오의 군단 개혁
Scipio's Reforms of the Army
군대의 유지와 전략/전술에 뛰어난 공헌을 했고, 그로 인하여 로마의 생존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Publius Cornelius Scipio)였다.
그는 트레비아와 칸나에에서의 군사적 실패를 교훈삼아 로마군의 전술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겨우 25세의 나이에 그는 스페인의 군권을 장악했고 다른 누구보다 혹독하게 그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로마 군단은 당대 최고의 군대였다. 하지만 한니발이 전장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전술적 움직임을 행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훈련이 필요했다.
스키피오는 티시노강 전투와 트레비아 전투 등에서 기병을 사용한 우회기동 전술을 그대로 본받아왔다. 그 이전까지의 로마 군대가 거의 철저한 보병 중심의 군대였으며 이후의 로마 군대 역시 기병 전력의 상당수를 보조부대(외인부대)에게 의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키피오가 옳은 일을 했다는 것은 자마에서 한니발을 상대로 한 승리에서 확실해진다.
스키피오의 개혁은 군단의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다. 이제 로마는 군단병들의 우세함 만에 의지하던 전투방식을 떠나서, 전장에서 유동적인 전술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로 로마 병사는 단순히 줄을 서서 적을 향해 전진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의 적에게 효과적인 전략을 찾아내는 기재 넘치는 지도자의 지휘를 받게 된다.
이제 로마는 최고의 병사뿐만 아니라 최고의 장군까지 손에 넣은 셈이다.



로마 군단 (기원전 2세기)
The Roman Legion (2nd century BC)
BC 2세기에 군단에 약간의 재편이 있었다.
하스타티는 여전히 전열에 섰는데, 청동제 흉갑(breastplate)을 착용하거나 좀 더 부유층의 경우 사슬갑옷(chain mail coat;lorica hamata)을 입었다. 이들은 이제 보라색이나 검정색 깃털 장식을 투구 꼭대기에 18인치 정도 붙였는데, 이는 자신들의 키를 커보이게 해서 적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필럼이라는 잘 만들어진 강철촉을 가진 나무창을 장비했다. 창대는 이제 더욱 짧은 것으로 변화하여 길이가 겨우 4피트밖엔 되지 않은 반면, 머리부분은 길이가 9인치나 되었으며, 무게중심이 잘 잡혀 있을 뿐만 아니라 충격을 받으면 구부러지기 때문에 적이 다시 이편으로 던질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군단의 다른 계급들은 그들이 짧은 필럼 대신에 하스타(hasta)라는 장창을 장비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로라리(rorarii)와 아센시(accensii)는 이제 베리테스(velites)로 통합된다. 베리테스는 그들 자신의 전열을 형성하지 않고 모든 중대에 동등하게 분할되어서 그들의 숫자를 더 많게 보이도록 했다. 그들은 기동성 있는 부대로서, 전투가 시작되면 부대의 전열에 출현하여 그들의 투창을 적에게 던지고 하스타티와 프린케프스 사이로 섞여들었다.

군단은 이제 10개 중대로 편성된다. 그 규모는 확실하지 않지만, 하스타티 중대가 12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3개 계급(하스타티, 프린케프스, 트리아리)은 세분화 해 보자면 10개 중대로 나눌 수 있다. 1개 중대는 16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스타티는 중대당 120명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40명의 베라이트를 포함하면 160명으로 구성된 1개 중대가 형성된다.)
병사들은 이제 로마에는 ‘스페인 칼’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칼 ‘글라디우스(Gladius)’를 사용한다. 제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이베리아 반도에 침공할 때 로마군이 전리품으로 가져온 칼이다. 다른 말로는 ‘이베리아 식 글라디우스’ 혹은 ‘히스파니아 식 글라디우스’라고도 한다.
철제 투구는 다시 청동제 투구에게 자리를 돌려주는데, 이 청동제 투구는 이전보다 더 두꺼워졌다.
각 중대는 두 명의 백인장(켄투리오;centurio)에 의하여 통솔되며, 1번 백인장이 오른쪽을 2번 백인장이 왼쪽을 장악했다.
300명의 기병대는 10개 분대(투르마에;Turmae)로 나누어졌는데, 각각은 3명의 십인장(데쿠리오네스;decuriones)에 의해 통솔되었다.

