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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내적치유자료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과

작성자박현준|작성시간12.04.23|조회수211 목록 댓글 0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과

          하늘 아버지의 마음


나의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

  사실 생존해 계시는 아버님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무척 송구스럽다. 나의 아버님은 필자가 아직도 집 한채 없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가장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와서는 제법 그럴듯한 교회를 섬길 줄 알았는데 작은 개척교회를 섬기는 것을 무척 못마땅해 하신다.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어머니와 사이에 갈등도 많이 있다. 언젠가 여러 번 편지를 통해서 전도하기 위해서 필자가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 편지 내용이 아버님한테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내용이었던 모양이었다. 신앙을 강요하는 것으로 생각하셨다. 저에게 직접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어머님께서는 저에게 조용하게 충고하시면서 그런 편지를 더 이상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의 아버님은 평범한 농부로 일생을 살아오셨다. 지금도 농사를 짓고 사신다. 어린 시절에 아버님이 산에서 논에 넣을 풀을 베시다가 잘 익은 산딸기 한 줄을 베어서 나에게 주신 적이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다. 아버님의 사랑을 처음 느낀 것은 그 때로 기억이 된다.

  나에게 있어서 아버님은 늘 무서운 분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아버님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만 늘 가까이 가기가 두렵고 떨리는 분이셨다. 어느 이른 봄철에 아버님의 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그 일은 언 손을 녹이면서 흙과 볏짚을 이긴흙뭉치를 담장을 쌓는 아버님에게 올려 드리는 일이었다. 마지못해 하는 저의 행동이 못마땅했던지 화를 내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성적표를 받아 왔는데 너무나 형편없어서 화를 내시던 아버님의 얼굴이 여전히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일 때문에 자극을 받아서 그런 지 알 수 없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공부를 잘했다.

  내가 중학교 시험에 떨어졌을 때 아버님이 눈물을 흘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아버님도 울 줄 아시는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사실 아버님은 울음이 많으신 분인데 주로 속으로 울지 않았는가 생각을 해본다. 나의 아버님은 성장기에 많은 상처를 겪었다. 그 상처는 친모(할아버지의 후처)의 곁을 떠나서 큰어머니(할아버지의 본처) 보호아래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큰 아픔이 있었다. 아버님의 어린 시절의 상처는 자신의 울음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안으로 삼켜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하늘 아버지의 마음

  나의 평생의 삶이 욥이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기 위한 순례의 행진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순례의 길을 마치고 예수님의 품에 안기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가 정혼한 처녀인데 임신할 것이라는 것을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듣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절)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마리아의 고백을 나도 할 수밖에 없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단 한가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그 동안 내가 경험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나누고 싶다.

  어린 시절 다니던 시골교회 벽에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어느 날 저녁에 순박한 시골아이였던 나에게 이 말씀이 가슴에 확 들어왔고 하늘 아버지를 나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 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분으로 알게 되었다.

  교회에 나간지 몇 해 되었을 때 교회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책 한 권을 받았다. 그 책의 겉 표지에는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안고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멀리서는 많은 양무리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안겨있는 그 양은 병들어 보였고, 약하고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그 양은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 땅에 오신 하늘 아버지이신 주님께서는 상한 마음을 가지셨다. 내 마음이 상해 있을 때 동일한 상한 마음으로 나에게 오셔서 나를 안아주시는 분으로 알게 되었다.

  여러 해 전에 저희 가정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죄를 짓고 엄청난 죄책감 속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지날 때였다. 저희 가정은 그 때 미국 캘리포니아 LA에서 머물고 있었다. 참회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어느 날 가까운 동산에 올랐는데 그 곳에 갑자기 대형 십자가가 나타났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시는 주님께서 그 십자가에 달리셨다. 주님은 고통 가운데서도 머리를 숙인 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무거운 죄책감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나를 향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님께서 보여주셨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 후에도 여전히 하늘 아버지가 나의 흉악한 죄까지도 용서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의 지은 죄에 대한 댓가를 물으신다는 두려움에 쌓여 있었다. 그런데 하늘 아버지는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물 속에 빠져 가는 나의 둘째 아들을 알지 못하는 천사(두 명의 미국인 청년)를 통해서 구해주셨다. 이 때 나는 온전하게 무조건 용서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경험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의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로서 노아 

  노아는 참 좋은 아버지이다.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일에 세 아들들을 동참시킬 만큼 권위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로 포도주를 담그고 그 포도주를 먹고서 취해서 벌거벗고 텐트에 누웠다. 그 하체를 보고서 놀렸던 함을 저주해서 불행한 민족의 조상이 되게 했다. 술에 취했던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한 아들의 생애를 저주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이것은 많은 단맛을 갖고 인정받았고 은혜를 받았으며 당대에 의인이었고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가 가진 아픔이다. 물론 함의 불행은 궁극적으로 함 자신이 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아버지의 실수도 있었다. 여기에서 가장 온전해 보이지만 자녀에게 아픔을 주는 세상의 아버지들의 하나의 모델을 본다.  


