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디스커버리사 술레이만 대제편 에서 타이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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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족은 황제에게 완전히 종속된,시대에 앞선 직업 군대를 만들어 냈다.이군대의 심장부와 상비군은 데브키르메제도에 의해 충원되는 '오스만 제국의 노예'인 "카푸 쿨루"에 의해 구성되고 있었다.그 정점에는 막강한 힘을 지닌 술탄직속의 "아가와 쿨"이 있었다.
예니체리 부대는 오스만 군의 선봉 부대였다.전쟁에서의 용감성과 야만성 때문에 그들은 무시무시한 적수로 여겨졌다.머리에 쓰고 있는 흰 모자가 말해주듯 그들은 이슬람 수도승인 베크타키스의 신비로운 교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원정을 나가지 않을때는 이스탄불의 안전을 지키거나 국경의 성채를 방어하기도 했다.
오스만군은 보병대와 그 유명한 예니체리 부대로,술레이만 시대에는 기병대6사단으로 나뉘었다.예니체리 부대는 밤낮으로 호위하고 보호해야할 황제에 대한 절대 복종과 엄격한 정신을 훈련받았다.전쟁터에서 그들은 황제를 사방에서 둘러싸고 질서정연하게,그리고 특히 침묵속에서 놀랄만큼 신속하게 움직여서 적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활,창,검으로 무장했고 16세기 초에는 화승총을 갖추게 되었다.-위계질서가 철저히 지키는 예니체리 부대는 상징으로 청동냄비를 갖고 다녔다.그들은 하루에 한번 술탄이 제공하는 식사때면 청동냄비 주위에 모여들곤 했다.냄비를 뒤엎는 행위는 반란을 의미했다.-
미디블에서 제외된 터키 병종
<시파히 기병>
지방군은 이와달리 게국 곳곳에 분산되어 당시에는 야전 군인으로 재결성 되었다.그들의 핵심에는 티마르 제도로 보수를 받는 <시파히 기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오스만 제국의 가장 중요한 군집단이었던 이들은
1527년에는 그 수가 2만명에 이르렀다.
<아킨지>
특수군대 격인 <아킨지>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조상들이 행하던 전투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경기병으로서 적지를 습격하거나 군대가 뚫고 들어가도록 하는 임무를 띠었다.기들은 보수로 전리품을 받았다.
<야야 보조군>
지방에서 충원되는 야야보조군에게는 굴착,토목,발파등의 대공사 작업이 맡겨졌다.
이당시 터키의 군대는 그때까지 유럽에서는 인식하지도 못한 생필품 보급과 관리업무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뿐만 아니라 특별히 개발된 대포까지 소지하고 있었다.오스만 족은 아주 일찍부터 대포의 중요성을 깨달아서 구포(미디블의 박격포로 생각..)를 비롯해 장포와 화약을 이용한 로켓대포까지 온갖 종류의 구경을 갖추고 있었다.대포의 우수한 성능과 극도의 기동성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예니체리 부대의 다른 모습.
1576년 콘스탄티노플 여행기를 펴낸 니콜라드 니콜라이는 예니체리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예니체리:정예부대
예니체리들은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와 진실한 법과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저버리고 가짜 예언자인 마호메트의 뭉매하고 눈먼 교파를 추종하게 된 자들의 수와 일치한다.그 부대는 투르크의 일곱번째 황제인 아무라트2세가 처음으로 창설했다.또한 그들의 수는 아무라트의 아들이자 계승자이며 대도시 콘스탄티노플을 탈취하고 동방제국을 유린한 자인 마호메트에 의해서 늘어나,오늘날에는 1만 2천명에 이르렀고 위대한 투르크의 중추이자 가장강력한 힘이 되었다.
그들덕택에 아무라트와 그 후계자들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동방전체를 전복시켰으며,그동안 그들은 어떠한 전투에서도 패한적이 없다.
예니체리 부대에 소속된 병사들은 대부분 언월도와 단검과 허리에 차는 작은 도끼와 같은 매우색다른 무기를 지니고 있었고,기다란 화승총도 사용한다.다른병사들은 미늘창,짧은 창을 사용한다.
