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난 딸부자 엄마여, 더 이상 딸은 필요읍써.”
어머님은 지난해 장기 요양 4등급 판정을 받아 요양사의 도움을 받고 계시다. 요양사 A 씨는 어머님을 살피시면서 다른 어르신에게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을 느꼈나 보다. 건강상의 문제로 더 이상 근무할 수 없게 된 A 씨는 마지막 출근 날, 조심스레 어머님께 말했다. 이에 시어머님은 딱 잘라 거절하셨다. 평소 정이 많기로 소문난 어머님의 이런 행동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A 씨가 부담스러웠던 걸까?
“사람이 참말로 괜찮여.
다른 요양사는 한 시간도 안 돼서 일 다했다고 그러거든.
그러곤 두 시간을 앉아있다가 가.
시간은 채우고 가겠다는 거지.
그런데 A는 달라.”
어머님은 평소에 A 씨를 칭찬하느라 입이 바쁘셨다. A 씨의 손이 지나간 곳은 먼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시댁을 찾아도 깔끔한 집안 살림은, 어머님의 손길이 느껴질 정도였다. 시댁은 옛날 집이다. 지어진 시대를 드러내듯 천장에 나무 문양의 격자가 새겨져있다. 심지어 유난히도 높아서 아무리 먼지를 닦고 싶어도 함부로 손대기 쉽지 않다. A 씨는 그곳 먼지까지도 때마다 닦아내었다. 게다가 안 해도 되는 마당 정리와 청소까지 하셔서, 어머님과 아버님을 흐뭇하게 하셨다. 그런데.. 딸이 필요없다는 이유로 딱 잘라 거절하시다니..
사실 A씨의 성실함과 근면함 뒤로 그늘진 구석이 있다. 요양사님은 태어난 직후에 버려졌다. 연고도 없던, 생판 남인 어느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굶지는 않았지만 늘 손과 발을 바삐 움직이며 사셔야 했다.
“여태 힘들게 살았는데
이제 살만하다 싶으니까 암이란다.
그래서 얼마 전에 그만뒀어.
참말로 불쌍한 사람이여. ”
A 씨는 수술이 잘 되어 현재 항암치료 중에 있다. 이후로도 어머님께 안부드리러 오신다고 한다.
“오면 꼭 ‘아부지’ 하면서 니 아버지한테 간다.
나한테는 ‘엄마’라고 안 혀. 아니.. 못허지..”
평소 생각이 깊으신 어머님이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리 없다. 그래도 모른 척, 요양사님 편을 들어 말씀드렸다.
“엄마라는 말,
한 번쯤 불러보고 싶으신 분일 텐데
그냥 허락해 주시지 그러세요.”
어머님이 이어 말씀하셨다.
“불쌍해서 그랴.
내가 앞으로 살아봤자 얼마나 살겄니.
...
또 상처 주기 싫다.”
어머님의 말씀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던 아이, 평생 엄마를 그리워했을 사람. 어머님은, 그분이 엄마를 얻는 기쁨보다 다시 엄마를 잃는 슬픔을, 먼저 생각하고 계셨다. 어머님 말씀대로,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그분에게 더 나은 일인지, 아니면 단 몇 번이라도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게 더 나은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도 그분은 여전히 시부모님을 찾으러 오신다.
“아부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린다. 아버님은 활짝 웃으며 그분을 반기시고, 어머님은 못 들은 척 미소 지으신다. 단지, 엄마라는 이름만 부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