동방이 로마의 지배 하에 들어옴으로서 필연적으로 시민의 증가가 이루어졌고, 상업적 ․ 군사적 양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로마는 더 이상 건장한 시민들만으로 상비군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동맹군의 활동이 증가하게 되었다. 스키피오 아에밀리아누스(Scipio Aemilianus)는 기원전 133년 이베리안 외인부대(Iberian auxiliaries)를 그의 군대의 일부로 간주했다. 동방에서 3차 마케도니안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이들 역시 페르세우스의 좌익을 격파하여 로마군단으로 하여금 중앙돌파와 각개격파의 기회를 제공해준 동맹군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라쿠스 형제는 군사적 쇠퇴를 막기 위하여 군단병에게 토지를 분배해주고, 이탈리아의 동맹들에게 투표권을 나눠주는 등을 계획했으나, 두 형제 모두 암살당함으로서 실패했다. 그렇게 되어 시대는 마리우스와 술라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마리우스의 군대 개혁
Marius' reforms of the Army
로마 군대의 주요한 재편의 일부는 마리우스의 업적으로 돌려지곤 한다. 그의 최후의 개혁이라 하더라도 그 시작은 매우 일찍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로마와 로마군이 가진 특징 때문이었다. 즉, 로마군대는 어떠한 급박한 변화에 저항하고 점차적이고 점진적인 변화 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개혁 중에는 국가가 군단병의 장비와 의복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과 17세 이하는 병역의 의무가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 시기에 군대의 훈련도는 날이 갈수록 떨어져가고 있었다. 마리우스는 가난하지만 건강하고 자진해서 싸울만한 사람들에게 군대를 개방했다. 이러한 무산층 지원자들은 기존의 6년 병역보다 더 긴 기간 복무하기로 한다. 이런 것들을 통해 병사들은 전문가이자 경력자로서 지위를 습득해가며, 결과적으로 마리우스는 최초의 직업군인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마리우스의 새로운 군대는 다수의 야만인들의 침략으로부터 이탈리아를 지켜내고, 프로방스에서 게르만을 격파하는 등의 업적을 세운다.
마리우스는 또한 필럼의 제작 과정을 변경하여 충격을 받으면 부서지도록 만듦으로서 적이 이 창을 되던질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필럼은 이미 충격을 받으면 휘어지도록 고안되어 있었지만, 제작과 보관 등에 문제가 많았었다.
마리우스는 그의 군단병이 제대하게 되었을 때, 모든 군단병들에게 토지를 배분해주었다.
이제 군단병들은 모두 같은 장비(제식 장비)를 갖추고 전투에 임하게 되었으며, 전술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러한 개혁들은 대단히 유용했기 때문에, 마리우스 시대 이후부터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로마 군단은 거의 변화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마리우스의 개혁은 부작용도 있었다. 그 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처럼 군대를 장악할 만큼 유능한 지도자는 그 군대의 창끝을 로마를 향해 겨눌 수도 있었던 것이다. 병사들의 충성심이 로마 그 자체를 향하기보다는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지도자에게 향해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 문제점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군대 - ‘레기온’
The Army of Augustus - the 'classic' legion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보편화된 이 군대야말로 흔히 ‘레기온’이라고 칭해지는 바로 그 이미지의 근원이다. 그림이나 영화에서 보는 로마 군대의 모습인 것이다.