그들은 입술 위에만 수염을 길렀는데,용모를 더욱잔인하고 험악하게 보이도록 옆수염을 길고 두껍고 비죽비죽 서게했다.
수염의 나머지 부분을 모두 면도하면서 머리털도 제일 꼭대기의 한 뭉치만을 남겨놓고 모두 잘라버렸다.이는 그들이 전쟁터에서 패하여 적에게 잡혔을 때 적이 그 남겨놓은 머리털뭉치를 치켜들고 그들의 머리를 자를수 있게하기 위해서였다.이와 같은 용모로 그들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보기 흉하고 끔직스러워서 역사가 증언하는 폭군 칼라굴라(로마 황제로 잔인한 것으로 유명함)못지 않게 험상궂어 보였다.
그들은 아자모글란처럼 1년에 두 차례 두처운 푸른천으로 옷을 해 입는다.
머리에는 특권의 표시로서 기병투구나 보병투구 대신 <자르콜라>라는 하얀 펠트모자를 썼다.이 모자의 앞부분은 장식띠나 세밀한 금빛 장식으로 치장하고,그 위에 투르크산 홍옥이나 비싸지 않은 다른 보석들로 꾸며진,반짝이는 은으로 만들어진 대를 똑바로 올려서 깃털장식 꼭대기에 광채가 나도록 한다.
그러나 이러한 치장은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것은 아니었고 오직 전쟁터에서 자신의 능력을 훌륭히 보이는 자만이 할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편제는 10명단위 100명 단위 1000명단위로 되어 있었다.전쟁에 나가는 10여 명 단위의 예니체리는 한채의 막사에서 생활하고 우두머리가 직무를 분배하는데,나무자르는일,막사짓는일,요리하는 일,보초서는 일 등이 각자에게 분담된다.
이처럼 조직적인 분업에서 그들은 우애있고 평화스럽게 지내며 놀라운 단합을 보인다.그리고 100명 단위의 우두머리는 <불룩스 바시스>라 하고,1000명 단위의 우두머리나 중장은 <세샤야> 또는 <프로토게로>라고 한다.이들 위에 아가라라고 불리는 총 지휘관이 있는데, 그는 강력한 권위와 상징성을 지닌 인물이다.이 우두머리들은 모두 말을 타고 다니며,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예니체리와는 다른 옷차림과 치장을 하고 있다.예니체리의 급료는 동등하지 않다.어떤자는 더 많이 받고 어떤자는 덜 받는데,인물의 가치에 따라 하루에 4아스프르(투르크 은화)에서 8아스프르까지 차이가 있다.
계급이 올라가는 데에는 특혜나 추천이 그다지 많이 작용하지 않는다는걸 알아둘 필요가 있다.급료가 올라가는 것은 전쟁에서의 공훈에 따라 정해진다.말하자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용감한 무훈을 세우는 자는 그에 따른 물질적 행운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예니체리의 집단은 그 숙나 힘 권위에서 점차 강력해 짐에 따라 대담하게 이득을 챙기고 세력을 유지해 갔는데,황제가 죽기라도 한다면 무절제한 그들은 노획물과 약탈품을 탐냈다.
즉 콘스탄티노플,페라(또는 갈리타),아드리아노플,살로니카,부르사,그리고 방대한 투르크의 다른 지역에 거주하면서 지상과 해상의 상품 교역을 위해 이동하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돈과 옷,상품,가구등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는 일을 자행했다.
이후 그들이 새로 즉위한 황제에게 서약을 해야할때 유태인과 기독교인들에게 행한 그들의 약탈과 노획을 황제가 용서하고 즉위선물과 기념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결코 충성을 맹세치 않았다.
과거로 부터 현재와 미래까지 잘 추론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매우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전제(傳制)를 능가한 이러한 관행은 동양의 거대한 제국이 자신이 지원한 세력에 의해 오히려 붕괴되고마는,제국에 작칠 패망을 예고하는 전조라 할수 있다.
