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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엄마가 될 자유

작성자나*도|작성시간26.06.05|조회수32 목록 댓글 0

결혼을 할 당시, 남편과 나는 아주 무겁고도 현실적인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우리, 아이는 갖지 말자."

 

아침마다 온몸이 굳어 비명을 지르는 아내를 보는 남편의 마음도, 그런 아픈 몸으로 누군가의 엄마가 될 자신이 없던 나의 마음도 같았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인데, 한 생명을 품고 길러낸다는 것은 과분한 욕심이자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 없는 삶을 당연한 순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삶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병을 이겨내게 해 준 직장 생활 덕분에, 내 몸과 마음은 눈에 띄게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출근을 하며 억지로 몸을 움직이고 일에 몰두하는 사이, 통증의 그림자가 조금씩 걷힌 것이다.

 

몸에 생기가 돌고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오자, 기적처럼 내 안에서 잠들어 있던 열망이 고개를 들었다.

 

'나도... 아이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포기했던 꿈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남편과 고심 끝에 다시 손을 맞잡았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흰 가운을 입은 주치의의 말은 서늘한 선고와 같았다.

 

"임신을 하려면 지금 먹는 약을 전부 끊어야 합니다. 이제야 겨우 몸이 안정을 찾았는데 약을 끊으면 관절 손상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될 겁니다. 영구적인 변형이 올 수도 있어요.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내 몸을 지켜주던 독한 약들을 끊는다는 것. 그것은 나를 보호하던 방패를 스스로 내던지고, 온몸으로 류마티스라는 괴물과 맨몸으로 맞서야 함을 의미했다.

 

내 결심을 전달하자 의사는 안전을 위해 3개월 동안 약을 끊고 임신을 시도하자고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달랐다. 혹시라도, 단 1%의 확률이라도 내 아이의 몸에 약 기운이 남아 영향을 주게 되진 않을까. 그 막연한 두려움 앞에서 나는 의사의 권고보다 두 배나 긴 시간을 선택했다.

 

"6개월 동안 끊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기 위한 인내'를 선택했다. 6개월의 단약 기간은 상상 이상으로 가혹했다. 방패가 사라진 몸에는 다시 류마티스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밤마다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찾아올 여린 생명을 생각하면, 먹어도다고 병원에서 쥐여준 진통제 한 알조차 삼킬 수 없었다.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르고 아픔이 일상이 되었지만, '아기가 건강할 수 있다면'을 되새기며 버텨낼 뿐이었다.

 

참 신비하게도, 아기자궁에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의사의 말대로 세포의 면역 체계가 변했는지 그 지독하던 통증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배 속에 생명이 엄마의 고통을 달래주듯, 내 몸은 아이를 품기 위해 스스로 아픔다스렸다.

 

지옥 같은 시간과 기적 같은 시간을 모두 건너, 마침내 나는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품에 안았다. 세상에 태어나 마주한 내 아기는 눈이 부실 정도로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감동에 젖어 있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기를 낳자마자, 신비스럽게도 다시 몸에 통증이 차올랐다. 아이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메우듯 류마티스는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찾았다.

온몸의 관절이 뻣뻣하게 굳고 통증으로 신음하다니, 아이를 안아주는 자세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고 싶었지만, 내 몸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내 부자연스러운 관절이 주는 불편함에, 내 마음 속 불안에, 아기는 내 품에서는 울고 아빠 품에서는 곤히 잠들었다.관절을 포기하고, 약까지 끊어가며 낳은 내 아기였다. 그런데 정작 엄마인 내 품이 불편하다며 밤새 우는 아이를 달래며 함께 울었다. 아기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내 과욕이었을까, 내 마음은 착잡했다.

 

 

'내가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이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주지 못해도 사랑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내 품이 불편해 울던 아이가 내 딱딱한 품에 익숙해질 때까지, 내 관절이 조금 더 상해 가더라도 나는 굳어버린 팔을 뻗어 아이를 안고 또 안았다.

 

그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얻는 대신, 내 오른손 관절이 많이 변형됐다. 약을 끊고 버텨냈던 시간 동안, 그리고 산후의 지독한 통증 속에서도 아이를 안아주려 억지를 부리던 시절 동안 내 오른손 관절들은 부풀고 연골은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 관절이 변형되었을지언정, 마침내 나는 엄마가 될 자유를 얻어 내 삶의 최고의 선택으로 엄마가 되었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할 때면, 간혹 내 오른손을 보고 왜 그러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직원이 있다. 나는 자신 있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건 엄마의 손이에요. 엄마가 되기 위해 기꺼이 마디가 울퉁불퉁해진 아이를 위한 손입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미세한 작업이 어려워 잘하지 않는다. 손의 섬세함은 잃었지만 내 손가락 마디마디에 새겨진 거친 굴곡들은 나에게는 병마가 남긴 흉터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 생명을 품어내는 자유를 택한 상흔이자,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기어이 '엄마'라는 이름을 쟁취해 낸 흔적이다.

 

손가락을 고르게 펼칠 수도, 완전히 주먹을 쥘 수도 없지만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저 고통에 잠식당하던 환자였던 나는, 기꺼이 이 울퉁불퉁한 손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

 

질병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되는 선택을 내 의지로 했다는 것, 그 선택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지는 것, 그것이 내가 쟁취한 자유고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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