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mini 문학비평 46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詩 ‧ 오 ‧ 르 ‧ 가 ‧ 즘’]
[순수문학 7월호]
詩 ‧ 오 ‧ 르 ‧ 가 ‧ 즘
헉헉거릴 만큼 숨 가쁘지는 않다
그렇지만, 머리카락 한 올 끝까지
뱃속 식도 벽 세포막 촉수까지
진도 3.5의 미진으로 간지럽게
흔들어대는 황홀의 극치
마침내 마지막 이 백 개의 네모 칸마저
붉은 연어 알 정액으로 뿌려놓고
탈진한 펜이 드러누웠다
개운한 탈진, 시인의 두 눈알은
절정의 엑스터시에
소리 없는 교성을 마구 지른다
풋 익었던, 농익었던
이 금강석 닮은 정신의 환희를
어디에 비기랴
영육이 교접하여 스스로 토해내는
이 고결한 배설
누구나 먹을 수 있는 황금 똥이다
시 한 편 탈고는
이렇게 절정이다
이제 눈망울에 백태는 거두어졌다
쉬 쉬 에누리 없이
내지르는 배설 줄기,
어 시원하다 詩
⛄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詩 ‧ 오 ‧ 르 ‧ 가 ‧ 즘〉은 시 창작이라는 고통스럽고도 고결한 과정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강렬한 육체적 쾌락인 '오르가즘'에 빗대어 거침없이 쏟아낸 수작입니다.
문학에서 창작의 고통을 출산의 고통으로 비유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 시처럼 창작의 희열을 성적 절정과 배설의 카타르시스로 이토록 노골적이면서도 순수하게 결합한 작품은 드뭅니다. 작품의 주요 특징을 몇 가지 측면에서 비평해 봅니다.
1. 전율에서 탈진으로 : 창작 과정의 감각적 시각화
시인은 시를 쓰는 행위를 단순히 머리를 굴리는 지적 노동이 아니라, 온몸의 세포가 반응하는 신체적 반응으로 묘사합니다.
⚫1연 (도입) : "진도 3.5의 미진"이라는 표현이 압권입니다. 격렬하게 휘몰아치기보다 머리카락 끝부터 식도 벽 세포막까지 온몸을 미세하게 흔드는 은밀하고 황홀한 전율로 시상의 시작을 알립니다.
⚫2연 (절정) : 원고지 "이 백 개의 네모 칸"에 채워지는 글자들을 "붉은 연어 알 정액"으로 치환합니다. 이는 시인의 언어가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력을 갈아 넣은 '생명의 씨앗'임을 뜻합니다. 시가 완성되는 순간 원고지 위에 "탈진한 펜이 드러누"운 모습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뒤의 나른한 피로감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전달합니다.
2. '배설'의 역설 : 추(醜)함에서 성(聖)함으로의 승화
3연과 4연에서 시인은 영육이 교접하여 토해낸 결과물을 "고결한 배설", "황금 똥"이라는 파격적인 시어로 표현합니다.
영육이 교접하여 스스로 토해내는 / 이 고결한 배설 / 누구나 먹을 수 있는 황금 똥이다
일반적으로 배설물이나 똥은 더럽고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시인은 그 앞에 '고결한', '황금', '금강석 닮은 정신의 환희'라는 수식어를 붙입니다. 이는 시를 쓰는 행위가 내면의 찌꺼기를 비워내는 영혼의 정화(카타르시스)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그것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황금 똥이라는 점에서, 시인이 도달한 예술적 성취가 혼자만의 만족에 그치지 않고 타인(독자)에게 영양분이 되는 정신적 양식임을 역설합니다.
3. 백태(白苔)를 거두고 도달한 해방감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시를 끝내고 난 뒤 "눈망울에 백태는 거두어졌다"고 선언합니다. 시상을 잡지 못해 눈앞이 흐릿하고 답답했던 상태(백태)에서 벗어나, 비로소 세상을 맑고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시인의 개안(開眼)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의 "어 시원하다 詩"라는 날것 그대로의 탄성은 엄숙주의를 집어던진 시인의 솔직한 독백이자, 창작의 변비(?)를 끝낸 예술가의 궁극적인 해방감의 표현입니다.
⚫짚어볼 점 (아쉬운 점 혹은 호불호)
- 직설성과 통속성의 경계 : '정액', '교성', '똥' 같은 시어들은 독자에 따라 다소 직설적이거나 외설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예술적 비유라는 맥락을 놓치면 자칫 통속적인 배설의 문학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이 이 감각들을 '금강석 닮은 정신의 환희'와 결부시켰기 때문에, 불쾌감보다는 오히려 가식 없는 솔직함과 생동감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 총 평
한기홍의 〈詩 ‧ 오 르 ‧ 가 ‧ 즘〉은 문학의 엄숙주의를 깨부수고, 시 쓰기가 얼마나 치열하고 짜릿한 육체적·정신적 행위인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준 에너제틱한 작품입니다. 관념적인 시어에 갇히지 않고,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감각을 빌려와 예술의 절정을 표현해 낸 시인의 과감한 시선이 돋보입니다.시 한 편을 끝낸 시인의 거친 숨소리와 개운한 미소가 독자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합니다.