-니콜라 드 니콜라이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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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족은 황제에게 완전히 종속된,시대에 앞선 직업 군대를 만들어 냈다.이군대의 심장부와 상비군은 데브키르메제도에 의해 충원되는 '오스만 제국의 노예'인 "카푸 쿨루"에 의해 구성되고 있었다.그 정점에는 막강한 힘을 지닌 술탄직속의 "아가와 쿨"이 있었다.
예니체리 부대는 오스만 군의 선봉 부대였다.전쟁에서의 용감성과 야만성 때문에 그들은 무시무시한 적수로 여겨졌다.머리에 쓰고 있는 흰 모자가 말해주듯 그들은 이슬람 수도승인 베크타키스의 신비로운 교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원정을 나가지 않을때는 이스탄불의 안전을 지키거나 국경의 성채를 방어하기도 했다.
오스만군은 보병대와 그 유명한 예니체리 부대로,술레이만 시대에는 기병대6사단으로 나뉘었다.예니체리 부대는 밤낮으로 호위하고 보호해야할 황제에 대한 절대 복종과 엄격한 정신을 훈련받았다.전쟁터에서 그들은 황제를 사방에서 둘러싸고 질서정연하게,그리고 특히 침묵속에서 놀랄만큼 신속하게 움직여서 적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활,창,검으로 무장했고 16세기 초에는 화승총을 갖추게 되었다.-위계질서가 철저히 지키는 예니체리 부대는 상징으로 청동냄비를 갖고 다녔다.그들은 하루에 한번 술탄이 제공하는 식사때면 청동냄비 주위에 모여들곤 했다.냄비를 뒤엎는 행위는 반란을 의미했다.-
미디블에서 제외된 터키 병종
<시파히 기병>
지방군은 이와달리 게국 곳곳에 분산되어 당시에는 야전 군인으로 재결성 되었다.그들의 핵심에는 티마르 제도로 보수를 받는 <시파히 기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오스만 제국의 가장 중요한 군집단이었던 이들은
1527년에는 그 수가 2만명에 이르렀다.
<아킨지>
특수군대 격인 <아킨지>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조상들이 행하던 전투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경기병으로서 적지를 습격하거나 군대가 뚫고 들어가도록 하는 임무를 띠었다.기들은 보수로 전리품을 받았다.
<야야 보조군>
지방에서 충원되는 야야보조군에게는 굴착,토목,발파등의 대공사 작업이 맡겨졌다.
이당시 터키의 군대는 그때까지 유럽에서는 인식하지도 못한 생필품 보급과 관리업무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뿐만 아니라 특별히 개발된 대포까지 소지하고 있었다.오스만 족은 아주 일찍부터 대포의 중요성을 깨달아서 구포(미디블의 박격포로 생각..)를 비롯해 장포와 화약을 이용한 로켓대포까지 온갖 종류의 구경을 갖추고 있었다.대포의 우수한 성능과 극도의 기동성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예니체리 부대의 다른 모습.
1576년 콘스탄티노플 여행기를 펴낸 니콜라드 니콜라이는 예니체리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예니체리:정예부대
예니체리들은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와 진실한 법과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저버리고 가짜 예언자인 마호메트의 뭉매하고 눈먼 교파를 추종하게 된 자들의 수와 일치한다.그 부대는 투르크의 일곱번째 황제인 아무라트2세가 처음으로 창설했다.또한 그들의 수는 아무라트의 아들이자 계승자이며 대도시 콘스탄티노플을 탈취하고 동방제국을 유린한 자인 마호메트에 의해서 늘어나,오늘날에는 1만 2천명에 이르렀고 위대한 투르크의 중추이자 가장강력한 힘이 되었다.
그들덕택에 아무라트와 그 후계자들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동방전체를 전복시켰으며,그동안 그들은 어떠한 전투에서도 패한적이 없다.
예니체리 부대에 소속된 병사들은 대부분 언월도와 단검과 허리에 차는 작은 도끼와 같은 매우색다른 무기를 지니고 있었고,기다란 화승총도 사용한다.다른병사들은 미늘창,짧은 창을 사용한다.
