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진 전쟁사] 한니발 전쟁 10 - 스페인 전역과 일리파 전투 IV

작성자Claudius|작성시간04.05.08|조회수185 목록 댓글 0

 

 3. 일리파 전투
 
 카르타고는 초조해졌는지 공세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마고네는 발레아레스 섬으로 병사들을 모으러 떠났고 하스드루발은 스키피오의 후방을 노리고 있었으며 기스코의 아들 하스드루발과 카르타고 본국의 장수 한노가 거느린 병사들이 정면에서 스키피오를 노렸다. 스키피오는 자신은 하스드루발을 감시하면서 부장 실라누스에게 1만 명의 보병과 5백 명의 기병을 보내 적군을 패퇴시켰다.
 

 

 카르타고군의 사령관 마고네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다. 그는 기스코(혹은 시스코네-스펠링은 같지만 발음만 다른 듯.)의 아들 하스드루발과 함께 대군을 조직했다. 7만 명의 스페인과 아프리카 보병과 4천 명의 기병대, 32마리의 코끼리로 조직된 군대였다. 그들은 스페인 남부의 일리파로 진격했다. 스키피오도 적의 대군을 맞아 4만 5천의 보병과 3천 명의 기병대를 거느리고 카데스에 이르는 적의 퇴로를 차단하는 형태로 적군에게 다가섰다. 초전에서 스키피오는 적군 기병대가 쳐들어오자 매복작전을 사용하여 적의 기병대에게 통렬한 타격을 안겨주었으나 적의 추가 병력이 파견되자 전투는 팽팽하게 전개되었다. 로마 군단병이 반격을 가하자 카르타고군도 퇴각했다. 전초전에서 로마군이 한 방 먹인 셈이다.
 

 

 3. 일리파 전투
 
 카르타고는 초조해졌는지 공세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마고네는 발레아레스 섬으로 병사들을 모으러 떠났고 하스드루발은 스키피오의 후방을 노리고 있었으며 기스코의 아들 하스드루발과 카르타고 본국의 장수 한노가 거느린 병사들이 정면에서 스키피오를 노렸다. 스키피오는 자신은 하스드루발을 감시하면서 부장 실라누스에게 1만 명의 보병과 5백 명의 기병을 보내 적군을 패퇴시켰다.
 

 카르타고군의 사령관 마고네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다. 그는 기스코(혹은 시스코네-스펠링은 같지만 발음만 다른 듯.)의 아들 하스드루발과 함께 대군을 조직했다. 7만 명의 스페인과 아프리카 보병과 4천 명의 기병대, 32마리의 코끼리로 조직된 군대였다. 그들은 스페인 남부의 일리파로 진격했다. 스키피오도 적의 대군을 맞아 4만 5천의 보병과 3천 명의 기병대를 거느리고 카데스에 이르는 적의 퇴로를 차단하는 형태로 적군에게 다가섰다. 초전에서 스키피오는 적군 기병대가 쳐들어오자 매복작전을 사용하여 적의 기병대에게 통렬한 타격을 안겨주었으나 적의 추가 병력이 파견되자 전투는 팽팽하게 전개되었다. 로마 군단병이 반격을 가하자 카르타고군도 퇴각했다. 전초전에서 로마군이 한 방 먹인 셈이다.
 

 3. 일리파 전투
 
 카르타고는 초조해졌는지 공세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마고네는 발레아레스 섬으로 병사들을 모으러 떠났고 하스드루발은 스키피오의 후방을 노리고 있었으며 기스코의 아들 하스드루발과 카르타고 본국의 장수 한노가 거느린 병사들이 정면에서 스키피오를 노렸다. 스키피오는 자신은 하스드루발을 감시하면서 부장 실라누스에게 1만 명의 보병과 5백 명의 기병을 보내 적군을 패퇴시켰다.
 

