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삼국시대(중국)은 징병제가 아니다.

작성자견초|작성시간04.02.05|조회수641 목록 댓글 2
삼국의 병역제도 약론.

삼국시대의 병제를 학자들은 병호제 또는 세병제라고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나라의 군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한은 우리나라처럼 적령기의 남자는 모두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만 했는데, 대략 2년 동안 복무 했으며, 지금처럼 병종도 나누어져 있었습니다.[騎士(기병), 材官(보병), 樓船(수군)] 이것은 일반적인 것이고, 상황에 따라 둔전병이나 이민족 기병을 고용하는 등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거연에서 한나라시대의 죽간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는데, 병사들의 신상자료나 문안편지등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후한 초기에 광무제는 전한의 징병제를 폐지하고 중앙군만 모병제를 실시하게 됩니다. 지방에도 상비군은 두지 않고 전시에만 전국적으로 모병제를 실시하여 부대를 모집햇습니다. 이렇게 바꾼 이유는 그 자신이 동란을 직접 경험하면서,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이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기에 이르러서는 왕권이 약해지자 호족들은 스스로 사병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전한처럼 상비군이 없기 때문에 지방에는 치안이 약화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호족들의 사병화는 곧 삼국의 병호제(세병제)로 발전하게 됩니다. 즉 이것은 민적과 분리되어 병적이 형성된 것이고, 대대로 세습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병호(병사들의 호적인 병호를 의미)제 세병(병역이 세습되는 것을 의미)제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戶 28만 男女口 94만 帶甲將士 102,000 吏 4만인 ---《蜀記(三國志․後主傳)》
戶 523,000 吏 32,000 兵 230,000 男女口 230만 ---《晉陽秋(三國志․三嗣主傳)》

위의 사료는 각각 촉과 오가 망할 당시의 호적을 기록한 사료인데, 이것을 보면 民籍, 兵籍, 吏籍이 구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吏籍의 분리도 주목되는데, 남북조의 귀족제 사회의 단초도 이미 삼국시대에 보이는 것이지요...

아 그리고 총인구를 계산할 때는 民籍, 兵籍, 吏籍을 모두 더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촉한은 기록에 보이는 것은 모두 108만 2천명이 되는 것이지요... 대부분 글을 쓴 것을 보면 口만 생각하더군요...

/ 이건 퍼온글로 '소하'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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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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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파란의페기^^ | 작성시간 04.02.05 그러면 그 세병제하에서는.. 직업군인들이 대를 이어서 내려온다는 건가요? 둔전병과의 차이는 뭐지요?
  • 작성자견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2.07 세병제는 병제고 둔전병은 토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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