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전쟁(말미나스 전쟁)
5월 21일
영국군은 산카를로스(San Carlos)만으로부터 포클랜드에 상륙했다.
아르헨티나 항공기는 영국함선과 해안의 영국군 진지를 향해 75회를 출격했다.
이 공격기는 시해리어 전투기 및 함상에 설치된 시다트, 시울프, 시캣트 함대공 미사일
그리고 대공포가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돌입했다.
이와같은 영국해군의 방어망에 추가하여 육상의 래피어(Rapier) 지대공 미사일,
브로우파이프(Blowpipe) 지대공 소형 미사일 및 기관총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5월 21일의 산카를로스만에서의 해군의 A-4 공격기 조종사 알베르토 조지 피리피(Alberto Jorge Philippi)
대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은 3대로 공격을 가했다. 목표는 산카를로스 상륙작전을 지원하고 있는 영국의 함정이었다.
공격은 호위나 항공우세의 확보도 되지않은 채 실시해야 했다."
그랜 말비나(Gran Malvina)의 연안으로부터 1백해리의 위치에서 나는 고도 30미터까지 강하하여
섬의 상공을 비행하도록 요격기에게 명령했다. 코스는 산카를로스 해협의 남쪽 입구까지 069도를 유지하고
그곳에서부터 고도 15미터 이하, 4백50노트로 돌입했다.
바히아 루이즈 푸엔테(Bahia Ruiz Puente)에 이르자 11시 방향 암석 사이로 영국 프리기트함의 마스트가 보였다.
그쪽도 우리를 발견한 듯 황급히 해안을 이탈하여 약 2백40도 코스를 취하며 해협의 중앙부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나는 이 목표를 요격기에게 알리고 공격개시를 명령했다. 나는 육지의 레이다 반사로부터 그리고 암석의 그림자로부터
항공기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오른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공격에 적합한 위치를 발견했을 때 목표물인
프리키트 함 HMS 아덴트(Ardent) 호를 향해 선회에 들어갔다. 좌측 날개가 거의 파도에 스칠 듯 급선회에 들어가 선회가
끝났을 때는 이미 폭탄투하 위치에 있었으며 목표의 좌현 중앙으로부터 우현 함수측을 스치면서 통과하는 코스였다.
목표의 함수에 있는 함포, 중앙부의 기관총 그리고 시캣트 함대공 유도탄을 발사하는 것이 보였다.
목표로부터 1000-1500미터 위치에서 고도를 90미터로 강하하여 조준기의 십자선을 함미에 맞추도록했다.
그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십자선의 중앙이 목표에 겹치는 순간 나는 폭탄투하 버튼을 누르고
속도를 증가하여 우로 급선회하여 회피기동에 들어가 재차 해면을 스칠 듯이 고도를 낮추고 선회했다. 그 사이 요격기의
조종사 호세 세잘 알카(Jose Cesar Arca)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했다.' 좌측어깨 너머로 보니 그 영국 프리키트
함의 함미는 많은 연기를 토하며 함수우현 20미터 떨어진 곳에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우리들은 진입할 때와
같은 코스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2분도 채 되기전에 적기가 출현하여 마르케츠(Marguez)의 외치는 소리가 나으 심장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해리어다! 해리어다!' 나는 즉시 불필요한 것은 전부 버리도록 지시하고 전방에 있는 구름속으로 도망갈 있기를 빌었다.
그러나 나의 항공기 미부에 폭발이 느껴지는 순간 기수를 들어올릴수 없음을 알았다. 양손으로 조종간을 힘껏 움직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측을 바라보니 한 대의 시해리어가 150미터 거리에서 곧바로 공격하려하고 있었다. 나는 무전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탈출한다. 무사하라!" 그리고 속도를 줄이고 스피드 브레이크를 열고 왼손으로 사출핸들을 잡아당겼다.
캐노피가 사출되자 강한 폭발력을 느꼈으며 그 다음 또다시 강한 충격이 목언저리를 때렸다. 정신을 잃기전에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것은 '돌처럼 날아가는 구나'라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구름속을 낙하산으로 강하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얼굴을 적셔 헬멧과 마스크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나는 해안으로부터 100미터 되는 곳에 착수하여 낙하산을 풀고 해안을
헤엄쳐 갔다. 해변에 이르렀을 때는 몹시 지쳐 걸을 수조차 없었으므로 나는 그곳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
아르헨티나 조종사들은 용감하게 영국의 HMS 아덴트 호를 격침하고 그외 4척의 함정에 손상을 입혔다. 그러나 희생도 컸다.