아버지로서 야곱

  야곱은 어떤 아버지였을까. 어쩌면 야곱은 일반 아버지의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어머니의 특별한 편애 가운데 성장했다. 감정이 풍부했다. 그의 생애는 감정에 이끌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물론 그의 신앙이 성숙됨에 따라 감정이 열정으로 바뀐다. 그는 자식들을 참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부인 중에 라헬을 더 사랑했던 것처럼 라헬이 낳은 두 아들인 요셉과 베냐민을 더 사랑했다.  이러한 편애가 그로 하여금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게 하는 아픔을 겪게 했다. 사랑하는 단맛이 있었지만 결국 편애하는 신맛도 가지고 있었다.

  야곱은 인생의 경륜이 더해지면서 신맛과 단맛을 동시에 주는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에서 단맛만을 주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꿔진다. 그의 아버지로서의 생애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벧엘에서의 하늘 아버지와의 만남, 얍복강가에서 하늘 아버지와의 만남, 엘벧엘에서의 하늘 아버지의 만남, 이러한 만남은 그로 하여금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한다. 그래서 애굽에서 임종할 때 그의 손은 하늘 아버지의 손처럼 자녀들을 축복하는 손으로 바꿔진다.


아버지로서 사울왕

  사울왕은 어떤 아버지였을까. 그는 늘 불안정하고 쫓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불안정한 마음은 두 마음을 가지고 항상 흔들리는 마음이고 내면보다는 외면을 지향하는 마음이다. 두 마음을 품고 흔들리다 보면 중심을 잃어버리고 나중에 혼돈이 되고 심한 경우에는 정신 이상자가 된다. 사울왕은 실제로 다윗을 계속 추격하다가 말기에는 정신착란증세를 일으킨다. 사람이 내면보다 외면을 지향하면 영적인 것보다는 육적인 것을 찾게 되고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더 찾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사울왕은 그 아들 요나단과 딸 미갈에게 보여준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인생의 모델링(규격품)을 보여준다. 이 규격품을 보고서 자녀들은 성장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들 요나단은 육신의 아버지 사울왕의 모습을 전혀 닮지를 않았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그는 오히려 하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 아버지에게 신맛을 물려받았는데 요나단에게는 오히려 단맛이 나왔다. 그러나 사울의 딸 미갈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물론 그녀에게 단맛도 있었지만 신맛도 있었다. 그녀는 남편 다윗이 궁지에 몰렸을 때는 도망가도록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다윗의 심장에 견딜 수 없는 못을 박았다. 다윗이 천하를 평정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오벳에돔의 집에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에 들어오게 했다. 이 때 그는 너무 기뻐서 겉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러나 미갈은 그것을 저주한다. 마치 사울왕이 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고 했던 것처럼 미갈은 말로서 다윗의 심장을 찔렀다(삼하 6:16-23). 이것이 어디에서 왔을까. 잘못된 사울왕의 아버지의 마음이 미갈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이었다. 분노와 저주, 혈기와 의심이 되물림을 한 것이다. 

  사울왕은 자식들에게 어떻게 했는가. 그는 정략적으로 딸 미갈의 혼인을 빙자해서 부하장군 다윗의 목숨을 끊으려 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딸을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마음을 가진 육신의 아버지가 많이 있다. 그가 아들 요나단에게 한 말을 한 번 살펴보자.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 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삼상 20:30). 다윗을 옹호하는 아들 요나단에게 사울은 포악한 말을 한다. 이것이 신맛을 남겨주는 잘못된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이다.

  모든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이 사울왕의 마음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본인들에게도 불행이고 자녀들에게도 불행이다. 그러면 사울왕에게 하늘 아버지의 마음은 전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에게도 하늘 아버지의 마음은 어느 정도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여기에 사울왕의 비극이 시작된다.


아버지로서 다윗왕

  다윗은 아버지로서 어떠했을까. 다윗이 어떤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성경이 말하는 다윗의 아버지 마음은 어떤 것일까.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첫 번째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셨다. 그래서 죽게 되었다. 이 때 자기 아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일주일 동안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는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자녀를 사랑하는 모든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은 알든지 모르든지 그 근원은 하늘 아버지에게서 시작한다.

  다윗왕의 가정에 가장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왕자 암논이 배다른 여동생 공주 다말을 간음한 것이었다. 이 사건의 원인 제공을 다윗왕이 했다. 그가 암논의 요청을 받고서 다말에게 그 오라비 암논을 위해서 요리해서 음식을 제공하도록 명령했다. 이 사건의 결과로 다말은 겁탈을 당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 다윗왕은 나중에 모든 일을 알고서 심히 분노했다(삼하 13:22). 그러나 문제는 암논을 징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다윗왕의 분노로만 그쳐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윗은 아들을 위해서 사랑의 매를 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이것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은 아니다. 필요한 징계를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이다. 결국 이 사건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나타난다.

