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ian of Color Marc Chagall
The Circus, 1967
Courtesy Bouquinerie de I'lnstitut(부키느리드랭스티튜), Paris
>> 서커스(The Circus)
1920년 모스크바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를 시작으로 샤갈은 계속해서 광대, 곡예사 악사, 서커스 배우 등을
대상으로 여러 연작들을 그렸고, 소형 콜라주에서 대형 작품에 이르기까지 이를 주제로 한 창작물들을 생의
마지막 날까지 끊임없이 제작하였다. 샤갈이 서커스를 주제로 대형 과슈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22년 프랑스
에 정착한 후부터였다. 예술 출판업자이자 화상인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샤갈을 자주 초대했다.
특히 볼라르는 샤갈에게 [라퐁텐 우화]나 성서 메시지 연작과 마찬가지로 서커스를 주제로 하여 연작을 그려
볼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볼라르의 죽음으로 인해 서커스 석판화 연작은 1967년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샤갈은 광대와 곡예사, 그리고 그들의 색채와 행동이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도록
이끌었다고 말한다. 서커스 단원들은 중력과 평형의 법칙을 초월한 것처럼 보인다.
서커스를 그린 작품에는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가는 인물들, 일상적인 세계가 아닌 샤갈의 사적 세계에 속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또한 그림은 더욱더 반짝반짝 빛나고, 색채와 질감이 풍부하게 표현된다.
한마디로 서커스를 소재로 하는 그림은 마치 진짜 서커스가 그러하듯, 현실 세계 바깥에 존재하게 된다.
서커스를 주제로 하는 그림과 석판화는 형태와 재질면에서도 몽환성과 창의성이 돋보인다.
마치 관습적이지 않은 소재를 다룰 때에는 화가 자신도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따라서 서커스를 소재로 그려진 작품들은 한마디로 환상의 재현이며, 이 환상적인 이미지 속에 사랑하는 연인,
수닭 혹은 당나귀, 바이올린 연주자, 물고기와 같은 샤갈 고유의 이미지들과 광대, 곡예사, 조련사와 동물,
사자 혹은 말 등 서커스적 요소들이 서로 결합되고 혼합되어 나타난다. 이 때문에 1967년 출판된 석판화 연작
에 포함된 작품들은 서로 전혀 관련이 없는 장면과 이미지들을 콜라주 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장면들 간의
비논리성은 각 장면의 개성을 약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작품을 몽환적인 이미지로 탈바꿈시키는 효과를 낸다.
<하얀 곡마사와 광대>를 비롯한 일부 작품들은 밤풍경 속에 놀랄 만큼 심각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뒷배경은 샤갈의 유년 시절을 상징하는 비테프스크라 추정된다. 이처럼 서커스 인물들은 서커스가 지닌 우아
하고 가벼운 특성과 현실 세계의 어려움을 대비시키기 위해 창조된 존재들이었다. 20세기의 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샤갈 역시 광대도 예술가의 일종이라는 데서 동질감을 느꼈고, 따라서 이들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샤갈에게 있어서 예술가의 일차적인 소명은 곡예사나 광대처럼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즐겁게 하는 것이었다.
예술가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화가나 광대나 악사나 모두 대중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Acrobat(곡예사), 1914
Albright-Knox Art Gallery, Ruffalo, New York
이 작품은 광대, 곡예사, 무희, 곡마사 등 샤갈이 서커스 인물을 주제로 평생에 걸쳐 제작한 긴 연작 가운데
첫 작품에 해당된다. 이 작품에서 시작된 서커스 연작 작업의 대표작으로는 1920년에 그려진 모스크바 <유대 인 예술극장 소개>, 1930년대 파리에서 제작된 서커스 연작(샤갈의 판화 작품을 출판했던 볼라르는 파리에
위치한 겨울 서커스에 좌석을 가지고 있어 샤갈을 자주 공연에 초대하였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도 소개된
1960년대 석판화 연작 및 유화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샤갈은 이 시기 사이에도 서커스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그렸다. 샤갈이 서커스 세계에 얼마나 매료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날씬하고 유연한 주인공은 어두운 배경 속에서 도드라져 보이며, 이는 곡예사의 몸의 곡
선과 들고 있는 굴렁쇠의 형태를 돋보이게 한다. 피부처럼 몸에 착 달라붙은 의상에서 보이는 화려한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들은 작품에 생기 있고,강렬하고, 즐거운 기운을 불어넎는다. 이 곡예사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화폭을 가로지르며 뛰고 있는 도중에 포착되었다. 샤갈의 작품들 대부부에서는 정적이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
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마치 곡예사가 도약하는 순간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은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스냅사진처럼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작품만이 가진 독특한 점이라 할 수 있다.