 카르타고군의 사령관 마고네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다. 그는 기스코(혹은 시스코네-스펠링은 같지만 발음만 다른 듯.)의 아들 하스드루발과 함께 대군을 조직했다. 7만 명의 스페인과 아프리카 보병과 4천 명의 기병대, 32마리의 코끼리로 조직된 군대였다. 그들은 스페인 남부의 일리파로 진격했다. 스키피오도 적의 대군을 맞아 4만 5천의 보병과 3천 명의 기병대를 거느리고 카데스에 이르는 적의 퇴로를 차단하는 형태로 적군에게 다가섰다. 초전에서 스키피오는 적군 기병대가 쳐들어오자 매복작전을 사용하여 적의 기병대에게 통렬한 타격을 안겨주었으나 적의 추가 병력이 파견되자 전투는 팽팽하게 전개되었다. 로마 군단병이 반격을 가하자 카르타고군도 퇴각했다. 전초전에서 로마군이 한 방 먹인 셈이다.
 

 이후 양군은 언덕과 언덕 사이의 평지에서 대치했다(옛날 전투에서는 양군이 격돌하면 바로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대치 상태가 지속되다가 때가 무르익으면 전투를 벌였다.). 매일 스키피오는 로마 군대를 카르타고 군보다 늦게 내보냈는데 이에 카르타고군도 로마 군의 움직임에 따라 점점 늦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마군의 이러한 행동은 카르타고 군에게 로마군은 늦게 나온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스키피오의 계략이었다. 어느 날 저녁 스키피오는 휘하 병사들에게 일출 전까지 전투 준비와 식사를 완료하라고 일렀다.


 다음 날 로마군이 아주 이른 시각에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벌판에 진을 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카르타고군은 허둥지둥 달려 나와 진을 쳤다. 스키피오는 과감한 수를 두었다. 당초 로마 군은 정예부대인 로마 중보병들을 중앙에 배치하고 양익에 상대적 약체인 스페인 보병을, 그 뒤에 기병대를 배치했다. 카르타고군도 마찬가지로 정예 아프리카 보병대를 중앙에 배치하고 양익에 코끼리와 스페인 보병대, 기병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은 스키피오가 자기 편 진영에 중대한 변화를 주었다. 바로 스페인 보병대를 중앙에 배치하고 주력 부대인 로마 중보병들을 양쪽 날개에 배치했다. 그리고 그 날개 뒤편에 기병대와 경보병대를 배치했다. 카르타고군은 갑작스런 이런 상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전투는 양군 경보병 간의 격돌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이들의 전투는 승패에 향방을 정하지 못했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로마군은 전혀 특이한 방향으로 전투를 이끌어나갔다. 양군이 서서히 전진하여 로마군과 카르타고군의 거리가 800야드 가량 된 시점에서 로마군의 양익에 배치된 중보병대와 기병대, 경보병대는 종대로 바꾸어 적의 양 측면을 향해 돌입한 것이다. 그와 더불어 중앙의 스페인 보병들은 느릿느릿 움직이며 적군 중앙의 아프리카, 리비아 보병대와의 충돌을 가능한 한 회피하고 있었다. 로마의 중보병대는 적 양익의 약체 스페인 보병대를 덮쳤다. 이어 기병대와 경보병대가 스페인 보병대 뒤편에 위치한 기병대를 공격한다. 카르타고의 양익은 어이없이 무너졌고 설상가상으로 코끼리부대는 통제를 벗어나 중앙의 아프리카 보병들에게 달려들었다. 한편 아프리카 보병대는 양익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방의 로마 측 스페인 보병들의 움직임 때문에 섣불리 지원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카르타고의 양익이 붕괴되었고 살아남은 아프리카의 보병대는 마침 내려준 폭우 덕분에 진지로 후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투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카데스로의 퇴로가 봉쇄된 까닭에 그들은 대서양을 향해 퇴각하기 시작했고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로마군은 이들을 뒤쫓아 큰 타격을 입혔고 결국 7만 중에 대부분이 죽거나 사로잡히고 6천 명의 빈약한 무장을 갖춘 병력만이 근처의 험준한 언덕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하스드루발과 마고네는 배를 타고 카데스로 달아났고 이로써 스페인의 카르타고 세력은 거의 궤멸되었다.