그들은 입술 위에만 수염을 길렀는데,용모를 더욱잔인하고 험악하게 보이도록 옆수염을 길고 두껍고 비죽비죽 서게했다.
수염의 나머지 부분을 모두 면도하면서 머리털도 제일 꼭대기의 한 뭉치만을 남겨놓고 모두 잘라버렸다.이는 그들이 전쟁터에서 패하여 적에게 잡혔을 때 적이 그 남겨놓은 머리털뭉치를 치켜들고 그들의 머리를 자를수 있게하기 위해서였다.이와 같은 용모로 그들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보기 흉하고 끔직스러워서 역사가 증언하는 폭군 칼라굴라(로마 황제로 잔인한 것으로 유명함)못지 않게 험상궂어 보였다.
그들은 아자모글란처럼 1년에 두 차례 두처운 푸른천으로 옷을 해 입는다.
머리에는 특권의 표시로서 기병투구나 보병투구 대신 <자르콜라>라는 하얀 펠트모자를 썼다.이 모자의 앞부분은 장식띠나 세밀한 금빛 장식으로 치장하고,그 위에 투르크산 홍옥이나 비싸지 않은 다른 보석들로 꾸며진,반짝이는 은으로 만들어진 대를 똑바로 올려서 깃털장식 꼭대기에 광채가 나도록 한다.
그러나 이러한 치장은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것은 아니었고 오직 전쟁터에서 자신의 능력을 훌륭히 보이는 자만이 할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편제는 10명단위 100명 단위 1000명단위로 되어 있었다.전쟁에 나가는 10여 명 단위의 예니체리는 한채의 막사에서 생활하고 우두머리가 직무를 분배하는데,나무자르는일,막사짓는일,요리하는 일,보초서는 일 등이 각자에게 분담된다.
이처럼 조직적인 분업에서 그들은 우애있고 평화스럽게 지내며 놀라운 단합을 보인다.그리고 100명 단위의 우두머리는 <불룩스 바시스>라 하고,1000명 단위의 우두머리나 중장은 <세샤야> 또는 <프로토게로>라고 한다.이들 위에 아가라라고 불리는 총 지휘관이 있는데, 그는 강력한 권위와 상징성을 지닌 인물이다.이 우두머리들은 모두 말을 타고 다니며,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예니체리와는 다른 옷차림과 치장을 하고 있다.예니체리의 급료는 동등하지 않다.어떤자는 더 많이 받고 어떤자는 덜 받는데,인물의 가치에 따라 하루에 4아스프르(투르크 은화)에서 8아스프르까지 차이가 있다.
계급이 올라가는 데에는 특혜나 추천이 그다지 많이 작용하지 않는다는걸 알아둘 필요가 있다.급료가 올라가는 것은 전쟁에서의 공훈에 따라 정해진다.말하자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용감한 무훈을 세우는 자는 그에 따른 물질적 행운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예니체리의 집단은 그 숙나 힘 권위에서 점차 강력해 짐에 따라 대담하게 이득을 챙기고 세력을 유지해 갔는데,황제가 죽기라도 한다면 무절제한 그들은 노획물과 약탈품을 탐냈다.
즉 콘스탄티노플,페라(또는 갈리타),아드리아노플,살로니카,부르사,그리고 방대한 투르크의 다른 지역에 거주하면서 지상과 해상의 상품 교역을 위해 이동하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돈과 옷,상품,가구등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는 일을 자행했다.
이후 그들이 새로 즉위한 황제에게 서약을 해야할때 유태인과 기독교인들에게 행한 그들의 약탈과 노획을 황제가 용서하고 즉위선물과 기념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결코 충성을 맹세치 않았다.
과거로 부터 현재와 미래까지 잘 추론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매우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전제(傳制)를 능가한 이러한 관행은 동양의 거대한 제국이 자신이 지원한 세력에 의해 오히려 붕괴되고마는,제국에 작칠 패망을 예고하는 전조라 할수 있다.
-니콜라 드 니콜라이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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