The Blue Circus(푸른 서커스), 1950
Tate:Presented by the Artist 1953, London
이 작품은 초대형 작품을 위한 스케치로 샤갈의 다른 서커스 작품과는 다르게 매우 비전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보통 서커스를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는 비록 사실주의가 거의 배제되었다 할지라도 적어도 광대와 곡예
사가 공연을 펼치는 무대가 나타나거나 공중 위를 날고 있는 곡마사와 말의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이러한 사실주의가 모두 사라졌다. 작품 중심에 위치한 여성 곡예사는 아무 것에도 연결
되어 있지 않다. 저 아래 보이는 말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곡예사는 마치 물속의 물고기처럼 유연한 모습으로 공중을 빠른 속도로 가로지른다. 인어처럼 호리호리한
그녀의 몸과 작품 상단에 보이는 물고기는,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수중세계 속에서 민첩하고 자유롭게 움
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작품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파란색 역시 대다수의 서
커스 작품들과는 다른 점이다. 이 작품 속에는 관객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으며, 서커스 기구도 공중그네를
비롯한 몇 개 밖에는 없다. 해 안에 달이 포함된 모습은 이 작품의 비현실성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단서이다.
이 작품에서 서커스는 현실 바깥의 세계, 공기 중의 세계 또는 바다 속과 비슷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구실
에 불과하다. 인어의 모습을 띤 곡마사 혹은 곡마사의 모습을 띤 인어는 샤갈이 가끔 작품 속에 등장시켰던
합성된 인물상 중 하나이다. 남자와 수닭의 합성 인물, <바바의 초상>에 등장하는 당나귀 머리를 가진 남자
가 여기에 해당된다. 한편 곡마사는 새처럼 공중을 나는 가운데 물고기의 모습을 닮아간다.
물고기의 영역인 수중요소와 새의 영역인 공기는 이렇게 뒤섞인다. 물과 공기는 각각 물고기와 새들이 인간
은 할 수 없는 자유로운 움직임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샤갈은 평소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 말하곤 했다. 샤갈은 곡마사가 물고기를 만나 유연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이 서커스 장면 속에서 자유와
구속 받지 않는 삶을 향한 자신의 깊은 열망과 관련된 무언가를 발견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White Circus Rider and Clown(하얀 곡마사와 광대), 1965
Private Collection, Monaco
이 작품은 샤갈이 50년대 말 서커스를 주제로 제작했던 수많은 그림 및 석판화 연작들에 속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서커스를 주제로 한 작품들의 대부분이 선명하고 화려한 색을 사용하여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내는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어두운 색채가 주를 이룬다. 작품의 어두운 배경 속에는 샤갈이 태어난 고향인 비테
프스크와 관련된 추억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배경이 샤갈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비테프스크임을 알아
볼 수는 있지만 밤 풍경을 그린 탓에 명확하게 나타나지는 않고, 단지 러시아 정교회 성당과 그 종탑만이 이
도시가 비테프스크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곡마사와 광대의 왼쪽에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마저도 희미하게만 보이고, 달 아래에도 한 사람이 있고 말의 머리 아래에도 한 사람이 있
지만 빛은 오로지 광대와 곡마사만을 비추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둘은 마치 꿈속에서 튀어나온 유령처럼
보이고, 어두운 밤의 모습은 달의 존재로 인해 더욱더 강조되고 있다. 곡마사는 상상 속의 창조물이 가질법
한 몽환성을 지니고 있으며, 광대는 손에 들고 있는 화려한 꽃다발에도 불구하고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며
슬퍼 보인다. 곡마사는 관객 쪽을 응시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관객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그녀의 시선에는 초점이 없다 이 두 인물은 이 세상으로부터 실종되고 제거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서커스의 한 장면을 통해 샤갈은 잃어버린 세계, 유년 시절, 즉 그 자신의 유년기에 대한 향수를 표
현하고자 하였다. 밤의 비테프스크, 그늘 속의 연인들이 마치 비테프스크가 이제는 그에게서 멀어졌다고 말
하고 있는 듯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그리워하는 샤갈의 향수는 그림 전체를 지배하고, 여곡마사와 광대는
이러한 샤갈의 향수에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At the Circus(서커스에서), 1968~1971
Private Collection, Monaco
샤갈은 늘 서커스를 좋아했고 지속적으로 그림의 소재로 사용하였다. 그는 광대와 곡예사에 대한 애착을 이
야기하면서, 서커스의 예술가들과 거장 예술가들 간에 느끼는 유사성에 대해 언급한 적도 있다.