영국측의 발표에 의하며 아르헨티나 항공기 15대를 격추했으며 그중 8대는 시해리어 전폭기에 의한 것이었다.
이러는 사이에 영국공군의 GR.MK3 해리어는 많은 횟수의 대지공격을 실시했다. 그리하여 한 대의 해리어기가 포트 하워드
(Port Howard) 상공에서 브로우파이프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었다. 또한 영국해병대의 가젤(Gazelle) 헬기 2대가 산카를로스
근처에서 지상 포화에 의해 격추되었다.
5월 23일
아르헨티나군 항공기의 공격은 계속되어 HMS 안테로프(Antelope) 호가 4발의 폭탄을 맞고 대파되었다. 영국측도 아르헨티나가
미라주기 4대와 A-4기 한 대를 격추했다.
5월 24일
안테로프호에 명중한 불발탄의 신관을 제거하려 했을 때 배는 폭발하여 화염에 쌓인 후에 침몰했다. 아르헨티나의 A-4기와
미라주기가 수차례에 걸쳐 영국함정과 산카를로스 근처의 영국군 진지에 공격을 가했다. 공격기들은 LST인 써 게라하드(Sir Galahad)
호와 써 란세로트(Sir Lancelot) 호에 손상을 입혔으나 8대의 아르헨티나 전투기가 격추되었다. 이중 3대는 해리어 1개 편대의
전과였다. 영국해군 제800 비행대대의 대대장 앤드류 올트(Andrew Ault) 소령은 이 전투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HMS 허미즈호로부터 발진하여 포클랜드제도의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여 전투공중초계에 들어감과 동시에
나의 요격기는 침투해오는 아르헨티나 전투기를 발견하고 이를 향해 돌진했다. 항공관제 담당함이 우리를 유도했으며 기상상태는
양호했다. 미라주기는 4대였다. 공격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상당히 격렬한 기동을 해야했다. 고도 60미터로 강하하여 560노트로
비행했다. 나는 2개의 목표에 대하여 단시간에 2발의 미사일을 정상적으로 발사했다. 세 번째의 목표는 기관포로 공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물로 그사이 미라주기는 외부연로탱크와 폭탄을 버리고 급선회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세 번째 목표를 기관포로 공격할
계획이었으나 요격기가 추월하여 미사일을 발사하여 이것이 명중되고 말았다. 이것으로 3대가 격추되었으며 4번째 목표는 탈출에
성공하여 본토로 도망치고 말았다."
5월 25일
아르헨티나 독립기념일인 이날 아르헨티나 공군과 해군항공대는 다수의 공격기를 12회 출격시켜 영국함대에 대하여 상당한 피해를
주는 전과를 올렸다.
공군의 A-4 스카이호크 공격기는 서부 포클랜드 섬 북방에서 항공공격의 조기경보임무를 수행중이던 브로드스워드(Broad Sword) 호와
콘벤트리(Conventry) 호를 공격했다. 브로드스워드호에는 적어도 3발의 1천파운드 폭탄이 명중되어 1시간만에 침몰했다.
2대의 슈페르 에탕다르기가 각 1발씩의 AM-39 엑소세와 1개의 보조연료탱크를 탑재하고 KC-130으로부터 공중급유를 받으며
항속거리를
연장시킨 후 공격에 나섰다. 이 2대의 슈페르 에탕다르기는 후에 항공모함이라고 생각되는 목표에 대하여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그것은 콘테이너선인 아틀란틱 콘베어 호였다. 그리하여 화재가 배전체에 휩싸여 12명의 희생자를 내며 배는 폐기되었다. 또한
적재하고 있던 헬기 웨섹스 6대, 시누크 3대 그리고 많은 주요 보급물자가 불에 타고 말았다. 영국측은 아르헨티나의 A-4기 7대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5월 27일
영국의 낙하산부대는 다윈(Darwin)과 구스그린의 아르헨티나군 진지를 공격하고 GR.MK3 해리어가 근접지원을 했으나 지상으로부터
대공포화로 1대의 해리어기가 격추되었으며 조종사는 탈출에 성공했다. 아르헨티나 군의 미라주와 A-4기는 산카를로스의 영국군
교두보와 외해에 있는 영국함정을 공격했으며 2대의 A-4기가 영국군에 의해 격추되었다.
5월 28일
영국의 낙하산부대는 다윈을 점령했으나 구스 그린에서는 격렬한 저항에 부딛쳤다. 쌍방이 근접항공지원으로 영국의 해리어
아르헨티나군은 푸카라기를 출동시켰다. 1대의 푸카라기는 브로우파이프미사일에 의해 격추되고 또 한 대는 영국의 스카우트 헬기에
의해 격추되었다.
