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8권, 즉위년(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9월 5일(기축)
의금부가 아뢰기를,
“죄인 유영경을 유배지에서 자결하도록 하였습니다. 전례에 사사(賜死)하는 사람은 의금부의 낭청이 약물을 싸가지고 가서 를 유시하고 그대로 사약을 주어 죽게 하였는데, 자결하게 하는 경우는 근거할 만한 전례가 없으며, 또 옛일을 들어서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의금부 낭청만을 보내어 전지를 유시하고 자결하도록 해야 합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유영경은 비단 선조의 대신일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과거에 사부였다. 공의에 몰리어 내가 끝까지 비호하지 못한다마는, 그렇다고 차마 사약을 내리지도 못하겠으니, 이 계사에 따라 낭청을 보내어 유시하고 자진하게 하라.”
하였다.
광해군이 즉위하자마자 곧 광해군 대신 영창대군의 옹립을 주장했던 소북의 우두머리 유영경이 죽음을 당하는 모습입니다.
유영경 (두산 백과 사전 요약)
소북(小北)의 영수. 본관 전주(全州). 자 선여(善餘). 호 춘호(春湖).
선조 때 춘당대문과(春塘大文科)에 급제하여 정언 등 여러 청환직을 역임하고 임진왜란 때는 사간으로서 초유어사(招諭御史)가 되어 많은 토병(土兵)을 모집하고 호조참의에 올랐다.
황해도 관찰사를 지내고 정유재란 때 중추부지사로서 가족을 먼저 피란시켜 처벌되었다가 이듬해 병조참판이 되었다.
동인이 남인 ·북인으로 분열되자 북인에 가담하였다.
대사헌,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지내고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전양부원군(全陽府院君)에 봉해지고,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이 무렵 북인이 대북(大北) ·소북(小北)으로 분당될 때 소북파의 영수로서 선조 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세자로 옹립하려 하였다.
1608년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鄭仁弘) ·이이첨(李爾瞻) 등 대북 일파의 탄핵을 받고 경흥(慶興)에 유배, 사사(賜死)되었는데, 인조반정 뒤에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