20세기의 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샤갈 역시 광대도 예술가의 일종이라는 데서 동질감을 느꼈고, 따라서
이들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샤갈에게 있어서 예술가의 일차적인 소명은 곡예사나 광대처럼 사람들을 매혹시
키고 즐겁게 하는 것이었다. 예술가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화가나, 광대나, 약사나 모두 대중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서커스는 존재의 고통이나 어려움과는 거리가 멀다. 서커스는 환상, 유쾌함, 웃음, 즐거움으로 대변되는 대
중적인 오락거리이다. 샤갈이 화폭 위에 재현하려 했던 서커스 장면들은 바로 이러한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
다. 어두운 색깔이나 우울한 주제들이 제외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얀 곡마사와 광대>의 경우는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거의 기억이 반영된 흔치 않은 독특한 작품이
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다채로운 색과 기쁨의 향연을 보여준다. 붉은 색의 배경과 무희의 모습은 장면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이는 무희를 중심으로 다른 인물들이 원형으로 배치된 구도로 인해 강화된다.
그러나 이 작품의 또 다른 독창성은 작품 우측 하단, 무희와 악사 사이에 다른 세계의 목격자로 농부와 소를
희미하게 보여준다는데 있다. 마치 서커스라는 인공적인 세상 바깥에는 자연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듯하다. 현실 세계의 흔적은 무희의 드레스에 그려진 새, 가족,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모습
에서도 나타난다.
The Circus(서커스), 1967
부키느리드랭스티튜, 파리
Circus Rider in Blue(서커스, 파란 곡마사:석판화), 1967
프랑스 국립도서관, 파리
>> 성서 이야기(The Bible by Chagall)
샤갈은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이다. 유대민족으로서 태생적 환경은 긍게 일찍부터 성경에 대한 깊은 관심과
지식을 갖게 해주었다. 동시대 전위적인 화가들의 작업이 급변하는 시대상과 새로운 양식적 변화에 심취되어
종교적 주제가 더 이상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가 아닌 시대에 샤갈은 성서를 형상화하는 작업에 눈을
뜨면서 말년에는 성경을 회화로 옮기는 작업에 작가적 역량과 열정을 쏟아 부었던 20세기 보기 드문 작가이
다. 성서를 회화로 옮기는 작업은 1939년대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면서부터 시작하였다.
이즈음에 파리에서 유명한 화상이자 출판업자였던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주문으로 성경에 삽화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았던 것이다. 이 삽화 연작이 예정대로 출간되지는 못했지만(훨씬 뒤인 1957년에서야 출판업자 테
리아드에 의해 출간될 수 있었다), 그 주문을 계기로 샤갈은 1931년에서 1934년 사이에 구약성서에서 택한
주제로 약 40점의 과슈화와 판화 여러 점을 제작했다. 샤갈은 1950년부터 다시 성경의 내용을 다룬 그림제
작에 착수했다. 30년대에 제작한 판화와 과슈화가 종이작품들로 인쇄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면, 50년대에 제
작한 작품들은 대작들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샤갈은 자신의 작품들이 다같이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여 마치
강연회에서처럼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제시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그 작품들로 성서 메시지라는 제목의 연작을 구성하기고 했다. 1973년 프랑스 니스에 그가 오랫
동안 꿈꾸고 갈망 해오던 성서메시지를 그린 대형 작품을 전시하게 될 국립마르크샤갈미술관이 문을 연다.
당시 문화성 장관 앙드레 말로와 함께 개관식이 있는 날 샤갈은 다음과 같이 성경에 대한 그의 생각을 피력
한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성서에 매료되었다. 그때부터 내가 생각하기에 성서는 항상 그리고 오늘날까지
도 모든 시대의 시의 가장 위대한 근원인 것이다. 나는 삶과 예술에서 성서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성서는 자연의 메아리와 같고 이것이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비밀이다." 성서 메시지 연작은 모두 17점으로
구성되는데 니스에 상설 전시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성서 메시지를 위한 스케치들은 샤갈의
창의적인 재능을 잘 보여준다. 그는 성경의 삽화를 그릴 때조차 다른 무엇보다 화가로 남았으며, 자신이 다
루려고 선택한 주제만큼이나 색채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성서와 관련한 작업, 그리고 일반적인 의미
에서 종교적 주제를 다루고 있는 모든 작품들은 샤갈 작품의 본질적인 부분을 구성한다.
이 작품들은 제각기 별개의 작품이 아니라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연속성을 갖고 있으며, 샤갈의 성서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림이 글(문학)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을 분명
하게 보여준다. 성서는 종교적인 본질을 넘어서 화가 샤갈에게는 창작적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것이었다.