1세기 중반 경에 로리카 세그먼타타에(Lorica Segmantatae)가 등장한다. 이 갑옷은 흔히 로마 군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유명한 판금 갑옷이다. 또한, 지휘관이나 기병들에게는 비늘 모양의 금속을 이어 맞춘 스케일 메일(Scale Mail)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한다. (스케일 메일은 후에 ‘프라에토리움 가드’라 불리는 근위부대가 사용하기도 했다.)
투구의 장식깃은 지휘관이나 기병의 전유물이 되어, 일반 병사들의 투구에서는 없어졌다. 또한 병사들의 검(글라디우스)은 로마 군단의 고유한 모양으로 통일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치하에서 군대는 유능하고 빈틈없는 전문가들에 의하여 지도되고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가 만들어낸 평화시대의 발판위에 서서 그것을 유지해 나가야 했다. 그래서 그는 상비군을 조직했다. 군단은 총 28개로 구성되었고, 그 각각은 대략 6천 명 정도였다. 추가적으로 비슷한 규모의 보조부대(auxiliary)가 있었다. 아우구스는 또한, 군인들의 복역기간을 6년에서 12년으로 조절했다.
아퀼라(Aquila;독수리)라고 불린 군단의 깃대는 부대의 명예의 상징이었다. 깃대를 운반하는 깃발병(Aquilifer)은 백부장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숭고하고 명예롭게 생각되는 지위였기 때문에, 그는 병사들의 급료 상자를 관리하는 일도 했다.
군단(Legion)은 행군할 때에도 매 주 완벽한 수단으로 관리되었다. 매일 밤 캠프를 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은 땅을 파기 위한 도구와 방책(Palisade)를 만들 말뚝 두 개씩을 가지고 다녔다.
여기다가 무기와 갑옷을 운반해야 했고, 그와는 별개로 군단병은 요리용 솥, 약간의 식량, 옷가지와 개인 사물들을 운반해야 했다. 이렇게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고 다녔기 때문에 군단병은 ‘마리우스의 당나귀(Marius' Mules)’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군단의 임무를 위하여 때로는 다리를 놓거나 공성병기를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위한 전문가들 역시 군대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정규 의무에서 면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뮤네스(immunes)라고 알려져 있는데, 의료부원, 측량사, 목수, 수의사, 사냥꾼, 대장장이, 그리고 예언자와 성직자 등이었다.
군단이 행군 중일 때, 측량사의 최선의 임무는 기병 분견대와 함께 군대를 앞서 가서 숙영지를 찾는 것이었다.
로마 제국의 국경을 따라 건설된 요새 주위에는 이러한 전문기술자들 이외의 비전투원도 있었다. 완전한 직업군인으로서의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 서기관과 감독관 등이 있었다. 이들은 군사들에게 급료를 지급하기도 하고, 관세를 거두거나 보급물자를 관리하기도 했다. 또한, 헌병(憲兵)들도 존재했다.

군단은 이제 10개 보병대대(cohort)로 나눠지며, 이들 각각은 80명으로 구성된 여섯 개 백인대로 나눠진다. 이러한 편제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개 십인대(Contubernium) - 8명
10개 십인대=1개 백인대(Century) - 80명
* 2개 백인대=1개 중대 - 160명
* 6개 백인대=1개 대대 - 480명
* 10개 대대 + 120명의 기마병=1개 군단 - 5240명 1개 군단은 9개의 일반 대대와 1개의 “1번 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1번 대대는 5개 백인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여기에 포함된 백인대들은 그 규모 역시 일반 백인대의 2배인 160명이었다. 그래서 총원은 5240명이 된다.


비전투원들을 군단에 포함하면, 군단의 숫자는 거의 6천 명 정도가 된다.
120명의 기병들은 각 군단에서 정찰이나 파발로 사용했다. 그들은 그들 고유의 기병대대(squadron)로 편제되었다.

5번 대대
4번 대대
3번 대대
2번 대대
1번 대대
10번 대대
9번 대대
8번 대대
7번 대대
6번 대대
- 전투 대형
전열
후열

1번 대대는 어떤 군단이든 최정예 부대였다. 그리고 6번 대대 역시 “젊은 자들 중 최고”로 구성되어 있었다. 8번 대대는 “엄선된 부대”라고 불렸고 10번 대대는 “좋은 부대”였다.
약한 대대는 2번, 4번, 7번, 9번 대대였다. 특히 7번과 9번 대대는 미숙한 신병들로 이루어지곤 했다.



















