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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사료

호우명 그릇

작성자빈구름|작성시간11.08.01|조회수271 목록 댓글 0

호우총은 경주시 노서리에 있는 신라 고분으로 1946년 발굴하였는데, 부장품 중에 '을묘년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 그릇이 출토되어 호우총이라 부른다. 이 명문의 서체가 호태왕(광개토 대왕) 비문과 같은 점이 많은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서 만들어 가지고 신라로 들여온 것 같고 그 연대도 이 명문에 의해 415년으로 확정된다. 이는 당시 고구려와 신라간의 교섭이 실제적으로 매우 활발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신라 내물왕 이후 고구려 군의 신라 영토 진주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장수왕 후기인 5세기말에 세워진 중원 고구려 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내물 마립간 이후 김씨의 왕위 세습을 통한 왕권 강화는 이러한 고구려의 군사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참고 사료
......(영락 - 광개토왕의 연호) 9년(399년) 기해년, 백제가 약속을 어기고 왜와 손을 잡았다. 왕이 평양을 살피고자 내려오시니, 신라가 사신을 보내어 왕(광개토대왕)에게 아뢰었다. "왜인이 국경에 가득히 몰려와 성지(城池)를 부숩니다. 이 종은 왕의 백성으로 도와 주기를 바랍니다. " 대왕이 은혜와 자애로움으로 그 충성을 가상히 여겨 사신을 보내 왕의 뜻을 알리게 했다.
10년(400년) 경자년에 교서를 내리시어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어 신라를 도와주게 하였다. 남거성에서 신라성까지 왜가 가득하더니 왕의 군대가 이르니 왜적이 도망을 쳤다 그 뒤를 급히 추적하여 임나 가라의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니 곧 항복하였다.
<광개토왕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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