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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인물

충청도 홍산의 서인 이몽학이 군사를 모아 난을 일으키다

작성자빈구름|작성시간13.02.02|조회수58 목록 댓글 0

선수 30, 29(1596 병신 / 명 만력(萬曆) 24) 71(병인)

 

충청도 홍산(鴻山)의 서인(庶人) 이몽학(李夢鶴)이 군사를 모아 난을 일으켰다.

몽학은 종성(宗姓)의 서족으로서, 호서(湖西)에서 종군할 적에 조련 장관(操練將官)이 되어 홍산 무량사(無量寺)에 우거하면서 선봉장 한현(韓絢) 등과 친교를 맺었다.

몽학은 어리석고 아무 재능이 없었으나 한현은 교활하고 일에 밝았다.

당시 기효신서(紀效新書)의 속오법을 가지고 군사를 배치하고 기량을 훈련시켰는데 한현은 권인룡(權仁龍김시약(金時約) 등과 함께 모두 서인으로 응모하여 함께 선봉장이라 호칭하면서 어사 이시발(李時發)에 소속되어 호서의 군사조련을 관할하였는데 민심은 탄식과 원망으로 차 있었고 크고 작은 고을에 모두 방비가 없음을 보고 이 틈을 타서 난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이때 현이 마침 부친상을 당하여 홍주(洪州)에 있다가 우선 몽학을 시켜 거사하도록 하고 자신은 내포(內浦)에서 서로 호응하기로 약속을 정하였다.

몽학은 무량사의 굴속으로 잠입하여 중들과 더불어 기치(旗幟)와 기장(器杖)을 만들었다.

호서의 풍속에 흔히 늘 동갑회(同甲會)를 만들었는데, 이에 그 패거리를 시켜 계()를 만든다고 선전하고 동네 어귀 들판으로 모이게 했다.

갑회(甲會)란 노소 귀천을 막론하고 동갑마다 깃발을 세우고 그 갑년을 써 놓으면 무리들은 각자 그 동갑을 찾아 모여 들어 술을 마시며 즐기는 것이다.

몽학은 절에서 출병(出兵)하여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깃발을 세우고 걸상에 앉아 각()을 불고 북을 치면서 큰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동갑 모임 중에서 공모한 장정이 먼저 나와 칼을 뽑아 들고 무리를 데리고 달려나갔다.

몽학은 그들에게 속임수로 꾀기를 이번에 일으킨 의거는 백성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한 일이다. 거역하는 자는 죽음을 당할 것이고 순종하는 자는 상을 받으리라.’고 하니 모두들 좋다고 떠들면서 그를 따랐으며, 사람마다 스스로 고관대작이 될 것으로 여기고 성불(聖佛)이 세상에 나왔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승려와 속인을 장군으로 나누어 배치하고 문관과 무관 등의 청현직으로 가칭하니 사족 자제와 무뢰배들이 많이 그들에게 붙었다.

그날 밤에 홍산현(鴻山縣)을 습격하여 현감 윤영현(尹英賢)을 사로잡고영현은 무자년에 생원시에 장원하여 왕자 사부(王子師傅)가 되어 광해군(光海君)이 그에게 배웠으며 그 뒤에 지금의 관직으로 전직되었다.또 임천 군수(林川郡守) 박진국(朴振國)문과 출신이다.사로잡았다. 다 항복하여 몽학에게 붙으니 상빈(上賓)으로 대우했다.

잇따라 청양(靑陽정산(定山) 6개 고을을 함락시켰다. 수령들은 모두 먼저 도망치고 아전과 백성들은 적들의 호령에 따랐고 술과 음식을 차려서 맞이하였으며 군사를 뽑아 그들에게 가세하였다.

이에 소문만 듣고도 호미를 던지고 그들에게 투항하는 자가 줄을 이어 군사가 수만 명에 달하자 소문을 퍼뜨리기를 충용장(忠勇將) 김덕령(金德齡)과 의병장 곽재우(郭再祐홍계남(洪季男) 등이 모두 군대를 연합하여 도우며, 병조 판서 이덕형(李德馨)이 내응한다.’ 하니, 중외(中外)가 놀라 민심이 술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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