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개척
러시아는 이반4세때 시베리아로 진출하였다. 그 선발대가 된 것은 킵착칸국의 주치가 지배로부터 이탈하여 러시아 정교로 개종한 유목집단 코사크(카자흐)인들이었다.
그들은 아타만(수령)이 이끄는 자립적인 군사동맹체 100인대(소트냐)를 만들어 사람과 말리 함께하는 생활을 하였다. 러시아사에서는 돈강과 야이크(우랄)강의 코사크가 유명하였다.
이반 4세 때 코사크의 아타만인 예르마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볼가강을 지나는 배를 습격하여 강도 짓을 해오다 러시아 군대에 쫓겨 6천명의 동지와 함께 우랄산 속의 카마강으로 도망가 스트로가노프가에 몸을 의탁하였다.
마침 러시아 황제로부터 시베리아 개척을 부탁받은 스트로가노프가는 그의 시베리아 원정을 권하였다.
당시 그 동쪽의 토보르강에는 우즈벡스탄 시반가의 일족인 쿠춤칸이 이스켈을 중심으로 살면서 시비르 칸이라 하였다. 예르마크는 1581년 이들을 정복하였으나 쿠춤칸의 반격을 받아 1584년에 이르티쉬 강변에서 죽었다.
그렇지만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은 이후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러시아는 1586년에 톨라 강변에 추메니란 도시를 세우고, 1587년에는 트볼하구에 트보리스크 요새를 세워 행정의 중심으로 삼았다. 1594년에는 이르티쉬강변에 타라의 요새를 세우고, 1604년에는 오브강 상류에 톰스크시를 세웠다. 시베리아에 세워진 러시아의 도시는 모두 요새에서 시작되었다.
1598년 쿠춤칸은 코사크와 타타르의 혼성군에 패하여 쿠츔의 5아들, 8명의 처, 8명의 딸, 2명의 며느리, 2명의 손자, 2명의 손녀가 포로로 되어 모스크바로 보내졌다. 쿠춤은 노가이로 도망했으나 살해되었다. 당시의 짜르, 보리스-고두노프는, 포로로 잡혀온 쿠춤의 아들들을 황자로 존칭하며 우대하였다.
코사크들은 시베리아의 삼림지대를 수로를 따라 나가 17세기초부터 몽골고원 북변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여 1620년대에는 부리야트-몽골의 정복을 시작으로 1650년대에는 서 바이칼 지방의 지배, 1658년 네르친스크 요새의 건설, 이윽고 동 바이칼 지방을 정복하였다. 마침내 1649년에는 오호츠크해와 베링해에 도달하였다.
1689년의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젭춘담바-후톡토의 거주지로서 발전한 툴라강변의 쿠롱(울란바토르)에는 많은 러시아인이 들어오게 되었으며 양국인간의 분쟁도 많아졌다. 그 때문에 새로이 경계를 세우고 통상관계를 규제하는 캬흐타 조약이 1727년 맺어졌다. 러시아의 동방진출은 코사크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옛 몽골제국의 영토회복운동으로도 볼 수 있다.
http://www.jsyang2.com.ne.kr/homepage/history8-3.html 참고
"나에게 코사크 병사 2만 명만 준다면 유럽 전체는 물론 세계까지 정복하겠다"
나폴레옹이 코사크 병사들의 용맹함을 칭찬한 말이다. 러시아어로 '카자크(Kasak, Kazak)'라고 부르는 코사크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러시아 중앙부에서 남부 국경지대로 이주하여 자치적인 군사공동체를 형성한 민족이다.
원래는 슬라브 민족이었지만 남부 지역의 투르크계 민족들과 혈통적, 문화적으로 융합된 코사크는 러시아어를 쓰며, 러시아 정교를 믿는 특이한 민족이다. 특히 코사크는 전투력이 뛰어나고, 애국심과 충성심이 강한 민족으로 유명하다.
