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 12:1-3, 찬송 28장>
대광고 입학식. 2003.03.0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소유와 행복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행복은 소유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집에 살면 행복하고, 낡고 허름한 집에 살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꼭 갖고 싶었던 좋은 옷을 사도 행복하고, 갖고 싶었던 물건을 갖게 되도 행복해 합니다.
이렇게 무언가를 가짐으로서 누리는 소유적 행복도 우리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소유적 행복은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다닐 때, 저의 집은 부자도 아니고 크게 가난하지도 않은, 그럭저럭 살아가는 중산층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서부이촌동에 있는 5층짜리 멋있는 아파트,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매우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을 한 것입니다.
그 때(1969년)는 서울에 아파트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는데, ‘서부 이촌동에 있는 아파트촌’하면 당대의 부자들만 사는 특수한 동네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먼저 살던 집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초라한 집으로, 그것도 전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사업이 순식간에 기울어 벌어졌던 일입니다.
그 때의 어려움은 저에게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중학교 때 입던 교복을 그대로 입었는데, 소매가 너무 짧아 선생님한테 ‘복장 불량’으로 오해를 받았던 아픈 추억도 있습니다.
이렇게, 결코 영원하지 않은 것, 언제라도 쉽게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소유적 행복’의 특징입니다.
소유적 행복의 또 다른 특징은 ‘내적인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선진국일수록 자살율이 높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자살율이 더 높고, 사회복지제도가 잘된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나라들이 세계에서 자살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합니다.
왜 그럴까요? 유복한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데, 돈도 많은데, 왜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할까요? 분명한 건, 환경이 좋다거나 가진 게 많다고 해서 사람이 진실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복]
그러면 사람을 진실로 행복하게 하는 건 무얼까요? 그건 바로 ‘되는 복’입니다. ‘갖는 복’이 아니라 ‘되는 복’, 그게 진짜 복입니다.
요즘 미국이 이라크를 친다 해서, 유가가 급등하고 세계경제가 많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부시는 후세인을 악의 축이라 용서할 수 없다고 하고, 후세인은 부시야말로 악의 화신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지도자가 사나우면 백성들이 고생합니다. 지도자가 능력은 있는데 사람됨이 부족하면, 백성이 괴로운 겁니다. 우리나라 세종대왕처럼, 능력도 있고, 덕도 있으면, 백성이 행복합니다. 우리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사람됨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복을 많이 주마.’ ‘복을 많이 소유해라’ 라고 하시지 않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냥 ‘복이 되라’도 아니고, ‘복의 근원이 되라’, 이 말씀은 너 혼자 복을 누리려고 생각하지 말고, 너 때문에 다른 사람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복된 사람이 되라]
혹, 여러분 중에, 정치인이 되고 싶은 학생 있습니까? 열심히 노력하면 국회의원도 될 수 있고, 장관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맡아서 성실하게 잘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먼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 국회의원직을 ‘소유’하고 장관직을 ‘소유’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나라가 어려워지는 겁니다.
여러분 모두 우리나라와 사회에 희망을 주는 ‘복된 사람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