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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사료

신라의 국학-유학 교육

작성자빈구름|작성시간11.08.17|조회수150 목록 댓글 0

국학

 예부에 속하였는데 신문왕 2년에 설치하였고, 경덕왕 때 그 명칭을 태학감으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이전 명칭으로 회복시켰다.

 경은 1명을 두었는데 경덕왕 때 그 명칭을 사업으로 개칭하였다가 혜공왕 때 다시 경으로 바꾸었다. 관등은 다른 경과 동일하다. 박사[약간명으로서 정원은 정하지 않았다.]와 조교[약간명으로서 정원은 정하지 않았다.]와 대사 2명을, 진덕왕 5년에 두었는데, 경덕왕 때 그 명칭을 주부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다시 대사로 바꾸었다. 관등은 사지로부터 나마까지이다. 사가 2명인데 혜공왕 원년에 2명을 증원하였다.

 교수하는 방법은 [주역], [상서], [모시], [예기], [춘추좌씨전], [문선]으로 구분하여 과정을 삼았으며, 박사와 조교 1명이 [예기], [주역], [논어], [효경]을 가르치거나, 혹은 [춘추좌전], [모시], [논어], [효경]을 가르치거나, 혹은 [상서], [논어], [효경], [문선]을 가르쳤다. 

 모든 학생들이 독서함에 있어서, 3품 출신으로서 [춘추좌씨전]을 읽고, [예기]나 [문선]의 뜻을 통달하고 동시에 [논어], [효경]에 밝은 자는 상급이 되고, [곡례], [논어], [효경]을 읽은 자는 중급이 되었으며, [곡례], [효경]만을 읽은 자는 하급이 되었다. 5경, 3사, 제자백가서를 전부 통달한 자는 등급에 관계하지 않고 발탁하였다. 경우에 따라 산학박사와 조교 1명으로 하여금 [철경], [삼개], [구장], [육장]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대사 이하의 관등으로부터 작위가 없는 자에 이르기까지 나이가 15세에서 30세 된 자들이 모두 학생이 되었다. 학업은 9년을 한도로 하되 만일 재질이 노둔하여 인재가 될 가능성이 없는 자는 퇴학시켰다. 재주와 도량은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성숙되지 못한 자는 비록 9년을 초과하더라도 국학에 있게 하였고, 작위가 대나마와 나마에 이른 뒤에는 국학에서 나가게 된다.

                                                                     삼국사기    잡지7   직관(職官)상

 

* 음영을 넣은 부분은 원성왕 4년때 실시한 독서삼품과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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