5월 30일
아르헨티나 해군항공대의 슈페르 에탕다르 2대가 한 대에만 AM-39 엑소세 미사일을 탑재하고 공군의 A-4와 협동작전으로
영국기동부대 공격에 출격했다. 슈페르 에탕다르 기가 엑소세 미사일을 발사한 후 A-4기는 폭탄공격을 가했으나 그중 2대가 함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었다. 아르헨티나측은 영국군 항공모함에 손상을 입혔다고 주장했으나 영국측은 이를 부인했다. 영국으로부터의
정보에 의하면 발사된 엑소세 미사일은 HMS 아벤져(Avenger)호에서 발사한 4.5인치 포탄에 우연히 명중되어 파괴되었다고 한다.
어떤 정보에 의하면 이 아르헨티나의 공격은 아틀란틱 콘베어호의 잔해에 공격을 가한 것으로 이 배를 침몰케 한 것뿐이었다고 했다.
포트 스탠리에 대한 공격에서 영국 공군의 해리어 1대가 대공포화에 피탄되었으며 해상에서 연료가 다 소모되어 조종사는 탈출했다.
그날밤 아센숀 섬으로부터 발진한 1대의 발칸폭격기가 슈라이크 공대지 미사일로 공격을 가하여 아르헨티나군의 대공감시레이다의
안테나에 손상을 입혔다.
6월 1일
해리어와 시해리어기는 포트 스탠리 수비대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였으며 영국군 지상부대는 시가지 주변의 주요지점을 점령을 위해
전진했다. 시해리어 1대가 포트 스탠리 상공 4000미터를 비행중 로랜드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6월 5일
영국군은 산카를로스의 교두보에 알미늄매트를 깔고 260미터의 활주로를 건설했다. 이 전선 활주로는 시해리어가 정찰비행시 급유를
위한 것이며 또한 근접항공지원에 임하는 해리어기의 대기기지로 사용하게 되었다.
6월 8일
아르헨티나군은 영국군이 포트 스탠리의 남쪽 11킬로미터에 있는 버프 코브(Buff Cove:하구)에 병력을 상륙시키려는 것을 탐지해낸후
4대의 A-4기와 2대의 다가기가 양륙함 써 트리스트람(Sir Tristram) 호와 써 가라하드(Sir Galahad) 호를 폭격하여 화재를 일으키는
큰 피해를 주었다. 영국군의 사상자는 100명을 넘었으며 그 반수 이상이 사망했다. 항공공격은 포클랜드해협의 영국함정에도 가해졌다
. 프리기트함인 HMS 프리마우스(Plymouth) 호는 4발의 1000파운드 폭탄의 명중탄을 맞았으나 다행히 폭발하지 않았다. 양륙함 1척은
격침되고 6명이 사망했다.
이날 10대의 아르헨티나 항공기가 시해리어기에 의해 격추되었다. 이 공중전을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 대위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그날 오후 늦게 나는 고도 3000미터에서 정찰비행을 실시하고 있었다. 써 가라하드호는 엄청난 화염에 쌓여 두터운 기름연기를
뿜고 있었다. 그것은 대단히 비참한 광경이었으며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게 했다. 배의 후반부는 불길에 싸여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분노한 것 같은 색깔을 보이며 태양이 북서쪽으로 기울고 있었으며 구스 그린쪽에서는 이 참극의 현장을 향하여 적의 양륙정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들이 초계공역으로부터 이탈하려고 했을 때 무전기로 모기(Moggy) 대위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이게 뭐냐 공격받고 있지 않은가? 3대 아니 4대의 미라주기다. 디프 나를 따르라!' 그는 그렇게 외치면서 바다를 향해 돌진해갔다.
밤의 어둠이 짙어지고 나는 암흑속으로 빠져드는 듯 했다. 나는 스로틀을 풀파워에 넣고 그를 따라 급강하하여 그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으로 쫓아갔다. 해면에 닿을 듯한 고도까지 하강하여 수평비행에 들어 갔을 때 대기속도는 600노트를 넘어 해리어기는
덜거덕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보기(Bogeys: 식별안된 항공기)가 미사일을 발사한 밝은 불빛 2개가 보였다. 나는 이 2발의
미사일이 뿜어대는 흰연기를 추적하고 있었으나 2개의 커다란 화구가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던중 미라주기가 공중분해되어
바다속으로 처박히는 것이 보였다. 전방에는 몇대의 항공기가 있었으나 그중 어느것이 보기인지 알수 없는 곤경에 빠졌다.
