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진(應神)천황 15년에 백제왕이 아직기(阿直伎)를 보내 좋은 말 2필을 바쳤다. ··· 아직기는 또 경전(經典)을 잘 읽었으므로 태자인 우지노와키이라쯔코(토道稚郞子)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 때 천황이 아직기에게 "혹 너보다 뛰어난 박사가 있느냐"고 물으니, 왕인(王仁)이란 자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카미쯔키노노키미(上毛野君)의 조상인 아라타와케(荒田別)과 카무나키와케(巫別)을 백제에 보내어 왕인을 불렀다. 16년 2월에 왕인이 왔다. 태자 우지노와키이라쯔코는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여러 전적(典籍)들을 배웠는데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日本書紀 10, 應神天皇 15年, 16年
또 백제의 國主 照古王이 牧馬 1필과 牝馬 1필을 阿知吉師를 통해서 貢上하였다(이 阿知吉師는 阿直史等의 祖이다). 또 橫刀와 大鏡을 貢上하였다. 또한 백제국에 “만약 현인이 있으면 貢上하라”고 한 고로, 命을 받아 貢上하였는데, 이름이 和邇吉師였다(이 和邇吉師는 文首等의 祖이다). 그리고 《論語》 10권과 《千字文》 1권을 합하여 11권을 이 사람을 통해서 貢進하였다
《古事記》 중권, 應神天皇 20년 己酉
여기에 나오는 ‘和邇吉師’와 《日本書紀》에 등장하는 ‘王仁’이 과연 동일 인물인가 하는 점에 대해 대체적으로 동일 인물로 받아들이고 있다.
王仁은 백제국 사람인데, 본래 漢 高帝의 末孫이다. 고제의 후손에 鸞이라는 자가 있고, 鸞의 후손에 王狗라는 자가 있었으며, 狗의 손자가 (王)仁이 된다. 仁은 제반 경전에 통할하였고, 또한 사람의 相을 살피는 데도 능했다. 應神天皇 15년에 백제 久素王(仇首王의 와전으로 생각된다)이 阿直歧라는 사람을 보내왔는데, 그 당시 그는 경전을 잘 읽었으므로, 皇子 菟道稚郎子의 스승이 되었다. 天皇이 “너보다 더 나은 博士가 있느냐”하고 묻자, 대답하기를 “왕인이라는 자가 있는데, 나보다 더 뛰어납니다”하였다. 皇帝가 백제에 사신을 보내어 왕인을 불렀다. 다음해 2월에 (왕)인이 천자문을 가지고 來朝하여서, 皇子 菟道稚郎子에게 孝經과 論語를 전수했다. 皇子가 가르침을 받아 여러 경전을 배워 통달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 이로부터 本朝(필자주: 일본)에 유교가 행해지기 시작하였다. (王)仁은 難波津歌를 읊어 仁德의 寶祚를 축하하였는데, 歌父로 일컬어졌다. (王)仁이 죽자 牛頭天皇과 合祭하였고, 書首等의 시조가 되었다
《海東繹史》 권67, 王仁 附 阿直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