In Front of Painting(그림 앞에서), 1968~71
Foundation Marguerite et Aime Maeght, Saint-Paul, France
이 작품은 다소 복잡하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주요 주제, 이 그림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그림이기 때문이다. 샤갈의 작품들 중에는 자신의 작업실, 자신이 작업대 앞에 있거나 우리가 아는 그림
앞에 있는 모습을 그린 것들이 적지 않다. 그림 속에 또 다른 그림을 삽입하는 것은 거울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그림 안에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고, 빈 공간을 만들어 내거나 반대로 기존의 공간을 배가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작업대 위에 놓인 그림은 작품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작품과도 같다.
이는 화가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들아보고, 자신이 그림 그리는 것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들은 일종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샤갈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즐겨 사용
했던 이미지로 팔레트를 든 화가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여기에 새로운 요소들을 추가했을 뿐이다.
그림 속에서 샤갈이 작업하고 있는 또 다른 그림은 샤갈의 화가로서의 고민을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샤갈의 물리적인 초상에 정신적인 초상을 덧붙인 것이다. 1940년대에서 50년대 사이, 샤갈이 성서
메시지를 주제로 작업을 시작했을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의 경우, 그림 속 그림에서 십자가를 진 예수의 모
습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당시 샤갈이 종교와 관련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이렇게 표
현한 것이다 그림 쇽 그림의 의미는 후에 그려진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삽입된 그림이 화면의 대부
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전 작품들에 비해 샤갈의'고민이 한층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샤갈은 종종 당나귀의 모습으로 작품 속에 모습을 그려냈다. 그의 두 번째 부인을 그린 1953년 작품 <바바의 초상>에서 바바는 관람객 쪽을 차분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는 반면 당나귀는 바바의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
고 있다. 그리고 11년 후에 그려진 1966년 작품 <바바의 초상>에서도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The Prodigal Son(회개한 탕자), 1975~76
Private Collection
탕자 이야기는 기독교 복음서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로 기독교 신약성서 부분에 나온다.
이야기 속에는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첫째 아들과 반항적이고 배은망덕한 둘째 아들이 등장한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은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하고 아버지에게 유산의 일부를 테어달라고 요구한 후 그 돈으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러 떠난다. 방탕한 생활로 인해 물려받은 재산을 전부다 탕진해버린 둘째 아들은 악덕
주인 밑에서 일하는 신세가 되고,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
의 귀환을 기버하며 잔치를 열지만 첫째 아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아버지의 설
명으로 끝이 난다. '우리는 잔치를 열고 마음껏 즐겨야 한다. 왜냐하면 죽은 줄 알았던 너의 동생이 살아
돌아왔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너의 동생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망설임 없는 용서는 아들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보여주며, 돌아온 아들을 환대하기 위한 잔치는 재회의 기쁨을 나타낸다.
절제된 삶과는 거리가 먼 아들과 그를 기꺼이 용서하는 어버지의 이야기는 성서 속에서 다음과 같은 종교적
의미를 지닌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 하더라도 이를 회개하고 아버지의 집, 교회로 돌아온다면 언제
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서양의 많은 예술 및 문학 작품들 속에서 단골 소재로 사용되
었다. 또한 '탕자'라는 단어 역시 부모 혹은 은자의 기대에 못 미치는 아이나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샤갈은 성서 주제들 가운데 탕자 이야기를 소재로 이 대형 작품을 제작하였다. 작품의 초점은 아버
지와 아들 간의 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이 장면이 작품의 중앙을 차지하게 되었다. 다른 그림들에서도 종종
그랬듯이, 샤갈은 이 작품에서 자신의 아버지 집(세 개의 창문이 잇는 벽돌집)을 러시아 마을 배경 속으로
옮겨 놓고 눈에 잘 띄는 앞부분에 배치함으로써 탕자라는 주제를 재해석하였다. 작품 상단에는 커다란 태양
이 빛을 비추고 있는 덕분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밝다. 우측 하단을 보면 화가가 한 명 있는데, 바로
이 작품을 그린 샤갈의 모습이다. 샤갈은 자신의 이미지를 마치 서명처럼 그림 속에 새겨 넣었다.
Tower of David(다윗 성채), 1968~1971
Musee National Marc Chagall, Nice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은 기독교를 믿는 예술가들에게 무척이나 흥미로운 소재였고, 실제로도
기독교미술 속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마태복음에 제시된 계보에 의하면 다윗은 아브라함과 함께 예수
의 직계 조상에 해당된다. 기독교적 해석에 따르면, 다윗의 삶과 관련된 몇몇 일화는 예수의 삶과도 연결된
다. 예를 들어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긴 일화는 사탄에 대한 예수의 승리를 암시한다고 한다.
