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8권, 8년(1871 신미 / 청 동치(同治) 10년) 4월 26일(을유)
중군 어재연이 서양군과 싸우다 전사하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일전에 양이(洋夷)들이 광성(廣城)을 침범할 때 진무 중군(鎭撫中軍) 어재연(魚在淵)의 생사에 대해서 비록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수신(守臣)이 이미 중군을 대신 임명하여 줄 것을 청한 것을 놓고 보면, 절개를 지켜 싸우다 죽은 것 같습니다.
다시 사실이 등문(登聞)되거든 응당 조정에서 구휼(救恤)하는 은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어병수(魚秉琇)가 지금 수성 찰방(輸城察訪)에 있으니, 인정과 사리로 보아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해조(該曹)로 하여금 구전(口傳)으로 차대(差代)하여 당일로 하직인사를 하고 말을 주어 내려 보내게 함으로써 제때에 교대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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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8권, 8년(1871 신미 / 청 동치(同治) 10년) 4월 28일(정해)
적들이 물러간 후의 정황을 보고받다
진무사(鎭撫使) 정기원(鄭岐源)이,
‘이달 25일 적들이 물러간 다음 휘하의 군관(軍官)을 파견하여 자세히 조사하게 했더니,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에, 「찰주소(札住所)의 광진(廣津) 보루에 달려가 보니, 보루는 텅 비었고 흙 참호는 모두 메워졌기에, 즉시 마을사람들을 동원하여 흙을 파냈더니 중군(中軍) 어재연(魚在淵)과 그의 친동생 어재순(魚在淳),대솔 군관(帶率軍官) 이현학(李玄鶴), 겸종(傔從) 임지팽(林之彭), 본영(本營)의 천총(千總) 김현경(金鉉暻)이 피를 흘리고 참호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 나머지 여러 시체들은 몸과 머리가 썩어서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광성진 별장(廣城津別將) 박치성(朴致誠)의 시체는 조수가 나간 다음 강변에서 드러났는데 인신(印信)을 차고 있었으므로 주워서 바칩니다.
별무사(別撫士) 유예준(劉禮俊)의 시체는 아직 찾지 못하였는데 붙잡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별무사 이학성(李學成)의 보고 내용에,
「싸움이 벌어졌을 때 중군은 직접 칼날을 무릅쓰고 대포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선두에서 군사들을 지휘하여 적들을 무수히 죽였으며, 김현경은 손에 환도를 잡고 이쪽저쪽 휘둘러대며 적을 죽이고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별무사 유예준은 중군 가까이에서 바싹 따라다니다가 총에 맞게 되었고, 어영청(御營廳)의 초관(哨官) 유풍로(柳豐魯)가 앞장에서 사기를 돋구었으며, 이현학이 큰소리로 적들을 꾸짖는 것을 목격했지만 저도 적들한테 부상당하여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해가 진 뒤에야 간신히 빠져 돌아왔습니다.」 하였습니다.
중군 형제의 시체는 장리(將吏)를 보내어 염습해서 영구(靈柩)를 본고장으로 가져가는 예식을 각별히 돌보도록 하였으며, 전사한 장수와 병졸들의 이름은 그가 말한 데 따라 성책(成冊)해서 올려보냅니다.
중군 어재연의 겸종 김덕원(金德源)이 칼날을 무릅쓰고 도장을 주어가지고 와서 바쳤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죽은 사람이 53명(名), 부상당한 사람이 24명이다.】
어재연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우(性于)이다. 아버지는 어용인(魚用仁)이다.
1841년(헌종 7) 무과에 급제하여 1864년(고종 1) 장단부사를 거쳐 1866년에 공충도(公忠道)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이해 로즈(Rose) 제독이 강화도를 침략하는 병인양요가 발생하자 병사를 이끌고 광성진(廣城鎭)을 수비하였다.
이후 회령부사(會寧府使)로 부임하였다가 1871년(고종 8) 2월 도총관·금위영 중군에 임명되었고, 이해 미군이 강화도를 침략하는 신미양요가 발생하자 삼군부(三軍府)에서 순무중군(巡撫中軍)으로 추천하여 강화도에 급파되었다.
6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광성진에서 배수진을 치고 수비하던 그는 6월 11일 덕진진을 함락한 미군의 총공세에 맞서 고군분투하였다.
수륙양면작전을 전개하는 미군을 맞아 야포사격을 전개하다가 육박전에 돌입하여서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가 장열하게 전사하였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칼을 들고 싸우다가 칼이 부러지자 납으로 된 탄환을 적에게 던지며 싸웠으며, 적의 창에 난자되고 머리를 베어갔다’고 적고 있어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조정에서는 병조판서 겸 삼군부지사(三軍府知事)에 추증하고, 그와 함께 백의종군한 아우 어재순(魚在淳)에게는 이조참의를 추증하였다. 시호는 충장이다.
[출처] 어재연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