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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사료

정신대(군대위안부)

작성자빈구름|작성시간13.01.24|조회수20 목록 댓글 0

내가 또다시 이리 되는구나 - 어느 정신대의 증언


1940년에 나는 만 열여섯 살이 되었다. 그해 늦가을쯤의 어느날 나는 하루코네 집에 가서 놀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자 나는 하루코네 집을 나서 우리집으로 향했다. 얼마 걷지 않아서였다. 일본 군복을 입고 기다란 칼을 차고 왼쪽 어깨에 빨간 완장을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갑자기 내 팔을 끌며 일본말로 무어라고 하였다. 당시는 순사라는 말만 들어도 무서워하던 때라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가 끄는대로 끌려갔다. …

우리는 당시 중국 동북부 도안성이라는 곳에 내렸다. 여기에서 같이 온 남자는 우리를 군용 트럭이 있는 데로 데러다 주고는 돌아갔다. 트럭에는 군복을 입은 남자가 세 명 있었다. 군인들은 모두 운전대 앞에 앉았고 우리 둘은 뒤에 타고 갔다. 트럭을 타고 한참 갔다. 트럭은 마을과 허허벌판을 지나 외딴집 앞에 와서 멈추었다. 우리가 내리자 많은 여자들이 나와 우리를 맞아주었다. 모두 조선인 여자들이었다. 그 중에는 서른 대여섯 먹은 남자와 여자가 있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이 여자들을 관리하는 사람들로 우리는 이들을 언지, 아저씨라고 불렀다.

먼저 온 여자들은 20명 가량 됐다. 나는 '왜 이런 곳에 여자들이 많을까?'하고 궁금해하면서도 피곤해서 그 날은 별 생각없이 잤다. 다음날 나는 여자들에게 "이 곳이 뭐하는 데냐?"고 물었다. 그러자 누가 "너희들은 돈받고 안 왔냐?"고 물었다. 내가 "왜 그러는데요?"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는 "여기는 위안소로 군인들 받는 데다"라고 했다. 내가 "군인들 받는 데면 받는 데지 우리와 무슨 상관있냐?"라고 했더니 그 여자는 아주 답답해하면서 "군인들이 자는 곳이다"라고 했다. 그 여자들의 설명이나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나는 군인들이 자면 잤지 그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온지 사흘이 지나자 주인은 나와 일행에게 각각 방 하나씩을 주었다. 거기에는 이불 하나, 요 하나, 그리고 베개 둘이 있었다. 이 날부터 우리는 군인들을 받아야 했는데 이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여자들이 왜 그토록 안타까워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날 처음 정조를 빼앗겼다. 눈앞이 캄캄하고 기가 차서 까무라치고 울기만 했다.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신대연구회 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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