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전쟁사]]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를 침공할 때, 동원했던 대군의 규모

작성자타메를랑|작성시간11.04.12|조회수657 목록 댓글 2

  아래 글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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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를 공격하기 위해,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동원한 대군의 내역은 다음과 같다.   

 

 

  

 

  먼저 페르시아군을 살펴보면, 이들은 머리에는 ‘티아라’라는 펠트로 만든 유연한 모자를 쓰고 몸에는 형형색색의 소매 달린 속옷과 물고기 비늘 같이 생긴 갑옷을 입고 다리에는 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버드나무 가지로 엮은 가벼운 방패를 들고 있었고, 방패 밑에 화살통을 달았다. 짧은 창과 등(藤)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을 메고 오른쪽 허벅지를 따라 단검을 허리띠에 매달았다. 페르시아군의 지휘관은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의 장인인 명문 귀족, 오타네스였다.

 

 

 

 

  메디아인 부대도 페르시아인 부대와 똑같은 장비를 갖추었다. 이러한 장비의 양식은 본래 메디아인의 것인데, 페르시아인이 메디아를 정복하면서 자신들도 똑같이 받아들였다. 메디아인 부대의 지휘관은 페르시아 황실의 일족인 티그라네스였다.

 

  키시아족(페르시아의 수도인 수사가 있는 키시아 지방의 민족) 부대의 장비도 페르시아와 거의 비슷했다. 단, 그들은 펠트 모자 대신 두건을 머리에 둘렀다. 키시아족 부대의 지휘관은 오타네스의 아들인 아나페스였다.

 

  히르카니아인(카스피 해 동북부의 민족) 부대도 페르시아인과 똑같은 장비를 갖추었다. 그들의 지휘관은 바빌론의 총독이 된 메가파노스였다.

 

 

 

 

 

  아시리아인 부대는 머리에 청동제 투구를 썼고, 방패와 창과 이집트인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단검을 휴대했다. 아울러 쇠못이 박힌 곤봉과 아마포로 만든 갑옷을 갖추었다. 아시리아인 부대에는 바빌론인과 칼데아인도 포함되었다. 이 부대의 지휘관은 아르타카이에스의 아들인 오타스페스가 맡았다.

 

  박트리아인(오늘날의 아프간 지역)은 메디아식과 가까운 모자를 머리에 쓰고, 그들 특유의 등나무로 만든 활과 단검을 휴대했다. 그리고 스키타이 계통의 사카이족은 키르바시아라는 바지를 입고, 그들 특유의 활과 단검과 사가리스라는 전투용 도끼를 갖추었다. 박트리아인과 사카이족의 지휘관은 다리우스 황제의 아들인 히스타스페스였다.

 

  인도인은 목면으로 만든 옷을 입고, 등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을 지녔으며 쇠로 만든 화살촉을 무기로 사용했다. 인도군은 아르타바테스의 아들인 파르나자트레스가 지휘했다.

 

  아리오이인(박트리아 서남부의 민족)은 메디아식의 활을 갖추었고, 그 밖의 장비는 박트리아인과 같았다. 그들의 지휘관은 히다르네스의 아들인 시삼네스였다.

 

  파르티아인과 코라스미오이인, 소그디아인, 간다라인, 다디카이인 등도 모두 박트리아인과 똑같은 장비를 갖추었다. 파르티아군과 코라스미오이군은 파르나케스의 아들인 아르타바조스가 지휘했다. 소그디아군은 아르타이오스의 아들인 아자네스가, 간다라 및 다디카이군은 아르타바노스의 아들인 아르타피오스가 지휘했다.

 

  카스피오인(박트리아 동쪽의 민족)은 짐승 가죽을 몸에 두르고 그 나라 고유의 등나무 활과 단검을 휴대했다. 이 부대의 지휘관은 아르타피오스의 형제인 아리오마르도스가 맡았다.

 

  사란가이인(이란 고원 중앙부, 파르티아 남쪽의 주민)은 눈에 금방 띄는 화려한 색깔의 의복을 입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목이 긴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활과 메디아식의 창을 지녔다. 메가바조스의 아들인 페렌다테스가 지휘했다.

 

  팍티에스인(인도 동북방의 민족)은 짐승 가죽을 몸에 두르고, 고유한 양식의 활과 단검을 휴대하고 이타미트레스의 아들인 아르타윈테스의 지휘를 받았다.

