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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귀빠진 날

작성자tycoon|작성시간26.06.17|조회수14 목록 댓글 0

귀빠진 날?

친구 생일 축하 모임을 가졌다.

코로나도 있고 해서 한동안 어울리지 못했는데, 친구들끼리 단독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한 명이 귀빠진 날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잖아도 다들 마음은 주저주저하면서도 몸은 근질근질했는데 좋은

구실이 생긴 거다. 모처럼 모여 한잔했다. 

자연스레 생일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침에 미역국은 얻어먹었냐”부터 “이제 우리 여생에 생일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 하는 쓸쓸한 대화까지 나누다 생각지 않게 많은 걸 깨닫게 됐다.

쓸데없이 한 친구가 물었다.

“생일을 왜 귀빠진 날이라고 부르는지 알아?”

“그러게 코나 눈 빠진 날도 아니고, 왜 하필 귀빠진 날이지?”...

태아는 머리부터 세상에 나오는데 산모에겐 그때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산부인과도 제대로 없던 시절, 시골집에서 순산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들은 해산할 때 댓돌 위에 고무신을 벗어놓고

‘내가 다시 저 신을 신을 수 있을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태아는 머리가 어깨너비보다 크다. 그래서 일단 귀가 보이는 게 중요했다.

귀가 빠져나오면 몸통과 다리는 순조롭게 따라나오니 출산은 다 한 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한 친구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 그런데 생일은 어머니가 가장 고생한 날인데 왜 생일 축하는

저희들끼리만 하지?”

결혼을 해서 아내가 아이를 낳는 걸 보며 생일의 주인공은 자기가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생일에는 꼭 어머니 아버지에게 미역국을 끓여 드리거나

맛있는 걸 사드리고 선물을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그의 아이들도 자신의 생일에는

그렇게 따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결혼 후 내 생일에 부모를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어머니가 멀리 계시긴 하셨지만 아내와 아이들하고만 즐겁고 오붓하게

생일상을 먹었다.

어머니는 오히려 내 생일에는 가족과 좋은 데 가서 외식하라고 전화를

하시곤 했는데, 난 정작 어머니에겐 스웨터 하나 선물한 적이 없다.

다른 때는 문안 전화를 곧잘 하면서도 막상 생일에는

“저를 낳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어요”라는 감사 전화 한 번 한 적이 없다.

생일은 내 것인 줄만 알았다.

친구는 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먹는 관습은 출산의 고통을 겪으며

생명을 주신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의미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귀빠진 날에는 자기가 미역국을 먹는 게 아니라, 귀를 빼준

어머니에게 미역국을 끓여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진위는 모르겠으나 귀는 귀퉁이에 붙어 있어서 ‘귀’가 됐다고 한다.

사람이 잘났다고 말할 때 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반듯하다고 할까.

눈, 입, 코도 있는데 왜 귀(耳)를 앞세웠을까?

귀는 얼굴의 핵심 지점도 아니고 변방에 달려있는데도 말이다.

그건 그만큼 귀가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맨 앞에 간 거라고 한다.

늘 남과 세상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귀엽다’는 단어는 남의 말을 잘 귀담아듣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는

우스개까지 곁들였다.

말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만, 듣는 것은 가려들을 수는 없다.

듣는 것은 그래서 신의 뜻이라고 한다.

남이 내 험담을 할 때 ‘귀가 가렵다’는 표현을 생각해 보라.

입은 하나인데, 눈과 귀가 두 개인 건, 말하는 것보다 듣고 보기를

두 배 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공자는 나이 60을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이라 했다.

이는 원래 무슨 말을 들어도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한다는 의미이지만,

무슨 말을 들어도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관용이 진짜 의미라고 한다.

선현들은 나쁜 말을 들으면 곧장 달려가 시냇물에 귀를 씻는다 했다.

난 이순의 나이가 넘었지만 그 경지에 언제나 도달할 수 있으려나.

늘 내 얼굴 귀퉁이에 붙어 있지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귀, 많은 걸

생각하고 깨닫게 됐다~

- 좋은 글 '귀빠진 날'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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