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는 삼사(三司)와 마찬가지로 개부(開府)를 할 수 있는 최고 품계(品階)를 나타내는 관직 명칭이다.
중국 후한(後漢)의 5대 황제인 상제(殤帝)의 연평(延平) 원년(106년)에 등태후(鄧太后)의 오빠인 등즐(鄧騭)을 거기장군(車騎將軍)과 의동삼사(儀同三司)로 임명하면서 관직 명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위(魏)에서 황권(黄權)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로 임명하면서 개부(開府)의 명칭이 사용되었다.
개부(開府)는 본래 스스로 관아를 설치하고 속관(屬官)을 두는 일로 한(漢) 나라에서는 사도(司徒), 사마(司馬), 사공(司空)의 삼사(三司)와 대장군(大將軍)의 지위에 있는 관리에게만 허용했다. 때문에 개부(開府)는 삼사(三司)와 마찬가지의 대우를 나타냈다.
위(魏)와 진(晋) 시대에는 속관(屬官)을 거느리고 있는 장군(將軍)이 많아 이들에게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관명이 주어졌다. 남북조(南北朝) 시대부터는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와 의동삼사(儀同三司)의 관직명을 구분했으며, 상개부의동대장군(上開府儀同大將軍)과 개부의동대장군(開府儀同大將軍) 등으로 구분해 사용하기도 했다.
수(隋)와 당(唐) 시대에는 문산관(文散官) 정일품(正一品)을 나타내는 관명(官名)으로 사용되었고, 송(宋) 나라에서는 사왕(嗣王), 군왕(郡王) 국공(國公) 등과 함께 종일품(縱一品)의 품계(品階)로 사용되었다.
원(元) 시대까지 관직 명칭으로 사용되다가 명(明) 나라 때 관제(官制) 개혁으로 폐지되었다.
북조(北朝)에서는 고구려(高句麗) 등과 외교 관계를 맺을 때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의 관위(官位)를 주었다. 북주(北周)의 고조(高祖)는 고구려와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577년 고구려 평원왕(平原王, 재위 559~590)에게 개부의동삼사대장군(開府儀同三司大將軍)과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의 관위(官位)를 주었다. 당(唐) 태종도 백제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扶餘隆, 615~682)에게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와 대방군왕(帶方郡王)의 관위(官位)를 주었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가 문산계(文散階)의 최고 품계를 나타내는 관직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1076년(문종 30) 문산계(文散階)의 관위(官位)를 정할 때 종1품으로 하였는데, 이는 정1품의 관위가 없던 당시에는 고려 29관위 중 최고의 품계였다.
1356년(공민왕 5)에는 정1품 상의 품계명으로 하였고, 그 뒤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특진보국삼중대광(特進輔國三重大匡) 등으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