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국내의 몽골사 연구 전문가인 박원길 교수의 저서 <조선과 몽골>에 실려있는 인평대군(麟坪大君)이 남긴 연도기행(燕途紀行)이라는 책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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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1642년)에 연조총병 왕정신과 조변교가 송산 전투에서 청나라와 내통하자, 홍승주와 조대락, 조대필과 조대청 등이 모두 청나라에 항복했다.
이 때, 명나라 장수 조대수는 송산 전투에서 조씨 장수들이 모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신도 청나라 군대에 항복을 했다.
그러나, 명나라 군대에 소속되어 있던 몽골인 병사 수천 명은 끝까지 청군에 항복하지 않고 저항했다.
그러자 청나라 군대는 몽골 병사들을 연회에 초대하여 활과 칼을 버리게 한 다음, 평야로 몰아내 철기(鐵騎: 강력한 기병대)로 공격했다.
하지만 몽골 병사들은 본래 싸움에 능하여, 맨손으로 육박전을 벌여 (청군으로부터) 활과 칼을 빼앗고, 해가 높이 뜰 때까지 격렬하게 싸웠다.
비록 몽골 병사들은 격전 끝에 모두 전사하기는 했으나, 수천 명의 청나라 철기 부대와 싸워 그들을 적지않게 죽였으니, 이와 같은 충성과 용맹은 중국인에게도 드문 것이었다. 그 때, 죽은 몽골 병사들의 해골이 지금까지도 금주 동천 가에 쌓여 있다.
조대수가 금주에서 곤욕을 당할 때에 비록 적을 섬멸하지는 못하였지만, 청나라 군대의 포위망을 충분히 무너뜨리고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편안히 앉아서 사태를 방관만 하다가 일이 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조대수는 기꺼이 (만주족) 오랑캐에게 항복하여 명나라 황제로부터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조상들을 모욕하였으니, 그가 저승에 간들 어찌 몽골 군사들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