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위용을 잃고있지않는 콜로세움은 2000년전에 건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큰것이 외에도 인간이 할 수 있는 만행이 저질러진 곳으로 유명하다
콜로세움에서는 검투사끼리 죽음의 만행을 벌였고 검투사와 야수들이 싸우거나
죄수를 나무에 묶어두고 야수를 달려들게했다
콜로세움이 그런 목적으로 세워졌다는 것은 지하시설만 보아도 알수있다 원형 극장의
바닥에 나무 마루가 깔려있고 그위에 모래로 덮었다 미로와같이 복잡한 지하실에
검투사들이 머물은 방과 맹수들을 가둔 우리가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은 A.D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공사를 시작하여 8년후 티투스 황제때
완공되었다 콘크리트와 돌로 세워진 이 건물은 가로 세로가 각각 190M 155M에 이르르며
45,000며의 좌석과 5,000명이 서서 구경할수있었다
뜨거운 햇볕에 관중을 보호하기 위해 천막지붕을 설치했는데 지웁가운데 구멍이 뚫려
환기및 채광을 했다고 한다
콜로세움을 논하면
바로 검투사들끼리의 결투 동물끼리의 싸움 동물과 인간의 싸움 죄수를 동물이 잡아먹게한
애기가 먼저 생각난다 이는 부정할수없다 이것이 일어났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애기는 과장되거나 거짓말로 점철된것이다
이러한 의도적인 잔인한 묘사는 로마문화의 윤리적 퇴폐를 드러내기 위한 의도이다
우선 동물을 살해했다는 부터 커다란 과장이다
그 당시 등장한 동물은
악어 하마 기린 타조 사자 이리 코뿔소 등 지금도 사로잡기 어려운 동물이다
포획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잡기어려운 동물을 힘들게 잡아 곧바로 잡아 죽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오히려 콜로세움은 이러한 동물을 시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주안점이었다
즉 콜로세움에서 보여준것은 동물 서커스이다
이는 플라타르크가 동물 서커스가 역사로 기록할 정도이다
그는 이 동물들이 영특하다고 적었다
사람들이 동물위로 올라가 춤을 추거나 체조하고 동물이 뒷발로 일어거나 물속에서
곡예를 벌였다는 기록도있다
(곡예에 대한 예가 더있는데 귀찮아서 패스~)
소플리니우스는 마구에 길들여진 표범이 전차를 끈다거나 훈련된 코끼리가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코로 라틴어를 썼을때 기립박수를 쳤다고 기록하였다
동물들이 콜로세움에서 무차별로 학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희생될 동물들을 어떻게 확보했는가"이다
로마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중앙정부로부터 요구받은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킬리키아의 책임자를 지낸 키케로는 표범을 보내달라는 독촉에 항의했다
그의 항의는 사냥꾼들이 더이상 동물을 사로잡는데 투입할수없을정도로
박해받고있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일매일 동물을 살육했다면 몇백년간 그런한 경기가
지속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없는 것이다
물론 조련된 동물쇼가 매력을 잃는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보다 자극적인 경기가 일어났다
코끼라와 코뿔소의 싸움 곰과 물소가 싸우는 동물끼리의 경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경기는 특별한 축제에 일어났다
시간이 흘러 동물끼리의 싸움에도 시시하게 느껴지자 인간과 동물이 싸우는
경기가 인기를 끌었다는 기록도있다
이때 인간은 오로지 작은 칼하나만 가지고 싸웠다
근데 기록에 유의할점이 있는데
사람과 사자의 싸움에서 주로 이긴 것이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인간은 결투에 이길자신이 있기 때문에 나간것이라 판단된다
사실 콜로세움이라하면 검투사끼리의 싸움을 연상한다
흑인끼리나 난쟁이와 여자가 싸웠다는 기록도있다
악명높은 탕녀 클라우디우스의 황비 멧살리나가 황비가 되기전에 검투사였다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포로 노예 죄인 출신이 대부분인 검투사는 훈련소에서 양성되며 검투사를 양성하는
전문기관도 세워졌다
하지만 유의 할점은 모든 경기에서 "모 아니면 도" 식의 죽음의 결투가 일어나것은 아니다
상류층의 자제들이 구경만 한것이 아니라 직접 경기에 출전하기도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는 1000회이상 투기장에서 싸웠다
그중 355회는 아버지가 황위에 있을때 735회는 자신이 황제에 있을때였다
그는 검투사와 싸워 목숨을 잃지않았고 상대방의 검투사가 다죽은 것은 아니다
코모도스는 돈을 걸고 싸우는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결투때마다 검투사의 공동기금에서 50만 세스테르츠를 송금하도록 시켰다
콜로세움의 한낙서를 보면