그때 보기가 갑자기 2대의 미라주기를 향하여 기관포 사격을 가하기 시작해 그 탄약이 해면을 때릴 때 순간 나도 1대의 적기를
포착할 수 있었다. 나도 미사일로 적을 겨냥하고 미사일의 시커가 목표를 포착하는 소리를 기다렸다. 조종간 위에 있는
포착버튼을 누르자 헤드 업 디스플레이(HUD)에 녹색의 원이 나타나면서 이어폰에 목표포착음이 들려왔다.
미라주기는 고속으로 더욱이 초저공 비행을 하고 있었으나 포착원은 그 목표를 잡고 놓치지 않았다. 플랩을 올리며 미사일을
발사했다. 밝은 섬광이 비치며 굉음과 동시에 미사일이 발사된 것이다. 미사일은 목표를 확실히 추적하고 있었다. 미라주기는
거리가 너무 가까운 듯 생각되었다. 나는 될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감각적으로는 모든 것이 정지되어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으나 사실 시해리어기는 파도로부터 불과 수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서 1분간 20킬로미터에 가까운 속도로 돌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재차 어둠속에서 섬광과 화구가 비치었다. 적기는 너무 초저공 비행을 하고 있었으므로 미사일의 명중과 동시에 해면과 충돌하여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 순간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연료계기판을 보니 이미 위험한 상태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나는 수직상승후
가능한 한 높은 안전고도를 취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직 항공모함까지의 거리는 멀었으며 최종적으로 어려운 야간착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6월 12일
영국군은 포트 스탠리를 포위하고 마을로부터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아르헨티나 방어진지에 대하여 야간공격을 가했다.
이에 대해 화력지원을 하고 있는 HMS 그라모간(Glamorgan) 호는 임무를 끝내고 퇴거중 육상으로부터 발사된 엑소세 미사일에
피탄되었다. 미사일은 함미 갑판에 명중하여 헬기격납고와 시캣트 미사일의 발사대를 파괴하고 13명의 사상자와 17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러나 배의 안정성에는 문제가 없어 36시간의 보수작업후 전열에 다시 복귀했다.
6월 13-14일
영국군은 포트스탠리 주변 진지에 강력한 야간공격을 가했다. 이에 대하여 아르헨티나군 항공기도 출격했으나 미라주기와
캔베라 각1대씩을 잃었다. 영국군의 시해리어기는 적진공격에 레이저 유도폭탄을 사용했다. 6월 14일 아침 아르헨티나군이
정식으로 항복함으로써 전투는 막을 내렸다.
분석
1982년 6월 14일 정전이 발효됨에 따라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전투는 끝났다. 영국 해군기동부대는 섬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고 상륙부대는 수많은 전투를 치른후 사우드 조지아섬과 포클랜드 제도를 탈환했다.
그후 영국은 이 섬에 수천명의 병력과 F-4팬텀 전폭기, 해리어, 대공미사일부대 그리고 여러척의 군함을 배치했다.
아르헨티나군은 그 이상의 군사행동을 하지 않았으나 전쟁으로 인한 손실을 보충하기위해 항공기, 함정 그리고 육군장비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 분쟁으로 아르헨티나측은 700명이상의 사망자를 포함해 약 2천명의 인적손실을 입었다. 손실중에는 순양함 제네랄
벨그라노 호, 잠수함 산타 페호 그리고 6척 전후의 초계정, 트롤선 화물선이 포함돼 있었다. 아르헨티나공군은 해군항공대를
합하여 전술기 79대의 손실을 인정했으며 이중 49대는 전투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측의 주장은 격추, 노획을 합쳐
103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측의 인적손실은 군인과 민간인을 합하여 255명의 사망자와 700명 이상의 부상자를 냈다고
발표했다. 침몰한 함선은 구축함 2척, 프리기트함 2척, 양륙함 1척, 징용하여 참전시킨 콘테이너선 1척이며 또한 6척이상의
군함과 수송선이 손상을 입었다. 항공기의 손실은 해리어 및 시해리어 9대, 헬기 25대 등이다. 이중 전투에 의한 손실은
해리어 3대, 시해리어 2대, 핼기 12대였다.
이 항공전에서는 재래식 무기와 최신무기가 혼용되었다. 해리어 및 시해리어는 이 분쟁에서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으며
여러 가지 미사일도 역시 그랬다. 해군부대에 대한 격렬하고 계속적인 항공공격도 제2차 세계대전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AM-39 엑소세 공대함 유도탄은 무기로써의 성공적인 결과는 크게 주목받았으며 영국과 아르헨티나 쌍방의 공격은 대부분이
재래식 폭탄, 로켓탄 그리고 기관포를 사용한 전투였었다.