도나텔로부터 미켈란젤로까지 이탈리아 조각가들도 다윗을 여러 작품 속에서 활용하였다.
또한 다윗은 서양 중세미술 가운데 스테인드글라스와 조각에서도 나타난다. 샤갈 역시 다윗을 수많은 작품
속에 등장시킴으로써 이와 같은 오랜 전통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샤갈은 예술 그리스도를 알리는 인물로서
의 다윗이 아닌, 이스라엘 민족을 결집시킨 인물이자 음악가, 그리고 구약성서 시편의 저자로 추정될 만큼
뛰어난 작가로서 다윗에 주목하였다. 이 작품에서 샤갈이 다윗을 왕이기보다는 하프를 켜며 노래를 하는 음
악가로서 표현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뒷배경에는 예루살렘이 보인다.
다윗은 샤갈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졌으며, 성서나 성서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작품, 유대민족의
역사를 다룬 작품들에서도 여러 번 등장하였다. <아가서>라는 제목으로 그려진, 성서 메시지를 그린 스케치
속에도 다윗이 나온다. <아가서>는 다윗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성시 [아가서]의 제목을 따온 작품이다.
또한 샤갈이 시와 음악에 능했던 다윗에게서 예술가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모델로 삼았을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The Esquisse for Genesis and Exodus, Noah and the Rainbow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위한 스케치, 노아와 무지개, 1961~1966
Musee National Marc Chagall, Nice
이 작품은 성서 메시지 연작을 위한 습작으로, 최종 작품의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초점은
성서에 나오는 노아와 무지개 이야기의 인물과 장면 표현에 맞추어져 있다. 무지개의 양 끝은 각각 평화와
전쟁을 상징하는 장면들로 대조를 이룬다. 오른쪽에 보이는 포옹한 연인, 새, 가축, 태양빛 아래 몰려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평화와 구원을 상징한다. 반대로 왼쪽에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는데, 바닥에 쓰러진
짐승, 불타는 집, 그리고 괴물의 머리를 한 기이한 생명체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다.
이는 인도주의에 반하는 악을 상징한다. 성서 이야기를 넘어서서, 샤갈은 노아의 환영을 다룬 이 작품을 통
해 20세기 이후 유대 민족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들과 자신의 1941년 미국 망명을 환기시키고 있다.
The Esquisse for Genesis and Exodus, Adam and Eve's Expulsion from the Paradise, 1961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위한 스케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
Musee National Marc Chagall, Nice
Jacob's Dream, 1954-67
Abraham and the Three Angels, 1954-67
The Song of songs I(아가서 I), 1958
Musee National Marc Chagall, Nice
The Song of Songs II(아가서 II), 1965~1968
Musee National Marc Chagall, Nice
The Song of Songs III(아가서 III), 1957
Musee National Marc Chagall, Nice
The Song of Songs IV(아가서 IV), 1958
Musee National Marc Chagall, Nice
The song of Songs V(아가서 V), 1965~1966
Musee National Marc Chagall, Nice
White Crucifixion(하얀 십자가상), 1938
>> 종이 작품(Works on Paper)/라퐁텐 우화(Fables of La Fountaine)
샤갈은 1922년 파리에 정착한다. 그리고 프랑스라는 나라를 배우기 시작한다. 파리로 이주한 후 몇 년간 그리
고 그의 작품이 성공을 거두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샤갈은 끊임없이 여행을 다녔고 특히 프랑스 시
골에 오랜 기간 머물렀다. 당시 샤갈이 길게 체류했던 시골 마을은 여럿 되었는데, 이는 샤갈이 프랑스, 특히
프랑스 남부의 구석구석을 완벽하게 탐험하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험은 샤갈의 작품의 스타일을 변화시켰고, 샤갈의 작품세계는 이 시기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변화는 명백했으며, 예전에 그렸던 작품들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많은 평론가 및 전시 기획자
들은 바로 이 시점을 전후로 샤갈의 작품 세계를 둘로 나눈다. 즉, 러시아 시기와 프랑스 시기이다. 프랑스에
정착한 뒤 샤갈의 작품 분위기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보다 부드러워졌고, 야생적인 요소들은 모두 사라졌
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만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꽃, 사랑에 빠진 연인, 고요한 풍경이 주된 주제로 사용되
기 시작했고 덕분에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한결 차분해 진 것은 맞다. 그러나 실상 꽃, 사랑에 빠진 연인,
고요한 풍경은 러시아 시절 그렸던 그림들에서도 나타난다. 샤갈은 과거의 주제들 중 꽃이나 동물을 과장하거
나 축소하여 현재의 그림 속에 재사용한 것에 불과했다. 샤갈이 프랑스 문화를 알아가면서 그 안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우선 자신과 비슷한 것, 자신의 흥미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래서 샤갈은 [라퐁텐 우화]의 삽화를
그리기로 결심했다. 장 드 라퐁텐(Jean de La Fontaine:1621~1695)은 17세기의 우화 작가로 이솝의 영향을 많
이 받았으며, 프랑스어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매우 '프랑스적인'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샤갈이 프랑스 시골을 자주 방문하고 농촌 주민들과 접촉을했던 것도 아마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라퐁텐 우화]에는 동물들만 등장하고, 샤갈은 동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어쩌면 샤갈과 라퐁텐은 애초부터 서로 만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의 만남에는 러시아에서의 어
렴풋한 기억도 무의식 중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가장 유명했던 키로프는 러시아의 시인이자 유명한
우화 작가였으며, 라퐁텐의 작품을 번역하고 각색하기도 했다. 그리고 샤갈은 어린 시절부터 우화를 무척 좋
아했다고 한다.