 이후 마고네는 카데스에서 간헐적인 반격을 펼쳤으나 도리어 큰 피해를 입고 결국에는 발레아레스 제도로 달아나게 된다. 스키피오는 이후로도 스페인 여러 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상당 기간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그들을 굴복시켰으며 그의 병을 틈타 일어난 수크로의 로마 군단병들의 폭동사건을 진압하였다. 이런 일련의 정비가 모두 끝난 이후 그는 집정관 선거에 나서기 위해 본국으로 귀환한다.

 이후 양군은 언덕과 언덕 사이의 평지에서 대치했다(옛날 전투에서는 양군이 격돌하면 바로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대치 상태가 지속되다가 때가 무르익으면 전투를 벌였다.). 매일 스키피오는 로마 군대를 카르타고 군보다 늦게 내보냈는데 이에 카르타고군도 로마 군의 움직임에 따라 점점 늦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마군의 이러한 행동은 카르타고 군에게 로마군은 늦게 나온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스키피오의 계략이었다. 어느 날 저녁 스키피오는 휘하 병사들에게 일출 전까지 전투 준비와 식사를 완료하라고 일렀다.


 다음 날 로마군이 아주 이른 시각에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벌판에 진을 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카르타고군은 허둥지둥 달려 나와 진을 쳤다. 스키피오는 과감한 수를 두었다. 당초 로마 군은 정예부대인 로마 중보병들을 중앙에 배치하고 양익에 상대적 약체인 스페인 보병을, 그 뒤에 기병대를 배치했다. 카르타고군도 마찬가지로 정예 아프리카 보병대를 중앙에 배치하고 양익에 코끼리와 스페인 보병대, 기병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은 스키피오가 자기 편 진영에 중대한 변화를 주었다. 바로 스페인 보병대를 중앙에 배치하고 주력 부대인 로마 중보병들을 양쪽 날개에 배치했다. 그리고 그 날개 뒤편에 기병대와 경보병대를 배치했다. 카르타고군은 갑작스런 이런 상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전투는 양군 경보병 간의 격돌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이들의 전투는 승패에 향방을 정하지 못했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로마군은 전혀 특이한 방향으로 전투를 이끌어나갔다. 양군이 서서히 전진하여 로마군과 카르타고군의 거리가 800야드 가량 된 시점에서 로마군의 양익에 배치된 중보병대와 기병대, 경보병대는 종대로 바꾸어 적의 양 측면을 향해 돌입한 것이다. 그와 더불어 중앙의 스페인 보병들은 느릿느릿 움직이며 적군 중앙의 아프리카, 리비아 보병대와의 충돌을 가능한 한 회피하고 있었다. 로마의 중보병대는 적 양익의 약체 스페인 보병대를 덮쳤다. 이어 기병대와 경보병대가 스페인 보병대 뒤편에 위치한 기병대를 공격한다. 카르타고의 양익은 어이없이 무너졌고 설상가상으로 코끼리부대는 통제를 벗어나 중앙의 아프리카 보병들에게 달려들었다. 한편 아프리카 보병대는 양익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방의 로마 측 스페인 보병들의 움직임 때문에 섣불리 지원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카르타고의 양익이 붕괴되었고 살아남은 아프리카의 보병대는 마침 내려준 폭우 덕분에 진지로 후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투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카데스로의 퇴로가 봉쇄된 까닭에 그들은 대서양을 향해 퇴각하기 시작했고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로마군은 이들을 뒤쫓아 큰 타격을 입혔고 결국 7만 중에 대부분이 죽거나 사로잡히고 6천 명의 빈약한 무장을 갖춘 병력만이 근처의 험준한 언덕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하스드루발과 마고네는 배를 타고 카데스로 달아났고 이로써 스페인의 카르타고 세력은 거의 궤멸되었다.