 

  이란 고원 남부에 사는 우티오이, 미코이, 파라카니오이족은 팍티에스인과 똑같은 장비를 지녔다. 우티오이인과 미코이인은 다리우스 황제의 아들인 아르사메네스가, 파라카니오이족은 오이오바조스의 아들인 시로미트레스가 지휘했다.

 

 

 

 

  아라비아인 부대는 길게 늘어진 상의인 제이라를 입고 허리띠를 둘렀으며, 오른손에는 당기지 않을 때는 반대편으로 굽어 있는 긴 호궁(豪弓)을 휴대했다.

 

  에티오피아인은 사자나 표범의 가죽을 몸에 걸쳤고, 대추야자나무를 얇게 쪼개어 만든 긴 활과 짧은 등나무 화살을 휴대했다. 화살촉은 쇠가 아닌, 날카롭게 간 돌을 사용했다. 아울러 창의 끝에는 날카롭게 간 사슴의 뿔을 박아서 창날로 사용했다. 또한 못을 받은 곤봉도 가지고 있었다. 에티오피아인은 싸울 때면 몸 한 쪽에 석고를 바르고, 다른 쪽에는 주사(朱砂)를 바르는 풍습이 있었다. 아라비아인과 에티오피아인 부대의 지휘관은 다리우스 황제의 아들인 아르사메스였다.

 

  동방 에티오피아인(사실은 인도 북부인 게드로시아)은 인도인 부대에 속해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장비는 인도인과 같았지만, 말의 머리 가죽을 귀와 갈기만 붙여 둔 채 벗긴 것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또한 방패 대신에 학의 가죽을 사용해 몸을 보호했다.

 

  리비아인 부대는 가죽 옷을 입고 창끝을 단련한 투창을 휴대했다. 그들의 지휘관은 오아리조스의 아들인 마사게스였다.

 

  파플라고니아인은 머리에 가는 가지로 엮어 만든 투구를 쓰고 작은 방패와 상당히 짧은 창을 지녔다. 그리고 투창과 단검을 휴대하고 다리에는 정강이 반까지 올라오는 구두를 신었다. 리기에스인(콜키스 또는 코카서스 지방의 주민)과 마티에네인, 마리안디노이인 및 시리아인은 파플라고니아인과 같은 장비를 착용했다.

 

  파플라고니아인과 마티에네인 부대는 메가시드로스의 아들인 도토스가 지휘했다. 마리안디노이인, 리기에스인 및 시리아인 부대는 다리우스 황제의 아들인 고브리아스가 지휘했다.

 

  프리기아(소아시아 반도 서부의 주민)인의 장비는 파플라고니아인과 비슷했다. 아르메니아인은 프리기아의 이주민이이서 장비도 그들과 같았다. 이 두 민족을 함께 지휘한 자는 다리우스 황제의 사위인 아르토크메스였다.

 

  리디아인의 장비는 그리스인과 거의 비슷했다. 미시아인은 특유의 투구를 머리에 쓰고, 작은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창끝을 단련한 투창을 사용했다. 이 두 민족의 지휘관은 아르타프레네스와 같은 이름을 가진 그의 아들이었다.

 

  트라키아인은 머리에 여우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몸에는 속옷 위에 제이라라는 형형색색의 상의를 걸치고, 발과 정강이에는 새끼 사슴 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투창과 가벼운 방패, 소형 단검을 지녔다. 이들은 아르타바노스의 아들인 바사케스의 지휘를 받았다.

 

  피시디아인은 소의 생가죽을 펼쳐 만든 작은 방패를 지니고, 한 사람마다 수렵용 창을 두 개씩 휴대하고, 머리에는 청동제 투구를 썼다. 투구에는 청동제의 소의 귀와 뿔이 달렸고, 또한 맨 위에는 장식털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강이에는 붉은 띠로 각반을 둘렀다.

 

  카발리스인(리디아와 프리기아, 리키아, 피시디아에 둘러싸인 지방의 주민)은 킬리키아인과 똑같은 장비를 갖추었다.

 

  밀리아이인(리키아와 프리기아에 둘러싸인 산지의 주민)은 단창을 휴대하고 브로치를 사용하여 여민 의복을 입었다. 그들 중 일부는 리키아풍의 활을 지니고 머리에는 가죽 투구를 썼다.

 

  피시디아인과 카발리스인, 밀리아이인 부대의 지휘관은 히스타네스의 아들 바드레스였다.

