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가인과 아벨’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 4장 1~5절을 보겠습니다.
1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 하와가 말하였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남자 아이를 얻었다."
2 하와는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지난 뒤에,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5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있었는데,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목축을 했답니다. 오랜 옛날, 수렵시대를 지나면 사람들은 주로 농사나 목축 가운데 하나를 생업으로 삼았습니다.
본문에서 가인과 아벨은 각자 자신이 생산한 것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셨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분노한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가인의 제물을 거절하셨을까요? 과거에는 “아벨의 제물은 피의 제사였기 때문에 받으셨고, 가인의 제물은 피의 제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거절하셨다” 라는 해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렇게 해석하는 신학자나 목회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이 이야기가 성경에 남겨졌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 죽은 아벨 대신 태어난 셋의 후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조상인 가인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자신들의 조상인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고 생각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마치 엄마 아빠가 형보다 자기만 더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어린 아이의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후 본문에는 비록 가인이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인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심판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이며, 사적인 보복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의 생각이 반영된 기록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가인의 후손에 대한 족보입니다. 17~22절을 보겠습니다.
17 가인이 자기 아내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았다. 그 때에 가인은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를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고 하였다.
18 에녹은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다.
19 라멕은 두 아내와 함께 살았다. 한 아내의 이름은 아다이고, 또 한 아내의 이름은 씰라이다.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는데, 그는 장막을 치고 살면서, 집짐승을 치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인데, 유발은 수금을 타고 퉁소를 부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22 또한 씰라는 두발가인이라는 아이를 낳았다. 그는 구리나 쇠를 가지고, 온갖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다. 두발가인에게는 나아마라고 하는 누이가 있었다.
이 족보는 왜 기록되었을까요?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현대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족보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필요했던 기록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종족은 농사를 짓고, 어느 종족은 목축을 하며, 어떤 종족은 도구를 잘 만들고, 또 어떤 종족은 악기를 잘 다룬다... 이런 정보는 이웃 민족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했습니다. 물건을 교환하거나 협력할 때, 또 전쟁을 대비할 때도 중요한 자료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꼭 필요한 기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굳이 ‘그 시대 이스라엘의 관점’ 안에 머물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내용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모든 장 모든 절이 다 오늘날 우리에게 똑같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