5월 21일
영국군은 산카를로스(San Carlos)만으로부터 포클랜드에 상륙했다.
아르헨티나 항공기는 영국함선과 해안의 영국군 진지를 향해 75회를 출격했다.
이 공격기는 시해리어 전투기 및 함상에 설치된 시다트, 시울프, 시캣트 함대공 미사일
그리고 대공포가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돌입했다.
이와같은 영국해군의 방어망에 추가하여 육상의 래피어(Rapier) 지대공 미사일,
브로우파이프(Blowpipe) 지대공 소형 미사일 및 기관총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5월 21일의 산카를로스만에서의 해군의 A-4 공격기 조종사 알베르토 조지 피리피(Alberto Jorge Philippi)
대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은 3대로 공격을 가했다. 목표는 산카를로스 상륙작전을 지원하고 있는 영국의 함정이었다.
공격은 호위나 항공우세의 확보도 되지않은 채 실시해야 했다."
그랜 말비나(Gran Malvina)의 연안으로부터 1백해리의 위치에서 나는 고도 30미터까지 강하하여
섬의 상공을 비행하도록 요격기에게 명령했다. 코스는 산카를로스 해협의 남쪽 입구까지 069도를 유지하고
그곳에서부터 고도 15미터 이하, 4백50노트로 돌입했다.
바히아 루이즈 푸엔테(Bahia Ruiz Puente)에 이르자 11시 방향 암석 사이로 영국 프리기트함의 마스트가 보였다.
그쪽도 우리를 발견한 듯 황급히 해안을 이탈하여 약 2백40도 코스를 취하며 해협의 중앙부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나는 이 목표를 요격기에게 알리고 공격개시를 명령했다. 나는 육지의 레이다 반사로부터 그리고 암석의 그림자로부터
항공기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오른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공격에 적합한 위치를 발견했을 때 목표물인
프리키트 함 HMS 아덴트(Ardent) 호를 향해 선회에 들어갔다. 좌측 날개가 거의 파도에 스칠 듯 급선회에 들어가 선회가
끝났을 때는 이미 폭탄투하 위치에 있었으며 목표의 좌현 중앙으로부터 우현 함수측을 스치면서 통과하는 코스였다.
목표의 함수에 있는 함포, 중앙부의 기관총 그리고 시캣트 함대공 유도탄을 발사하는 것이 보였다.
목표로부터 1000-1500미터 위치에서 고도를 90미터로 강하하여 조준기의 십자선을 함미에 맞추도록했다.
그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십자선의 중앙이 목표에 겹치는 순간 나는 폭탄투하 버튼을 누르고
속도를 증가하여 우로 급선회하여 회피기동에 들어가 재차 해면을 스칠 듯이 고도를 낮추고 선회했다. 그 사이 요격기의
조종사 호세 세잘 알카(Jose Cesar Arca)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했다.' 좌측어깨 너머로 보니 그 영국 프리키트
함의 함미는 많은 연기를 토하며 함수우현 20미터 떨어진 곳에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우리들은 진입할 때와
같은 코스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2분도 채 되기전에 적기가 출현하여 마르케츠(Marguez)의 외치는 소리가 나으 심장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해리어다! 해리어다!' 나는 즉시 불필요한 것은 전부 버리도록 지시하고 전방에 있는 구름속으로 도망갈 있기를 빌었다.
그러나 나의 항공기 미부에 폭발이 느껴지는 순간 기수를 들어올릴수 없음을 알았다. 양손으로 조종간을 힘껏 움직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측을 바라보니 한 대의 시해리어가 150미터 거리에서 곧바로 공격하려하고 있었다. 나는 무전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탈출한다. 무사하라!" 그리고 속도를 줄이고 스피드 브레이크를 열고 왼손으로 사출핸들을 잡아당겼다.
캐노피가 사출되자 강한 폭발력을 느꼈으며 그 다음 또다시 강한 충격이 목언저리를 때렸다. 정신을 잃기전에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것은 '돌처럼 날아가는 구나'라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구름속을 낙하산으로 강하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얼굴을 적셔 헬멧과 마스크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나는 해안으로부터 100미터 되는 곳에 착수하여 낙하산을 풀고 해안을
헤엄쳐 갔다. 해변에 이르렀을 때는 몹시 지쳐 걸을 수조차 없었으므로 나는 그곳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
아르헨티나 조종사들은 용감하게 영국의 HMS 아덴트 호를 격침하고 그외 4척의 함정에 손상을 입혔다. 그러나 희생도 컸다.