샤걀의 삽화집 출판을 담당한 볼라르는 원래 [죽은 혼]에서와 같이 동판화로 작업을 진행하려 했었다.
따라서 과슈는 후에 다색판화로 옮기기 위한 예비 작업이었다. 샤갈은 100여 점의 과슈를 그렸지만 이들을 판
화로 옮긴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과슈의 색깔이 판화로 찍었을 때 똑같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볼라르는 다색판화를 포기하고, 샤갈에게 과슈 작업을 계속한 후 흑백판화로 찍어내자고 제안하였다.
그래서 [라퐁텐 우화]는 흑백판화로 구성된 삽화집과 강렬한 색채의 과슈로 구성된 삽화집 두 종류로 출판되
었다. 그러나 샤갈은 다색판화를 성공적으로 마치지 못한데 대해 미련이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흑백판화
위에 자신이 색연필로 직접 색을 칠한 삽화집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슈 판화집은 1930년에 볼라르 출판사를
통해 첫 출간되었는데, 세간의 반응은 혹평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17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
품을 '동양' 출신 화가의 손에 맡긴 볼라르를 비난했다. 개중에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논란의 저변에는 아마
반유대주의적 사상도 깔려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과슈 작품집을 시작으로 샤갈은 평생에 걸쳐 수많은
동물 연작들을 제작했다. 샤갈은 동시대 화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동물들이 철학에 던지는 심오한 질문들을 지
속적이고도 유쾌한 방식으로 다룬 인물이었다.
The Fox with His Tail Cut Off(꼬리 잘린 여우), 1927
Collection Larock-Granoff(라로크그라노프 갤러리), Paris
The Two Pigeons(두 비들기), 1925
Collection Larock-Granoff(라로크그라노프 갤러리), Paris
Donkey Loaded with Sponges and Donkey Loaded with Salt, 1929
솜을 진 나귀와 소금 진 나귀
종이에 과슈, 베르넴젼느갤러리, 파리
>> 종이 작품(Works on Paper:Lithographie)/신들의 땅 위에서(In the Land of Gods)
1952년과 1954년 두 번에 걸쳐 그리스 출신의 출판업자 테리아드의 초대로 그리스를 여행한 샤갈은 말년작들에
서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신화적 소재를 즐겨 사용하였다. 샤갈은 아테네, 델포이, 포로스 섬, 올림피아
를 방문하였다. 이때 받은 충격은 1930년 팔레스타인 여행에서 받은 충격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리스의 기념물, 조각상, 풍경, 자연의 아름다움에 샤갈의 민감한 감수성은 한껏 자극되었다.
그는 평소에도 고대 시들과 문학 작품들을 좋아했는데, 그리스 여행을 통해 샤갈은 고대 세계와의 완벽한 일체
감을 맛보게 되었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자연, 지중해의 햇빛, 역사가 살아 숨쉬는 땅은 샤갈에게 지상 낙원에
온 듯한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한마디로 그리스는 근대문명이 태동하기 전, 이상적인 역사와 사랑의 목가가
발달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샤갈이 1961년, 고대 그리스 시인 롤고스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삽화를 그렸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전원을 배경으로 펼
쳐지는 두 젊은이 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이야기이다. 후에 시인 호메로스의 작품 <오디세이>의 삽화를 그
렸던 것도, 아리스토파네스, 롱고스, 이이스킬로스, 사포 등 고대 시인들의 작품 일부를 표현한 이미지들을 바
탕으로 <신들의 땅 위에서>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주로 꽃이 만발하고 햇살이 가득
비치는 전원의 풍경 속에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이 등장하는 그림들이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벌거벗고 있는데,
마치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온듯하여 우리보다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한 모습이다.
