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어느 날, 마당의 백합은 마침내 하얀 꽃잎을 활짝 열어젖혔다. 오이지 항아리 속에서는 시간의 마법이 일어나 소금과 물이 어우러진 깊은 맛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텃밭의 수박과 토마토도 싱그럽게 익어간다.
아침마다 물을 주던 자리, 손끝에 남아 있던 흙의 감촉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순리대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을 때,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곁을 지키며 비로소 '슬픔의 온도'를 낮추는 법을 완전히 깨달았다.
아버지께 드리는 마지막 보고
요양원의 창가로 햇살이 길게 늘어지는 오후였다. 나는 사진기에 담아 온 우리 집 마당의 풍경들을 하나씩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활짝 핀 백합, 주렁주렁 열린 매실, 그리고 텃밭의 푸르름까지.
사진을 넘길 때마다 잠시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 짧은 멈춤이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아버지, 보셔요.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대로 올해도 잘 자랐어요. 아버지가 참 좋아하셨을 텐데.”
아버지는 여전히 깊은 잠 속에 계셨지만, 내가 그 사진들을 넘길 때마다 아버지의 미간이 아주 조금씩 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버지의 굳은 손을 꼭 쥐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조용히 읊조렸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아버지의 손맛, 나를 키워낸 그 거친 손길에 대한 감사.
손등을 잠시 쓰다듬을 때, 예전 기억이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가 밭에서 돌아오던 저녁 냄새 같은 것들.
내 고백을 듣고 계시는 건지, 아버지의 가쁜 호흡이 잠시 잦아들었다.
그것은 마치 “그래, 수고했다. 이제는 다 괜찮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대답처럼 느껴졌다.
항아리 속에서 익어가는 삶의 지혜
고향집으로 돌아와 며칠 전 담가둔 오이지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짭짤하고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40년 된 엄마의 장독에 담긴 이 오이지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인내를 견뎌내며 완성된 것이다.
뚜껑을 열어젖히는 순간, 오래된 시간의 숨결 같은 것이 함께 올라왔다.
생각해 보면 내 삶도 이 항아리 속 오이지와 닮았다. 아픔도, 슬픔도, 버거운 일상도 시간이 지나고 묵묵히 견뎌내면 결국 나를 지탱하는 맛깔스러운 양분이 된다는 것. 이전에는 그저 빨리 아픔이 지나가길 바랐다면, 이제는 그 통증마저도 내 삶의 깊이를 더해주는 발효의 과정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 오는 날처럼 축축하게 머물던 슬픔은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넓은 사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선거 현장의 기억, 일상으로의 귀환
6월 3일, 새벽 3시 30분부터 시작된 선거 종사원의 하루는 내게 고단함과 동시에 귀한 흐뭇함을 남겼다.
새벽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고, 가방 끈을 고쳐 매던 손끝이 조금 떨렸다.
새벽어둠을 뚫고 달려가 5시부터 맞이한 현장, 그곳에서 마주한 다양한 분들과 나누었던 따뜻한 눈인사는 내 마음을 다독이는 힘이었다.
오후 6시 30분, 마감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집은 고요했다.
긴장이 풀린 온몸의 통증을 따뜻한 쌍화탕 한 잔으로 녹이며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밤, 누군가의 소중한 한 표를 지켜냈다는 뿌듯함이 내 슬픔의 무게를 조금은 가볍게 해 주었다.
창밖 불빛이 하나둘 꺼져갈 때, 나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조용히 접어 넣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다시 걷는 길
빵빵이가 마당에서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든다. 딸아이는 멀리서도 잊지 않고 안부 전화를 걸어오고, 형제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톡방에서 애틋함을 나눈다.
이 작은 일상의 소리들이, 생각보다 오래 나를 붙잡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이 다정한 손길들, 그 온기 덕분에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더는 '나 자신'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커트머리에 흰 셔츠를 입고, 청바지를 즐겨 입으며,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브런치 작기이다.
누군가의 아내도, 누군가의 엄마도, 누군가의 딸도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나로 살아가려 한다.
에필로그 나를 향한 다정한 다짐
6월의 햇살 아래, 나는 다시 텃밭에 물을 준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았던 그 흙, 어머니의 장독, 그리고 나의 정성이 깃든 이 작은 땅에서 나는 오늘을 심고 내일을 거둔다.
물줄기가 흙 속으로 스며드는 소리를 잠시 듣는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아픔의 터널은 길었지만, 그 끝에서 나는 가장 소중한 보물을 찾았다. 바로 내 곁에 머물러 있는 사랑하는 이들과,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는 단단해진 내 마음이다.
슬픔은 이제 나를 흔들지 못한다. 다만, 내가 더 깊은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의 폭을 넓혀주었을 뿐이다.
오늘, 마당에 핀 백합 향기가 유난히 달콤하다. 그 향기를 따라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마당을 거니실 것만 같다.
“참 잘했다, 순옥아. 참 애썼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기분 좋게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다. 나의 진짜 봄은 이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우리는 종종 '나 자신'보다 '남의 시선'이나 '상황의 무게'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6월의 초입, 투표소의 긴장과 요양원의 적막 사이를 오가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삶의 진짜 주인은 내가 맺고 있는 관계, 그리고 내가 정성껏 돌보는 것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새벽 출근길의 공기, 마당의 흙냄새, 병원과 일상의 경계에서 느꼈던 숨 가쁜 순간들이 한데 섞이면서, 저는 그 모든 시간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만들어간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 몸이 비명을 지르는 날에도 마당의 새순을 살피고, 아버지의 마른 손을 주무르는 그 다정한 수고로움들이야말로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슬픔의 온도를 낮추는 법을 찾아 떠났던 이 여정의 끝에서, 저는 슬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오늘 하루, 고생한 스스로에게 "참 애썼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