한 검투사가 자신은 20번 결투에 참가해 6번 패배했다고 써있다
이 검투사는 6번이나 졌음에도 불구하고 죽음 당하지않은것이다
사람들은 검투사들에게 돈을 걸었고 유능한 검투사들은 많은 돈을 벌었다
물론 검투 자체가 위험한것은 사실이다
살상용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싸움이 위험한것은 당연하다
패배자가 항상 죽는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죽음당할수도있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살인이 시작되었다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않고 공격을 피할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더구나 공격은 정확하다 이것이 군중이 바라는 구경거리다
구경꾼은 적을 죽인 사람에게 갈채를 보낸다 그러나 그 역시 다음경기에서
다른 상대에게 죽을지도 모른다 " (세네카 : 인간의역사 인용)
또한 기독교인들을 원형경기장에서 야수의 밥이 되게했다는 것은 거짓이다
물론 로마의 방화범으로 수천명의 기독교인을 처형한것은 사실이지만
로마의 화재는 서기 64년에 일어났고 네로는 68년에 죽었으며
콜로세움은 서기 80년이다 (68년엔 콜로세움 자체가 없었다)
검투사의 기원을 살펴보면
원래 죽음의 결투는 로마인의 죽음의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움칠때 저명인사가 죽으면 노예간의 결투를 공개적으로 열었다
이것은 신에게 인간의 피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결투라는 형식을 빌어 패자는 신에게의 희생물로 승자는 살려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관심을 끌자 정치가들이 자신의 입지르 높히기 위해 죽음의 결투를
도입하기 시작한것이다
카이사르의 경우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하루에 640명의 검투사를 동원하였다
106년 트라이얀 황제는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117일간 10,000명의 검투사를 동원했는데
대부분 포로이며 1:1결투를 벌였다고 기록되어있다
로마에서 죽음의 결투가 도입된것은 로마인의 믿음과 관련이 있다
로마인들의 생각은 간단하다
패배한 자는 이미 승리자에게 목숨을 빼앗긴 것이다 그러므로 적을 살려준것은
생명을 연장시켜준 자비이므로 승리자는 패배자를 언제 어떻게 다루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것을 승리자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규모가 큰것이 외에도 인간이 할 수 있는 만행이 저질러진 곳으로 유명하다
콜로세움에서는 검투사끼리 죽음의 만행을 벌였고 검투사와 야수들이 싸우거나
죄수를 나무에 묶어두고 야수를 달려들게했다
콜로세움이 그런 목적으로 세워졌다는 것은 지하시설만 보아도 알수있다 원형 극장의
바닥에 나무 마루가 깔려있고 그위에 모래로 덮었다 미로와같이 복잡한 지하실에
검투사들이 머물은 방과 맹수들을 가둔 우리가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은 A.D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공사를 시작하여 8년후 티투스 황제때
완공되었다 콘크리트와 돌로 세워진 이 건물은 가로 세로가 각각 190M 155M에 이르르며
45,000며의 좌석과 5,000명이 서서 구경할수있었다
뜨거운 햇볕에 관중을 보호하기 위해 천막지붕을 설치했는데 지웁가운데 구멍이 뚫려
환기및 채광을 했다고 한다
콜로세움을 논하면
바로 검투사들끼리의 결투 동물끼리의 싸움 동물과 인간의 싸움 죄수를 동물이 잡아먹게한
애기가 먼저 생각난다 이는 부정할수없다 이것이 일어났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애기는 과장되거나 거짓말로 점철된것이다
이러한 의도적인 잔인한 묘사는 로마문화의 윤리적 퇴폐를 드러내기 위한 의도이다
우선 동물을 살해했다는 부터 커다란 과장이다
그 당시 등장한 동물은
악어 하마 기린 타조 사자 이리 코뿔소 등 지금도 사로잡기 어려운 동물이다
포획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잡기어려운 동물을 힘들게 잡아 곧바로 잡아 죽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오히려 콜로세움은 이러한 동물을 시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주안점이었다
즉 콜로세움에서 보여준것은 동물 서커스이다
이는 플라타르크가 동물 서커스가 역사로 기록할 정도이다
그는 이 동물들이 영특하다고 적었다
사람들이 동물위로 올라가 춤을 추거나 체조하고 동물이 뒷발로 일어거나 물속에서
곡예를 벌였다는 기록도있다
(곡예에 대한 예가 더있는데 귀찮아서 패스~)
소플리니우스는 마구에 길들여진 표범이 전차를 끈다거나 훈련된 코끼리가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코로 라틴어를 썼을때 기립박수를 쳤다고 기록하였다
동물들이 콜로세움에서 무차별로 학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희생될 동물들을 어떻게 확보했는가"이다
