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첨 강민첨은 진주 진강(晉州-晉康) 사람이다. 목종(穆宗) 때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현종(顯宗) 때에 동여진(東女眞)이 청하(淸河), 영일(迎日), 장기현 등 여러 고을을 침공하였으므로 강민첨이 문연(文演), 이인택(李仁澤), 조자기(曹子奇) 등과 더불어 도부서(총지휘부)를 구성하고 각 주, 군으로 가서 그 고을들의 군대를 독려하여 적을 격퇴하였다. 그 후 내사사인(內史舍人)으로 임명되고 다시 대장군으로서 강감찬(姜邯贊) 의부 원수로 되어 거란의 소손녕(蕭遜寧)의 군대를 흥화진(興化鎭)에서 크게 격파하자 소손녕이 부대를 거느리고 곧바로 수도로 진격하므로 강민첨이 그것을 추격하여 자주 내구산에서 또 여지없이 격파하였다. 그 공으로 응양 상장군(鷹揚上將)으로 선발되고 주국 훈위를 받았으며 우산기 상시(右散騎常侍)로 전직되었으며 추성 치리 익대 공신 칭호(推誠致理翊戴功臣號)를 받았다. 이듬해에 지 중추사 병부상서로 있다가 현종 12년(1010년)에 죽으니 왕이 3일간 조회를 멈추고 태자 태부(太子太傅)를 추증하였다. 강민첨은 서생(書生) 출신이므로 비록 무술은 그의 능사가 아니었으나 의지가 굳고 과감하여 여러 번 전공을 세워 드디어 현달하였다. 후에 왕의 교시에 의하여 공을 기록하고 그의 아들 강단(旦)에게 녹과 직위를 올려 주었다. 문종(文宗)이 즉위(卽位)하자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렸다. “현종 9년(1018)에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 병부상서 지 중추 원사(兵部尙書知中樞院事) 강민첨이 적군을 맹렬히 공격하여 반령(盤嶺)벌에서 대승전을 거두니 거란이 북으로 도망가면서 창과 갑옷을 버린 것이 길에 가득 찼으며 포로와 살해된 적병의 수가 만 명이나 되었다. 그의 공을 추억하면 표창함이 합당하니 공신각에 초상을 붙이어 후대들을 권장하게 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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