영국측의 발표에 의하며 아르헨티나 항공기 15대를 격추했으며 그중 8대는 시해리어 전폭기에 의한 것이었다.
이러는 사이에 영국공군의 GR.MK3 해리어는 많은 횟수의 대지공격을 실시했다. 그리하여 한 대의 해리어기가 포트 하워드
(Port Howard) 상공에서 브로우파이프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었다. 또한 영국해병대의 가젤(Gazelle) 헬기 2대가 산카를로스
근처에서 지상 포화에 의해 격추되었다.
5월 23일
아르헨티나군 항공기의 공격은 계속되어 HMS 안테로프(Antelope) 호가 4발의 폭탄을 맞고 대파되었다. 영국측도 아르헨티나가
미라주기 4대와 A-4기 한 대를 격추했다.
5월 24일
안테로프호에 명중한 불발탄의 신관을 제거하려 했을 때 배는 폭발하여 화염에 쌓인 후에 침몰했다. 아르헨티나의 A-4기와
미라주기가 수차례에 걸쳐 영국함정과 산카를로스 근처의 영국군 진지에 공격을 가했다. 공격기들은 LST인 써 게라하드(Sir Galahad)
호와 써 란세로트(Sir Lancelot) 호에 손상을 입혔으나 8대의 아르헨티나 전투기가 격추되었다. 이중 3대는 해리어 1개 편대의
전과였다. 영국해군 제800 비행대대의 대대장 앤드류 올트(Andrew Ault) 소령은 이 전투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HMS 허미즈호로부터 발진하여 포클랜드제도의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여 전투공중초계에 들어감과 동시에
나의 요격기는 침투해오는 아르헨티나 전투기를 발견하고 이를 향해 돌진했다. 항공관제 담당함이 우리를 유도했으며 기상상태는
양호했다. 미라주기는 4대였다. 공격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상당히 격렬한 기동을 해야했다. 고도 60미터로 강하하여 560노트로
비행했다. 나는 2개의 목표에 대하여 단시간에 2발의 미사일을 정상적으로 발사했다. 세 번째의 목표는 기관포로 공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물로 그사이 미라주기는 외부연로탱크와 폭탄을 버리고 급선회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세 번째 목표를 기관포로 공격할
계획이었으나 요격기가 추월하여 미사일을 발사하여 이것이 명중되고 말았다. 이것으로 3대가 격추되었으며 4번째 목표는 탈출에
성공하여 본토로 도망치고 말았다."
5월 25일
아르헨티나 독립기념일인 이날 아르헨티나 공군과 해군항공대는 다수의 공격기를 12회 출격시켜 영국함대에 대하여 상당한 피해를
주는 전과를 올렸다.
공군의 A-4 스카이호크 공격기는 서부 포클랜드 섬 북방에서 항공공격의 조기경보임무를 수행중이던 브로드스워드(Broad Sword) 호와
콘벤트리(Conventry) 호를 공격했다. 브로드스워드호에는 적어도 3발의 1천파운드 폭탄이 명중되어 1시간만에 침몰했다.
2대의 슈페르 에탕다르기가 각 1발씩의 AM-39 엑소세와 1개의 보조연료탱크를 탑재하고 KC-130으로부터 공중급유를 받으며
항속거리를
연장시킨 후 공격에 나섰다. 이 2대의 슈페르 에탕다르기는 후에 항공모함이라고 생각되는 목표에 대하여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그것은 콘테이너선인 아틀란틱 콘베어 호였다. 그리하여 화재가 배전체에 휩싸여 12명의 희생자를 내며 배는 폐기되었다. 또한
적재하고 있던 헬기 웨섹스 6대, 시누크 3대 그리고 많은 주요 보급물자가 불에 타고 말았다. 영국측은 아르헨티나의 A-4기 7대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5월 27일
영국의 낙하산부대는 다윈(Darwin)과 구스그린의 아르헨티나군 진지를 공격하고 GR.MK3 해리어가 근접지원을 했으나 지상으로부터
대공포화로 1대의 해리어기가 격추되었으며 조종사는 탈출에 성공했다. 아르헨티나 군의 미라주와 A-4기는 산카를로스의 영국군
교두보와 외해에 있는 영국함정을 공격했으며 2대의 A-4기가 영국군에 의해 격추되었다.
5월 28일
영국의 낙하산부대는 다윈을 점령했으나 구스 그린에서는 격렬한 저항에 부딛쳤다. 쌍방이 근접항공지원으로 영국의 해리어
아르헨티나군은 푸카라기를 출동시켰다. 1대의 푸카라기는 브로우파이프미사일에 의해 격추되고 또 한 대는 영국의 스카우트 헬기에
의해 격추되었다.