 

  흑해 동부에 사는 민족인 모스코이인과 티바레노이, 마크로네스, 모시노이코이인은 나무로 만든 투구를 쓰고, 방패와 자루가 짧고 창끝이 긴 창을 지녔다. 모스코이와 티바레노이 두 민족의 지휘관은 다리우스 황제의 아들인 아리오마르도스였으며, 마크로네스와 모시노이코이족은 케라스미스의 아들인 아르타이크테스가 통솔했다.

 

  마레스인은 머리에다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투구를 썼고, 작은 방패와 투창을 휴대했다.

 

  콜키스인은 나무로 만든 투구를 쓰고, 소의 생가죽으로 만든 방패와 짧은 창과 단검을 휴대했다. 마레스인과 콜키스인의 지휘관은 테아스피스의 아들인 파란다테스였다.

 

  알라로디오이인과 사스페이레스인은 콜키스인과 똑같이 무장했으며, 시로미트레스의 아들인 마시스티오스가 통솔했다.

 

  페르시아 만의 여러 민족들은 복장이나 무기 면에서 메디아인과 비슷했다. 이들 부대의 지휘관은 바가이오스의 아들인 마르돈테스였다.

 

  이상이 페르시아 원정군 중 보병에 배치되어 육로로 진격한 자들이다. 다음은 기병의 명단이다.   

 

 

 

 

 

  페르시아 기병대는 보병들과 같은 장비를 갖추었지만, 그들 중 일부는 청동이나 쇠를 두드려 펴서 만든 투구를 착용했다.

 

  사가르티오이인은 유목민으로 인종이나 언어에서 페르시아 계통이었다. 그들은 8천 명의 기병을 지원했으며, 단검과 가죽띠로 엮은 망을 휴대했다. 사가르티오이인은 전투 시에 가죽 망을 던져 적을 묶어서 자기 앞으로 끌어당긴 다음, 죽이는 전술을 사용했다.

 

 

 

  

 

 

  메디아 기병대와 키시아 기병대의 장비도 보병과 같았다. 인도인 기병대도 장비는 보병과 같았다. 그들은 말뿐만 아니라 전차도 몰고 있었는데, 말이나 야생 당나귀가 전차를 끌었다.

 

  박트리아와 카스피오이인과 리비아인도 장비는 보병과 같았으며, 모두 전차를 몰았다.

 

  카스피오이인과 파라카니오이인도 보병과 장비가 같았다.

 

  아라비아인도 보병과 장비가 같았고, 모두 말 대신 낙타를 몰았다.

 

  이상이 페르시아 원정군에 소속된 기병들이며, 그 수는 낙타와 전차를 제외하고도 8만 명에 달했다. 그 중에서 아라비아인 낙타 부대는 전체 원정군의 가장 후방에 배치되었다. 다른 기병 부대의 말들이 낙타를 보면 무서워 놀랐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후방에 배치했던 것이다.

 

  기병 부대의 지휘관은 다티스의 두 아들인 하르마미트레스와 티타이오스였다.

 

  페르시아 원정군의 보병은 170만, 기병은 8만 명이었다. 여기에 아라비아인의 낙타 부대와 리비아인의 전차 부대 2만 명과 해군의 수까지 합치면 페르시아 육해 양군의 총병력 수는 231만 7610명이 된다.

여기에 유럽에서 징용된 병력의 수까지 합치면 264만 1600명에 이르렀다.

 

  또한 군대를 따라서 참전한 비전투원의 숫자까지 더하면 페르시아 군의 총병력은 무려 528만 3200명에 달했다.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페르시아의 대군이 헬레스폰토스 해협에 다리를 놓고 건너오던 모습을 지켜본 헬레스폰토스 지역의 한 주민은 이렇게 말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오, 제우스신이시여. 그리스를 멸망시키실 것이라면 어째서 페르시아인의 모습을 하시고 이름도 크세르크세스라고 바꾸신 채로 온 세상의 모든 인간을 이끌고 오셨습니까? 당신이라면 그런 수고를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바라는 대로 하실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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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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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환 템플라 | 작성시간 11.04.12 왜 영화 300의 이야기가 대단한 지 알겠네요. 코딱지만한 폴리스 연합체 옆에 이런 거대 제국이 있었다니...
  • 답댓글 작성자타메를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4.14 당시 중근동 일대를 지배하던 대제국 페르시아에 맞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등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싸워서 승리한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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