이 석판화 작품들은 주로 밤의 모습으로 그려진 비테프스크나 러시아의 이미지와는 달리 빛이 가득한 밝은 색
감으로 그려졌으며, 이는 샤갈이 지중해의 삶에 완전히 적응했음을 보여준다.
Illustration of the Citation of Mimnermos(밈네르모스의 인용문 삽화), 1967
프랑스 국립도서관, 파리
Illustration of the Theocritus, 1967
프랑스 국립도서관, 파리
>> 종이 작품(Works on Paper:Lithographie)/아라비안 나이트의 네 가지 이야기
(Four Tales from the Arabian Nights)
1948년 미국 뉴욕에 머물고 있던 샤갈은 어느 날 한 미국 출판사로부처 [아라비안 나이트] 이야기 중 네 편을
골라 석판화 연작으로 삽화집을 출판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샤갈은 예비 작업의 일환으로 과슈를 그린 후 색판
화로 찍어냈다. 이 석판화 작품집은 샤갈이 1920년대 이후 처음으로 참여한 대형 삽화집이었다.
특히 샤갈은 흑백판화 작어븐 해본 적이 있었지만 다색판화집은 처음이었다.
샤갈은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부터 다색판화 기법을 자주 사용하였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상상력이 풍부한 한
이야기꾼 왕비가 왕에게 들려주는 환상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날개가 네 개 달린 악마, 물
의 요정 나이아스, 거대한 물고기, 상상 속의 동물이 등장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샤갈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에 충분했다. 샤갈은 [아리비안 나이트]와 자신의 작품 간에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삽화를 그릴 때 샤갈은 자신의 세계를 색감이 풍부하고, 반짝반짝 빛나고, 화려한 모습을 지닌, 마치 꿈속에
나올 법한 동양 세계 속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삽화 속에는 샤갈의 단골 주제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작품 <삽화 7>을 보면 두 연인을 태우고 하늘을 날아가는 말의 모습이 보인다. 다만 샤갈이 즐겨 사
용한 이 모티브는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강렬한 색채에 의해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석판화집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샤갈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글에 맞추어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
었기 때문이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들은 그가 화가로서 추구하던 작품 세계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색
채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늘 위로 날아가는 주인공의 모습 역시 샤갈의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 소재이다.
이처럼 샤갈은 [아라비안 나이트] 속에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아냈고, 색채의 마술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아라비안 나이트]를 아름다운 그림들로 표현해 낼 수 있었다.
The the old women mounted the Irit's back(삽화 7), Pantheon, 1948
프랑스 국립도서관, 파리
Mounting the ebony horse(삽화 12), Pantheon, 1948
프랑스 국립도서관, 파리
When Abdullah got the net ashore. . ., Pantheon 1948
프랑스 국립도서관, 파리
Now the king loved science and geometry. . ., Pantheon 1948
프랑스 국립도서관, 파리
>> 종이 작품(Works on Paper:Lithographie)/다프니스와 클로에(Daphnis and Chloe)
2,3세기에 그리스 시인 롱고스가 지은 것으로 추정하는 [다프니스와 클로에]라는 그리스 소설에 샤갈이 관심을
갖도록 만든 사람은 분명 그리스 출신 판화 전문 출판업자 테리아드였을 것이다.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지은이는 말한다. '나는 어느 날 레스보스 섬에서 사냥을 하다 풋 속에서 난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바로 사랑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었다. 숲은 수많은 나무, 꽃, 물들로 이미 아름
다웠다... 나는 다른 것도 보았는데, 그것은 사랑의 장면이었다. 나는 너무나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이 그
림이 표현한 이야기를 글로 옮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다프니스와 클로에 두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프니스는 염소치기였고 클로
에는 양치기였다. 둘은 모두 고아였다.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들
이 둘의 사랑을 방해한다.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결국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지켜낸다는 것이 이 작품의 전체
줄거리이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두 부모를 찾고, 둘은 마침내 결혼식을 올린다.