코사크는 역대 러시아 왕조에서 대부분 국경지대를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해왔으며 2차 대전 때는 독일군과 싸워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은 2차 대전 이후 코사크만으로 구성된 부대들을 해체하고 이들을 일반 군대에 편입시킨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남부 지역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코사크족을 징집, 특수보안부대를 창설할 수 있는 법안을 하원인 국가두마에 제출했다. 국가두마에서 이 달 중 이 법안이 통과되면 코사크족 60만 명이 군에 지원할 수 있으며, 연말께 첫 특수보안부대가 창설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코사크는 90년 만에 러시아 국경 지역을 방비하는 전통적인 역할을 다시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체첸 지역 러시아군 사령관을 역임한 대통령 보좌관 겐나디 트로신 장군은 코사크는 러시아 남부 국경지역에서 발생하는 테러와 이슬람 극단주의를 소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정규군이나 국가보안국(FSB) 소속 부대를 동원하지 않기로 한 것은 체첸 공화국 등 러시아 남부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러시아 정규군과 보안 부대들은 특히 군기가 해이한데다 부정부패에 쉽게 빠지는 등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하는데 약점을 보여왔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모스크바 지부의 코카서스 전문가인 알렉세이 마라센코 연구원은 "남부 지역에서 소수로 전락한 러시아인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베슬란 학교 인질 사태처럼 뇌물에도 쉽게 넘어가는 군과 보안부대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 국방정보센터의 이반 사프란추크 대표는 "코사크를 동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러시아 남부의 로스토프나 크라스노다르 등에서는 코사크의 자원부대들이 비공식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러시아인이 아닌 다른 소수민족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때문에 코사크가 러시아 남부지역에 대거 군대로 동원될 경우,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이슬람계와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 푸틴 대통령이 코사크까지 동원하려는 것은 체첸 공화국을 비롯해 러시아 남부지역에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데다 테러마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더 이상 좌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한말 애국 시인인 매천 황현이 지은 매천야록에 기록된 코사크...
아라사의 서북부에 가살극(코사크)가 있는데 그 사람들은 사납고도 악독하여 유럽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와전되어, '가살극 사람들은 퇴화되지 않은 꼬리가 있으며, 사람 고기를 식량으로 삼는다'고 소문났는데, 그들이 요즘 우리나라에 들어와 강토를 짓밟으며 남하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들이 가살극인데 성품이 가장 음탕해서, 부녀자를 만나면 늙었는지 젊었는지도 묻지 않고 문득 범한다. 숫양처럼 하루에 수십 번이나 교합하므로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는 부녀자의 그림자도 없었다."
그들은 또한 의심이 많아서, 늘 약탈하다가도 네댓 명이 모여있는 것을 보면 침입하지 못하며, 먹을 것을 보면 소나 말처럼 반드시 생채로 씹어먹었다. 그들은 말도 잘타서 한번 휘파람을 불며 달리면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리를 달렸다. 용모가 비록 사납게 생겼다고는 하지만 사람을 만나도 죽이지 않았으며, 도리어 부드러운 빛을 보였다. 그들을 볼 때마다 이를 가는 자는 오직 왜놈 뿐이었다.
이때 왜군은 황해에 퍼져 잇으면서 자기 나라의 식량과 기계운반 말고는 통행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다른 배를 타고 우리나라 사람으로 분장하여 평안도 지방을 드나들며 아라사를 정탐했는데, 아라사가 그것을 알고 엄히 수색하여 머리 깎은 자를 보면 그 자리에서 죽였다. 그래서 스님들 가운데 죽은 자가 수백명이나 되었다.
날씨가 추워서 사람들이 방한모를 썼는데, 아라사군사들이 사람들을 만나면 칼 끝으로 모자를 벗겨 머리를 깎았는지 아닌지를 조사했다.
누루하치: 그 때 단발령 때문에 머리 깎은 사람들이 많이 억울햇다죠? 하기사, 코샤크 입장에서도 답답하긴 할 겁니다. 생긴건 똑같지, 말이 통하나, 왜놈들 간첩들은 사방에 깔렸지... 엄하게 당하는 건 울나라 사람인 셈이죠. 넘의 나라 전쟁에 껴서 말이죠.
전륜성왕: 언어소통이 되지 않고 조선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저런 현상이 벌어졌구려.
코사크에 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 사이트 참조....
http://myhome.shinbiro.com/~hufs1/fhuco2/kosakschool.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