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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인물

민애왕(김명)의 즉위와 피살(삼국사기) 2003-04-14

작성자빈구름|작성시간13.01.27|조회수105 목록 댓글 0

○<閔哀王{敏哀王}> 立. 姓<金>氏, 諱<明>, <元聖大王>之曾孫也, 大阿 <忠恭>之子. 累官爲上大等, 與侍中<利弘>, 逼王殺之, 自立爲王. 追諡考爲<宣康大王>, 母<朴>氏<貴寶>夫人爲<宣懿太后>, 妻<金>氏爲<允容王后>. 拜伊 <金貴>爲上大等, 阿 <憲崇>爲侍中. 二月, <金陽>募集兵士, 入<淸海鎭>, 謁<祐徵>. 阿 <祐徵>在<淸海鎭>, 聞<金明>簒位, 謂鎭大使<弓福>曰: "<金明>弑君自立, <利弘>枉殺君{吾} 父, 不可共戴天也. 願仗將軍之兵, 以報君父之 ." <弓福>曰: "古人有言, 見義不爲, 無勇. 吾雖庸劣, 唯命是從." 遂分兵五千人, 與其友<鄭年>, 曰: "非子, 不能平禍亂." 冬十二月, <金陽>爲平東將軍, 與<閻長>·<張弁>·<鄭年>·<駱金>·<張建榮>·<李順行>統軍, 至<武州><鐵治縣{鐵冶縣}> . 王使大監<金敏周>出軍迎戰. 遣<駱金>·<李順行>, 以馬軍三千突擊, 殺傷殆盡.

趙炳舜. 『新羅敏哀大王石塔記銘』.趙炳舜. 『三國史節要』.趙炳舜.『三國史節要』.
민애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명이다. 그는 원성대왕의 증손이며, 대아찬 충공의 아들이다. 그는 여러 종류의 관직을 거쳐 상대등이 되었던 바, 시중 이홍과 함께 왕을 핍박하여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것이다. 그는 아버지를 추존하여 선강대왕이라 하고, 어머니 박씨 귀보부인은 선의태후라 하고, 아내 김씨를 윤용왕후라 하였으며, 이찬 김 귀를 상대등으로, 그리고 아찬 헌숭을 시중으로 임명하였다.
2월, 김 양은 군사를 모집하여 청해진으로 들어가 우징을 만났다. 아찬 우징은 청해진에서 김 명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문을 듣고 청해진 대사 궁복에게 말했다.
"김 명은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고, 이홍은 임금과 아비를 함부로 살해하였으니, 그들과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 원컨대 장군의 군사를 빌려, 임금과 아비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궁복은 "옛사람의 말에 '정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는 자는 용기 없는 자'라고 하였으니, 내 비록 용렬하나 명령에 따르겠다"라고 대답하고, 마침내 군사 5천을 그의 친구인 정 년에게 주면서 "자네가 아니면 이 화란을 평정하지 못하리라"라고 말하였다.
겨울 12월, 김 양이 평동장군이 되어 염 장·장 변·정 년·낙 금·장 건영·이 순행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무주 철야현에 도착하였다. 왕은 대감 김 민주로 하여금 군사를 출동시켜 싸우게 하였다. 이에 김 양이 낙 금과 이 순행에게 기병 3천을 주어 돌격케 하여, 거의 모두를 섬멸하였다.

○二年, 春閏正月, 晝夜兼行, 十九日, 至于<達伐>之丘. 王聞兵至, 命伊 <大昕>·大阿 <允璘>·< 勛>等, 將兵拒之. 又一戰大克, 王軍死者過半. 時, 王在西郊大樹之下, 左右皆散, 獨立不知所爲, 奔入<月遊宅>, 兵士尋而害之. 群臣以禮葬之, 諡曰<閔哀{敏哀}> .

趙炳舜. 『新羅敏哀大王石塔記銘』.
2년 봄 윤정월, 김 양의 군사가 주야로 행군하여, 19일에 달벌에 도착하였다. 왕은 김 양의 군사가 도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찬 대흔과 대아찬 윤린·의훈 등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이에 대항하도록 하였다. 김 양의 군사가 다시 한번 싸워 대승하였다. 왕의 군사 중에는 사망자가 절반이 넘었다. 이 때 왕이 서쪽 교외의 큰 나무 밑에 있다가, 측근들이 모두 흩어지고 혼자 남게되자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월유택으로 도주하였다. 군사들은 그를 찾아내어 죽였다. 여러 신하들이 예를 갖추어 장사 지내고, 시호를 민애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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