5월 30일
아르헨티나 해군항공대의 슈페르 에탕다르 2대가 한 대에만 AM-39 엑소세 미사일을 탑재하고 공군의 A-4와 협동작전으로
영국기동부대 공격에 출격했다. 슈페르 에탕다르 기가 엑소세 미사일을 발사한 후 A-4기는 폭탄공격을 가했으나 그중 2대가 함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었다. 아르헨티나측은 영국군 항공모함에 손상을 입혔다고 주장했으나 영국측은 이를 부인했다. 영국으로부터의
정보에 의하면 발사된 엑소세 미사일은 HMS 아벤져(Avenger)호에서 발사한 4.5인치 포탄에 우연히 명중되어 파괴되었다고 한다.
어떤 정보에 의하면 이 아르헨티나의 공격은 아틀란틱 콘베어호의 잔해에 공격을 가한 것으로 이 배를 침몰케 한 것뿐이었다고 했다.
포트 스탠리에 대한 공격에서 영국 공군의 해리어 1대가 대공포화에 피탄되었으며 해상에서 연료가 다 소모되어 조종사는 탈출했다.
그날밤 아센숀 섬으로부터 발진한 1대의 발칸폭격기가 슈라이크 공대지 미사일로 공격을 가하여 아르헨티나군의 대공감시레이다의
안테나에 손상을 입혔다.
6월 1일
해리어와 시해리어기는 포트 스탠리 수비대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였으며 영국군 지상부대는 시가지 주변의 주요지점을 점령을 위해
전진했다. 시해리어 1대가 포트 스탠리 상공 4000미터를 비행중 로랜드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6월 5일
영국군은 산카를로스의 교두보에 알미늄매트를 깔고 260미터의 활주로를 건설했다. 이 전선 활주로는 시해리어가 정찰비행시 급유를
위한 것이며 또한 근접항공지원에 임하는 해리어기의 대기기지로 사용하게 되었다.
6월 8일
아르헨티나군은 영국군이 포트 스탠리의 남쪽 11킬로미터에 있는 버프 코브(Buff Cove:하구)에 병력을 상륙시키려는 것을 탐지해낸후
4대의 A-4기와 2대의 다가기가 양륙함 써 트리스트람(Sir Tristram) 호와 써 가라하드(Sir Galahad) 호를 폭격하여 화재를 일으키는
큰 피해를 주었다. 영국군의 사상자는 100명을 넘었으며 그 반수 이상이 사망했다. 항공공격은 포클랜드해협의 영국함정에도 가해졌다
. 프리기트함인 HMS 프리마우스(Plymouth) 호는 4발의 1000파운드 폭탄의 명중탄을 맞았으나 다행히 폭발하지 않았다. 양륙함 1척은
격침되고 6명이 사망했다.
이날 10대의 아르헨티나 항공기가 시해리어기에 의해 격추되었다. 이 공중전을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 대위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그날 오후 늦게 나는 고도 3000미터에서 정찰비행을 실시하고 있었다. 써 가라하드호는 엄청난 화염에 쌓여 두터운 기름연기를
뿜고 있었다. 그것은 대단히 비참한 광경이었으며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게 했다. 배의 후반부는 불길에 싸여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분노한 것 같은 색깔을 보이며 태양이 북서쪽으로 기울고 있었으며 구스 그린쪽에서는 이 참극의 현장을 향하여 적의 양륙정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들이 초계공역으로부터 이탈하려고 했을 때 무전기로 모기(Moggy) 대위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이게 뭐냐 공격받고 있지 않은가? 3대 아니 4대의 미라주기다. 디프 나를 따르라!' 그는 그렇게 외치면서 바다를 향해 돌진해갔다.
밤의 어둠이 짙어지고 나는 암흑속으로 빠져드는 듯 했다. 나는 스로틀을 풀파워에 넣고 그를 따라 급강하하여 그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으로 쫓아갔다. 해면에 닿을 듯한 고도까지 하강하여 수평비행에 들어 갔을 때 대기속도는 600노트를 넘어 해리어기는
덜거덕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보기(Bogeys: 식별안된 항공기)가 미사일을 발사한 밝은 불빛 2개가 보였다. 나는 이 2발의
미사일이 뿜어대는 흰연기를 추적하고 있었으나 2개의 커다란 화구가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던중 미라주기가 공중분해되어
바다속으로 처박히는 것이 보였다. 전방에는 몇대의 항공기가 있었으나 그중 어느것이 보기인지 알수 없는 곤경에 빠졌다.
