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다 보면 가끔 이유 없이 마음이 푹 꺼지는 순간이 있다.
그 감정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머물러 있던 질문이 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바쁘게 살다 보면 잊혀지기 마련인 질문인데, 요 며칠은 무슨 탓인지 가슴이 공허했다. 출근길에도, 일하는 중에도, 퇴근길에도 무거운 추가 가슴에 매달린 것처럼 답답했다. 결국 퇴근하면서도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채 집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익숙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뭐지?
냄새를 따라 부엌으로 가 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꽃게찜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순간 이상하게도 하루 종일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마음이 사라졌다.
남편은 평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꽃게는 물론이고 씨를 발라 먹어야 하는 포도나 수박도 귀찮아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꽃게를 사 와 손질하고 정성껏 쪄 놓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 꽃게찜은 오롯이 나를 위한 음식이었다.
행복했다.
누군가 내 하루의 무게를 알아주고 있다는 사실이.
귀찮고 번거로운 일인 줄 알면서도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들였다는 사실이.
그 마음이 고마워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꽃게를 참 좋아했다.
꽃게가 식탁에 오르는 날이면 다른 가족들은 진작 식사를 끝내고 각자의 일을 하러 갔지만, 나는 여전히 식탁에 앉아 꽃게 다리를 붙들고 있었다. 한 시간 넘게 살을 발라 먹는 일도 흔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빠는 늘 웃으며 말씀하셨다.
“시집가서도 저러면 어쩔까.”
좋아하는 음식인 건 알지만, 기다려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간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의 걱정과는 달리 나는 꽃게를 좋아하는 며느리를 위해 매년 꽃게를 챙겨 주시는 시부모님을 만났고, 꽃게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남편을 만났다.
오늘도 역시 남편은 몇 점 먹지 않았다. 귀찮다며 꽃게 대부분을 내 앞으로 밀어놓고는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난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며칠 동안 나는 인생의 의미 같은 거창한 질문을 붙들고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던 건 아닐까.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행복은 무엇인지.
하지만 정작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나를 위해 꽃게를 찌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 주는 사람.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행복해하는 나.
느닷없는 ‘사는 게 무엇일까’라는 심각한 질문을 던져도,
“먹고살려고 사는 거지!”
라며 기꺼이 대답해 줄 줄 아는 사람.
이 사람 복잡한 나와는 다르게 참 단순해서 좋다.
어쩌면 삶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거창한 이유를 찾아 버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발견하며 오늘 하루를 따뜻하게 마무리하는 것.
지금 이 순간 행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날도 있는 것이다.
오늘 저녁, 꽃게찜 하나가 내게 알려주었다.
인생의 정답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고.
어쩌면 그것은 언제나 식탁 위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녹아져 스며들어있는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