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110권, 8년(1616 병진 / 명 만력(萬曆) 44년) 12월 7일(계묘)
당흥 부원군(唐興府院君) 홍진(洪進)이 죽었다.
홍진은 자는 희고(希古)이고 명유(名儒) 홍인우(洪仁佑)의 아들이다. 동생 홍적(洪迪)과 더불어 명망이 있었다.
방정하고 강개(剛介)하였으며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서는 즉시 홍문관에 뽑혀 들어가 정자(正字)가 되었고, 청현직을 두루 거쳐 사림의 추중을 받았다.
임진년 변란 때에 어려운 길을 임금을 수행하여 충성과 노고가 가장 현저하였다.
당시에 중국으로 들어가자는 의논이 있었는데, 선묘(宣廟)께서 도승지 이항복(李恒福)으로 하여금 임금을 따라 요동으로 들어갈 사람을 모집하게 하자, 홍진이 강개한 마음으로 앞장서서 명에 응하였다. 선묘 갑진년에 호성 공신(扈聖功臣)으로 부원군에 책봉되었다.
이조 판서를 네 번이나 거쳤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성품을 하늘로부터 타고 났다.
광해군 때에 정치가 어지럽자, 겸대한 직책을 모두 버리고 문을 닫아걸고 들어앉아 손님도 받지 않고 지내면서 오직 서사(書史)로 스스로 즐겼다. 다만 성품이 치우치고 급하여 남을 포용하지 못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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