로마 군단의 장비
The Legion's Equipment
로마 군단의 유명한 장비들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카시스(Cassis) : 철이나 청동으로 만든 둥근 투구이다. 앞쪽에는 햇빛 가리개가 달려 있었고, 뺨 가리개가 붙어 있었다. 장교의 것은 병사의 것보다 더 잘 장식되어 있었으며, 제정 시기에는 장교나 기병만이 투구에 깃을 달았다.

로리카 세그먼타타에(Lorica Segmantatae) : 로마군 특유의 강철 띠를 엮은 모습의 판금 갑옷이다. 제조와 보수에 사슬 갑옷보다 많은 비용이 들었다.

로리카 하마타(Lorica Hamata) : 쇠사슬 갑옷을 의미한다. 본래 게르만 족의 갑옷이었으나 로마군은 그들 특유의 유연한 사고로 이 갑옷을 받아들였다. 로마군의 사슬 갑옷은 속칭 ‘그리스 타입’이라고 하는 형태로 발전하는데, 이 그리스 타입은 가죽 밑감에 철제 고리를 연결하여 붙인 것으로 별도의 어깨받이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실질적으로 로리카 세그먼타타에보다 많이 쓰였다.

스큐텀(Scutum) : 길고 커다란 장방형 방패이다. 로마의 초기부터 사용되었던 이 방패는 그 후 비잔틴 군대에까지 계속 유지된다. 세 장의 목재판을 겹쳐 붙이고, 표면에 염색된 천이나 가죽을 붙인 뒤 금속으로 테두리와 가운데 부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며, 제정기에는 군단마다 특유의 문양을 그려 넣었다.

글라디우스(Gladius) : 짧은 찌르기용 칼이다. 로마의 전략은 대부분 근접전을 핵심으로 했으며, 특히 그들이 자주 마주친 야만인들의 장검의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는 전술을 많이 사용했다. 장검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넓은 거리가 필요했고 각 병사 사이사이가 벌어져야 했다. 하지만 짧은 검으로 찌르는 데는 밀집대형을 유지하고도 충분했다.
로마는 초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칼을 사용했지만, 카르타고와의 전쟁 이후에는 스키피오가 도입한 이베리아 식 글 라디우스를 주로 사용했고, 후대에는 길이 약 50cm, 폭 약 10cm의 로마 식이라고 할만한 제식 장비를 만들어냈다. 이 단검은 오른쪽 허리에 찼기 때문에 방패를 앞으로 든 상태에서도 뽑을 수 있었다.

필럼(Pilum) : 로마 특유의 던지는 창이다. 이것은 로마 군대의 상징과도 같은 장비인데, 나무대의 길이가 짧고, 창날의 목 부분이 대단히 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무기는 던졌을 때 상대방에게 명중하거나 혹은 빗나갔을 경우 그 충격으로 목 부분이 휘어지거나 부러지게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적이 이 무기를 회수하여 다시 던질 수 없었다.

이 외에 다키아 원정 당시 한정적으로 사용되던 팔 보호대와 다리 보호대가 있다. 로마군은 현지에서 언제든 필요에 따라 장비를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팔 보호대와 다리 보호대는 다키아 인의 팔크스(Falx)가 스큐텀을 찢고 팔을 절단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자 팔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다리 보호대는 로마의 갑옷이 어깨와 몸통만을 보호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미스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3.12.14 아... Roman-Empire.net .....의 자료였군요. 몰랐습니다. ;; (진짜로) 제보 감사드립니다. (오호호호) 어디선가 쫙 긁어 TEXT 파일로 저장해놓고 정작 사이트를 까먹어서 고생했지 뭐에요.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