샤갈은 이 작품의 삽화를 그리려면 그리스를 직접 방문하여 자신이 책에서 받은 인상과 실제 그리스의 풍경을
비교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샤갈은 동판화나 흑백판화 대신 석판화를 선택해 흑백으로 삽화를 작업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 풍경의 풍부한 색채감은 석판화 제작에도 영향을 주어, 몇몇 작품들에서는 초록, 노랑,
파랑, 빨강과 같은 원색이 포함되기도 하였다. <여름낮>과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각각 발견되는 그림이 여기에
해당된다. 색채로 찍어낸 광범위한 부분은 식물, 꽃, 동물을 묘사하는 모티브의 발견과 등장을 표현한다.
롱고스의 이야기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전개되고, 샤갈은 사계절의 모습을 사용하여 삽화 작업에 변화를 주었다.
가을의 색은 여름의 색과 다르게 표현되었으며, 그림은 계절의 흐름에 따른 분위기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배경이 그리스이고 그리스의 풍경이 샤갈에게 영감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프니스와 클로 에> 삽화집 속에는 가끔씩 나타나는 신전을 제외하면 그리스의 흔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배경에는 지중해, 팔레스타인, 프랑스의 코트다쥐르 등 샤갈이 그동안 방문했던 장소들과 정원들에 대한
기억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Daphnis and Chloe:Frontispiece(다프니스와 클로에, 권두삽화), 1961
석판화, Collection Sylvie Mazo, Courtesy Bouquinerie de I'Institut, Paris
Chloe's Kiss(클로에의 키스), 1961
석판화, Collection Sylvie Mazo, Courtesy Bouquinerie de I'Institut, Paris
Noon, in Summer(여름낮), 191
석판화, Collection Sylvie Mazo, Courtesy Bouquinerie de I'Institut, Paris
Pan's Banquet(목신을 위한 잔치), 1961
석판화, Collection Sylvie Mazo, Courtesy Bouquinerie de I'Institut, Paris
Chloe(클로에), 1961
석판화, Collection Sylvie Mazo, Courtesy Bouquinerie de I'Institut, Paris
>> 종이 작품(Works on Paper:Lithographie)/[베르브] 성서삽화(Verve, The Bible)
샤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출간되는 몇몇 예술 잡지의 삽화 작업에 참여하였는데, 당시 샤갈이 소
속되어 있던 마그갤러리가 발간하는 [거울 뒤에서]와 테리아드 출판사의 [베르브]가 그것이었다.
테리아드는 1930년 샤갈에게 성서 삽화 및 [라퐁텐 우화] 작업을 의뢰한 적이 있어 샤갈과 이미 친분이 있었고,
따라서 [베르브] 잡지를 위한 작업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베르브]는 1937년에서 1960년 사이에서 총 36호
발행되었다. 고급 잡지였고, 유명 역사가들과 평론가들의 글이 늘 풍부하게 실렸다.
샤갈이 이 잡지 작업에 처음 참여한 것은 1950년으로, 샤갈의 수채화 16점을 이탈리아 출신의 문인이자 [데카메
론]의 저자 보카치오 책의 삽화로 사용하였다. 이후 나온 특집호에서는 1931년부터 1954년 사이에 제작된 성서
주제의 흑백 판화 작품 105점을 동판제작 기법으로 인쇄하여 실었다.
1959년과 1960년, [베르브]는 샤갈이 성서를 주제로 작업한 흑백 및 다색석판화에 미국의 미술사학자 마이어 사
피로와 프랑스의 철학자 장 발의 글을 곁들여 출간하였다. 이번 전시에는 1956년 제작된 원작 석판화들이 선보
인다. 샤갈은 미국에서 [아라비안 나이트] 삽화를 위해 최초로 석판화에 도전한 이후 석판화를 완벽하게 습득하
게 되었으며, 1956년부터는 삽화 작업 시 석판화를 주된 표현 방식으로 사용하였다.
석판화는 주로 출판물에 많이 이용되었다. 샤갈은 고대 시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셰익스피어의 [폭풍], [출
애굽기 이야기]의 삽화를 제작하였다. 이외에도 파리, 연인 등 자신에게 익숙한 주제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석판
화 작품들도 다수 제작하였다. 이번 전시에는 [베르브][ 잡지에 쓰인 삽화들의 원작이 소개되는데, 이들은 구약
성서 일화보다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졌다. 마치 애초부터 성서 이야기는 흑백 판화, 인물은 석판화로 정해져 있
었던 것 같다.
Angel(천사), 1956
석판화, 국립 마르크샤갈미술관, 니스
Sarah and Abraham(사라와 아브라함), 1956
석판화, 국립 마르크샤갈미술관, 니스
David and Bathsbeba(다윗과 밧세바), 1956
석판화, 국립 마르크샤갈미술관, 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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