그때 보기가 갑자기 2대의 미라주기를 향하여 기관포 사격을 가하기 시작해 그 탄약이 해면을 때릴 때 순간 나도 1대의 적기를
포착할 수 있었다. 나도 미사일로 적을 겨냥하고 미사일의 시커가 목표를 포착하는 소리를 기다렸다. 조종간 위에 있는
포착버튼을 누르자 헤드 업 디스플레이(HUD)에 녹색의 원이 나타나면서 이어폰에 목표포착음이 들려왔다.
미라주기는 고속으로 더욱이 초저공 비행을 하고 있었으나 포착원은 그 목표를 잡고 놓치지 않았다. 플랩을 올리며 미사일을
발사했다. 밝은 섬광이 비치며 굉음과 동시에 미사일이 발사된 것이다. 미사일은 목표를 확실히 추적하고 있었다. 미라주기는
거리가 너무 가까운 듯 생각되었다. 나는 될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감각적으로는 모든 것이 정지되어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으나 사실 시해리어기는 파도로부터 불과 수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서 1분간 20킬로미터에 가까운 속도로 돌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재차 어둠속에서 섬광과 화구가 비치었다. 적기는 너무 초저공 비행을 하고 있었으므로 미사일의 명중과 동시에 해면과 충돌하여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 순간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연료계기판을 보니 이미 위험한 상태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나는 수직상승후
가능한 한 높은 안전고도를 취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직 항공모함까지의 거리는 멀었으며 최종적으로 어려운 야간착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6월 12일
영국군은 포트 스탠리를 포위하고 마을로부터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아르헨티나 방어진지에 대하여 야간공격을 가했다.
이에 대해 화력지원을 하고 있는 HMS 그라모간(Glamorgan) 호는 임무를 끝내고 퇴거중 육상으로부터 발사된 엑소세 미사일에
피탄되었다. 미사일은 함미 갑판에 명중하여 헬기격납고와 시캣트 미사일의 발사대를 파괴하고 13명의 사상자와 17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러나 배의 안정성에는 문제가 없어 36시간의 보수작업후 전열에 다시 복귀했다.
6월 13-14일
영국군은 포트스탠리 주변 진지에 강력한 야간공격을 가했다. 이에 대하여 아르헨티나군 항공기도 출격했으나 미라주기와
캔베라 각1대씩을 잃었다. 영국군의 시해리어기는 적진공격에 레이저 유도폭탄을 사용했다. 6월 14일 아침 아르헨티나군이
정식으로 항복함으로써 전투는 막을 내렸다.
분석
1982년 6월 14일 정전이 발효됨에 따라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전투는 끝났다. 영국 해군기동부대는 섬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고 상륙부대는 수많은 전투를 치른후 사우드 조지아섬과 포클랜드 제도를 탈환했다.
그후 영국은 이 섬에 수천명의 병력과 F-4팬텀 전폭기, 해리어, 대공미사일부대 그리고 여러척의 군함을 배치했다.
아르헨티나군은 그 이상의 군사행동을 하지 않았으나 전쟁으로 인한 손실을 보충하기위해 항공기, 함정 그리고 육군장비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 분쟁으로 아르헨티나측은 700명이상의 사망자를 포함해 약 2천명의 인적손실을 입었다. 손실중에는 순양함 제네랄
벨그라노 호, 잠수함 산타 페호 그리고 6척 전후의 초계정, 트롤선 화물선이 포함돼 있었다. 아르헨티나공군은 해군항공대를
합하여 전술기 79대의 손실을 인정했으며 이중 49대는 전투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측의 주장은 격추, 노획을 합쳐
103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측의 인적손실은 군인과 민간인을 합하여 255명의 사망자와 700명 이상의 부상자를 냈다고
발표했다. 침몰한 함선은 구축함 2척, 프리기트함 2척, 양륙함 1척, 징용하여 참전시킨 콘테이너선 1척이며 또한 6척이상의
군함과 수송선이 손상을 입었다. 항공기의 손실은 해리어 및 시해리어 9대, 헬기 25대 등이다. 이중 전투에 의한 손실은
해리어 3대, 시해리어 2대, 핼기 12대였다.
이 항공전에서는 재래식 무기와 최신무기가 혼용되었다. 해리어 및 시해리어는 이 분쟁에서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으며
여러 가지 미사일도 역시 그랬다. 해군부대에 대한 격렬하고 계속적인 항공공격도 제2차 세계대전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AM-39 엑소세 공대함 유도탄은 무기로써의 성공적인 결과는 크게 주목받았으며 영국과 아르헨티나 쌍방의 공격은 대부분이
재래식 폭탄, 로켓탄 그리고 기관포를 사용한 전투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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