 이후 마고네는 카데스에서 간헐적인 반격을 펼쳤으나 도리어 큰 피해를 입고 결국에는 발레아레스 제도로 달아나게 된다. 스키피오는 이후로도 스페인 여러 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상당 기간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그들을 굴복시켰으며 그의 병을 틈타 일어난 수크로의 로마 군단병들의 폭동사건을 진압하였다. 이런 일련의 정비가 모두 끝난 이후 그는 집정관 선거에 나서기 위해 본국으로 귀환한다.

 이후 양군은 언덕과 언덕 사이의 평지에서 대치했다(옛날 전투에서는 양군이 격돌하면 바로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대치 상태가 지속되다가 때가 무르익으면 전투를 벌였다.). 매일 스키피오는 로마 군대를 카르타고 군보다 늦게 내보냈는데 이에 카르타고군도 로마 군의 움직임에 따라 점점 늦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마군의 이러한 행동은 카르타고 군에게 로마군은 늦게 나온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스키피오의 계략이었다. 어느 날 저녁 스키피오는 휘하 병사들에게 일출 전까지 전투 준비와 식사를 완료하라고 일렀다.


 다음 날 로마군이 아주 이른 시각에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벌판에 진을 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카르타고군은 허둥지둥 달려 나와 진을 쳤다. 스키피오는 과감한 수를 두었다. 당초 로마 군은 정예부대인 로마 중보병들을 중앙에 배치하고 양익에 상대적 약체인 스페인 보병을, 그 뒤에 기병대를 배치했다. 카르타고군도 마찬가지로 정예 아프리카 보병대를 중앙에 배치하고 양익에 코끼리와 스페인 보병대, 기병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은 스키피오가 자기 편 진영에 중대한 변화를 주었다. 바로 스페인 보병대를 중앙에 배치하고 주력 부대인 로마 중보병들을 양쪽 날개에 배치했다. 그리고 그 날개 뒤편에 기병대와 경보병대를 배치했다. 카르타고군은 갑작스런 이런 상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전투는 양군 경보병 간의 격돌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이들의 전투는 승패에 향방을 정하지 못했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로마군은 전혀 특이한 방향으로 전투를 이끌어나갔다. 양군이 서서히 전진하여 로마군과 카르타고군의 거리가 800야드 가량 된 시점에서 로마군의 양익에 배치된 중보병대와 기병대, 경보병대는 종대로 바꾸어 적의 양 측면을 향해 돌입한 것이다. 그와 더불어 중앙의 스페인 보병들은 느릿느릿 움직이며 적군 중앙의 아프리카, 리비아 보병대와의 충돌을 가능한 한 회피하고 있었다. 로마의 중보병대는 적 양익의 약체 스페인 보병대를 덮쳤다. 이어 기병대와 경보병대가 스페인 보병대 뒤편에 위치한 기병대를 공격한다. 카르타고의 양익은 어이없이 무너졌고 설상가상으로 코끼리부대는 통제를 벗어나 중앙의 아프리카 보병들에게 달려들었다. 한편 아프리카 보병대는 양익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방의 로마 측 스페인 보병들의 움직임 때문에 섣불리 지원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카르타고의 양익이 붕괴되었고 살아남은 아프리카의 보병대는 마침 내려준 폭우 덕분에 진지로 후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투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카데스로의 퇴로가 봉쇄된 까닭에 그들은 대서양을 향해 퇴각하기 시작했고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로마군은 이들을 뒤쫓아 큰 타격을 입혔고 결국 7만 중에 대부분이 죽거나 사로잡히고 6천 명의 빈약한 무장을 갖춘 병력만이 근처의 험준한 언덕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하스드루발과 마고네는 배를 타고 카데스로 달아났고 이로써 스페인의 카르타고 세력은 거의 궤멸되었다.


 이후 마고네는 카데스에서 간헐적인 반격을 펼쳤으나 도리어 큰 피해를 입고 결국에는 발레아레스 제도로 달아나게 된다. 스키피오는 이후로도 스페인 여러 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상당 기간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그들을 굴복시켰으며 그의 병을 틈타 일어난 수크로의 로마 군단병들의 폭동사건을 진압하였다. 이런 일련의 정비가 모두 끝난 이후 그는 집정관 선거에 나서기 위해 본국으로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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