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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사료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

작성자빈구름|작성시간11.08.18|조회수398 목록 댓글 0

이 비석은 화강암 한 쪽 면을 곱게 다듬어 가로와 세로로 각각 줄을 쳐 정사각형 칸(한 칸은 크기가 7x7㎝ 가량)을 만든  다음 그 안에 평균 4.5cm 크기의 한자를 1행에 14자씩 새겨 넣고 있다. 여러 군데가 파손됐기 때문에 원래 모습은 알 길이 없으나, 현존 비석만 보면  4행에 걸쳐 모두 56자가 유려한 문체로 확인되고 있다. 사택지적비 원문 전부와 해독문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寅年正月九日奈祗城砂宅智積慷身日之易往慨體月之難還□金以建珍堂조玉以立寶塔□□慈容吐神光以送雲□□悲貌含聖朗以

 

(◎인년 정월 9일, 내지성의 사택지적은 해가 쉬이 감을 슬퍼하고 달이  어렵사리 돌아옴이 서러워 금을 캐어 귀중한 당을 짓고 옥을 파서 보배로운 탑을  세웠다. 우뚝 솟은 자애로운 모습은 신령한 빛을 토해 구름을 보내고, 뾰족하니 슬픈 모습은 성스러운 밝음을 머금어...)

 

 

백제 의자왕 때활약했던 사택지적이 남긴 비. 1948년 부여읍 관북리(官北里) 도로변에서 발견되어 현재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발견된 것은 비의 일부로서, 현존 높이 102`cm, 너비 38`cm, 두께 29`cm이다. 양질의 화강암에 가로 세로로 정간(井間)을 구획하여 그 안에 평균 4.5`cm 크기가 되는 글자를 음각하였다. 1행은 14자로 되어 있는데 현존하는 것은 앞 부분에 해당하는 4행까지로서 모두 56자이다. 비의 오른쪽 윗부분에 봉황문이 새겨져 있으며 붉은 칠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 문체는 중국 육조시대의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이며, 자체는 웅건한 구양순체(歐陽詢體)로서 문장이나 자체가 모두 세련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654년(의자왕 14)으로 추정되는 갑인년 정월에 나지성(奈祗城)의 사택지적이란 사람이 늙어가는 것을 탄식하여, 불교에 귀의하고 원찰을 건립했다는 것이다. ‘사택’이란 성은 백제의 대성팔족(大姓八族) 중의 하나인 ‘사씨(沙氏)’와 같은 것이며, 《일본서기》에도 백제에서 온 사신 ‘대좌평(大佐平) 지적’이란 기록이 나오기 때문에 이 비는 백제의 최고급 귀족이 남긴 중요한 금석문 자료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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