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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원년 정월 을사일, 왕이 글을 내렸다. "우리 나라 내수사와 각 관청이 노비를 소유하고 물려주는 것은 기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임금이 백성을 볼 때는 하나같이 적자이다. '노'이니 '비'이니 구분하는 것이 어찌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는 뜻이겠는가? 왕실 노비 3만 6974명과 (중앙)관청 노비 2만 9093명을 양민이 되도록 허락하라. 승정원에 명을 내려 노비 문서를 모아 돈화문 밖에서 불태우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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