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정치체제의 틀을 마련한 성종은 왕위에 오르자 곧(982년) 경관 5품이상의 고위 관료에게 시무책을 올리도록 하였다. 이에 응하여 올린 상소 가운데 하나가 그 유명한 최승로의 시무 28조이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유교정치이념에 입각한 중앙집권적 귀족정치를 실현하자는 것이며, 그의 건의는 대부분 성종에 받아들여졌다.
출전 : 고려사 권 93 열전 제 6 최승로전
최승로는 경주사람이다. 아버지 최은함은 신라에서 벼슬하여 원보에 이르렀다.
최승로는 성질이 총명하고 민첩하며 학문을 즐겨하고 글을 잘 지었다. (줄임)
성종 원년에 정광 행성관 어사 상주국이 되었다. 이때 왕이 구언하니 최승로가 글을 올렸다.
" (줄임) 우리 태조가 건국하신 이래의 사실 중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5대 임금님의 치적에서 정치와 교화가 잘되고 잘못된 것을 삼가 기록하여 거울 삼을 만한 일, 경계할 만한 일들을 조목별로 아뢰겠습니다. (줄임)
첫째, 우리나라가 3한을 통일한 이래 47년이 지났는데도 병사들이 아직까지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고 군량을 많이 소모하는 것은 서북지방이 오랑캐와 접하여 지킬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임금님께서는 이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마헐탄을 국경으로 삼자는 것은 태조의 뜻이요 압록강가의 석성을 국경으로 삼자는 것은 중국에서 정한 것입니다. 앞으로 전하께서 판단하시어 두곳 중에서 중요하고 해로운 곳을 골라 국경을 정하소서. 그 지방 사람들 중에서 말달리고 활 쏠 줄 아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수자리 서게하고 그들 중에서 2,3명의 대장을 뽑아 통솔시키면 중앙군으로 교대로 경비하는 고생을 면하게 할 수 있으며 군량과 말먹이를 바삐 운반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둘째로 전하께서 공덕재를 베풀고 몸소 차를 갈기도 하고 보리를 찧기도 하신다고 하는데 성체를 근로하심은 매우 애석한 일입니다. 이 폐단은 광종때에 시작된 것입니다. (줄임)
원컨대 군왕의 체통을 정대하게 가지시고 쓸데없는 일은 하지 마옵소서.세째로 조정의 호위군졸이 태조때에는 궁성에서 숙위하는 일 뿐이어서 그 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광종때에 와서 참소를 믿고 장군,재상들을 책벌하며 의심이 많아 군졸을 늘였습니다. 경종때에 와서 약간 줄였으나 아직도 그 수가 많습니다. 바라건대 태조때의 법을 준수하시어 용감한 자들만 남기고 나머지를 돌려 보내면 원망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나라에도 저축이 생길 것입니다.
네째로 간장과 된장을 길에서 무상으로 나누어 주시는데 이러한 조그만 혜택은 널리 베풀 수 없는 것입니다. 상벌만 명확하게 시행하시어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면하시면 족히 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소한 일은 임금이 정치하는 체통이 아니니 그만 두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로 우리 태조는 큰 나라를 섬기는 일에 많은 관심을 쏟았으나 몇해에 한번씩 사신을 보내어 예방할 뿐이었는데 지금은 예방하는 사신 뿐만 아니라 무역을 하기 위해 보내는 사신들도 많으니 중국에서 천하게 여기게 될까 두렵습니다. 또한 왕래하다가 배가 부서져 죽는 자도 많으니 지금부터는 예방하는 사신으로 하여금 무역을 겸하게 하고 그 밖의 매매는 일체 금지하십시오
여섯째로 불보의 돈과 곡식을 여러 절의 중들이 각 주,군에 사람을 보내어 그것을 관리하게 하고 매년 이자를 받아 가 백성들을 괴롭히고 소요스럽게 하니 모두 금지하십시오.
일곱째 태조께서 삼한을 통일하신 후에 지방관을 둘려고 하였으나 초창기에 일이 번잡하여 미처 둘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방의 토호들이 공무를 빙자하여 백성들을 침탈 억압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지방에 외관을 두십시오.
여덟째 여철 같은 평범한 중이 자신의 화도 피할 수 없는데 어느 겨를에 다른 사람에게 복을 줄 수 있겠습니까. 여철을 산으로 돌려 보내시어 웃음거리를 만들지 마옵소서.
아홉째 신라 때에는 공경,백관,평민들의 의복,신발,버선 등이 각각 품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귀천을 구별하고 존비를 분변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라건대 백관들에게 명령하여 조회때에는 일체 중국과 신라의 제도에 의거하여 난삼을 입고
열째로 중들이 군,현을 왕래하면서 객관,역사에 유숙하고 관원과 백성들을 매로 때리면서 영접과 공급이 완만하다고 꾸짖어도 관원과 백성들이 그 중이 혹시 왕명을 띤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감히 말도 못한다고 합니다. 폐단이 이것보다 심한 것이 없으니 이제부터 중들이 객관,역사에서 유숙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서 이 폐단을 없애야 하겠습니다.