로마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중앙정부로부터 요구받은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킬리키아의 책임자를 지낸 키케로는 표범을 보내달라는 독촉에 항의했다
그의 항의는 사냥꾼들이 더이상 동물을 사로잡는데 투입할수없을정도로
박해받고있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일매일 동물을 살육했다면 몇백년간 그런한 경기가
지속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없는 것이다
물론 조련된 동물쇼가 매력을 잃는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보다 자극적인 경기가 일어났다
코끼라와 코뿔소의 싸움 곰과 물소가 싸우는 동물끼리의 경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경기는 특별한 축제에 일어났다
시간이 흘러 동물끼리의 싸움에도 시시하게 느껴지자 인간과 동물이 싸우는
경기가 인기를 끌었다는 기록도있다
이때 인간은 오로지 작은 칼하나만 가지고 싸웠다
근데 기록에 유의할점이 있는데
사람과 사자의 싸움에서 주로 이긴 것이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인간은 결투에 이길자신이 있기 때문에 나간것이라 판단된다
사실 콜로세움이라하면 검투사끼리의 싸움을 연상한다
흑인끼리나 난쟁이와 여자가 싸웠다는 기록도있다
악명높은 탕녀 클라우디우스의 황비 멧살리나가 황비가 되기전에 검투사였다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포로 노예 죄인 출신이 대부분인 검투사는 훈련소에서 양성되며 검투사를 양성하는
전문기관도 세워졌다
하지만 유의 할점은 모든 경기에서 "모 아니면 도" 식의 죽음의 결투가 일어나것은 아니다
상류층의 자제들이 구경만 한것이 아니라 직접 경기에 출전하기도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는 1000회이상 투기장에서 싸웠다
그중 355회는 아버지가 황위에 있을때 735회는 자신이 황제에 있을때였다
그는 검투사와 싸워 목숨을 잃지않았고 상대방의 검투사가 다죽은 것은 아니다
코모도스는 돈을 걸고 싸우는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결투때마다 검투사의 공동기금에서 50만 세스테르츠를 송금하도록 시켰다
콜로세움의 한낙서를 보면
한 검투사가 자신은 20번 결투에 참가해 6번 패배했다고 써있다
이 검투사는 6번이나 졌음에도 불구하고 죽음 당하지않은것이다
사람들은 검투사들에게 돈을 걸었고 유능한 검투사들은 많은 돈을 벌었다
물론 검투 자체가 위험한것은 사실이다
살상용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싸움이 위험한것은 당연하다
패배자가 항상 죽는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죽음당할수도있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살인이 시작되었다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않고 공격을 피할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더구나 공격은 정확하다 이것이 군중이 바라는 구경거리다
구경꾼은 적을 죽인 사람에게 갈채를 보낸다 그러나 그 역시 다음경기에서
다른 상대에게 죽을지도 모른다 " (세네카 : 인간의역사 인용)
또한 기독교인들을 원형경기장에서 야수의 밥이 되게했다는 것은 거짓이다
물론 로마의 방화범으로 수천명의 기독교인을 처형한것은 사실이지만
로마의 화재는 서기 64년에 일어났고 네로는 68년에 죽었으며
콜로세움은 서기 80년이다 (68년엔 콜로세움 자체가 없었다)
검투사의 기원을 살펴보면
원래 죽음의 결투는 로마인의 죽음의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움칠때 저명인사가 죽으면 노예간의 결투를 공개적으로 열었다
이것은 신에게 인간의 피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결투라는 형식을 빌어 패자는 신에게의 희생물로 승자는 살려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관심을 끌자 정치가들이 자신의 입지르 높히기 위해 죽음의 결투를
도입하기 시작한것이다
카이사르의 경우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하루에 640명의 검투사를 동원하였다
106년 트라이얀 황제는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117일간 10,000명의 검투사를 동원했는데
대부분 포로이며 1:1결투를 벌였다고 기록되어있다
로마에서 죽음의 결투가 도입된것은 로마인의 믿음과 관련이 있다
로마인들의 생각은 간단하다
패배한 자는 이미 승리자에게 목숨을 빼앗긴 것이다 그러므로 적을 살려준것은
생명을 연장시켜준 자비이므로 승리자는 패배자를 언제 어떻게 다루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것을 승리자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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