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남편과 나는 결혼식을 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이 전부였던 나에게 결혼식이라는 행사는 줄지어 비어있는 의자에 공허한 바람만 가득한 공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결혼으로 가까운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돌린다는 것도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부담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제적인 여건도 한 몫했다. 아이와 둘이 살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수 없었던 생활로 얼마간 모아 놓은 돈을 결혼식으로 다 써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게 가족이 많은 남편은 첫 결혼식으로 우리의 출발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개선장군처럼 결혼식장을 활개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사정을 고려한 남편은 상견례로 결혼식을 대신하자고 나에게 제안을 했다. 아니 통보를 했다.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그의 통보는 나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돌덩이를 이고 지는 듯한 무거움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고맙게도 남편의 가족들은 남편의 의사를 존중해 주었다.
결혼식을 가 본 기억이 없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신랑 신부의 결혼식에 참석해 꿀 떨어지는 달콤한 식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드물다.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결혼식에 참석했었는지 몇 년 전 필름을 뒤지고 먼지 쌓인 기억까지 끄집어 내도 결혼식장의 모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런 어느 날 평소 존경하던 은사님의 자녀가 결혼식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경제적인 이익이 없는데도 배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조건 없이 나누어 주시는 분이다. 나 또한 그분 덕분에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되었고 경제라는 어려운 세상을 밝은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은사님의 청첩장은 그런 나에게 처음 놀이공원을 가는 아이처럼 들뜬 마음까지 보내 주었다. 청첩장을 받은 이후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요즘에는 어떤 웨딩드레스를 입는지, 웨딩홀은 어떤 그림으로 신랑신부를 눈부시게 해 주는지. 하객들은 어떤 옷을 입는지.
오랜 시간 결혼식장을 가 본 적이 없던 남편과 나는 결혼식장에 가기 전날 무엇을 입고 갈지 고민을 했고 다음날, 우리가 결혼식을 하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마음과 발그레한 얼굴로 청첩장에서 알려주는 장소로 출발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바다인지 모를 정도로 청순했다. 초봄인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코트 안에 부드러운 살구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정장바지로 봄향기를 냈다. 남편도 하늘색 셔츠와 진한 청바지로 상큼한 향을 뿜어 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오! 하는 감탄사를 내질렀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차들은 기찻길에 늘어서 있는 기차처럼 늘어서 있었다. 우리 차도 그 사이에 끼어서 주차장에 자리를 잡을 순서를 기다렸다. 거북이걸음으로 당도한 주차장에서 내리면서 내 심장이 왜 쿵쾅거렸는지 모르겠다. 남편도 얼굴이 상기되었고 걸음걸이도 뻣뻣해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은 다리가 땅에서 떠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분홍한복을 차분하게 입은 사람, 광이 번쩍거리는 구두를 신고 댄디한 정장을 입고 날아다니는 젊은 남자, 최대한 젊게 보이려고 머리를 투블록으로 자른 장년의 아저씨. 우리는 달아오른 얼굴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청첩장에 나온 그레이스홀을 향했다.
결혼식장은 오래된 사진첩에만 있던 장소와 많이 달랐다. 초등학교 시절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을 세워놓고 연설했던 단상을 상상했지만 그런 낡은 기억의 장면은 없었다. 유리로 된 양쪽 벽 너머 넝쿨과 키 작은 나무들이 초록의 냄새를 뿜어내는 듯했고, 하얀색 의자는 신랑신부가 들어오는 길 양쪽으로 놓여 그들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중앙 왼쪽으로는 2층에서 내려오는 흰색 계단이 늘어져 있었고 깔끔하지만 이름 그대로 우아해 보이는 홀이었다. 화려하지만 격식이라는 블록으로 맞춘 듯한 결혼식을 했던 것이 예전이라면 절반이 투명 유리창으로 되어 있는 천장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이 자유스러움에 낭만과 여유와 즐거움을 얹어주고 있었다.
드리어 신랑이 입장했다. 전투에서 이긴 것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양팔을 흔들면서 두 다리를 성큼성큼 내디뎠다. 다음은 신부 입장이었다. 신부는 소박하지만 우아해 보이는 흰색 드레스를 입고 은사님의 손을 잡고 천천히 신랑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에 내 두 손은 꼭 잡고 기도를 하듯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러운 마음이 한편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은사님의 손에서 신부의 손을 건네받은 신랑은 눈물을 보였다. 그 눈물에 내 가슴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주례사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요즘은 주례사 없이 양쪽 부모님이 덕담을 하는 것으로 주례를 대신한다고 했다. 두 사람을 위한 덕담은 딸을 시집보내는 은사님의 목소리로 홀을 가득 채웠다. 은사님의 잔잔하지만 깊이 있는 울림에 신랑 신부는 눈물을 닦았다.
은사님의 목소리와 신랑신부의 눈물이 홀을 적시는 순간 나는 내 목을 잡았다. 갑자기 흑흑하는 소리가 넘어올 것 같았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소리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코가 막혔고 목이 막혔다. 나이 57세에 내 자식이 하는 결혼식도 아닌데 눈물이 나는 이유를 몰랐다. 누가 볼까 곁눈질을 하면서 조용히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눈가로 가져갔다. 휴지로 눈물을 찍어대다 문득 옆에 앉은 남편을 보았다. 오, 남편도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미소에는 가을의 공허함과 꼭 타야 할 버스를 놓친 아쉬움의 느낌이 혼재되어 있었다.
우리는 눈을 마주치면서 서로에게 민망해했다. 가방에서 휴지를 더 꺼내서 슬며시 남편에게 쥐어 주었다.
"당신 왜 울어?"
"나도 몰라. 그냥 눈물이 나네. 그런 당신은 왜 우는데?"
"몰라 나도 그냥 눈물이 나네. 누가 보면 우리 아이들이 결혼하는 줄 알겠어.ㅎ"
우리의 눈물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팝송소리만 공허함을 메웠다.
며칠 뒤 우리는 웨딩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곳에서 하얗게 빛나는 웨딩드레스와 20대 부럽지 않은 댄디한 턱시도를 입고 우리는 웨딩사진을 찍었다. 웨딩사진을 찍으면서 남편의 옷매무새를 계속 만져주었다. 완벽하게 보이고 싶었다. 웨딩사진은 집 거실 중앙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남편과 나는 그 안에서 우리들 만의 웃음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