열한번째로 중국의 제도를 준수해야 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사방의 풍속,습관이 각각 그 지방 성질에 따라야 하며 모두 변경하기는 곤란한 것 같습니다. 예악,시서의 교훈과 군신,부자의 도리는 마땅히 중국의 본을 받아 비루한 것을 고쳐야 할 것이나 그 밖에 거마,의복 등의 제도는 자기 나라 풍속에 따르게 하여 사치와 검박을 적절하게 할 것이고 무리하게 중국과 똑 같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열두번째로 여러 섬의 주민들이 바다가운데에 살면서 먹을 것이 없어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광록시에서 무시로 물품을 징발,추구하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궁곤하게됩니다. 바라건대 주군의 례에 준하여 그들의 공역을 공평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열세번째로 우리 나라에는 봄에 연등을 거행하고 겨울에 팔관을 개최하느라 사람들을 징발하여 부역이 아주 번다하니 바라건대 부담을 경감하여 백성의 힘이 펴도록 하셔야 하겠습니다. 또한 각종 우상을 받드는데 노력과 비용이 아주 많이 들며 한번 쓴 다음에는 곧 파괴하여 버리니 아주 쓸 데없는 일입니다. 하물며 우상이란 장례가 아니면 쓰지 않는 것이므로 일지기 서조(西朝)의 사신이 와서 보고 상서롭지 않은 것이라 하여 낯을 가리고 지나간 적도 있으니 바라건대 이제부터는 이것을 쓰는 것을 허가하지 마옵소서.
열네번째로 성인이 하늘과 사람을 감동시킨 것은 그가 순일한 덕이 있고 사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항상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신하를 예로써 대우한다면 누가 자기의 성심과 정력을 다 바치어 조정에 나와서는 좋은 계책을 진언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국정을 보좌할 것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이른바 임금은 례로써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매일같이 근신하며 스스로 교만하지 마시고 아래 사람을 대하실 때에는 공손한 것을 생각하시며 혹시 죄를 범한자가 있거던 그 경한 죄나 중한 죄를 모두 법에 의하여 논죄하게 하소서. 이렇게 하시면 태평의 위업을 당장에라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열 다섯째로 태조께서는 궁중에 복무하는 내속 노비를 제외하고는 교외에 나가 살면서 밭을 갈고 세금을 바치게 하였는데 광종때에 이르러 불교행사를 많이 함으로써 역사가 날로 많아지니 밖에서 살던 노비들까지 불려 들이어 역사를 시켰으며 내궁의 비용으로써는 공급이
부족하여 창고의 미곡까지 소비하게 되었으며 이 폐단이 전하의 시대에 와서도 오히려 제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구에서 수많은 말을 기르고 있으므로 그 비용이 아주 많이 소비되어 백성들이 그 해를 입고 있습니다. 만약 국경에 사변이 일어 난다면 군량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할 것이니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오직 태조의 제도에 의하여 궁중의 노비와 구마의 수를 작정하시고 그 나머지는 모두다 외방으로 보내십시오.열여섯째로 세상 풍속이 덕을 쌓는다는 명목으로 각자 소원에 따라 사찰을 많이 건축하고 있는데 그수가 매우 많습니다. 또 서울과 지방의 중들이 자기의 저택을 영조하고자 다투어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광범히 주,군의 웃자리에 앉은 아전들을 권유하여 공사에 백성들을 징용하기를 나라의 부역보다 더 급하게 부리므로 백성들이 심한 고통을 받고 있으니 바라건대 이런 일을 엄금하여 백성들의 고역을 제거하여 주소서
열일곱번째로 근래 사람들이 지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그저 재력만 있으면 모두다 저택을 짓는 것부터 하고 있습니다. 토호들이 큰 저택 짓기에 내기를 하다가 그 제도를 넘게 되니 이것은 한 집으 재력을 탕진케 할 뿐만 아니라 실로 백성을 괴롭게 하는 것이니 그 폐해가 아주 많습니다. 바라건대 예관에 명령을 내리시어 신분의 높고 낮은 정도에 따라 가옥 제도를 칙정하고 경향에서 모두 준수할 것을 명령하며 이미 지은 건물로서 이제도에 지나친 것은 철거할 것을 명령하여 장래를 경계하도록 하소서
열여덟번째, 불경을 필사하고 불상을ㄹ 조작하는 것은 다만 오래도록 전하게만 하면 될 것인데 하필 진귀한 보물로 장식하여 도적들의 마음을 자극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엄금하여 그 폐단을 없애소서
열아홉번째 삼한 공신의 자손들에 대하여 교시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표창 등용한다고 하나 벼슬으 받은 사람이 없으며 그들이 천인들 틈에 섞여 있기도 하고 신진 관료들이 그들을 함부로 모욕하므로 불평,불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그러운 교시에 의하여 공신등급에 따라 그 자손들을 채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스무번째로 불교를 숭상하는 것은 다만 내생의 인과를 심을 뿐이요 당대에 이익되는 것은 적으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요결이 여기에 있는 것 같같지 않습니다.유불선 3교는 각기 목적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므로 이것을 혼동하여 하나로 할 수는 없습니다. 즉 불교를 믿는 것은 수신의 본이요 유교를 행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을 구하는 것인 바 수신은 내세의 복을 구하는 것이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오늘의 일입니다. 오늘은 가깝고 내세는 먼 것이니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구하는 것은 역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종묘 사직의 제사도 오히려 법전과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도리어 산천제사요 별에 대한 제사요 등등의 행사를 매우 번잡스럽게 진행하고있으니 이는 넘무 자주할 것이 아닙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인민의 힘을 안식시키며 그들의 환심을 얻는다면 그 복은 기도하여 얻는 복보다도 더 많을 것입니다.스물한번째 양천지규는 그 유래가 오랩니다. 전하께서는 미ㅐ천한 자가 웃사람을 능욕하지 못하도록 하고 노비와 상전의 관계에 대해서도 중도를 잡아 처리하십시오.
스물두번째로 지금 판결을 내릴 때 될수록 상세 명백하게 하여 후회가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전대에 결정한 것은 구태여 다시 추궁하여 분쟁의 단서를 열어 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머지 6개조는 사기에 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