  아들 압살롬이 왕이 되겠다고 아버지 다윗왕을 궁에서 몰아내고 목숨을 찾아서 나섰다. 아버지와 아들의 군대가 서로 밀고 밀리다가 최후의 결전을 하게 되었다. 다윗왕은 전쟁터로 나가는 장군들에게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고 말한다(삼하 18:5).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다윗은 가지고 있었다. 배반한 아들을 끝까지 감싸주고 긍휼히 여기는 좋은 아버지의 상을 본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절규한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 18:33). 여기에 다윗의 위대함이 나타나 있다. 아들을 대신해서 죽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것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다. 하늘 아버지는 죄악에 빠져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버림받은 아들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친히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것이 거룩한 사랑이고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솔로몬은 아버지를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왕상 3:6). 아버지를 잘 알고 있는 아들 솔로몬이 본 다윗의 모습이다. 성실, 공의, 정직한 마음을 다윗은 가지고 있었다.

  다윗도 일반 아버지처럼 자녀들에게 신맛을 지닌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맛을 지닌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생애를 살았고 이스라엘 역대 인물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    


단맛을 가진 하늘 아버지의 마음

  누가복음 15장 11-23절에 나오는 탕자와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읽고 또 읽어도 마음속 깊숙이 감동을 준다. 아버지가 아비의 집이 싫다고 떠나간 방탕한 아들을 지극히 사랑한다.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이 육신의 아버지는 온전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하셨다. 이 아버지는 방탕한 아들에게 어떤 일을 했는가.

  그는 자신의 재산을 요구하는 아들에게 아무 꾸지람 없이 나누어주었다. 허랑 방탕하여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품꾼의 하나로 여겨 달라면서 아들이 눈물을 흘리면 회개할 때 그 눈물을 씻기며 이 아들을 위해 잔치를 열어 주었다. 그는 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부당한 환대에 노여워하는 큰아들을 설득하며 타이른다.

  이 아버지는 어떠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었는가. 그는 자녀들 개개인의 마음과 특성을 잘 헤아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방탕한 아들로 인한 재물의 손해에 연연해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집을 떠났지만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의 죄와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실패한 아들을 그대로 받아주는 용납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완고한 큰아들을 조용하게 설득하는 유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아버지는 어떤 맛을 낼까. 그는 단맛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전혀 신맛이 없는 단맛만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 어떤 아버지도 단맛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아버지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맛을 가지고 있다. 온전한 하늘 아버지만 단맛을 가지고 있다.

  탕자는 아버지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가면 그곳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음란과 탐욕과 사치와 방탕과 게으름만이 넘쳤다. 이것들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가 곤고한 날을 보내고 있을 때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받았던 단맛이 생각이 났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가진 사랑 때문에 나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품꾼의 하나로는 받아 주겠지 하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를 가장 귀한 아들로 받아 주셨다. 단맛을 주는 아버지는 우리를 회복시켜주시는 분이시다. 


여러분의 육신의 아버지를 사랑하세요.

  전남 여도 초등학교 5학년 고선경 양이 쓴 동시 가운데 이런 글이 있다.

  우리 아빠는 왜/ 안경을 쓰실까?/ 나를 더 자세히 보시려고/ 안경을 쓰시겠지// 우리 아빠는 왜/ 손이 크실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려고/ 큰 손이 있으시겠지// 우리 아빠는 왜 등이  넓으실까?/ 나를 안아 주시려고/ 등이 넓으시겠지// 우리 아빠는 왜/ 키가 크실까?/ 내가 어디에 있나 찾으시려고/ 키가 크시     겠지/

  꿈많은 어린 소녀가 그리고 있는 아름다운 아버지의 모습, 우리 모든 사람이 갖고 싶은 아버지의 이상이다. 한 가정에 온전한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그 가정에 행복을 보장해 주는 보증수표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못한 아픔이 있다.

  부르스 탐슨의 저서 “내 마음의 벽”(Wall of My Heart, 도서출판 예수전도단)에는 ‘리디아’라는 한 자매가 소개된다. 이 자매는 꿈 많던 고등학교 시절에 어머니가 불치의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그는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하게 된다. 그 결과로 좌절과 분노를 겪게 되고 수치심과 죄의식에 쌓이게 된다. 그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하늘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진다.

  얼마 동안의 고통과 질고의 삶을 살다가 그는 어떤 선교단체의 훈련을 통해서 하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접하게 된다. 그가 만난 하늘 아버지는 육신의 아버지와 다른 진정한 사랑의 아버지였다. 사랑의 하늘 아버지를 만나니까 그녀의 마음은 변화가 되었다. 그 안에 단포도의 단맛이 흐르게 되었다. 그녀로 하여금 육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했고 그를 긍휼히 여기게 했다.

  이 세상에 온전한 육신의 아버지가 있을까.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닮은 육신의 아버지는 아무도 없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려는 육신의 아버지는 참 좋은 아버지이다. 나의 아버지가 단맛을 전혀 갖지 않고 신맛을 주는 분이라면 그 분을 어떻게 해야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그 분을 사랑해야 하고 존경해야 한다.

  언젠가 필자가 만났던 자매가 생각이 난다. 그녀는 육신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자매의 얼굴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그 자매의 얼굴의 밝음은 육신의 아버지를 하늘 아버지의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바라볼 때 이루어진다. 그 육신의 아버지도 하늘 아버지의 경륜과 사랑 가운데 있다. 우리의 삶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따르는 순례자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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