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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아내가 나와 결혼 한건 복수 하기 위해서

작성자나*도|작성시간26.06.12|조회수28 목록 댓글 0

 

그날 내 입에서 나간 건 말이 아니라 부메랑이었다.

 

27년 전 던진 그 무심한 조각이 한 바퀴를 크게 돌아 지금 내 뒤통수에 정확히 꽂히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의 철없던 복학생은 미처 알지 못했다.

 

군대 물이 덜 빠진 복학 초기였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여후배 둘이 조잘거리며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지금의 내 아내다.

평소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다니던 그녀가 그날따라 머리를 풀고 왔는데 끝부분이 꼬불거리는 파마기가 내 눈엔 참 생경해 보였던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후배를 향해 나는 뇌를 거치지 않은 희대의 막말을 내뱉고 말았다.

"야, 너 오늘 머리가 꼭 밀대 같다?"

찰나의 정적.

수줍던 후배의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복학생 선배의 기세에 눌려 대거리 한마디 못 하고 고개를 떨궜지만, 훗날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그 순간 나는 부모를 죽인 원수보다 더한 ‘철천지 원수’ 목록 1번에 등극했다고 했다.

 

그런데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찌어찌 그 원수와 연애를 시작했고 콩깍지가 씌어 결혼까지 골인해 벌써 20년 넘게 한솥밥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수줍고 얌전하던 후배가 이제는 세상에 둘도 없는 막말러로 변모했다는 사실이다.

 

요즘 내 아내는 숨 쉬듯 내게 막말을 퍼붓는다.

양치질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한 날이면 여지없이 날아온다.

"입으로 똥을 싸나? 입에서 똥내가 진동을 하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눈꺼풀이 처지기 시작한 내 얼굴을 볼 때는 더 가관이다.

"앞이 보이기는 해? 눈 좀 뜨고 다녀. 단추 구멍인 줄 알았네."

 

그럴 때마다 나는 소파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 여자가 나와 결혼한 진짜 이유가 혹시 '복수'는 아니었을까.

27년 전 '밀대'라고 불렸던 그 수치심을 잊지 않고, 매일 조금씩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서서히 파멸시키는 고도의 전략적 복수극 말이다.

 

생각해보면 공평한 일이다.

나는 한 번의 큰 사고를 쳤고 아내는 20년에 걸쳐 할부로 그 값을 받아내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밖에서는 나이깨나 먹은 어른 대접을 받으며 목에 힘을 주다가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다시 '밀대'를 운운하던 그 철딱서니 없는 복학생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내의 막말이 날카로울수록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저렇게 시원하게 내뱉는 걸 보니, 아직 내게 쌓인 업보가 다 청산되지는 않았나 보다 싶어서다.

그래, 기꺼이 맞아주마.

27년 전의 내가 던진 부메랑이 아직 공중에 몇 개 더 떠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늘도 나는 아내의 "눈 좀 뜨고 다녀"라는 핀잔에 억지로 눈을 크게 부릅뜨며 대답한다.

"응, 이제 좀 잘 보이네. 당신 오늘따라 참 예쁘다."

복수는 아내가 하고 있는데, 왜 웃음은 내 입가에 번지는지 모를 일이다.

이 고약하고 긴 복수극이 부디 끝나지 않고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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